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정기전에 대한 두서없는 글을 많은 분들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재주도 없는 제가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향의 글을 올립니다. 추억에 대한 것입니다. 85년 정기전 축구경기를 기억하십니까? 마침 아래에 김종부 감독의 기사가 있더군요. 저는 골수 야구팬이고 농구도 좋아합니다 (고대 이기는 경기만^^). 축구는 솔직히 국대경기나 정기전 축구만 봅니다. 아래 글을 보니 앞으로 잠실에서 축구경기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아쉽습니다. 제가 직관한 잠실구장 축구의 승률은 100 퍼센트였는데요. 그것도 3, 4점 차 이상의 압승이었습니다. 그냥 재미삼아 읽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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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당시 저는 놀기 좋아하는 2학년 학생이었습니다. 물론 운동은 무척 좋아하는 열혈 고대생이었죠. 9월이 되어 학교는 정기전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신입생 때에 간신히 하루 동안만 열렸던 정기전에서 2대0에서 2대3으로 충격의 역전패를 당한 후라, 85년엔 반드시 이기자는 분위기가 팽배했었지요. 문과대에 다니던 저는 어쩌다 이공대에 간 일이 있습니다. 그 때 고연전 화보전이 있었는데 제 옆에 눈에 익은 학생 (선수) 이 보였습니다. 당시 유명한 축구선수였던 신연호 선수였습니다. 용기있게 말을 걸고 신선수에게 "고연전에 이기겠죠? " 라고 물었습니다. 신선수는 "고연전은 해 봐야하죠" 는 현답(!) 을 합니다.
정기전 첫날,
당시 고대는 야구에는 박노준이라는 스타, 농구에는 김윤호, 전창진, 임달식, 이민형 선수 등이 있었죠. 축구부는 아래 글처럼 거의 대표팀 수준이었죠. 그런데 마음 편하게 직관한 야구경기에서 놀랍게도 역전패를 당합니다. 농구와 하키도 패배하지요. 올해처럼 첫날 승부가 결정되었습니다.
둘째 날.
실망감에도 불구하고 럭비와 축구를 이기면 조금 위안이 되겠지하고 잠실주경기장으로 갑니다. 럭비는 역시 약세입니다. 또 패합니다. 학생들은 이제 이성을 잃기 시작하고 자조적으로 "배구이겼다" 라는 구호를 외칩니다. (사실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축구뿐입니다. 제가 만약 이 상황에 처한 축구부원이라면 아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마지막 축구경기를 관전합니다. (제 기억에 잠실에서 처음 열린 축구경기지요) 노수진, 김종부 선수 등이 골을 연속으로 성공시킵니다. 최종스코어는 4 : 0! 믿기 어려운 스코어입니다. 모든 고대생들이 이번 정기전은 비겼다고 하고 정말 좋아했습니다. 네 골을 넣을 때마다 짜릿한 전율을 느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이 경기에서 축구선수들은 정말 성난 호랑이 같았습니다. 야구, 농구, 하키, 럭비부의 패배를 설욕하며 호랑이의 기세를 표현하는 것 같더군요.
(여담입니다만, 저도 고연전 스타 출신입니다. 유학시절 우리동네 고연전에서 소프트볼과 축구의 주전이었습니다. 노정윤 처럼 1대0 결승골도 넣었었죠^^. 당시 연대생들은 저를 싫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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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직관했던 경기이므로 기억이 대체로 맞을 것입니다. 당시 잠실주경기장의 관중들이 상당히 많았었습니다. 마치 한일전을 보는 것 같았지요. 옛 생각이 많이 나는 것을 보니 저도 나이가 들었음을 실감합니다. 올해의 허탈함과 아쉬움을 85년의 기억으로 잠시 씻어보려는 의도로 키보드를 두드렸습니다. 그냥 읽고 흘려보내십시오.
이곳에 좋은 글 올리시는 많은 분들께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복 받으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
위풍당당 !!! 고대 농구부 !!!
그대들의 열정에 힘을 보탭니다!!!
KOREA UNIVERSITY BASKETBALL TEAM SUPPORTERS
첫댓글 진짜 잼있습니다 상상이 되네요!!!
83년도에는 5개부 전부 고대가 압도적으로 강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5:0은 1983년도에 있었어야하나 전두환 군부가 "아마츄어리즘의 퇴색"이라는 이상한 명분으로 개최를 못하게했습니다. 속뜻은 양교생의 군부독재반대시위 및 서울대를 비롯한 타교생들의 연합시위를 두려워했기때문입니다. 그로부터 2년뒤에는 축구를 제외하고 고대가 전반적으로 약세였고 따라서 85년도 축구 4:0 승리는 우리 고대생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었죠. 얼마전 신연호선수(현 단국대 감독)을 우연히 만나 그때 게임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는데 정말 기분 업되더군요.
저는 재수를 했던 해였지만, 모학과에 2지망으로 합격, 등록만 했던 하프(?) 고대생 신분으로 정기전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고 종암동에서 83학번이신 누나과 자취를 해서 간접적으로 전해들었던 바로는 축구 첫골이 터지자 많은 여학우들이 엉엉 울었다고...
@뼛속까지고대 제가 1학년이던 86년 정기전 이야기를 연재물로 쓰자면...
이 해도 어느종목 하나 열세로 점쳐졌던 것이 없어 압승이 예상되었죠.
첫번째 야구에서는 1학년 박동희의 호투와 검객 노찬엽의 홈런 등으로 4:2 낙승을 거둡니다. 그런데 농구에서 사단이 납니다. 그 유명한 우유투척 사건. 25:21로 고대가 앞선 상황에서 바닥이 미끄러워 도저히 게임을 속개할수 없다고 판단, 무승부 처리가 됩니다. 비슷한 시각에 빙구도 4:6으로 졌다는 비보를 듣게 됩니다. 이튿날 오랜만에 우세한 전력을 갖춘 럭비가 일방적인 게임에도 불구하고 4~5개의 프레이스킥을 모두 놓치고, 반면 연대는 단한번의 찬스를 성공시키면서 0:3으로 패합니다.
@뼛속까지고대 농구부 모 선수가 술먹고 밤새 숙소에서 괴성을 지르는 바람에 킥전담 선수가 잠을 설쳤다는 후문이 전해집니다. 이어 열린 마지막 축구에서 만큼은 승리하여 종합전적 무승부라도 기대했던 소망은 90분내내 헛심만 쓰고 0:0 무승부로 끝나면서 1승2무2패로 종합전적 3년연속 패배를 당하게 됩니다. 아마도 김종부 선수가 결장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뼛속까지고대 이어서 첫날 3경기를 모두 이기면서 종합우승을 되찾아온 87년은 87학번에게 바통을 넘깁니다^^
연대가 적극적이엇으면 개최 가능했는데 질거 뻔하니까 정부방침에 적극 동조 ..연대만 개최할려고 햇으면 정기전 가능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때는 완전 5대0 확실한 해였죠...
역시 비슷한 때 학교를 다니고 운동을 좋아했던 분들이랑 대화를 하니 참 재미있군요. 제가 신입생이던 84년 정기전도 기억이 새롭습니다. 전승이 유력하던 83년 정기전이 취소되고 (혹시 전두환 아들이 연대생이어서 일까요?) 84년에 간신히 하루동안 정기전을 치뤘었지요. 저는 세 경기장을 가느라 매우 힘들었습니다^^ 출근은 야구장으로 해서 선동열의 선발등판 경기를 봅니다. 당시 고대 야구부는 정말 화려한 멤버였었죠. 끝까지 못보고 장충체육관으로 이동합니다. 정재섭, 최철권 등의 활약으로 유재학이 주전인 연대를 이깁니다. 마지막으로 걸어서(?) 서울운동장으로 갑니다. 가자마자 두골을 먹고 1:2 역전패! 제가 괜히 갔나요?
전두환 아들들 전재국, 전재용이 공부를 잘해서 연대를 다녔던 것은 아닙니다.
전두환 딸이 본고사 약하다는 이유로 80년여름 뜬금없이 본고사폐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없는일이죠 입시 세달 남겨놓고 전격 변경 코메디이죠
@길음동 전두환 노태우 아들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석사장교, 일명 육개장 제도도 있죠. 근데 이것도 제 바로 앞에서 폐지되더라구요. ㅠㅠ
84년 첫 정기전 세가지 생각납니다 축구경기
우리 응원단 중 여학우가 단상에 올라가서
응원할때 마다 두골을 먹었던 기억, 동대문운동장에서 주변길가에서 최류탄 터지고 있을때
크게 잘못한거 같지도 않은데 재고대 고등학
교 선배 앞에서 머리박았던 기억 전경들이
우리를 보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글고 돈암동 호프집에서 71학번 경영학과
선배님을 우연하게 만나 맥주 밤새마신기억이 나네요 ㅎ
본고사공부만한 저는 재수해서 입학..81년은 변화된입시제도로 일부학과 미달....82년은 시험이 역대 대학입시중 제일 어려워서지금까지도 입시역사상 전무후무한 서울대 이하 중위권이상 전국 대학 모두 전 학과 미달 기억이납니다 당시 2개대학지원 면접은 한군데만 보러 가는데도 불구 수험생전부가 40점이상 낮게 나오니 전부 지원포기 교육은 백년대계인데 딸 아들 대학보내기위해 하는 짓이 정말황당합니다
저도 84학번인데 2학년때 축구 4:0이기면서 비겼다고 좋아했던 생각납니다. 3학년마치고 군에 갔는데 1, 2, 3학년때 모두 져 속이 많이 상했죠. 제가 군대가고 휴학하니 그제야 이기더라는...
첫골이 들어갔을때 잠실의 하늘을 뒤덮은 빵과 우유팩으로 하늘이 안보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영동대로에서 최류탄을 피해 삼성동 가정집에 피해있다가 같이 있던 연대생들과 연대에서 밤새도록 놀고 그중 한 여학생과 1년 만나면서 연대 도서관을 주로 이용했던 추억도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