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가을 스케치
거창, 함양 일원의 전통한옥마을과 정자문화
거창 황산전통한옥 마을 / 등록문화재 제 259호 / 거창 황산마을 옛 담장 1200m
황산전통한옥마을은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위치한 전통 한옥 마을로 수승대국민관광단지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⑹궛留덉쓣_?좎쥌踰붽????꾧꼍](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korean.visitkorea.or.kr%2Fcms%2Fresource%2F30%2F892830_image2_1.jpg)
1540년(조선 중종35년)에 요수 신권 선생이 이곳에 은거하며 1540년 '구연재'을 세우고 후학들을 양성했던 이후로 거창 신씨의 집성촌 마을이 되었다. 이 '구연재'는 1573년 신권선생이 죽자 사림에서 '구연서원'으로 개칭 하고, 석곡 성팽년과 함께 배향 하였다. 이후 황산마을은 18세기중엽 조선 영조때 노론계 학자인 황고 신수이 선생이 입향을 하면서 번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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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황산전통한옥마을의 가옥들은 대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건립된 건축물로 대한제국 말기와 일본 강점기 시대의 지방 반가의 전통 한옥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남아 있는 한옥은 약 50여호로 안채와 사랑채를 갖추고 있고, 모두 기와집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씨족 부농촌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을의 담장은 제법 큰 자연석을 이용한 토석담으로 약 1.2Km에 걸친 활처럼 휘어진 전통 담장길은 전통고가와 잘 어우러져 매우 고즈넉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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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들어서면 입구에 높이 15m, 수령 600년에 이르는 '안정좌'나무라 부르는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 중앙에는 "황산신씨고가"가 자리 잡고 있는데, 1927년 옛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은 건물로 '원학고가'라고도 부른다.이 가옥은 경상남도 민속자료 17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채, 사랑채, 중문채, 곳간채, 솟을대문, 후문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특히 사랑채는 궁궐에서나 볼 수 있는 고급스러운 장식물로 꾸며져 있어 당시 큰 지주였던 집주인의 재력을 엳볼 수 있다. 안채는 많이 개수되어 전통한옥의 격식에서는 많이 벗어난 모습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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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승대국민관광단지에 깨끗한 민박과, 호텔 등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지만, 이곳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한 황산전통한옥마을에서 옛 조상들의 주거생활을 체험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거창은 오래전부터 산이 높고 물이 맑은 고장으로 이름난 곳이다. 낮에는 시원한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밤에는 황산마을에서 전통한옥체험을 한다면 여름 휴가철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일 것이다.
황산전통한옥마을은 덕유산, 가야산, 지리산에서 가깝고, 인근에 송계사계곡, 거창조각공원, 금원산자연휴양림, 월성계곡, 거창박물관, 화계사, 쌍계사계곡 등의 관광지가 있다. 교통편은 거창시외버스터미널에서 수승대 방면의 버스를 이용한 후 도보로 이동하면 된다. 매년 7월말에서 8월중순 사이에는 '거창국제연극제'가 열리고 이 기간중에는 거창읍내에서 수승대까지 셔틀버스도 운행이 된다.
황산마을 거창 신씨(居昌愼氏) 고가 위천면 황산리 487 / 민속자료 제 17호 / 1927년에 지은 집
위치 : 위천면 수승대 매표소 맡은편 황산전통가옥 민박마을 내에 위치. 거창읍에서 20분소요
거창 신씨(居昌愼氏) 집성촌인 황산 마을에 있으며 일명 「猿鶴古家」라 칭한다. 주요건물은 안채, 사랑채, 중문채, 곳간채, 솟을대문, 후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27년에 건립한 것으로 검소한 양식에 서민적인 전통 한옥 특징을 갖추고 있다.
조선 연산군 7년(1501)에 요수(樂水) 신권(愼權, 생몰년 미상)이 이곳에 들어와 산 이후, 이 마을은 거창(居昌) 신씨(愼氏)의 집성촌(集姓村)으로 번창해 왔다. 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이 집은 1927년에 지어졌다. 당시 이 집의 주인은 큰 지주였다고 하는데, 이 집은 그러한 집주인의 경제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모두 경남 지방의 일반적인 주택 양식인 홑집 대신에 겹집의 팔작(八作)지붕으로 지어 집주인의 부와 권위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사랑채는 궁궐이나 절에서 볼 수 있는 고급스런 장식물로 꾸몄다. 잘 다듬은 커다란 돌로 쌓은 받침돌[長臺石]과 기둥을 받친 주춧돌 위에 설치한 기둥자리[柱座] 등은 조선 중기 이전에는 벼슬이 높은 양반 집안에서도 보기 힘든 모습이다. 그밖에 안채와 그 건물을 둘러싼 크고 화려하게 지은 부속 건물들도 집주인의 경제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안채의 늘어난 방 수, 좁아진 대청, 집안에 들어선 화장실 등은 전통의 격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20세기 초 실용성을 중시하던 가옥의 변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1920년대에 지어진 이 가옥은 격식의 해체, 실용성의 증가, 심화된 경제적 계층화 등 복합적인 사회 현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하겠다.
정온선생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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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온선생생가는 조선시대 충절로 이름난 동계 정온선생 (1569~1641) 의 종택으로 후손들이 순조 20년 (1820)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온선생은 대사간, 경상도 관찰사, 이조참판 등을 지냈으며, 병자호란(1636)때 척화를 주장하다가 화의가 이루어지자 자결을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덕유산 모리에 은거하다 여생을 마감하였다. 돌아가신 후에 영의정과 홍문관 대제학에 추증되었고, 광주 현절사, 제주 귤림서원, 함양 남계서원에 배향되었다.
조선 후기 사대부가의 원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대문채, 사랑채, 중문채, 안채, 아랫채, 곳간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솟을대문을 통해 들어서면 작지만 정갈하게 꾸며진 정원을 앞에 두고 사랑채가 위치해 있는데 이 사랑채 누마루부분의 지붕 형태가 특별하다. 사랑채 전반의 용마루를 높이며 기왓날이 보이도록 한 줄을 낸데다, 누마루부분은 지붕 아래 ㄷ자형태로 지붕을 덧대었다. 이 덧지붕을 지지하기 위해 누의 계자난간 밖으로 보주가 서게 되는데 이로인해 공간의 깊이감이 더해진다.
수승대(搜勝臺) 위천면 황산리 750-3번지
위천면 황산리 황산마을 앞 구연동에 위치한 수승대는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였고 조선 때는 안의현에 속해 있다가 일제 때 행정구역 개편으로 거창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승대는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가 대립할 무렵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사신을 전별하던 곳으로 처음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하였다 해서 근심 수(愁), 보낼 송(送)자를 써서 수송대(愁送臺)라 하였다. 수송대라 함은 속세의 근심 걱정을 잊을 만큼 승경이 빼어난 곳이란 뜻으로 불교의 이름에 비유되기도 한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our.geochang.go.kr%2F01%2Fimg%2Fsuseung_img_03.jpg) 그 후 조선 중종 때 요수 신권(樂水 愼權)선생이 은거하면서 구연서당(龜淵書堂)을 이곳에 건립하고 제자들을 양성하였고 대의 모양이 거북과 같다하여 암구대(岩龜臺)라 하고 경내를 구연동(龜淵洞)이라 하였다. 지금의 이름은 1543년에 퇴계 이황(退溪 李滉)선생이 안의현 삼동을 유람차 왔다가 마리면 영승리에 머물던 중 그 내력을 듣고 급한 정무로 환정하면서 이곳에 오지는 못하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며 음이 같은 수승대(搜勝臺)라 고칠 것을 권하는 사율시(四律詩)를 보내니 요수 신권선생이 대의 면에다 새김에서 비롯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fs9.tistory.com%2Fimage%2F23%2Ftistory%2F2008%2F06%2F26%2F00%2F09%2F48625fa175f2b) 경내에는 구연서원(龜淵書院) 사우(祠宇) 내삼문(內三門) 관수루(觀水樓) 전사청(典祠廳) 요수정(樂水亭) 함양제(涵養齊) 정려(旌閭) 산고수장비(山高水長碑)와 유적비(遺蹟碑) 암구대(岩龜臺) 등이 있는데 이는 유림과 거창신씨 요수종중에서 공동 관리하고 있으며, 솔숲과 물과 바위가 어울려 경치가 빼어나고 또한 자고암과 주변에는 고란초를 비롯한 희귀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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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our.geochang.go.kr%2F01%2Fimg%2Fmt_tourzone.gif) 금원산자연휴양림, 월성계곡, 황산신씨고가마을, 정온선생생가, 갈계리 임씨고가, 갈천서당, 갈계숲, 송계사
월성계곡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창선리
덕유산과 지리산, 가야산 등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거창에서도 지대가 높고 산세가 아름다운 이곳 월성은 흔히 『하늘마을』로 통한다. 월성계곡은 남덕유산(1507.4m) 동쪽 자락의 월성천을 따라 형성된 길 이 5.5㎞의 계곡이다. 흔히 거창의 피서지로는 수승대와 금원산 일대 를 최고로 꼽지만 호젓하기로는 월성계곡이 더 우위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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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읍내에서 거열성군립공원, 수승대를 차례로 지나고 북상면사무 소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웅장한 산세를 자랑하면서도 넉넉한 기품을 가진 남덕유산 방향으로 들어가면 병곡리와 산수리로 들어가 는 갈림길 삼거리에서부터 월성계곡이 시작된다. 계곡의 폭은 그렇게 넓지는 않지만 주변 산세가 워낙 거대해 수량이 풍부한 편이다. 위천계곡과 수승대계곡으로 흘러내려간다. 상류로 올라가면 장군바위쉼터 등이 나타나고 계곡물은 그 바위 사이를 헤집으며 작은 폭포도 만들고 여울도 만들면서 갈계리의 월성1교에 이르기까지 계곡욕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들이 계속 나타난다. 산수마을 입구에서 마학동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좁은길로 우회전해서 가면 하늘과 맞닿아 있는 산수리 언덕의 절경을 감상하며 병곡리로 내려오는 코스도 권장할만 하다. 간간이 계곡을 향해 나 있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가면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너른 곳으로 내려설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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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계곡 물 소리는 도시인들에게 처음에는 시끄럽게 들릴 지 모르나 조금만 익숙 해지면 자장가나 진배없다. 월성계곡은 남덕유산 등산 기점인 황점 매표소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매표소 앞을 지나 포장된 도로를 따라가면 해발 800m 가까이 되는 남 령을 넘어 덕유산 종주 기점인 함양군 서상면 영각사로 이어지는데 산세가 아름다워 드라이브 코스로도 더할나위 없이 좋은곳이다. 남령 고갯마루에 서면 거창, 함양 일대의 산군과 멀리 지리산 능선까지 조망할 수 있다. 거창읍에서 20분, 지곡 IC에서 35분, 서상 IC에서 15분 소요된다.
함양 화림동 계곡의 정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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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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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knnews.co.kr%2Fnews_images%2F20090813.01010116000001.04L.jpg) 군자정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knnews.co.kr%2Fnews_images%2F20090813.01010116000001.05L.jpg) 거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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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정은 근래에 지어진 정자이지만 산에 둘러싸여 있어 시원하고 풍광이 좋다.
정자의 고장 ‘함양’은 예부터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좌안동 우함양’이라 불리는 선비의 고장이다.
무려 80~100여 개에 달하는 정자와 누각이 함양군 내 경승지마다 빼곡히 들어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특히 남덕유산(해발 1507m)에서 발원한 금천(남강의 상류)이 서상, 서하를 흘러내리면서 기이한 바위와 담, 소를 이룬 화림동 계곡은 ‘팔담팔정’(八潭八亭)이라 하여 8개의 못마다 하나씩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화림동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강변 바위에 남천정, 경모정, 동호정, 군자정, 거연정 등 유서 깊은 정자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이 가운데 동호정, 군자정, 거연정은 조선후기에 세워진 유서 깊은 정자들이다.
한때 화림동 계곡을 대표했던 농월정(弄月亭)은 안타깝게도 지난 2003년 방화로 모두 소실돼 받침돌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고요한 밤에 냇물에 비친 달빛을 한 잔의 술로 희롱한다’는
농월정 계곡의 하얀 너럭바위와 맑고 투명한 계곡물은 여전히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농월정은 관찰사와 예조참판을 지내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지족당 박명부가 노닐던 곳에 후손들이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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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물 : 남천정을 배경으로한 '화림동 계곡'을 그린 나으 졸작(표구를 망설이고 있음)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통영대전 고속도로-지곡IC-안의면(24번 국도)-화림동 계곡 |
첫댓글 와! 정말 아름답네요.. 거창의 수승대와 황산전통한옥마을은 올 여름에 다녀왔어요...거창 연극제 맞추어 하룻밤 묵고 억수같이 내리는 비 맞으며 연극"한 여름 밤의 꿈"도 한편 보았었는데...이렇게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나머지 장소는 날씨 따뜻해지면 꼬옥 한번 가봐야 겠어요...정말 한폭의 수채화입니다. 좋은 자료 감사드려요^^
겨울의 들머리에서 시원,통쾌함을 느낍니다.. 내년에는 이곳에 올라오는 자료들을 모아 전국일주 함 해봐야겠네요^^
와, 대단한 작품입니다. 망성이실 이유가 없는걸요. 표구해서 보면 더 멋지겠습니다. 저도 꼭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군자정에 올라가서 --폰을 한번 불어 보고싶군요--그러면 마치 학이 되어 날아갈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