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자연 발로를 억제한다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다. 공자는 가장 사랑하던 제자 안회(顔回)가 죽으니 자기도 모르게 통곡을 했다 한다. 공자답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사랑하는 제자를 잃고 흐느낄 수 있었다는데 오히려 성현다움이 엿보인다 할 것이다. 예수님도 나사로가 죽었을 때 우셨다.
유명한 간디가 하루는 길거리에 나가게 되었다. 많은 군중들이 간디를 보려고 몰려들었다. 그 가운데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말없이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었다. 이때 간디는 손수건을 꺼내어 할머니의 눈에서 흘린 눈물을 씻어주고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이의 눈물을 씻고 싶지만 나에겐 손이 모자랍니다." 이 짧은 한마디의 말이 신문에 보도되자 전 1억이 넘는 인도 국민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도 남았다고 한다.
당신은 이웃의 아픔의 눈물을 씻어주고 계십니까?
시 116:8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1. 이제 6월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해의 중반으로 들어갑니다. 주의 일과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을 다시 한번 점검해 주시기 바라며 위해 기도하며 나가시길 기원합니다.
2.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이 하나님의 은혜속에 잘 이루어지고 지경을 넓혀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목 : 그리스도인의 선행 성경 : 마태 6:1~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마 6:4). 예기치 못한 사태로 인하여 어려움에 처해있는 분들에게 따뜻한 인간애를 나누려고 애쓰는 모습들을 우리주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렇듯 자기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행동은 인간이외의 동물 세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정겨운 모습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만일 이런 모든 일들의 수고가 아무런 보람도 없이 끝나 버리고 만다면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그러나 본문의 말씀은 분명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께 열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제 본문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선행은 어떤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째, 다른 사람을 인식하지 않고 행하는 일이다. 1절에 보니 먼저 예수님께서 경계하신 것은 일부러 사람에게 보이려고 선행을 행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여러분 모두는 자신들이 어렸을 때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으면 어떤 일을 하든지 신났던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또한 아무도 봐주지 않는데 혼자서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바보스러운 것 같았는지 혼자서 몹시 언짢았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생각들은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하는 일반적인 생각들이다. 행 5:2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는 그들의 재산을 감춘 사실에 대해 하나님께 보고 계셨다는 것을 망각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았다. 그런데 남이 보는 데서 의를 행하는 것은 솔직하게 말해서 그 동기가 착한 마음에서 나왔다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과시하려는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잠 16:5에 무릇 마음이 교만한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 지라고 벌을 면치 못하리라 는 말씀처럼, 자신을 과시하고 잘난 체 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소로운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의 교만함을 보시고 아무런 보상도 내리지 않는 것이다. 좀더 겸손한 모습으로 그리스도인의 빛을 드러내는 성도가 되기 바란다.
둘째,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행하는 일이다. 2절에 보니 예수님께서는 칭찬을 받으려고 자선을 베푸는 사람들을 외식하는 자라고 책망하셨다. 그 사람들의 목적은 가난한 사람들을 진정 돌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명예를 위함이요, 가난한 사람들을 이용하여 자기의 의로움을 자랑하려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 주위에는 빈번히 누가 불우이웃을 위해 얼마를 희사했다느니 하면서 신문이나 TV에 대문짝 만하게 얼굴을 내미는 것을 보게된다. 물론 이런 사람들 전부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 중에 대부분은 자신이나 소속단체의 실리나 명예를 위해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외식은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며, 오히려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스런 것이 되고 말뿐이다. 따만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는 깨끗한 마음으로 의를 행하는 것만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성도가 되기 바란다. 셋째, 더 큰 것을 바라보며 행하는 일이다. 한국에 의료선교사로 오신 세브란스는 나의 주는 기쁨이 당신의 받는 기쁨보다 큽니다 라는 고백을 실제적인 삼의 현장에서 경험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기쁨은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생기지 않는 기쁨이다. 사실상 외식하는 자들이 선행으로 얻는 것이 명예나 칭찬이라면 의로운 사람들은 영원한 사랑과 참된 기쁨을 얻는다. 잠 3:34에 진실로 그는 거만한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라는 말씀처럼, 겸손과 사랑에서 나오는 행동에는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는 법이다.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는 자선을 베풀 때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3절)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마음의 외식을 벗어버림으로써 보다 큰 기쁨을 얻게 하려는 뜻에서 언급하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 늘 우리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대로 갚아주신다. 진정 우리는 레이다에 포착되는 비행기처럼 하나님의 눈앞에서 어떤 행위도 숨길 수 없는 것이다(렘 23:24). 그런 까닭에 무조건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었다고 해서 하나님께 열납되거나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행은 남의 이목을 인식하지 않는 순전한 동기에서 나온 선행이요 인간으로부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행이다.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위로와 칭찬을 기대하는 선행 인 것이다. 그러므로 대강절을 맞이하여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한 가운데 구제의 손을 펴는 성도가 되어 하나님께 의의 면류관을 받고 생활하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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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설교와 목회와 치유와 상담과
지혜와 사랑과 겸손과 온유와 섬김의 도구로 쓰임받게 하소서 샬롬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존재 목사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