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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갖게 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말씀을 사모하시는 심령으로 주님앞에 이르신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들려지는 말씀들이 주님께서 깨닫게 해 주시는 은혜로 깨닫고 은혜 충만 성령 충만의 행복된 시간이 되길 축복합니다.
오늘은 함께 교독한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꿈을 갖게 하시는 하나님이 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리의 소망을 확인해 보는 복된 은혜가 함께하길 소망합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꿈이 있습니까?
우리가 밤에 잠 중에 꾸어지는 꿈이 우리의 소망을 이루는 꿈과 같은 의미로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성경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성경은 많은 꿈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꿈 하면 어떤 사람이 생각나나요?
야곱의 꿈 이야기를 시작하여 요셉의 꿈이야기, 바로왕의 꿈, 느브갓네살왕의 꿈,
꿈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마치 꿈 해몽책처럼 보일 듯이 많은 꿈 이야기가 실려 있고 그 해석들이 실려 있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까?
여러분들은 꿈을 자주 꾸십니까?
어제저녁 주무실 때는 혹 어떤 꿈을 꾸셨나요?
꿈도 좋은 꿈들이 있고 나쁜 꿈들이 있죠?.
성경에 나오는 많은 분들이 꿈을 꾸었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 꿈들을 통하여 말씀하여 주셨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날도 많은 이들이 꿈을 의지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혹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제 밤에는 어떤 꿈을 꾸었는데 영 기분이 좋지 않아 꼭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 같은 그러한 꿈을 꾸었어 라고 예기하시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반면 어떤 분들은 어제 밤에 좋은 꿈을 꾸었는데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라고 말 합니다.
저희 들이 다른 교회에 있을 때의 이야기 입니다.
성도님들 한 10여 분이 함께 등산을 갔습니다.
매화산이라는 아주 아름다운 산입니다. 등산을 하면서 나누는 이야기들이 어쩌다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와 한 집사님이 아주 좋은 꿈을 꾸었는 것이 되었습니다.
어떤 꿈인지 잊어버렸지만 아주 좋은 꿈이라고 모두 말들을 하였습니다.
로또 복권을 싸면 꼭 당첨 될 거라고들 말씀들을 주셨습니다.
근데 좀 올라가니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이야기 있죠?
그날 산악 대원들이 그 곳에서 등반대회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곳에 갔었는데 등산을 다 하고 저 쪽 산 아래 내려가면 경품권을 추천하여 선물을 준다는 것이였습니다.
이제 화제는 어제 밤 꿈을 꾼 저와 또 좋은 꿈을 꾸었다는 그 집사님에게로 집중되게 되었습니다.
틀림없이 무언가를 타게 될 것이라고요.
등산을 마치고 그 쪽 산 아래에서 결과가 어떻게 났겠습니까?
저희들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까요?
저는 쌀20키로와 건강식품을 선물 받았고 그 집사님은 쌀10 키로와 건강식품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꿈이 맞았습니까?
그러한 일들로 사단은 자꾸 꿈들을 생각하게 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기록된 말씀들이 흔하지 않아 꿈으로 말씀 하실 일의 필요성이 있었지만 오늘날은 우리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말씀들이 기록된 말씀 안에 다 있습니다.
그렇게 믿으십니까?
아니면 지금도 꿈을 통하여 좀 가르쳐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꿈으로 말씀하실 필요가 없는 시대에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유를 말씀드렸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모든 말씀들이 성경과 증언의 말씀중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꿈으로 말씀을 주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오늘날은 하나님께서 꿈으로 전혀 말씀 하시지 않으신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모든 것을 통하여 기별을 주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혹 특별한 멧세지를 주실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대 부분의 꿈들은 사단이 노리는 함정임을 기억하시고 꿈을 생각하는 그러한 신앙을 하신다면 그런 것을 버리시고 말씀 중심의 신앙을 하게 되길 바랍니다.
오늘은 그러한 꿈들에 대한 말씀이 아니고요 우리 교회의 미래의 꿈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교독한 본문 히브리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말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시나요?
부조와 선지자는 아브라함의 행적을 기록하면서 이런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부조 126 그에게 있어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였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외부적 증거가 조금도 없는데도 그 약속을 믿고서, 집과 친척과 고향을 버리고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곳으로 따라가고자 나아갔다“
무슨 말씀같습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무엇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죠?
“그는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외부적 증거가 조금도 없는데도 그 약속을 믿고서, 집과 친척과 고향을 버리고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곳으로 따라가고자 나아갔다”그런 삶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대로 살아갔다고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씀은 우리가 믿는 그 믿음대로 우리의 현실이 꼴 지워 간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귀하신 성도님들 우리 모두의 삶이 믿음의 실상의 삶이 되길 축복합니다.
성경엔 믿음으로 주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갈 때 어떤 일이 일어날게 될 것인지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성경에 있지만 그중 한 이야기만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구약성경 여호수아 3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광야여행 마지막 부분에 대한 경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가나안 변방까지 왔는데 앞에는 큰 요단강이 가로막아 있습니다.
어떻게 건널까요“
그러나 그들에게는 40년의 경험들이 있기에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만나를 먹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그들은 보았고 또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때의 사람들은 거의 죽고 그때에 철없던 아이들이 성장하여 지금 이곳에 와있습니다.
이제 요단강물은 해마다 이때가 되면 언덕에 넘쳤다고 기록되었으니
얼마나 물이 깊었겠습니까?
그들에게는 그 강을 건널 배가 없었읍니다.
땟 목도 없었습니다.
만약 배가 있다고 하여도 인력을 수송하기엔 엄청 난 시간이 들었을 것입니다.
아이들 포함하여 약 250만 명이라고 하니 배한 척에 250명태우는 배가 있다면 250만 명을 실어 나르려면 1만 번을 왔다 가아 하는데 한번 왕복하는데 1시간 걸린다면 1만 시간이 걸리니 하루24시간 꼬박 실어 나른다면 하루가 24시간10일이면 2400시간 한 달 열흘이 넘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강을 건널 수 있을까 하나님 없는 백성 이었다면 아마 포기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강물을 앞에 두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시하십니다.
배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다리를 건설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호수아 3장에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지시를 하십니다.
무엇이라고 합니까?
수 3:3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무엇을 따르라 합니까? 언약궤를 멘 제사장을 따르라
언약궤는 말씀을 가리키는 말씀이죠.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시여 앞에 불투명하게 보여도 말씀을 따라 나가게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로 하여금 볍괘를 메고 앞으로 나아가고 백성들은 그 뒤를 따르라 하시고 강가에 이르면 강으로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니 하나님 우리보고 죽으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이러한 말들이 나올 만 합니까?
아마 믿음 없는 저 같으면 그와 같은 말들을 하였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엔 이스라엘 제사장들은 하나님 말씀을 따라 강으로 들어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다음은 어떤 일이 일아났을까요?
성경은 이러한 장면을 우리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3장15절 입니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수 3:15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제사장들이 언덕에 넘치는 강물에 들어갔다고 합니까? 예 들어갔다고 합니다.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라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우리는 봅니다.
그랬더니요? 다음절입니다.
수 3:16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강물이 어떻게 되었다고 합니까?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강물이 그쳤다. 흐르는 강물을 멈추게 할 능력이누구에게 있습니까? 하나님께
흐르는 강물 줄기를 멈추게 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말길 바랍니다.
지금 세계는 참 많이 시끌럽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속히 종식되기를 기도드리는데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리우는 중동이 시끄럽습니다.
새로운 아이에스라고 불리우는 하마스 세력이 이스라엘과 평화관계가 있는 아랍권과 분쟁을 부추기기 위하여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폭격하여 수 많은 사상자를 내었고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를 공격하겠다고 하고 아랍권에서는 그렇게 나오면 것 잡을 수 없는 가운데 빠질 것이라고 경고를 하고 이스라엘은 공격하겠다고 하고 전운이 감돌고 있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까?
더 기도 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와 우리 나라를 위하여 더 많은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여호수아의 말씀을 좀 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나라는 못하드래도 우리 교회라도 그렇게 살길 소망합니다.
17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 3: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도 요단 강변에 섰는 이스라엘처럼 많은 도전들을 받고 있습니다.
우린 정말 작고 작은 교회입니다.
우리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요단강물의 넘침같이 우릴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요단강물을 갈라주시리라 믿을 때 우리 앞의 요단도 갈라질 것임을 확신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우리 인생의 요단강 앞에서 배를 만들고 있습니다.
다리를 만들어야 이 강을 건널 수가 있다고 어떤 분들은 다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무엇을 만들고 있습니까?
배를 만드는 수고를 그치시길 바랍니다.
다리를 만드는 공사도 하지마시길 바랍니다.
오직 여호수아와 제사장들처럼 하나님의 법괘를 메고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교회의 미래를 보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이 교회에게 지금보다 10배 20배 30배 100배의 은혜를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그런데 성경엔 그러한 기록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 반대되는 기록도 있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예레미야 6장 19절입니다.
렘 6:19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무엇을 바꾸라는 말씀처럼 느껴집니까? 생각을 바꾸라.
교회 안된다는 생각 다 버리고 긍정적인 생각들로 바꾸게 되길 바랍니다.
바꾸지 않은 여러분들의 생각처럼 된다면 그 결과 어떻게 감당하시렵니까?
예레미야시대 이스라엘은 선지자의 기별을 거절했습니다.
렘 6:8은 이렇게 호소하는 글을 싣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너로 황무케 하여 거민이 없는 땅을 만들리라”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6:16절에 이렇게 말 합니다.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그들의 생각은 하나님을 떠나있어 평안을 주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거절했습니다.
고로 그들을 그들의 생각대로 멸망을 받았으며 성전은 황폐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제 우리교회가 이곳 장유에 있는 교회 중 가장 작은 교회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김해에서 경남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교회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님들이시여 그 작은 교회만 생각한다면 작은 교회로 그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눈을 내년의 교회 5년 후의 교회 10년 후의 교회를 바라봅시다.
지금까지 꾸었던 우리의 꿈들이 이루어 질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가능성 더 큰 가능성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작지만 결코 작은 무리가 아닙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미래의 이 교회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시고 그 일을 위하여 기도하고 일한다면 우리의 눈이 이 교회의 부흥을 보게 될 것입니다,
[동아일보 2005.2.19 에 의족 농구선수의 감동 드라마 라는 기사가 실렸음]
신문기사는 두 다리 모두 의족인 데다 양손 손가락이 3개씩인 장애인이 미국 대학농구 코트를 누비며 인간 승리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아일보에 실린 기록은 이렇습니다.
미국 위스콘신 주 매디슨 에어리어 공대 1년생인 브랜든 왓킨스(18·185.4cm)는 태어날 때부터 손과 다리가 기형이어서 두 살 때 무릎 아래를 절단하고 의족을 착용해야만 했습니다.
물건을 잡기도 어려운 손으로 그가 농구에 도전한 것은 8세 때입니다.
교회 운동장에서 친구들이 농구하는 것을 구경하다 혼자 슈팅과 다리 사이로 드리블 하는 것을 익혔고 매일 빠짐없이 농구경기 중계방송을 시청했습니다.
왓킨스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흉내내다보니 기량이 점점 좋아졌다"며 "사람들은 내가 정상이었다면 NBA 무대에 섰을 것이라고 칭찬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주로 긴 바지를 입고 다녔고 고교시절까지 `조용히' 살아온 탓에 왓킨스의 다리 가 없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밀워키의 지역 고등학교 농구팀에서 주무 역할을 맡았던 왓킨스는 졸업학년 때 선수로 나섰습니다. 대학 진학 후엔 곧바로 대학 농구팀 선발에 참가했습니다.
매디슨 에어리어 공대 스콧 베스터달 감독은 “트라이아웃에서 그를 봤을 때 손가락이 기형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바지를 입고 코트에 나올 때까지 다리가 없다는 사실은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진 농구에 대한 열정과 훌륭한 자세, 재능 등을 고려해 선발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농구에 대 해 내가 그에게 가르친 것보다 삶에 대해 그가 나에게 가르친 게 더 많다"고 말했습니다.
그러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는 "난 신에게서 정말 많은 은총을 받았다"고 말하며 농구팀 포워드로 코트에서 활약을 벌이고 있습니다.
왓킨스는 팀이 치른 20경기 중 13경기에 나서 9차례의 슛으로 5개(3점슛 4개)를 성공시켰고 5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기록했고 가로채기도 2개입니다. 관중들은 그가 슛을 할 때면 홈과 원정지를 가리지 않고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냈다고 합니다.
박수받을 만 합니까?
왓킨스는 동료들이 자신을 의식해 만들어주는 쉬운 찬스는 단호히 거부한다고 합니다.
팀의 주장 제이콥 켈러는 "항상 제일 먼저 팀을 칭찬하는 것은 왓킨스이고 작전 타임에 제일 먼저 뛰어나오는 것도 왓킨스"라며 "그가 슛을 할 때면 홈과 원정지를 가리지 않고 기립박수가 쏟아진다"고 말했습니다.
*의족을 한 사람에게서 순발력을 기대하거나 점프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왓킨스는 이러한 모든 선입관이 잘못임을 그의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농구는 발과 손으로 그리고 온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입니다.
농구뿐 아니라 모든 일들에서 그가 가진 마음의 힘이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우리는 다시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마음이 굳세지 않고는 성한 몸으로도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올바른 확신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서 나온다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절망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뛰는 모습을 마음으로
생각하며 노력했던 왓킨스는 그의 꿈대로 농구무대에서 인간승리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보다 더 훨씬 좋은 환경에 있으며 강력한 빽을 후원자와 동역자로 모시고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과 나를 사랑하시어 이 땅에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오시어 십자가로 구원을 이루신 우리의 구원자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십자가의 깃발을 이 장유에 높이 듭시다.
그리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크게 성장할 교회의 모습을 미리 그리면서 그렇게 이루어 주실 주님을 인해 감사하며 충성합시다.
그렇게 꿈꾸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일하는 이교회에 하나님께서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실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서 증거하였느니라”
우리도 그렇게 증거 합시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곳에 이루어지길 마음으로 바라고 이루어 주실것을 믿고 그렇게 충성합시다.
그렇게 기도하며 열심히 주님을 섬기시는 귀한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크나큰 은총이 함께 하옵길 축복합니다,
기도
하늘에 계시는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넜던 이스라엘의 신앙을 본받아
우리도 말씀의 법궤를 따라 믿음으로 승리케 하옵소서
분쟁과 전쟁으로 인하여 온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잠 재우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온 세상이 깨닫게 하옵소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시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기도를 하게 하옵소서.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 그리고 그 가족들 주님의 손길로 보호하시고 지켜 주시사 한 사람도 어려움 가운데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우릴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히 11:1-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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