61. 성유공소
관할 본당: 가은 성당
경북 문경시 가은읍 성유신기길 70 (성유리 122-1)
62. 도태공소
관할 본당: 가은 성당
경북 문경시 가은읍 대야로 1865-6 (상괴1리 463번지)
63. 상괴공소
관할 본당: 가은 성당
경북 문경시 가은읍 용유공길 18 (상괴리 55번지)
65. 당포공소
관할 본당: 문경 성당
당포 공소는 문경 본당에서 4km 거리에 있다.
논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는 이 곳에 신앙의 터전이 이루어진 것은
1926년 박기일 가별에 의해서이다.
박기일 가별은 고향 영천에서 영세를 받아 신앙 생활을 하였는데,
제사를 지내지 않자 밀양 박씨 문중으로부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신앙 생활을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지금의 당포로 이사를 왔다.
처음 이사를 와서는 가족끼리 공소 예절을 보고 성사는 점촌 공평 성당에서 보았다.
차츰 예비자가 생기자 예비자들과 함께 공소 예절을 보기 위하여
작은 민가 한 채를 구입하여 사용하였다.
영세자가 늘어나 20여 세대가 되자 작은 집에서 공소 예절을 보기가 불편해
고심하던 중 문경 본당의 조동래 베드로 주임 신부가 지금의 공소 부지를 구입해 주었다.
건물은 신자들이 자재와 인력을 동원하여 짓기 시작해 1972년에 완공하고
문세화 신부가 축성을 하여 사용하다가
1997년에 지금의 조립식 건물로 재건축하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매주일 20명 전후의 사람이 모여 공소 예절을 보고,
매월 넷째 주에는 본당 신부가 와서 미사를 집전해 준다.
(문경 성당 홈페이지)
경북 문경시 문경읍 화계1길 30-7 (당포리 757-1)
66. 상신공소
(교우촌)
관할 본당: 가은 성당
1985년 봉헌
경북 문경시 농암면 상신농장길 62 (사현리 573-86번지)
노아놀드(한국명: 노도주, P Arnord Johann Lenhard, 1905-2003, 독일) 신부는
1956년 한국에 입국.
1962년 한센인 자활 정작촌 <상신원>을 개설한 것에 대한 송덕비이다.
67. 정리공소
설립년: 1963년
관할 본당: 문경 성당
(아래의 글은 문경 성당 50년사에서 퍼옴)
정리 공소는 문경 본당에서 4km의 거리인 문경과 가은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주위가 산으로 둘러져 있는 이 곳에 신앙의 보금자리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권영철 베드로에 의해서이다.
그는 함창 성당에서 영세를 받고 이 곳으로 이사와 처음에는 신현 공소로 미사를 다녔다.
그가 이웃에 전교를 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부친을 잃게 되었을 때,
가은 본당 지인수 에른스트 신부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때부터 그는 더욱 열심한 신앙 생활을 하게 되고
전적으로 지역 전교에 정열을 기울이게 되었다.
온 가족을 비롯하여 주위에서 신자가 늘어나자 자신의 집에 모여 공소 예절을 보게 되었고,
판공 때 신부가 오면 좁은 방에 모여서 미사를 드리곤 하였다.
신자가 늘면서 한 평 남짓한 좁은 공간이 불편하여 공소 건물을 짓는 데 힘썼다.
그 당시는 대구 교구의 관활로 교구의 보조를 받아 현 대지를 구입했다.
신자들이 벽돌을 만들고, 자재를 다듬는 등 인력을 다하여 1968년에 완공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지 에른스트 신부가 축성을 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신앙의 터전으로 이어오고 있다.
2010년 김원현 베드로 신부가 다시 도색 및 수리 공사를 실시하였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씩 매월 둘째 주일에 본당 신부가 와서 미사 전례를 보고,
나머지 주일은 공소 신자들이 모여 다같이 공소 예절을 보고 있다.
1963년 마성공소(현 신현공소)에서 분가, 권영철 베드로 집에서 공소 예절 시작
1967년 현 공소 대지 구입
1968년 공소 건물 신축
2004년 공소 옥외 성모상 건립(문견 본당으로 부타 받음)
2007년 공소 진입로(마성 면사무소) 및 공소 마당 포장(문경 본당)
경북 문경시 마성면 정리2길 46-6 (정리1리 180번지)
68. 신현공소
1933년 5월 설립
관할 본당: 문경 성당
문경에서 대구 방향으로 8km 떨어진 신현1리 마을 중앙에 위치한 신현 공소에
신앙의 터전이 마련된 것은 1920년대이다.
전주 이씨 이석희 요안이 선산에서 11살에 영세를 받고
선친을 따라 1921년에 이 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 당시는 점촌 공평 공소에 공소 예절을 보러 다니고,
판공 성사는 함창 성당에서 신부가 오면 받았다.
공평까지 험악한 산길을 걸어다녀야 하는 어려움이 많은 것을 안
함창 본당 정 신부의 배려로 1925년부터는 이석희 집에서 3세대가 공소 예절을 보게 되었고,
판공 성사 때만 공평 공소로 갔다.
예비자가 늘자 요안의 집 헛간을 개조하여 사용했으나,
늘어나는 예비자를 감당치 못해 마당에 멍석을 깔고 공소 예절을 보곤 하였다.
공소 운영은 조금씩 봉헌한 쌀로 했으며,
가은에 본당이 생기면서 판공 때는 가은 성당의 신부가 와서 성사를 주었다.
계속 예비자가 늘어나 협소한 장소 때문에 고심할 때,
지 에른스트 신부가 문경 본당 초대 신부로 부임해서
공소 증축을 위한 건물(구 마성면사무소)을 구입해 주었다.
그 곳 회의실에서 공소 예절을 보다 옆 부지에 새 공소 건물을 지어
1959년에 공소 신축 축성식을 가졌다.
공소 건물이 완성되기까지 신자들의 노력 봉사와
지 신부를 통한 외국의 원조가 큰 힘이 되었다.
그 당시 모든 가정이 여려워 성당을 통해 구호 물자가 나오면,
그것을 받기 위해 신현의 전 세대가 공소로 몰려와 예비 입교를 하여
한때는 장사진을 이루고 활기가 넘쳤다고 한다.
이제는 참 신앙으로 출발한 이들이 모여 증거하는 삶으로 공소 예절을 보고
매주 첫째, 셋째 주에는 신부가 와서 미사를 집전해 준다.
경북 문경시 신현3길 16 (신현1리 343번지)
69. 외어공소
설립년: 1964년
관할 본당: 문경 성당
우리 나라가 광복이 되기 전부터 연작살(외어4리)에 교우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질구리에서 살던 최명광 루수와 이 요한, 또 한 사람은 마원에서 이 곳으로 이사를 왔다.
최명광 루수는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가서 전사하고,
그의 부인 김 누비나와 세 가구는 광복이 되어 1948년 이후 신현 공소를 다녔다.
1964년 봄부터는 외어에서도 하루가 다르게 예비자들이 불어나
이철하 요한 집에서 공소 예절을 보도록 하여 1964년 여름에 외어 공소가 설립되었다.
예비자가 늘어나 방 한 칸으로는 부족하여 방 두 칸을 터서 하나로 만들어 예절을 보았다.
당시 전교회장이 예비자들의 교리를 가르치고, 초대 회장 이 요한은 어린이들을 담당하였다.
영세자가 많이 늘고, 1965년 여름에 최초로 문경 본당의 신부가
외어 공소에 와서 미사를 집전해 주었다.
그 후 1970년에 동네 가운데 논을 매입하여 공소 부지를 확보하고,
신자들이 힘을 합해 공소 건물을 짓고 담장까지 말끔히 단장하였다.
1972년 8월에 공소 건물을 완공하고
문세화 베드로 신부가 주례 축성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2004년에 조종율 베르나르도 신부가 공소 화장실을 수리 보수하고
공소 지붕 및 내외부를 수리하였다.
-1964 마성 공소(현 신현 공소)에서 분가, 외어 공소 설립
-1965 공소에 신부가 와서 미사
-1970 공소 부지 매입
-1972 공소 건물 완공 축성
-2004 공소 건물 및 화장실 수리 보수
(문경성당 홈페이지에서 퍼옴)
현재는 20여명이 미사에 참례한다고 합니다.
고령화로 인해 미사 참례 인원이 줄어들고 있답니다.
60. 갱화공소
(교우촌)
경북 봉화군 봉성면 봉명로 9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