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고사 풍경소리
새벽에 일어나 현역 기자 김기철이 쓴 ‘모든 씨앗은 숲을 그린다’를 읽었다. 제목과 표지 그림만 보면 환경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속 내용은 우리 사회에 대한 냉철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었다. 그는 진보 일간지 정치부에서 잔뼈가 굵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예리하고 분석적이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고에 유연성을 갖고 젊은 층의 생각에 공감하고 수용하도록 노력해야겠다.
날이 밝아와 자연학교로 나갈 채비를 갖추었다. 오늘은 생수와 간식 말고 올여름 숲에서 찾아내 베란다 말리는 건재 영지를 봉지에 담았다. 적은 양이지만 이웃 동 아파트 뜰에서 꽃을 가꾸는 밀양댁 할머니에게 보낼 참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를 환하게 꾸며준 할머니께 할 수 있는 소박한 성의 표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꽃밭을 오가면서 꽃을 감상한 사례로 너무 당연하다.
현관을 나서 엘리베이터를 내려가 이웃 동 아파트 뜰로 가니 꽃대감 친구도 밀양댁 할머니도 꽃밭에 나와 있지 않았다. 내가 너무 이른 시간에 나가 그런가 싶어 한동안 꽃밭에 서성여도 내려오질 않아 말린 영지 봉지는 물뿌리개 아래 빈 화분에 두고 나는 나대로 길을 나섰다. 버스 정류소에서 동정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거기서 북면 온천장으로 가는 버스로 한 번 더 갈아탔다.
버스가 천주암 아래를 지나 굴현고개를 넘어간 외감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외감마을엔 지난 월요일에도 들러 돌나물을 걷어가 물김치를 담가 잘 먹고 있다. 이번에는 양미재를 오르기 위해 동구 밖에서 달천계곡 들머리에서 남해고속도로 창원터널 곁으로 올라갔다. 단감과수원에는 여름을 이겨 건너온 풋단감은 고물이 차고 있었다. 과수원이 끝난 등산로로 들었더니 풀이 무성했다.
양미재로는 여름에 산행객이 많이 다니질 않아 등산로가 묵혀져 있다시피 했다. 헝클어진 덤불 숲에서 이삭여뀌와 이질풀이 피운 꽃송이를 봤다. 평소는 개울이 건천으로 말랐는데 가을 들머리 비가 잦게 내려 물이 졸졸 흘러갔다. 개울을 건너 가랑잎이 삭아 부엽토가 된 등산로를 올랐다. 양미재 못 미친 너럭바위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몇몇 지기들에게 안부 문자와 사진을 보냈다.
쉼터에서 양미재로 오르니 길섶에는 쑥부쟁이와 참취가 꽃을 피우는 즈음이고 물봉선꽃도 흔하게 보였다. 양미재를 넘어 구고사로 가는 기슭에는 응달 물가를 좋아하는 물봉선꽃이 무더기로 피어나 나를 반겨주었다. 늦가을이면 좁쌀처럼 자잘한 꽃을 피우는 고마리는 잎줄기를 한창 불려가고 있었다. 내가 목표로 삼은 구고사 절집으로 들어서니 신도가 타고 왔을 차가 몇 대 보였다.
등록 불자도 아니면서 가끔 찾는 구고사는 평소 인적이 뜸해 고즈넉했다. 법당보다 범종각의 전망이 특히 좋아 망루에 올라 바라보는 추녀 끝 풍경은 인상적이었다. 2층으로 된 범종각 망루에는 범종과 북은 물론 운판과 목어까지 두루 갖추고 있었다. 단청 칠이 화려한 범종각 추녀 끝 풍경은 바람이 불 때마다 소리를 나게 하는 진자가 허공에 매단 물고기 형상이라 이채로웠다.
법당에선 영혼을 위무하는 재가 있는지 신도가 드나들며 의식을 준비했다. 법당 뒤 약사전은 문을 활짝 열어 바람이 통하도록 해 놓았는데 약사불 곁에 협시로 안치한 돌부처가 눈길을 끌었다. 100여 년 전 구고사를 창건한 아랫마을 상주 주씨 노인이 자다가 잠결에 현몽한 자리로 가 찾아낸 돌부처였다. 그 돌부처를 파낸 산기슭에 세운 절이 구고사라고 창건기 빗돌에 새겨져 있었다.
약사전에서 작대산 트레킹 길로 향하면서 ‘풍경 소리’를 남겼다. “범종각 팔작지붕 추녀 끝 네 귀퉁이 / 허공이 달린 풍경 바람이 불 때마다 / 뎅그렁 울리는 소리 원을 그려 퍼진다 // 출세간 맑은 소리 속세로 번져 나가 / 번뇌는 걷어내고 무지를 일깨워서 / 다 함께 용선에 올라 서방정토 가잔다” 약사전을 돌아 숲길로 드니 비구니의 낭랑한 독경 소리가 스피커로 울려 퍼졌다. 23.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