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다리 지나 철길을 건너서 장도를 향해 뚝길을 걸을 무렵이면 맥문동꽃이 청포도처럼 생긴 열매를 맺기도 하듯이 나의 인연도 간절함에 여자만 물그림자로 숨는 만조 때에 퍼 올린 보름달이 그날처럼 떴다
열매가 묵주가 되어 깊어진 너의 눈길에서 사랑이 사리처럼 단단해질 때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인연 그것이 뭔디 나이 오십을 지나 육십에 못 미친 반에 이르러 뒤를 본다냐 니 발을 씻기는 마리아를 위해 죽을 결심을 했다냐
다시 말하지만, 아들아 갈대숲 뱁새 둥지에 뻐꾹새알처럼 숨듯이 숨어서 네 무릎을 꺾어 이른 詩의 묘비에 투박한 결이 만져지거든 시효가 다한 것이니 누군가의 사랑에 전도되어 공멸할 것이니 그 뿌리마저 어찌 쓰라리지 않겠냐 사랑은 그런 것이제 암만
<시작노트>
`열매가 묵주가 되어 깊어진 너의 눈길`은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세간(世間)에서 출세간(出世間)으로, 중생에서 보살로 승급하는 은유적 표현이 열매에서 묵주가 된 그 물리적 변신에 결부되어 있다. 더욱 깊어진 너의 눈길에서 `사랑이 사리처럼 단단해질 때`가 되면,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탈각의 경험이 뒤따라온다. 그 경험의 주체가 `발을 씻기는 마리아를 위해 죽을 결심`을 하는 것은, 좀 거칠게 말하자면 육탈의 사랑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애타는 당부로 점철되어 있다. 어머니는 종국에 이르러, `사랑은 그런 것이제 암만`이라고 결론 짓는다.
박재홍
· 전남 벌교 출생(1968) · 2010년 『시로 여는 세상』 등단 · 첫 시집 『낮달의 춤』 외 16권 상재 · 시화집 『섬진이야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사업 선정 · 시집 『도마시장』 세종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 시집 『노동의 꽃』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지원사업 선정 · 시집 『갈참나무 숲에 깃든 열네 살』 세종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 시집 『금강에 백석의 흰 당나귀가 지나갔다』(2022. 시산맥) · 수상 :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문학부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 『문학마당』 발행인 겸 주간 · 전문예술단체 ‘장애인 인식개선 오늘’ 대표, 충남시인협회 이사, 대전장애인배움터 풀꽃야학(대전광역시교육청 평생교육시설등록) 대표, 비영리민간단체 ‘드림장애인 인권센터’ 이사장 대전장애인배움터 풀꽃야학 교장(대전광역시 등록 평생교육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