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의 영광(1)
히브리서 1:1~3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히브리서의 처음 시작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가르치는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직접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사도 바울이 저자로 말해지고 있으나 사도 바울의 영향을 받은 후대의 속사도일 것이라고 보는 학설이 점점 유력합니다. 히브리서 2:3 말씀에 보면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히브리서를 쓴 사람이 주님의 가르침을 직접 들은 사도들에게서 확증적인 증거를 받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사도 바울과 교분이 있는 디모데나 아볼로와 같은 사람으로 봅니다. 글이 쓰여진 시대는 교회가 세워진 후에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신앙의 나태함이 교회에 스며들어오는 시기에 이 글이 쓰여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주후 60년 경에서 100년 경까지의 기간 동안에 이 글이 쓰여졌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서는 일종의 서신이며 또한 일종의 긴 설교문이기도 합니다. 완전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변증하는 논문과 같은 글이기도 함과 동시에 그 당시 이 글을 받는 수신자들을 위한 목회적인 권면들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히브리서의 성격을 딱 잘라 단정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저는 이 히브리서를 성도 여러분과 수요일 저녁에 차례로 읽고 묵상함으로써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다시 한번 깊이 깨달아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으며 영적인 각성을 일깨우는 히브리서 기자의 권면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말세가 점점 깊어지는 시대에 살아가는 주님의 백성으로서 영적으로 더욱 깨어 있는 은혜를 입고자 합니다. 그러면 이 책의 서문인 처음 세 구절을 함께 살펴보면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큰 영광을 다시 한번 깨닫는 복된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여기서 히브리 기자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말씀해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옛적에 곧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해오셨습니다. 여기서 선지자란 좁은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택하시어 장래의 일을 말씀하시게 하는 사역을 맡은 자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을 계시하신 족장들이나 시편의 기록자, 혹은 역사서의 기록자나 지혜 문학의 시인들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세와 시편의 저자 다윗과 솔로몬과 이사야와 예레미야 등 선지자와 역사서를 기록한 에스라와 엘리야와 엘리사 등 모든 계시의 전달자들을 다 포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다양한 구약의 계시 전달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해오셨으니, 곧 입술의 말로 말씀하시기도 하셨으며, 글로 그의 계시를 전달하기도 하고, 때로는 환상, 때로는 꿈, 때로는 성령의 묵시로, 혹은 깊은 연구와 자료 분석 과정을 거치는 역사의 기록물로 그의 뜻을 전달하기도 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이렇듯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으로, 또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인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오셨습니다. 이 모든 말씀들은 다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옛적에 구약 성경을 통하여 말씀해오신 하나님의 뜻과 계명과 그의 계시들을 지금도 사랑하며 가까이 묵상하여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을 힘써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의 마지막 편지인 디모데후서 3:14 이하에서 이렇게 디모데에게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디모데후서 3:14~17)
이 말씀에서 나오는 성경은 구약 성경입니다. 사도 바울의 생존 시대에는 구약 성경만 있었고 신약 성경은 아직 편집되지 않았으니까요. 구약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며,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고 성도의 인격과 신앙을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에 능하게 하는 유익을 주는 책이라고 사도가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구약 시대에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하나님은 때가 차니까 마지막 때에 단일하신 한 분을 통하여 자기의 뜻을 계시하십니다. 이 점을 2절 말씀에서 일러주고 있습니다. 함께 2절 상반절을 읽겠습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모든 날 마지막’이란 말세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시작되는 그리스도의 시대, 마지막 시대를 가리킵니다. 구약 성경의 저자들인 모세, 다윗, 여러 선지자들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계속하여 증거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기원, 그리스도의 출생과 고난과 죽음과 부활, 그리스도가 가져오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상에 대하여 계속하여 증거하였습니다. 그랬는데, 그 모든 예언을 이루어가실 그리스도가 마침내 세상에 오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예수에 대하여 히브리서를 기록한 저자는 ‘아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아들’이라는 표현은 1절에서 나오는 선지자와는 격이 다른 표현입니다. ‘아들’이라는 표현은 천사들에게도 사용되기도 하고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그의 백성들에게도 사용하곤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표현한 아들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의미에서의 아들입니다. 사무엘하 7장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 후손 중에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고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그의 아들이 될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습니다. 시편 2편에서도 아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시편 2:7 이하에 이르기를
“내가 여호와의 명령으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요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시편 2:7~12)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아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들이라는 표현은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닮은 자요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모든 권세를 상속할 권위를 가진 자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아들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구약의 말씀의 대언자들인 선지자들과는 차별된 유일한 존재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제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시던 하나님은 마지막 계시자로 보내신 그의 아들을 통하여 완전한 계시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도 다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도 틀림이 없는 말씀이지만, 이제 마지막 때에 오신 아들의 말씀은 모든 말씀을 성취하시며 모든 말씀을 완전하게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때에 오신 아들은 구약의 모든 말씀들을 완전하게 하셨으니, 구원에 있어서 더 이상 계시는 필요 없는 것입니다. 아들 자신이 계시의 최종적인 완성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들 외에 또 다른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를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까? 더 이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자, 다른 구원의 계시자를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의 계시가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자들은 이 히브리서 기록자 곧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수많은 이단과 사이비의 교주들이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계시자가 있다고 주장하며, 신구약 성경 외에 다른 책들을 최종 권위를 가진 책으로 주장하는 것들은 다 그릇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을 기록한 복음서와 그가 특별히 자기의 증언자로 삼으신 사도들의 글들을 모은 신약 성경 외에 다른 책들을 더하거나 빼는 것은 그들의 구원을 빼거나 그들에게 닥칠 저주를 더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오직 신구약 성경을 통하여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만을 최종 권위로 알고 믿고 순종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아들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몇 가지 중요한 말씀을 첨부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는 만유의 상속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2절 중반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상속자란 기업을 이어받는 자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약속의 땅 가나안이 상속하게 약속된 기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만유의 상속자로 세워졌다고 여기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들 곧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히브리 기자는 그가 만유의 상속자로 세워졌다고 말씀합니다. ‘만유’ 곧 온 세상을 기업으로 얻는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자기 민족만을 다스리며 온 세상의 권세와 싸울 자로 오해하곤 하였지만 사실 구약 시대부터 그리스도는 만유 곧 온 세상과 우주의 상속자, 그것들을 다 지배하는 자로 예언된 바 있습니다. 이사야 11:10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5:12 말씀에서는 이 말씀을 이렇게 번역하여 인용한 바 있습니다.
“또 이사야가 가로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이처럼 모든 열방, 모든 세상 사람들의 참된 소망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그리스도에게 있다고 구약 선지자들이 이미 예언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유의 상속자로 이렇게 세우셨으니, 그는 이스라엘만의 주권자가 아니요 만유의 주권자이신 것입니다.
또한 히브리 기자는 하나님의 아들을 창조주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놀랍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상의 유일한 창조주로 알고 있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아들을 여기서 창조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을 창조주로 표현하는 기록은 요한복음 1:1 이하에서도 나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이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아들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과 함께 창조주로 일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1:16 이하에서도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골로새서 1:16~18)
여기서도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물의 창조주로 확실하게 선언하고 있고 그가 보이는 모든 만물들과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들을 창조하였고 그가 창조의 원인이시며 창조의 목적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은 단지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니요 천사들과 모든 피조물들과 같은 존재가 아니요 창조주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는 누군가에게 피조된 존재가 아니요 영원전부터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요 창조주이십니다. 할렐루야.
또한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나타난 본질이라고 말씀합니다.
3절 전반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환하게 비추는 빛의 발광체라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성막 안에 여호와의 영광의 빛이 머물렀는데, 그 빛의 본체는 바로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신 것입니다. 또한 그 본체의 형상이라고 하였는데, ‘형상’이란 모양으로서 똑 같은 판박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본체 곧 하나님의 본질적인 인격과 존재를 그대로 판박이처럼 드러내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1:15 말씀에서 이르기를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자와 같습니다. 예수님의 인품, 그의 거룩함, 그의 사랑, 그의 신실함, 자기의 희생의 헌신 이 모든 것은 곧 하나님 아버지와 동일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라고 청하였을 때에 대답하하신 말씀이 이것입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예수님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과 조금도 다름 아니라고 주님께서 그렇게 확실하게 대답하신 이유는 예수님께서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현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성경의 영감으로 요한복음 1:18 말씀에서 이르기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점을 명심하고 예수님은 세상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임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단지 구약의 선지자 중의 한 분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창조주요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시요 구원 계시의 최종 계시자요 구원 계시의 성취자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또한 그는 지금도 세상을 붙들고 계시며 다스리는 자입니다.
3절 중반절을 읽겠습니다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그렇습니다. 지구와 달과 태양과 별들이 저 허공에 떠 있는 것도 주님께서 그 능력의 말씀으로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별들이 허공에서 정해진 궤도를 따라 운행하는 것도 주님께서 지금도 그 능력의 손으로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대양의 거대한 해류들이 계속하여 순환하는 것도 주님께서 지금도 그 능력의 말씀으로 지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 백성들인 우리들이 믿음이 연약하고 자주 흔들리고 세상으로 끌려가기도 하는 등 많은 흔들림이 있지만 여전히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도 주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악한 마귀가 시험하고 공격하지만 우리가 여전히 살고 죽지 아니하며 믿음의 길을 계속 가고 있는 것 역시 주님께서 그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0:28 말씀에
“내가 그드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은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고 하였으니, 주님의 손이 우리를 꼭 붙들고 있습니다. 어느 성도님이 자기 자녀를 인하여 하나님께 울면서 기도하기를
“주님, 우리 아들을 제발 꼭 붙들어 주세요.”
라고 하였답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 응답해주시기를
“너는 내가 붙들고 있는데 왜 또 붙들어달라고 말하느냐?”
라고 핀잔하면서 안심을 주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흔들리고 있고 넘어지고 있더라도 주님께서 우리를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하여 꼭 붙들고 있습니다. 이 점을 기억하고 늘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근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있습니다. 당시 히브리서 기자가 이 서신을 쓸 당시에 많은 이들의 신앙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유대인 기독교인들도 다시금 유대교로 돌아갈 유혹에 직면해서 흔들리는 때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의 신앙이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에 그런 흔들림이 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사람 중에 하나가 아닙니다. 그는 창조주이십니다. 그는 만유의 상속자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공채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판박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그대로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 자신인 것입니다. 그는 지금도 만물을 그의 말씀의 능력으로 붙들고 운행하시며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알고 그에게 우리 삶을 맡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월이 갈수록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더욱 알아가는 자가 됩시다. 그리할 때에 세상의 불신앙의 풍조 속에서도 흔들림없이 끝까지 승리하는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