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심리학자인 살바토레 매디는
일리노이 벨 전화 회사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을 때
직원 430명을 대상으로
스트레스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그때 직원들 대부분이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져
이혼을 하거나 심장마비,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직원의 3분의 1은
그전과 비교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건강을 잘 유지했고 해고를 당한 뒤에도
곧바로 다른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다른 사람들보다
회복탄력성이 뛰어나다는 데 있었습니다.
‘회복탄력성’이란 힘든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그 스트레스를 이겨 낼 수 있도록
돕는 힘을 말합니다.
회복탄력성이 뛰어나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회복탄력성이 뛰어난 사람들은
특징이 있어요.
스트레스에 압도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거죠.
그들은 누구나 살다 보면
고난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역경을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을 탓하기보다
오히려 그들에게 힘들다고 말하고 위안을 얻으며
고통을 이겨 내는 법을 배우려 노력합니다.
혹시 지금 지금 좌절과 절망의 늪에
빠져 있는 분 계십니까?
우리에게도 회복탄력성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회복탄력성 말입니다.
심리학자 살바토레 매디가 말한
‘회복탄력성’이 오늘 본문에 등장합니다.
그게 뭘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영적인 회복탄력성은 ‘그리스도의 평강’입니다.
이 평강은 모든 지각 위에 뛰어납니다.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는 힘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염려의 상황을 마주했을 때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입니다.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위로부터의 평안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의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평강이 임하는 걸
가장 싫어하는 존재가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해가 들지 않는
어두운 곳으로 데려다 놓으려 합니다.
그리곤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이죠.
“너에겐 창문도 없고 빛이 들어올 가능성도 없어.
평생 이렇게 살다가 끝날 거야.”
이렇듯 사탄은 우리에게
거짓된 확신을 심어주려고 합니다.
이때 쓰는 계략이 바로 ‘과장’이예요.
작은 일을 크게 보게 만드는 거죠.
눈앞에 있는 작은 파도를
집채만 하게 보게 하는 겁니다.
때로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가슴에 화살처럼 박힐 수 있습니다.
얼른 빼면 되죠.
그리고 약 바르면 됩니다.
하지만 사탄은 박힌 화살을 빼지 말라고 해요.
아픈 걸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라고 해요.
그러면서 동정심을 유발하게 만들죠.
이게 참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더 비참한 상태로
몰아가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환경을 탓하기 시작하죠.
나중엔 지나친 자기 연민에 빠져서
“나처럼 힘든 사람은 세상에 없어.
누구도 내 아픔을 알아주지 못해.”
라며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립니다.
성경에 보면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서
잘못된 선택을 했던 사람이 등장해요.
바로 ‘사울 왕’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엄청난 지위와 권력을 누렸어요.
처음에 그는 잘나갔어요.
전쟁에서 승리도 많이 하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손색이 없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고,
나가는 전쟁마다 승승장구하자 달라졌어요.
“저 족보도 없는 촌놈이 와서
나와 내 집안을 망가뜨리려고 하는구나.
언젠가 반란을 일으켜서
나를 죽이고 왕이 되려 하겠지!”
누가 그를 이렇게 만들었나요?
우리 함께 말씀을 읽겠습니다.
사무엘상 18:10-11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여기 보면 악령이 사울에게 내리자
그의 과장된 말에 속아
다윗을 죽이려 했다고 나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이런 마음의 속삭임이 들리는 분 계시나요?
‘나는 끝났어.’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
‘내 편은 아무도 없어.’
‘나는 빚더미에서 더 이상 빠져 나올 수 없어.’
이 생각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6장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로마서 6:8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사망입니까?
아니면 생명과 평안입니까?
사탄이 주는 거짓된 말에 속지 마십시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은 그분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
여기서 ‘지킨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프루레세이’입니다.
이것은 ‘망을 보다’, ‘호위하다’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평강의 성벽을 높이 쌓아 올리셔서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호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 고백하세요.
“나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야!”
“내 안에 살아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계셔!”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나는 절대 망하지 않아!”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딱 두 종류인 것 같습니다.
하나는 사탄이 주는 거짓말에 속아
닫힌 문만 바라보며 불안하고
걱정하는 사람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하나의 문이 닫혔다면
또 다른 문이 열려있음을 믿고
평안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성경 속 인물 중 사울과 대비되는 사람이 있죠.
바로 다윗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는
도망자의 삶을 살았어요.
날마다 살얼음판 걷는 기분이었겠죠.
아마 밤이면 이대로 자다가 천국에 보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 그가 왕이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전성기가 시작됩니다.
그렇게 평화롭던 왕궁에 위기가 찾아와요.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 등에
칼을 꽂아버립니다.
여러분,
배신도 잘 모르는 사람이 하면
그냥 잠깐 기분 나쁘고 끝이에요.
원래 안 친했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말죠.
그런데 아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자신을 궁에서 내쫓아버리는 게
말이나 됩니까?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인데,
수천 년 전 다윗은 어땠겠어요?
바로 그때 다윗의 심정이
시편 3편에 기록되어 있어요.
우리 함께 시편 3편 1-2절을 읽겠습니다.
시편 3:1-2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다윗은 모든 것을 빼앗긴 상황입니다.
주변에서는 손가락질하며 말합니다.
“너는 이제 망했어. 망했다고!”
“하나님이 널 버린 게 분명해.”
여러분이 다윗이라면 어떠셨겠습니까?
저 고백이 글로 되어 있으니까
감정 이입이 안 되죠?
다윗은 이 글을 쓰며 울었을 거예요.
“하나님! 저 죽을 것 같아요.
다들 저를 욕하고 죽으라고 해요.
하나님이 저를 버렸다고 해요!
진짭니까?
하나님 안 계신 거예요?
저를 버렸어요?”
이와 비슷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마틴 루터입니다.
그는 부패한 로마 카톨릭의 오류를 지적하며
오직 믿음으로라는 구호와 함께
개혁의 불길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화가 난 로마 가톨릭 세력은
루터를 없애려고 했습니다.
심지어 자객을 보내서
루터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점점 지치고 마음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1520년 6월 그는 보름스 의회에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가지 말라며
만류했습니다.
이곳에 가면 그에게 어떤 환란이 닥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는 시편을 묵상하던
중 담대함을 얻습니다.
그리고 찬송가를 지어서 동역자들과 부르며
대적들 앞에 나아갔습니다.
바로 이 찬양입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여러분, 루터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 아닙니까?
그도 두려웠고, 걱정과 근심이 짓눌렀을 겁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랬더니 낮았던 자존감이 회복되고,
문제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어요.
앞서 말한 영적 회복탄력성을 되찾은 거죠.
루터가 묵상했던 말씀이 뭔지 안 궁금하신가요?
우리 함께 큰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시편 46:1-3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여러분,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전쟁 아닙니까?
회사에서 시달리고, 가정에서 상처받고,
이젠 어디 머리 둘 곳조차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상황 속에서 다시 일어설 힘은
우리 하나님이 내 편이란 사실을 믿는
믿음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불안과 염려, 근심이 아니라
“평안”임을 기억하세요.
이 사실을 믿고 루터처럼 고백해 보십시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유명한 강사이자 유튜버로 여러 매체에서
강의도 하는 김미경 원장님이 계십니다.
그의 책을 읽다가 이런 글귀를 보았어요.
“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성공 여부는 멘탈게임이다.”
이 멘탈 게임에 강했던 인물이 바로 다윗입니다.
앞서 읽었던 시편 3편의 마무리는
이렇게 바뀌어 있어요.
시편 3:3-6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이 고백하는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되길 바랍니다.
사탄은 우리의 상황을 크게 보게 만들어요.
과장법을 사용하죠.
거기에 속지 마십시오.
진리를 붙드세요.
주님은 우리의 방패십니다.
루터처럼, 또 다윗처럼 진리를 붙들고 전진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고 3일 때 언니를 잃은 소녀가 있었습니다.
한 달 뒤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의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눌러왔던 슬픔이
뒤늦게 터져버렸습니다.
그리곤 방황을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 속에 슬퍼하고 있을 때
사촌 오빠가 찾아와 말했습니다.
“혜남아, 인생에는 최선만 있는 건 아니야.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이 있고,
차선이 안 되면 차차선도 있는 법이거든.
그래서 끝까지 가봐야 하는 게 인생이야.”
어차피 살아야할 인생이라면
누구보다 잘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의대에서 예과와 본과를 거치는 6년 동안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과정을 마쳤기에
당연히 대학 병원에서 근무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레지던트로 뽑히면서
국립정신병원으로 가야했습니다.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대학병원에 있어야 할 사람인데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비참하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끝날 것 같았던 인생이
거기거 멈추지 않았습니다.
더 좋은 결과로 지금은
최고의 작가이자
정신과 의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학병원의 문이 닫혔다고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문이 있었던 거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폭풍 없는 삶을 약속하진 않으셨지만,
우리가 폭풍을 만날 때
우리 곁에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2절에 보면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우리 앞에 있는 원수가 끊임없이
공격하려 들 때도 겁내지 마십시오.
우리에겐 우리를 대신하여
싸워줄 장수가 계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만군의 주이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데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하겠습니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그러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임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을 지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하나의 문이 닫혀있습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다른 문을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면
이 사실이 믿어집니다.
이게 은혜죠.
이 은혜 안에서 날마다 승리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