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룻기 4:1~12
제목 : 신앙과 선택의 신비 10 - 아무개의 선택
1.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2.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하니 그들이 앉으매
3.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4.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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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는 2018년 표어를 엔크리스토 샤이닝 2018 (Enchrito Shining 2018)
복음의 빛을 비추는 교회로 정하였습니다.
세상에 빛을 비추는 교회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나가는 2018년이 되도록 함께 노력해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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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련 스탈린 통치 시절에
유대인 의사가 시베리아 강제수용소 끌려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만나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게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의사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준 그 사람처럼
자신도 이웃을 사랑하며 복음을 열심히 전하면서 살기로 다짐하였습니다.
그는 의사로서 수용소에서 암환자를 수술해 주고
그것이 수용소법을 어긴것이 되었기 때문에 사형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의사는 사형당하기 전날 암 수술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전하였습니다.
처형되기 전에 형 집행관이 "당신의 선택에 후회없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후회함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그 의사의 후회없는 선택으로 인해 살아난 사람이 그 이후에 노벨상을 받은
"알렉산더 솔제니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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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앙인들은 선택을 하는 순간마다
희생하고 양보하는 선택을 한다면 결코 후회없는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그는 그저 "아무개"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보아스는 룻의 청혼을 받고 성문에 갔습니다.
성문은 법적인 재판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했는데,
공동체가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자 할 때 성문 앞에 모여서 결정하였습니다.
마침! 보라! -
"비홀드" 라는 감탄사 (behold = 보라 look)
(룻기 2:4절)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데, 마침 보아스가 그 밭에 왔다.
*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섭리
오늘 본문에도 "보라"
= 기업무를 자로서 우선권이 있는 사람이 바로 저기 오고 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진행되고 있음을 봅니다.
룻기의 저자는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단지 그를 "아무개여" 라고 쓰고 있다.
아무개의 선택이 하나님 앞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한 행위임을 보여주고 있다.
구세주의 족보에 그 이름이 올라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그냥 놓쳐버린 것이다.
* 보아스는 베들레헴의 장로 10명 앞에서 "그대가 고엘이 되어 기업을 무르라" 고 말했고,
그 아무개가 받지 않으면 기업무를 자 2순위자인 내가 무르겠다고 한다.
그 아무개는 무르겠다고 했다.
보아스는 아마도 그 순간에 속으로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보아스는 이내 아무개의 속셈을 알아챘다.
= 나오미와 결혼하면 나오미가 후사를 생산치 못하니 유산만 가로채겠다고 생각한 것
- 네가 만일 나오미의 고엘이 되려면 그의 며느리 룻과 결혼하여 후사를 엘리멜렉의 기업으로~
(5절)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6절)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무르지 않겠다."
* 고엘 - 아무개는 헤세드의 마음이 없었다.
아무개는 계산 끝에 손해볼 것 같으니 두번이나 "나는 기업을 무르지 않겠다" 고 말함
신을 벗어준다고 하는것은 고엘 권리를 포기한다는 의미이다...
(9절)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다" 선포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11, 12절)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가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보아스가 기업무를 자가 됨.
장로들은 보아스와 룻을 축복한다.
◆ 여기서 우리에게 주시는 중요한 영적 교훈
* 아무개의 선택 : 정말 바보같은 선택
그는 처음에는 자기에게 유리할 것 같아 기업을 무르겠다고 하더니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것이 없고 오히려 손해볼 것 같으니까 기업무를 자의 권리를 포기했다.
(룻기 4:6절) 이 한 문장에 "나" 라는 단어가 5번 등장한다. 그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자기 소견대로 사는 사람, 사사시대의 가장 전형적인 사람이었다.
아무개는 다른 사람의 불행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자기 친족이 어려움에 처한 것을
친척이 잃어버린 땅, 종된 자를 속량해서 자유롭게 해 주는 아름다운 고엘제도를 이용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이었다.
그는 전혀 룻을 생각하지 않았다.
"아, 이거 내 계산이 잘못됐네..."
오직 자신의 기업과 이익에만 관심이 있었고 친척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러기에 성경의 저자가 그의 이름을 전혀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은 물론 그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영원한 아무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메시야의 계보에 들 수 있는 축복도 영원토록 잃어버렸다.
* 반면에 보아스는 아름다운 희생과 헌신의 마음으로 그에게 주어진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보아스는 많은 손해를 감수하고 룻을 아내로 맞이하고 기업무를 자가 되었다.
룻을 통해 자녀를 낳아도 엘리멜렉의 후손이 되고 재산도 물려줘야 했다.
세상적으로 보면 보아스는 참 바보같은 일이다.
그러나 기업을 무르는 일이 하나님의 율법에 명한 바 자신의 형제가 새로운 소망을 갖도록
헤세드 사랑 - 자비, 인자를 기꺼운 마음으로 베풀었다.
그가 이것을 계획한 바 전혀 없었지만
룻을 통해 낳은 아들 오벳을 통해 메시야 반열에 오르는 축복을 받았다.
하나님은 반드시 헤세드의 사랑을 베푼 자에게 하나님의 헤세드로 갚아 주신다.
(열왕기상 17장) 사르밧 과부 이야기
작은 선행의 결과로 그녀는 흉년이 끝날 때까지 양식이 떨어지지 않는 놀라운 기적의 축복을 받았다.
헤세드를 베풀 수 있는 기회가 하나님의 헤세드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마태복음 10:41-42)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한가지 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선을 행하고자 선택을 할 때 거기에는 항상 희생과 손해가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10절)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
* 보아스는 경제적이고 정신적인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이와 같은 선행은 결코 거저 행할 수 있는것이 아니다.
자신의 재산을 들여 땅을 사고 그 친족의 아들의 이름으로 재산을 물려줘야 하는
기업무를 자의 희생과 자신을 내어주지 않으면 선을 행할 수 없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백성으로서
물질이든지, 시간이든지, 은사든지 그 무엇이라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 아무개는 자기희생이 싫어서 신발을 벗어 던졌다.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은 것...
"아무개야, 너는 너에게 주어진 기업무를 자의 사명을 포기했다.
니가 약한 자를 포기한 것처럼 나도 너를 포기한다.
나도 너를 기억하지 않겠다. 그러므로 너는 아무개이다."
* 그는 정말 바보같은 선택을 한 것이다.
* 그에 비해 보아스는 가장 복된 선택을 한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선행과 희생의 기회를 잃어버려 자신에게 주어진 기업무를 자의 권리를 포기한 아무개의 선택을 하겠습니까?
희생과 손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기업 무를자로 복된 선택을 한 보아스처럼 살겠습니까?
이 두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는
아무개는 오직 "나에게 무엇이 이익인가"만 생각하다가 영원히 아무개라고 불리게 되고,
보아스는 "무엇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명인가?" 를 먼저 생각했다.
한 사람은 영원히 하늘의 계보에 이름이 올라가고 한사람은 잊혀져간 아무개가 되었다.
우리도 보아스처럼 주님이 친히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되길 축원합니다.
<룻기 강해집 - 조정민목사>
분당의 대형교회에서 청년사역을 하다가 작은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교회 홈페이지를 잘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최소 3개월이 걸리고 예산이 500만원이 든다고 하여 포기했는데,
부임 첫 수요예배 후에 한 집사님이 자신이 홈페이지를 직접 제작해 보겠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응답해 주셨다.
40일 후 홈페이지가 완성되고 그 집사님과 함께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그 홈피 만드느라 퇴근해서 매일 늦게까지 잠도 많이 못자고,
아이들과 놀아주지도 못하고 감당했다고 했다.
음향 담당하는 한 자매는 먼저 있던 교회 청년이었는데, 목사님 사역 도우려고 오는데
전철로만 90분, 토탈 2시간 걸려서 매주 와서 봉사하고 섬기고 있다고 했다.
<거룩한 바보들>
우리교회도 형제 교회를 섬기는 귀한 50여명의 청년들이 있다.
1부 예배 섬기는 반주자 자매는
지나가는 말로 반주자가 없다는 말을 했더니
10년간 다녔던 교회 메인 반주자의 화려한 자리를 내려놓고 작은교회 무보수 반주자로 왔다고 한다.
처음엔 목사님이 말렸다고 한다.
"목사님,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이 마음을 제게 주셨어요."
그녀의 선택은 세상사람들이 보기에는 바보같은 선택이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거룩한 바보들의 헌신과 섬김을 통해 세워져 간다.
장애아이들 섬기는 사랑부, 환경국, 헌금계수, 차량안내 위원들,
저녁 늦게까지 남아서 끝까지 나를 배웅해주는 의전집사님들....
하루종일 가장 일찍부터 늦게까지 고생하는 성도들,
이외에도 우리교회 모든 사역국과 봉사자들이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섬기고 있다.
그분들의 희생과 섬김이 있기에 우리 주안교회가 이렇게 아름답게 세워져가는 것이다.
새해에는 더 적극적으로 섬기자.
이런 대형교회에는 예배 한 번만 드리고 가는 성도가 많습니다.
주님이 "언제까지 그렇게 익명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주일예배만 드리고 갈래?" 하고 물으십니다.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유익하고 이것은 유익하지 않고 따지면서 영원한 아무개로 남을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희생과 사랑을 베풀면서
보아스처럼 주님이 친히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되길 축원합니다.
교회는 똑똑한 사람에 의해 세워지는것이 아니고
자신을 희생하는 거룩한 바보들에 의해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사명의 기회, 축복의 기회를 놓쳐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내가 주님께 받은 사랑을 나도 이웃에게 베풀고 전하면서
보아스처럼 희생하며 바보스런 헌신자들이 되어
영원토록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는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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