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왜구가 극성했던 16C 중반의 명나라
ㅋㅋㅋㅋㅋㅋㅋㅋ 근접전에서 명 관군은 우리에게 속수무책이라 데스.
동북아 바다는 우리의 든든한 활동무대 아니겠스므니까? wwwww
C... FOOT....
분하지만 저 말이 사실이긴 해...
그러니 같은 방식으로 인력만 갈아넣어본들 속수무책일 터...
저들의 근접전에 대비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게 무엇입니까요? 나으리?
'대충 척계광이 제시한 것'
'원앙진' 이라 한다.
근접전에 강한 대왜구 맞춤전술이지.
그 원리가 무엇입니까???
진형의 편성 원리를 내 친히 가르쳐 주마.
진형의 편성은 다음과 같다. 원앙진을 이루는 살수대는
대장 1명 + 등패수 2명 + 낭선수 2명 + 장창수 4 + 당파수 2명 (+ 경우에 따라 화병 1명)
이렇게 인원 11명(+ 취사 · 화력지원 역할의 화병 1명까지 하면 12명)으로 구성되지.
먼저, 대장은 진형의 구성원들이 전술대응의 변화를 유기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지휘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진형을 유지하는 것 또한 살수대의 대장으로서 요구되는 능력이다.
* 등패수는 투창과 칼로 무장, 이들은 진의 맨 앞에서 적의 공격을 처음으로 막아서며
교착상황의 첫 단계를 이끌어낸다.
* 등패 : 등나무 줄기로 만든 가벼운 방패(But 방어력 우수)
* 낭선수는 등패수와 짝을 이뤄 적이 다가오는 것을 저지하는 두번째 교착 임무를 맡는다.
* 낭선 : 곁가지가 많이 달린 긴 창으로 적의 접근을 저지하는 게 주 목적
장창수는 등패와 낭선에 가로막힌 적을 적극적으로 공격한다.
당파수는 장창수를 보조, 낭선이 닿지않는 곳에서 오는 적의 진입을 저지하거나
장창수와 같이 낭선에 가로막힌 적을 처치하는 임무다.
화병은 기본적인 전투 편성 인원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전투가 발생할 시에는
진형 안에서 개인화기를 사용, 살수들에게 집중된 적의 시선을 분산시켜라.
즉, 임무 분업화를 통해 대근접전 전투수행 전문팀을 구축하자는 것이지.
또한 이 진형을 이루는 전투인원의 무기들엔 각자의 상성이 있는데...
우선, 장창은 긴 무기로 원거리의 적을 처치하기에는 좋으나
길이 + 곁가지의 철붙이로 공격하는 낭선을 당하지 못한다.
낭선은 그러나 그 용법이 등패를 뚫지 못한다. 고로 등패는 낭선을 이기지만
등패는 곤방의 유연한 공수전환을 당해내지 못해 이 또한 무너지고 말지.
곤방은 길고 날선 쌍수도를 당해내지 못하고,
쌍수도는 날을 걸어버리는 당파를 당해내지 못하며...
마지막으로 당파는 결국 압도적인 길이로 위협해 들어오는 장창을 못 당해내지.
장창 → 낭선 → 등패 → 곤방 → 쌍수도 → 당파 → 장창 → ...
이렇게 맞물리고 맞물리는 각각의 무기들을 하나로 모아 진으로 구성하여
진형에 속한 전투원 개개인들의 약점을 보완하는 게 바로 원앙진이지.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서도 진형의 변용이 가능하다.
저... 그래도 이해가 안가는데... 영상이나 움짤로 보여주시면...
... 허... 지금 이 글 쓰는 시점이 21세기라는 걸 다행으로 알아라...
UNDERSTAND?
아하!!!
단, 조건이 있다...
'원앙진' 이름의 유래는 한쪽이 죽으면 다른쪽이 따라 죽는
원앙새 부부의 금슬에서 따온 것인데...
즉, 이에 따라 원앙진을 지휘하는 대장이 죽고, 전투에 패배하면
살수대원 모두도 사형을 당한다는 것이다.
... 그렇게 하는 이유가?...
그래야만 전공에 눈이 멀거나, 전투 중에 겁을 집어먹어
독단적 행동으로 전열을 이탈하는 부대 내의 전투원들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을 테니까
이같은 일대전술의 변화로 척계광은 중국의 해안을 빈번하게 침략하던 왜구를 연전연파하며
1564년 광둥 성 일대에 남은 왜구 잔당을 토벌하는 것을 끝으로 전 중국의 해안을 안정시켰다.
이후 척계광은 대왜구전의 명장으로 불리게 되며, 당시의 관련 전술을 병법서로 집필했는데...
이것이 바로 『기효신서(紀効新書)』 이다.
이후 『기효신서』 는 임진왜란 때 도입되며, 조선의 군재에도 영향을 미쳤다.
훈련도감이 설치되면서 원앙진의 운영에서 비롯한 사 · 포 · 살수의 삼수군을 육성하기 시작했으며,
『기효신서』 에 등재된 '무예 6기' 는 영조대에 이르러서 사도세자에 의해 18가지 보병무예가 수록된
『무예신보』, 이른바 '무예 18기' 의 완성에 있어 지대한 역할을 했다. 훗날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도
여기에 마상무예 6기를 더해 총 '24기' 의 종합무예가 수록된 『무예도보통지』 를 만들게 되었다.
* 참고로 이순신 장군께서도 가장 즐겨보던 병법서가 『기효신서』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