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쌀을 계속 먹을까요? 아니면 햅쌀부터 먹을까요? 2023. 1. 1. 신년주일예배설교

[이동춘]

2023. 1. 1. 신년주일예배설교

마태복음 13장 51~52절, 고린도후서 5장 17~19절

묵은쌀을 계속 먹을까요? 아니면 햅쌀부터 먹을까요?

■ 작년에 추수해서 먹는 쌀은 묵은쌀이지요? 작년에 추수한 쌀은 올해 도정(搗精)을 해도 묵은쌀입니다. 햅쌀은 올해 추수한 쌀입니다. 자, 질문 시간입니다. 묵은쌀을 먹고 있는데 햅쌀이 들어왔습니다. 묵은쌀을 다 먹고 햅쌀을 드십니까, 아니면 햅쌀을 먹고 묵은쌀을 드십니까?

어느 쪽이냐는 것은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므로 곤란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취향의 문제는 미적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묵은쌀을 먹는 동안 햅쌀은 묵은쌀이 될 수 있습니다. 묵은쌀을 다 먹고 햅쌀을 먹겠다는 입장이라면, 햅쌀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계속 갖지 못할 것입니다.

혹시 ‘묵은쌀’을 본문의 “옛것”과 “이전 것”으로, ‘햅쌀’을 “새것”으로 이해한다면, 어떤 메시지가 될까요? 좀 갸우뚱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의미 있는 메시지가 나올 것 같습니다. 엮어볼까요?

■ 마태복음 본문은 예수님의 질문과 제자들의 답으로 시작합니다. 51절입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그러하오이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궁금합니다. 무엇을 깨달았느냐고 물으신 것인가요? 이것은 본문 앞의 13장 전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13장은 예수님의 비유로 가득합니다. 첫째는,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비유입니다. 둘째는, 겨자씨 비유입니다. 셋째는, 누룩 비유입니다. 넷째는, 가라지 비유입니다. 다섯째는, 세 가지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각각의 메시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통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천국-하나님 나라”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인지, 어떤 의미인지를 비유를 통해 설명하신 곳이 마태복음 13장입니다. 그리고서 하신 질문이 51절입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나님 나라를 이해시키기 위해 비유로 설명하셨고, 이를 자세히 풀어주신 후 하신 질문이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의 답은 “예~”였습니다. 다 이해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이 이어서 하신 말씀이 또 비유였습니다. 52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새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를 위하여 훈련을 받은 율법학자는 누구나, 자기 곳간에서 새 것과 낡은 것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비유에는 그 의미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주신 이 비유는 설명을 안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지금까지도 이해하기 어려운 비유로 남아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하늘 나라를 위하여 훈련을 받은 율법학자)이 누구냐를 두고 해석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특정한 사람이냐, 아니면 예수님의 제자 전부냐를 두고 해석이 엇갈리는 것입니다.

저의 입장은 후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전부가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입니다. 당시 서기관은 성경해석자로서 성경교사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성경 66권을 주신 이후로는 예수님의 제자라면 누구든 성경해석자로 살아야 합니다. 직접 읽고, 이해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물론 보다 전문가로 선별된 사람은 있습니다. 목사이고, 목사를 양육하는 신학자입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성경을 주신 이상 예수님의 제자는 모두가 “하늘 나라를 위하여 훈련을 받은 율법학자”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비유로 설명하신 것이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의 역할입니다. 성경을 직접 맡은 서기관으로서 예수님의 제자는 곳간에서 옛것과 새것을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꺼내오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곳간”은 하나님 나라요 성경입니다. “옛것”은 ‘구약’이고, “새것”은 ‘신약’입니다. 구약은 옛날 약속이라는 뜻이 아니죠? 오래전에 하신 약속이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약속입니다. 신약은 새로운 약속이고, 이전의 약속과 연결된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는 집주인처럼 책임감을 갖고 오래전에 하신 약속과 예수님으로 인해 발전된 약속을 적절하게 적용해야 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제자가 바로 우리, 그리고 나입니다.

■ 그런데 고린도후서 5장의 본문은 마태복음 13장의 본문과 충돌하지는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태복음 13장은 “옛것”과 “새것”을 적절하게 사용하라는 것인데 반해, 고린도후서 5장은 “이전 것”은 지나간 것이라고 하면서 “새 것”에 집중하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둘이 충돌하죠?

그런데 아닙니다. 충돌개념 같으나 보완개념입니다. 무엇에 더 집중하고 초점을 맞출 것이냐의 개념입니다. “옛것”과 “이전 것”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새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새것”을 위해 “옛것”과 “이전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옛것”과 “새것”은 보완개념입니다.

물론 각자 다른 의미를 살짝 갖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완전한 보완의 개념이지만, 고린도후서는 극복하는 보완개념입니다. 구약은 신약을 뒷받침하는 약속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 안에서 거듭난 새로운 인생은 이전의 인생을 반성하는 인생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반추(反芻)이고, 고린도후서는 반성(反省)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완전한 보완의 개념이고, 고린도후서는 극복하는 보완개념입니다.

이렇게 살짝 다를 뿐, 두 본문은 다 보완개념입니다. 그래서 묵은쌀이 햅쌀만큼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햅쌀 맛을 따라오기는 어렵겠죠?

■ 그렇습니다. 분명 옛것과 새것은 보완관계이지만, 중점은 새것에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것과 옛것의 시간적/공간적 경계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 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것”이고,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옛것”입니다. 분명 새것이 옛것과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옛것은 지나간 것이어야 합니다. 새것은 옛것과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새번역)

여기서 우리가 정리해야할 입장이 있습니다. 옛것 때문에 새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옛것은 처음부터 필요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밖에서의 삶은 사망의 삶이었습니다. 물론 새로운 피조물로서 자신을 반성(反省)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관계는 무 자르듯 정리해야 하는 관계이지, 상호교류해야 할 관계는 아닙니다.

그래서 분명히 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인 우리는, 이전의 삶인 그리스도 밖에서의 삶을 그리워해서는 안 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라는 말씀의 의미가 이것입니다. 옛것이 아닌 새것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묵은쌀이 아닌 햅쌀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옛것에서 새것, 새 사람으로 넘어온 우리입니다. 그래서 새것에 집중하여 오늘을 살아가야 합니다.

■ 그렇다면 집중해야 할 새것/새 삶은 무엇일까요? 이전에는 하지 않거나 무시했던 것입니다. “화목”(和睦, making peace)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19절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예전에는 누구와도 화목하려고 하지 않았던 우리입니다. 먼저는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연입니다. 내가 관계하는 모든 것들과 화목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불화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피조물인 우리는 화목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화목하게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의 인생이 시작되면서 화목의 직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이상 꼼짝 못 할 일입니다.

그러나 이 직분은 그 어떤 직분보다 복되고 가치 있는 직분입니다. 깨진 관계들을 회복시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미움과 싸움을 말리고 사이좋게 지내도록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평화를 만드는 이 일은 가장 복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이 일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화요일과 목요일만이 아닌 매일같이 말입니다.

■ 새해를 맞았습니다. 특히 오늘은 그 첫날입니다. 새해 첫날 우리 모두가 결심할 일은 다름 아닌 ‘화목의 직분 맡음’과 ‘화목의 말씀을 맡음’에 대해서입니다. 이것은 미움과 싸움으로 치달리고 있는 세상을 멈추게 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는 일입니다.

바라기는 미움과 싸움이라는 묵은쌀이 아닌 화목과 평화라는 햅쌀을 먹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조금이라도 아름다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