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7.月. 흐림
12월16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얼마 전 K시에서 살고 있는 동생으로부터 화수회花樹會 송년모임을 알려왔습니다. 명칭이 화수회花樹會라 굉장한 문중門中 모임 같지만 사실은 사촌형제들 간의 친목모임이랍니다. 그런데 그 날짜와 시간이 16일 오후6시로 일요일 저녁시간이라 잠시 망설이다가 응, 내려가겠노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내가 조금만 불편을 감수하고 저녁모임을 마치고 나서는 심야고속으로 다시 서울로 올라오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밝은 토요일이 지나고 어두운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밝을 때면 모르거나 잊고 지나치던 것들이 어두워지면 하나하나 머릿속에 정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은 알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 이유로 밝은 대낮보다는 깜어두운 밤중이, 쾌청한 날보다는 흐리거나 비가 내리는 날이 사색思索이나 몰입沒入에 더 유리한 줄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모임시간이 일요일 오후6시라 내일 일정을 어떻게 할까 생각을 하다가 이왕 K시에 내려가는 거 조금 빨리 가서 모임 전에 K시를 걸어서 한 바퀴 둘러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토요일 밤 이부자리에 들어 눈을 말똥말똥 굴리면서 지난주 일요일을 잠깐 추억追憶해보았습니다. 기억에 이야기가 끼어들면 추억이 되는 것이지요. 지난 주 일요일에는 모처럼 일요법회에 참가하여 일요법회도 보고, 산채뷔페인 점심공양도 하고, 도반님들과 송년회 겸 저녁식사를 하고 이어서 무진주보살님댁으로 자리를 옮겨 차담茶啖을 나누면서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얼마만큼 분위기가 무르익자 내가 미리 준비해간 연하장年賀狀을 한 분 한 분께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솜솜 건네 드렸습니다. 일요법회 송년회 공지가 올라오자 언뜻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 이번 송년회에서는 도반님들께 모두 즐거워할만한 선물을 하나씩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선물로 할까하고 생각해보아도 마음흡족 할 만하게 이거다. 하고 생각나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조항조의 ‘거짓말’을 연습해서 불러드릴까 혹은 해바라기 2기의 ‘지금은 헤어져도’나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라이브로 불러드릴까 생각하다가 아니 아니 나는 역시 글이 낫겠다싶어서 한 분 한 분께 연하장을 쓰자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연하장 안에 자작시自作詩를 한 편씩 써 넣어드렸습니다. 내가 소설을 쓰기 전에 원래 나의 글쓰기의 출발은 시詩였다는 것 생각한다면 사실 시가 가장 편안하게 나를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느끼고 있어서 시를 쓸 때면 소설을 쓸 때처럼 마음에 줄거리의 부담이나 마무리의 압박이 없어서 느낌과 기분이 자유롭고 즐겁습니다. 오랜만에 하얀 A4 지에 펜을 들어 시를 적었습니다. 그리고 시를 쓴 네모난 종이를 두 번씩 접어 연하장年賀狀 안쪽에 넣었습니다. 도반님들께 연하장을 드리면서 여기서 펼쳐보지 마시고 집에 돌아가서 읽어보시라고 부탁말씀을 드렸습니다. 서양식으로는 선물을 준 사람 앞에서 반갑게 펼쳐보는 것이 예의일지 몰라도 나는 아직도 내 글을 내 앞에서 읽는 것을 보면 쑥스럽고 무안한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불교의 빛과 그림자를 치열熾熱하게 느끼면서 5년째 일요법회를 함께 모셔온 일요법회 도반님들입니다. 여전히 내가 이 분들께 해드려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불 꺼진 방안의 허공의 깜깜이 감감하다 이윽고 가물가물해지더니 어느 순간 깜박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꿈속에서 삼준산 편백나무 숲 사이를 노래하는 나비처럼 펄펄 날아다니는 하얀 연하장年賀狀들을 보았습니다.
지하철9호선이 개통을 한 뒤로는 집에서 종합운동장까지 걸어가서 지하철 급행을 타면 10분이 채 걸리지 않아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합니다. 사실 10분은 좀 그렇고 4개 역을 통과하니 15분이면 충분히 도착합니다. 고속버스터미널 도착시간이 오전9시13분인데 고속버스표를 끊으려고 시간표를 보았더니 9시20분발 일반고속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고속버스도 차별화差別化되어 일반고속, 우등고속, 프리미엄고속으로 다양화多樣化되어있습니다. K시까지 버스요금은 각각 만 원대, 이만 원대, 삼만 원대입니다. 차별화 또는 다양화란 경제용어로는 가격의 상승, 쉬운 말로 바꾸면 비싸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얼른 일반고속 표를 끊어서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차창 밖으로 눈보라가 갑자기 휘날렸습니다. 그래서 서울보살님께 이제 버스 출발해요. 당신도 안전운전하세요. 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서울보살님은 오늘 제천으로 송년모임을 간다고 했습니다. 오늘 일기예보의 남부지방은 오전부터 비가 올 거라는 안내에 나는 접이우산까지 챙겨들고 왔기 때문에 벌써부터 흩날리는 눈보라에 회심會心의 미소를 지었습니다만 막상 K시에 도착해서 충장로를 걸을 무렵 딱 세 방울의 빗방울이 구름 짙은 하늘아래로부터 떨어지고는 남부지방의 비는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렸습니다. 내 좌석이 13번이어서 앞에서 4번째 줄에 위치해있는데 가는 내내 TV를 켜놓아 몹시 불편했지만 다른 승객들이 보고 있는 같아서 기사님께 그걸 꺼달라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나도 그걸 보게 되었는데 아마도 무슨 예능프로그램 같았습니다. 몇몇의 젊은 연예인들이 함께 일박을 하면서 게임도 하고 재담도 나누었는데 그중 내가 아는 이름은 손예진과 이승기 둘 뿐이었습니다. 마이크로 닷과 도끼는 특별한 예외이지만 내가 이름을 알 정도의 연예인이라면 아마 한국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연예인 일 것입니다. 출연자 중 여자는 유일하게 손예진이라 아무래도 손예진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웃음에는 눈으로 웃는 웃음과 입으로 웃는 웃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여자들 중에서 웃으면 눈이 초승달처럼 변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처럼 눈웃음만으로 선연嬋娟하게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이 웃음 때문이었는지 남자 출연자들이 손예진에게 가슴 절절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아무래도 나이와 연륜이 있는 손 씨 아가씨가 고백을 여유 있게 받아들이는 모습도 괜찮았습니다. 2005년도에 딸아이 미국유학을 결정하고 준비를 하면서 영어회화학원을 다닐 때 잠시 나도 함께 다녔습니다. 그 시기에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하면서 역시 유학준비를 하고 있던 통통한 남자 고등학생 아이가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여배우 스칼렛 요한슨과 자동차 람보르기니라고 말했던 그 눈빛이 손예진을 향한 남자 출연자들의 모습에서도 살짝 엿보였습니다. 그 당시 이완 맥그리거와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아일랜드The Island라는 영화가 상영 중이어서 나도 그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아일랜드라는 영화의 소재만큼이나 특별한 스타일의 서양 여배우에게서 별로 감흥을 느끼지 못하던 나에게는 의외로 신세대와의 신박한 감각차이를 발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이 끝나고 이어서 백종원이 나오는 음식프로그램이 계속되었는데 백종원은 참 토속적土俗的으로 생긴 얼굴입니다. 그리고 입으로 웃는 웃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K시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하니 정오를 살짝 넘긴 12시36분이었습니다. 서울에서 K시까지 걸린 시간이 3시간16분이라니.. 고속버스로 K시까지 달려오는 시간 중 가장 빠른 기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역시 일반고속버스가 싸고, 빠르고, TV도 켜주고, 겁나 좋아!
K시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서울로 올라갈 심야고속버스를 예매해야했습니다. 그래서 밤11시경 강남터미널 행 고속버스를 물어보았더니 심야고속버스에는 일반고속버스는 없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밤11시10분 우등고속버스로 예매를 했습니다. 그리고 K시를 한 바퀴 걸으려면 우선 무언가를 좀 먹어야 했습니다. 머지않은 농성역까지 슬슬 걸어가서 지하철을 타고 금남로4가에 내려서 충장로 파출소 옆에 있는 메밀국수 음식점으로 향했습니다. 고향인 K시에 가면 꼭 한번쯤은 메밀국수를 먹으러 갑니다. 국민학교6학년 때 처음으로 먹어보았던 메밀국수는 광주우체국 입구에 있었던 산수옥山水屋이라는 메밀국수 전문점이었는데 나중에 솔잎모밀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언젠가부터 그 자리에서 음식점이 없어져버리고 핸드폰 대리점이 들어와 버렸습니다. 그런 뒤로는 이곳 메밀국수집을 알아내서 먹으러 다니기는 한데 사실 말이지만 맛에는 불만이 많습니다. 그런데다가 오늘 보니 양과 가격에도 불만이 생겼습니다. 아무래도 다음에는 다른 메밀국수집이나 왕자관王子館 짜장면으로 식단을 바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5분 만에 식사를 마치고 충장로3가부터 걷기에 나섰습니다. 이때가 오후2시35분이었습니다. 충장로파출소를 끼고 돌아 충장로3가에 막 들어섰는데 잿빛 구름으로 암담暗澹 짙은 하늘에서 비가 툭.. 툭.. 투욱..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이 떨어져 내렸습니다. 잠시 한두 호흡 침묵을 한 뒤 흡 흡 흐읍~ 후두둑~ 하고 비가 내리기를 기대하면서 접이우산을 펼 준비를 했는데 세 호흡 네 호흡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단 세 번의 땅을 향한 노크로 남부지방의 비 소식은 내내 끝나버렸습니다. 충장로2가와 1가를 지나 금남로를 건너 광주동부경찰서 길로 들어섰습니다. 광주동부경찰서 정문 건너편에는 내가 중학교시절 살았던 집에 다른 건물이 들어서있습니다. 그 건물 1층에 제법 규모가 큰 비움이라는 도시락·반찬 가게가 들어있습니다. 물론 채우려면 비워야겠지만 도시락 가게 상호가 비움이라면 고객의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뭔가 설명이 뒤따라야할 듯싶습니다. 그 비움을 설명하는 몇 문장의 글들이 벽에 붙어있는데 읽어도 선명한 뜻이 전달돼오지 않습니다. 채움과 비움 사이에는 덜음이 있는데, 비움을 설명하는데 덜음을 이용한다면 더 효과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욱 걸어 올라가 장동교차로를 지나 고등학교 다닐 적에 살았던 집 앞에 서니 이상하리만큼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문틈으로 마당에 개가 돌아다니고 사람의 모습이 슬쩍 비추자 돌아서서 골목을 나왔습니다. 갤러리와 카페가 있는 갈을 지나 슬렁슬렁 걸어가면 전남여고 뒷길과 대인시장을 지나고 대인시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바꾸어 계림동을 향해서 걸어갔습니다. 차를 한 잔 마시고 갈까 하는 생각이 들어 길가에 있는 찻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손님들이 나가면서 문을 열어놓은 채 휭 나가버리자 주인 할머니께서 아니, 이 엄동설한에 왜 문들을 안 닫고 다닐까 하면서 두런두런 불평을 해댔습니다. 그 말을 듣자 엄동설한을 한자漢字로 어떻게 쓰지 하는 생각이 들어 볼펜으로 냅킨에 엄동설한을 한번 써보았습니다. 嚴冬雪까지 썼는데 한 자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글쎄, 한 을 머릿속으로는 알겠는데 손으로 쓰려면 왠지 어색해져서 어느 획인가에서 매끄럽게 돌아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을 끙끙대다가 결국 인터넷을 켜고 들어가 엄동설한을 쳐보았습니다. 그래 맞아, 寒이지. 그래서 嚴冬雪寒 네 글자를 완성시켜 하얀 냅킨 위에 써보았습니다. 물론 유사한 글인 동빙한설凍氷寒雪도 그 옆에 나란히 써놓았습니다. 지금이 겨울철이라 춥기야 하지만 사실 오늘 날씨가 엄동설한을 말할 정도의 추위는 아닙니다. 물론 아직 동지冬至도 지나지 않은 초겨울이지만 날씨로만 말하자면 오히려 두 볼에 봄을 느낄 만큼 온화한 날씨였습니다. 다시 걸어서 내가 국민학교를 다닐 적에 살았던 동네로 들어섰습니다. 이 동네는 재개발지역으로 공지가 되었는지 드문드문 빈집들이 보였습니다. 옛날 우리 집도 문이 살짝 열려있어서 안으로 살며시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 텅 빈 공간속에는 오십 몇 년의 시간들이 깊고 푸르게 쌓여있었습니다. 옛집에서 나와 옛 기억을 더듬어 방향과 위치를 추리해가면서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까지 한 걸음씩 시간을 새기듯 걸어가 보았습니다. 방죽과 굴다리도 없어졌고 오다마를 팔던 점빵과 만화방과 문구점도 몽땅 사라져버렸지만 그 길목과 주변들에 뿌려놓았던 조밀한 기억들은 이리저리 흘러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철거 중인 건물에 희미하게 아세아 극장이라는 글자가 보였습니다. 그 길을 따라 줄곧 걸어가면 양동시장이 나오고 비스듬한 언덕받이를 계속 걸어 올라가면 돌고개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돌고개를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아까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던 농성역이 다시 나왔습니다. 농성역을 지나고 화정역을 지나서 쌍촌역까지 지나면 이제 저녁 모임장소인 음식점을 찾아낼 수가 있습니다. 약속장소인 음식점 앞에서 시계를 보았더니 오후5시35분이었습니다. 대략 세 시간가량 구 K시 번화가를 원래 목표했던 대로 걸어서 돌아다녔습니다. 이제 다리로 아프고 어딘가에 앉고 싶어서 약속시간에는 조금 일렀으나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음식점에 비치된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들고 예약된 좌석으로 걸어갔더니 먼저 와있던 동생이 신문을 보면서 앉아있었습니다. 아이구 형님 오시오~ 어이 자네, 일찍 나오셨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