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추구해야할 신앙운동
서 론, 구원의 세 가지 단계 (빌 2:12)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獨生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용어는 과거, 현재, 미래의 세가지 시제의 개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이미 얻은 구원과 현재 이루고 있는 구원과 함께 궁극적으로 우리가 얻을 구원에 대해서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이란 나 자신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그 순간 순간의 현재진행형의 구원에 대한 연속적인 확증이어야만 합니다.
즉 구원이란 “믿음의 현재적인 과정의 연속성”이어야만 한다. ( 이글의 밑줄 쫙 입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13:5)
그것이 과거의 시제만을 생각하는 형태의 구원, 즉 현재시제의 구원을 전혀 무시하는 믿음의 확증이나 또한 미래의 종말적인 구원만을 의미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내가 과거에 예수를 어떻게 믿었는지, 내가 과거에 교회를 열심히 다녔는지는 구원의 확신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내가 지금 예수를 믿느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며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사역이며, 인간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자신의 믿음을 전혀 확증하지 않고 무시하면서, 과거의 믿음만으로, 혹은 내가 오래전부터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과거적인 사실만으로 내가 이미 구원을 얻었다고 단언하는 것은 구원의 확증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즉 구원의 확신이란, 내가 지난 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었기 때문에 나는 구원을 이미 얻었던 것이며, 이 현재의 믿음으로 인하여 현재 구원의 길을 걷고 있으며, 이 믿음을 계속 유지하는 조건으로서 장래에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라는 확증이 되어져야만 한다. 물론 믿음마저도 하나님 의 선물이다.
믿는 성도들에게 성령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구원을 얻었다는 인침과 보증이 될 수도 있으며, 아직 성령이 우리를 보호하고 인도하신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얻은 구원이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구원에 대해서 Already, but not yet이라고 말해야만 한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으며 지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최종적 인 구원은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며, 그 최종적인 완성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이루어야 만 하는 책임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도 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적 신앙을 즉 성화를 이루어 가므로서 장차 구원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현재라는 시제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신앙은 딤후4:7절의 말씀처럼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는 말씀에 중점을 두고 열심히 신앙여정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성경에는 엡4:13절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과거 우리가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영접한 분들은 오늘이라는 현재속에서 신앙운동을 추구해 나가지 않으면 개가 먹엇다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것과 같이 돼지가 씻엇다가 다시 구덩이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죄를 먹고 마시고 다시 구원을 자리에 들어갈수 없는 심판의 사람으로 빠질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추구해야할 신앙운동은 다음 네가지입니다.
첫째로, 말씀 운동입니다.(딤전3:15)
한국교회는 말씀을 사모하고 읽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분의 교단에서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말씀을 읽고 진리가운데 서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교회처럼 이단시비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말씀을 너무 몰라서 이단으로 빠지기도 하지만 말씀을 제대로 몰라서 함부로 이단비시를 벌이기도 하는 교회가 한국교회입니다.
칠형제가 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 하였을때 죽어서 누구의 아내가 되는가는 질문을 예수님에게 던졌던 말씀이 성경 마태22장 23절부터 나옵니다. 그때 그들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는도다” 이것이 한국교회에 딱 맞는 말씀이 아닌가 봅니다. 성경을 모르니까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여 둘 다 구덩이에 빠지듯이 아주 정상으로 건건한 교회를 이단으로 매도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성경을 너무도 모릅니다.(교리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교회는 말씀(성경)운동을 펼쳐야 합니다. 성경을 모르고 어떻게 신앙생활을 정상적으로 이룰 수가 있습니까? 그 대표적인 사례로 구원론을 들 수가 있습니다. 전도할때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영접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무지한 교단과 목사들이(성도들은 말할 것도 없이)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구원은 믿음으로만이 아니라 회개하고, 말씀대로 행하십시오.! 라고 가르치면 “율법을 강조하는 신율법주의 이단”으로 매도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나 성경을 모르면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회개를 강조하면 무슨 소리냐 라고 화를 냅니다. 거기다가 말씀에 순종을 강조하면 더 이상하게 보는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로마서에서는 바울이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다고 말씀하였고 야고보서에는 구원을 말씀에 행하는 믿음이 있을 때 구원을 받는 믿음이다고(약2:17-24절)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둘 다 모순되고 둘 다 정면 충돌 되는 것 같지만 사실 같은 뜻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시대에는 이제 막 구약의 율법신앙시대에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시대로 전환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믿음을 강조한 것 뿐이고, 야고보는 적어도 한세대가 지나갔으나 믿음만 강조하지 말씀에 순종함이 없는 쭉정이교회와 신자들을 향하여 믿음은 오직믿음인데 그 믿음이 바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믿음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안 읽으니까 그것도 포괄적으로 전체를 체계적으로 읽지 않으니까 이런 간단한 구원론 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교회는 믿음만 강조한 나머지 열매가 없는 사데교회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완전히 맛이 간 미지근한 교회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함을 강조하면 무조건 구약 율법주의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을 강조하지 못하고 “오직 믿음!!!”그것만 앵무새처럼 외치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일수록 성경을 신물나게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신앙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지를 가르쳐주는 이정표와 같고 우리의 삶의 메누얼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모르니까 다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입니다. 혼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영과 혼과 몸으로 구성되었습니다.(살전5:23) 그런데 사람을 제대로 표현하자면 인간은 육체 안에 영과 혼이 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육체 안에 있는 영이 혼을 다스리고 몸을 다스려 나가야 하는데 말씀을 모르니까 결국 혼과 육적인 욕망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며 이런 사람들을 예수를 믿는다고 하나 그런 자들은 예수를 모르는 자들이라고 성경에 말씀합니다.(고전2:14-3:1)
오늘날 말씀대로 살고 말씀의 인도를 따라 사는 자들이 도대체 교회 안에 얼마나 있습니까? 10%정도는 됩니까?(마13장. 4가지 밭의 비유) 말씀을 모르니까 문제가 일어나거나 어니면 어떤 것을 결정할 때에 그 기준을 결국 인간적 혼적 기준으로 결정하지 않습니까? 이게 나에게 얼마나 유익이 되는가? 명분상으로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게 정상적인 신앙인들의 삶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시119:105)고 하지 않습니까? 칠흙같은 어두운 밤에 전등을 비추어서 길을 갈수가 있지 어떻게 갑니까? 이세상도 세상적 가치관이나 자기 생각으로 사는게 아니라 그리스도인은 말씀의 빛을 따라 살아가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은 누구보다 말씀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오늘날 수 많은 신자들이 말씀을 몰라 혼적으로 결적으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길을 벗어나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수 많은 신자들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모르고 있습니다.(롬12:2)
더 나아가서 말씀은 우리의 영혼의 밥이 되고 음료수입니다.(마4:4, 요6:31, 51절) 밥은 세기 먹으면서 영의 양식과 음료수는 하루에 한 번도 안 먹습니다. 그게 일반적인 신자들의 수준입니다. 여러분 중에 적어도 일 년에 1독 하는 자가 얼마나 있습니까? 너무나 미미한 수준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성경을 읽어본 수준으로 볼 것 같으면 밥 세끼 먹으면 영의 양식도 적어도 그 시간만큼 먹어야 됩니다. 한순간에 썩어질 육을 위해서는 열심히 먹고 영원을 위한 영의 양식인 말씀은 그만큼 먹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일 년에 1독하면 안됩니다. 적어도 3독해야 합니다. 일 년에 3독 할려면 하루에 10장정도 읽고 주일에는 20장 정도 읽을 때 가능합니다. 그 정도로 읽어야 밥 먹을 자격이 있는 신자입니다.
말씀을 안 먹고 안 듣고 안 읽으니까 영이 죄다 병 들었어요, 육신은 밥을 안 먹으면 손발이 떨리고 기력이 상실되는데 영의 밥을 안 먹으로 별로 느낌이 없어도 그게 죽은 자들입니다. 안 먹어도 기도 안 해도 느낌이 없는 자는 벌써 죽었거나 감각이 없는 병든 자들입니다. 그런 분들 회개하셔야 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고 하였는데 진리는 예수님과 그 입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모르니까 영혼의 자유 만족 건강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거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말씀운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 충만한 교회 신자가되어야 합니다. 막힘이 없이 말씀이 우리들의 입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건강한 사람이면 음식이 입에 달아요, 건강한 신자는 말씀에 꿀과 같이 담니다.(시119:103) 여기 중에 말씀을 달게 느끼고 그렇게 말씀을 읽고 사모하는 분들이 몇이나 됩니까?
주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산다고(마4:4)하지 않습니까? 사람은 육신이 아닙니다. 사람은 영입니다. 그래서 밥만 먹어서 안됩니다. 말씀의 떡을 먹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둘째로 성령운동을 추구해야 합니다.(딤후3:15,
성령을 모르고 성경만 읽으면 누구와 같이 되는 줄 아십니가? 바로 예수님 시대에 예수님을 배척하고 이단으로 몰아 십자가에 죽이기 까지한 바리새인들 제사장들 서기관들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말씀을 아는 자입니다. 말씀을 안다고 해서 신앙이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딤후3:15-)고 하셨잖아요? 성령으로 기록된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아니까 그것까지고 자랑하고 그것까지고 남 비판하고 정죄하는데 사용하고 말씀만 아니까 진자 하나님의 뜻은 모르게 될 가능성이 굉장히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만 읽어서는 안 되고 말씀을 기록하신 저자되시는 성령님을 사모하고 성령님을 추구하고 성령 충만함을 갈망하셔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말씀으로 인도를 받아야 하지만 성령의 인도도 받아야 합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성령 충만함은 신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오래전부터 특별히 오순절 교단인 순복음교회에서 성령중심의 신앙을 강조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잘 보십시오. 성령님은 다양하게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순복음교단은 성령님을 추구해오되 능력과 은사적 측면에만 강조하고 사모해왔습니다.
반대로 성경을 강조하는 장로교 대부분의 교단은 성령을 인정하지만 성령의 역사를 구원을 얻는 데만(요3:5) 사용하지 은사와 능력에는 부인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사실 이 교리는 이단에 가까운 교리입니다. 그런데도 장로교단을 한국교회의 장자교단이니 가장 신앙의 정통이니 하면서 한국교회의 모든 목사와 교단을 자신들의 교리의 잣대로 칼질을 합니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짓입니까?
장로교단은 굉장히 잘못된 교단입니다. 그들은 성령님을 구원론에만 사용하고 열매와 은사와 능력을 주시는 분으로는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순절날에 임한 성령님은 이제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고, 은사 중단론을 주장하고 있는 교단입니다. 그래서
장로교회 안에서는 기도할 때 방언으로 기도하는 금지하고 있습니다. 각종 은사가 나타나면 더 이상 그들은 용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은사를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롬12장과 고전12장 에베소서5장에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각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시는데 그 은사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형성하고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데 오직 성경만 가르치니 어떻게 주님의 증인이 될 수가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죽은 사데교회나 미지근하지 짝이 없는 라오디게아 교회로 전락 되는 것입니다.
뜨거운 교회여야 주님을 섬길 수가 있습니다. 뜨거운 교회는 오순절 날 임하신 그 성령으로 충만하고 은사로 능력으로 충만한 교회여야 합니다.
요엘2:28절에 말세에 하나님의 영으로 수 많은 사람들에게 부어준다고 하셨고, 그 성령님이 오순절 기도하던 제자들에 임하여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베드로가 설교할 때에 요일2:28절을 인용하여 그것이 오늘 나타났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일2:28절 나타나고 있는 말세는 바로 예수님 재림직전까지 말세가 아닙니까? 오순절만 보다 오늘날이 더 말세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재림직전에 더 강력하게 역사하시고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모하는 교회와 신자들에게 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을 그 어느 때 보다도 사모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태7장7절에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요 찾을 것이요 얻을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같은 내용을 누가복음서에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기 않겠느냐”(눅11:13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엡5:18절에 “성령 충만 함을 받으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신자라고 하면서 세상지식으로 충만하고 성령님은 간곳없이 오직 육체와 혼적으로만 사는 자가 어찌 신자라고 할 수가 있습니까? 성령님을 사모하시고 성령님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오순절 날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까? “너희들은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을 받으리니 이곳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가운데 그들은 불같은 성령을 받고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행1:8)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성령님이 안 계시는 것 같습니다. 성령님이 계시면 이렇게 힘없는 교회일수가 있습니까? 아무런 일도 못하고 세상 사람 들에게 맛 잃은 소금처럼 밟힐 수가 있습니까? 오늘날 한국교회는 믿지 않는 세상 사람 들에게 개독교 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목사를 먹사라고 까지 듣습니다. 이런 시대에 어떻게 주님의 증인된 교회와 신자가 될 수가 있습니까?
정신 차려야 합니다. 성령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은사와 능력을 추구하되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교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순절파도 제대로 성령을 사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은사와 능력만의 성령님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기 때문에 이땅에 한시적으로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처럼 그렇게 인격적으로 성령님을 만나고 그분과 교제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 롬8:14절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진정한 신자는 성령님과 인격적인 교제로 그분의 음성과 신호를 따라 인도함을 받는 자입니다. 그런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성령님은 은사와 능력만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요엘2:28절에 예언하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만민에게 기름 부어 주리니 너희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고 너희 젊은 이들은 환상을 보리라”라고 하지 않습니까?
꿈 예언 환상 이게 무엇입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전달하는 계시적 수단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꿈을 통해서 계시합니다. 바로가 왜 꿈꾸었습니까? 느브갓네살왕이 왜 꿈을 꾸었습니까? 마리아와 그 남편 요셉에게 현몽하여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헤롯에게 가지 말라고 계시하신 방법은 무엇으로 하였습니까? 꿈 아닙니까? 오늘날 사실 가장 빈번하게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 방법이 꿈입니다. 꿈을 함부로 생각하거나 꿈을 우습게 보는 자는 성경을 모르고 성령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전에 꿈을 통해서 우리의 필요를 계시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자야 합니다.
예언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전12장에 9가지 은사 중에 그중에 하나입니다. 예언의 은사가 무엇입니까? 바로 은사를 통해서 자신에게 찾아온 내담자에게 예언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언의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예언하는 자들이 우리 교회안에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목사들이 이 예언의 은사를 모르니까 어떤 교인이 기도하다가 뭐가 보이고 하나님께서 신호를 보내는데 이단으로 매도하고 교회 안에 붙어있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이 산에 들어가서 무당처럼 예언하고 돈 받는 짓을 하는 것입니다. 예언은 돈 받고 예언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치유의 은사로 돈 받고 안수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그저 받았으니 그저 주어라(마태10:8)고 제자들에게 당부합니다. 성경을 모르니까 돈에 유혹되어 얼마나 많은 은사자들이 돈 받고 또한 돈을 요구하고 예언해주고 안수해줍니까? 저들은 주님 앞에 섰을 때에 분명히 이런 소리를 주님에게 들을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1-23)
우리가 성령을 사모하고 추구해야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첫째가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교제하므로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데 있습니다. 신호를 따라가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은사와 능력으로 주님의 사역을 해나가는데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대부분의 교회는 성경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일부의 교회는 은사에만 치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눈에 잘 안 띄지만 성령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추구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적지 않는 신자들이 성령운동하고 날뛰지만 은사만 추구하니까 교만하게 되고 자기가 잘난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은사운동을 하는 자들을 보면 적지 않게 교만합니다. 그런데 성령은 은사와 능력만 주시는 게 아니라 성령님과 인격적인 교제로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따라 살면 즉 갈라디아서5장16절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육신을 이기는 방법은 성령님을 따라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런 자에게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갈5:22) 그래서 한국교회 성령 운동하는 자들 가운데 은사만 추구하지 성령의 열매를 추구하는 단체는 극히 더뭅니다. 이게 한국교회의 미혹에 빠진 이유 때문입니다. 여러분 은사가 중요합니까? 열매가 중요합니까? 당장은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능력 받고 은사 받아서 눈에 보이게 신비한 것들이 드러냅니다. 그러나 열매가 없으면 결국 어린아이에게 칼을 주는 결과가 되듯이 칼은 의사가 사용할 때에 사람을 수술해서 병을 도려내는데 아이에게 주니까 자신을 헤치는 것입니다. 은사는 20%추구하고 열매를 80%이상 추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균형이 맞아 성령님이 주신 은사를 끝까지 잘 사용할 수가 있게 됩니다.
일반 신자들도 마찬가지 이지만 성령을 추구하는 자들이 왜 10-20년 믿고 성령추구해도 삶이 변화되지 않습니까? 은사만 추구하기 때문에 열매가 안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태7:20절에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신자가 무엇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인인줄 나타냅니까? 열매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열매로 성령의 9가지 열매로 그들이 신자 됨을 증거 하는 것이지 교회 나오는 것으로 증거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고백해도 아닙니다. 집사 되고 권사 되고 장로 되고 목사 되는 것도 신자 되는 증거가 아닙니다. 내 말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것입니다. 신자 됨의 증거는 열매입니다. 아무리 성경 많이 보고 성령운동해도 변화되지 않으면 즉 열매가 안 나타나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태7:20절에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신앙의 연조대로 열매가 있습니까? 믿음의 연수대로 사랑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희락이 있습니까? 화평이 있습니까? 자신의 화평이 아니라 가정의 화평 공동체의 화평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5장에 8복중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이게 바로 마태7:20절과 같은 의미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 즉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열매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믿음의 연조만큼 인내의 열매가 있습니까? 자비의열매,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가 있습니까?
사람들이 어찌 그렇게 오래 믿었다고 하는 직분자들이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남에게 지지 않을 려고 하고 손해 안 볼려고 합니까? 그들은 예수님 믿는 자가 아닙니다. 교회만 나왔지 예수님 믿은 게 아닙니다. 성령님과 상관없이 그냥 교회만 다닌 종교인입니다. 이들은 심판 때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것입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을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가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는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내게서 떠나가라... 지옥으로 들어가라.... 이런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성령님 없이 교회만 다닌 자들 회개하십시오. 성령님을 사모하시고 그분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인도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고 열매를 맺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런 성령님을 사모하고 추구하는 성령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성령이 아니라 전인격인 성령님을 추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성령님을 사모하시고 갈망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성령님을 추구하고 사모하는 행위는 어떻게 나타나는 줄 아십니까? 그게 기도입니다. 그래서
셋째로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운동은 기도운동입니다.
왜 기도로 성령님을 맞이하고 기도로 성령님을 받게 되고 기도로 그분과 인격적인 교제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고 예수님대신으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을 대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대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알면 알수록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고전2:10)
성령님을 어떻게 사모합니까? 기도로 사모함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성령님 사모합니다. 성령님 환영합니다. 성령님 임하시옵소서 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왜? 성경에 그렇게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자에게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런 수준의 성령님으로는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고전12:3) 성령님은 두 종류로 오시는데 믿을때 오시는 성령님은 내주하시는 성령님입니다. 이미 믿을 때 내 안에 내주하십니다. 그러나 오순절 날의 성령님은 임하시는 성령님입니다. 이런 구분을 제대로 할 줄 아는 목사도 없습니다. 성령님은 내주하시지만 임하십니다. 오순절 날에 임하신 성령님은 모든 믿는 자에게 내주하시는 그런 성령님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순절 날에 임하신 그 성령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함을 받아서 이 땅에서 나를 통하여 교회를 통하여 이루시고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받들어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에 사역도 그냥 인간 예수로 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받아서 일하셨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사61:1-3)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을 이미 이사야61장에 예언해 놓았습니다. 이 말씀을 주께서 친히 자신의 목소리로 인용하시면서 자신의 사역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충만하셔야만 하나님의 일을 하실 수가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사도행전 10:38절에서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다니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성도가 진정한 신자입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라고 합니다. 기도는 신앙인의 생명을 유지하는 호흡입니다. 그런데 그 호흡이 끈긴자들이 교회 속에 너무나 많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교회 일을 결정하고 기도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고 기도하지 않고 직분자로 섬기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생활에 급하고 필요하고 아쉬울 때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가 믿는 삼위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맺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주님과 대화한다고 생각하며 기도하는 자들이 얼마가 있을가요?
나 오늘 한 시간 주님과 대화 했다 라고 말하는 자들이 얼마나 될까요? 대화한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땡깡을 쓰고 자신이 필요한 것을 청구하고 떼쓰는 자들이 기도하는 자들 중에 적지 않습니다.
기도는 주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기도를 안하니까 억지로 몇 마디 갖다 맞추고 10분 지나니까 기도할게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도를 강조하는 말씀이 얼마나 많습니까?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엡4:2)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마태7:7)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렘33:3)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나의 사랑을 입을 것이요 나를 간절히 찾는 자는 나를 만날 것이라(잠8:17)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께서 땀이 피 방울 같이 흘러내리며 기도하시고 있는데 재자들은 졸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26:41)
신랑 되신 주님께서 10처녀 비유에서 버림받은 신부에게 마지막 뭐라고 하였습니까? “그런즉 깨어 있으라”(마25:13) 라고 하였습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이 몇까지 뜻이 있지만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기도하는 것이 깨어 있는 신앙생활입니다.
기도에대해서 알면 뭐합니까? 기도를 해야 합니다. 주님과의 대화를 즐겁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기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성령님 구하시기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교제를 기도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네 번째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성경운동 참으로 중요합니다. 성령운동은 말할 것도 없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그리고 기도운동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 중에 제일로 중요한 것은 신부운동입니다. 이게 사실 주제입니다.
성경을 알아도 성령을 받아도 기도를 해도 결국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것 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신부운동은 바로 예수님을 제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예수님과 교회 그리고 예수님과 신자를 신랑과 신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마태25:1-13, 고후11:2-3, 계19:9, 21:2)
예수님 즉 신랑 되신 주님의 신부로 교회와 신자들이 갖추어야 할 자세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신부운동이 중요합니다. 왜냐구요? 예수님의 재림은 신부만을 데리고 가십니다. 교회 나오는 자를 데리고 가시는게 아닙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를 데리고 가시는 게 아니라 신부를 데리려 오시고 데리고 가십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수님의 신부가 되고 있습니까? 신부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요21:15,16,17)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정도의 수준으로 예수님을 사랑해야 하는 줄 아십니까? 막10:29절에서 “나보다 어미나 아비나 형제나 자매나 자녀를 더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눅14장에서 “나를 따르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자는 징정한 신자가 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돈을 예수님보다 사랑합니다. 자녀를 더 사랑합니다. 그리고 가정을 그리고 적지 않는 사람들은 취미생활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고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간관계를.... 예수님께서 직접 하셨습니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는자는 내게 합당하지 않다고...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제일로 사랑해야 합니다. 너무 어렵다고 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로 귀한 것이 여러분의 목숨입니다.(마태16:26) 그 목숨이 구원을 얻는데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구원은 과거에 예수님을 만남으로 시작되고 현재까지 계속 그분과 교제함으로 이루어 나가며 미래에 끝까지 주님과 함께할 때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적지 않는 신자는 그저 교회만 나오고 헌금만 하면 구원을 받는 줄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 지옥에 갈 것입니다. 천국에 갈자는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시고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고 결혼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마지막 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혼인예식을 기대하고 있다면 큰 낭패를 당할 것입니다. 혼인잔치는 예수님을 제일로 사랑하는 신부들만이 들어갈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8: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의 사랑을 받을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디베랴 바닷가에 고기 잡고 있는 베드로에게 찾아가서 첫 질문이 무엇입니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내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입니다. 우리는 돈보다 자식보다 애인보다 취미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이게 진정한 신부입니다. 이운동이 신부운동입니다. 한국교회는 신부운동을 펼쳐야 합니다.
마태25장 10처녀 비유에서 6절에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라는 음성이 들릴때 신랑을 사랑하지 못한 신자들은 맞으러 나갈 수가 없습니다. 다 예수님께로부터 거절당합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니...”나는 너희를 알지 못 한다 입니다. 얼마나 엄청나게 충격적인 말씀입니까? “나는 너를 알지 못 한다”라고 거절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이루어 놓으시고 치루신 십자가의 고통 피와 물을 다 흘리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수치와 멸시를 당하시면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천하보다 귀한 내 목숨을 위해서 치루신 주님의 희생이 얼마나 높은지를 알면 이렇게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몇 년 잘 먹으려고 돈따라가고 육신의 쾌락을 위해 취미생활 또는 세상적인 일애 매이지 마시고 영원한 삶을 위해 여러분들의 제일 좋은 것으로 투자하고 댓가를 지불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 받아라”(마25:34)는 음성을 듣고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존비비어 목사님 간증)
존 목사님이 어느 날 기도하다가 환상을 보았는데 환상가운데 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수 많은 사람들이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는 주님의 음성을 기대하고 심판대 앞에 섰는데 주님께서 엄한 음성으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마7:23)는 음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음성을 듣고 세상에서 가장 낙심된 가운데 지옥으로 들어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 환상을 통해서 존 비비어 목사님이 하나님께로 받은 것은 교회 안에 신자라고 하는 자들이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줄 알지만 실제로 적지 않는 자들 수 많은 신자들이 지옥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다시 구원의 복음을 교회밖에 전해야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온 시대에 교회 안에 말씀대로 살지 않고 성령충만하지 않고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냉냉한 자, 죽은 자와 방불한 자, 열매 맺지 않는 자, 이런 자를 깨워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신자들 가운데 아주 작은 비율의 신자들만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아십니까? 적지 않는 수 많은 신자는 버림받습니다. 이게 실제입니다. 그래서 1980년도에 사후체험을 한 목사님의 간증이 있는데 이분은 밥 존스 목사님이신데 심판대 앞에서 던지는 질문이 “사랑을 배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을 그 간증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때 밥 존스 목사님이 천사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시간대에 천국에 온 자들이 얼마나 됩니까? 물으니까 천사가 말하기를 죽은 자들 중에 2%만이 천국에 들어왔다고 하더랍니다. 2% 얼마나 적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엡3:17절에서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알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통해서 그분의 사랑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아는 만큼 그분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잘 표현한 찬송가 85장 3절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예수의 넓은 사랑을 어떻게 말하랴 그 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을 알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나오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실제로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니까 종교적으로 교회 나오고 습관적으로 교회봉사하고 신앙 생활 합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니까 그분과의 교제도 물론 불가능합니다. 그분을 모르니까 구원의 기쁨과 감격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쁨도 없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즐거움도 없고 삶의 승리도 맛보지 못하고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과 구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은 대부분 자신들은 구원을 받은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게 교회 안에 적지 않는 종교인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하지 않습니까?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만나시고 그분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다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는 것이 제일로 중요합니다. 구원은 그분을 사랑할 때만 얻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