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현대음악을 향한 재즈 음악가의 비밀스러운 구애’는 음악학자 귄터 슐러의 저서다. 재즈가 전통적 서양음악에 접목되는 현상을 ‘제3의 흐름’으로 주창한 이 책에 관해 독일 문화저널리스트인 귄터 불레스가 ‘클래식을 연주한 재즈뮤지션’이란 제목으로 독일 음악지 ‘오케스트라’에 기고한 내용을 발췌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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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보였던 재즈 뮤지션들은 1920년대 이른 바 ‘클래식 재즈’ 세대로 불리던 랙타임의 피아니스트들이다. 1983년 100세로 사망한 유비 블랙을 위시한, 탄탄한 피아노 테크닉이 주무기였던 팻츠 월러(1904~1943), 테디 윌슨(1912~1986)과 아트 태텀(1909~1956)이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랙타임’ 재즈를 바탕으로 유럽 피아노 악파에 접근한 연주가들로, 특히 태텀의 눈부신 테크닉과 숨막히는 열정적 연주는 라흐마니노프와 호로비츠까지도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듀크 엘링턴(1899~1974)은 피아니스트로서 클래식음악에 대한 접근은 물론 자신의 작곡에까지도 스트라빈스키, 다리우스 미요 등 유럽 현대음악을 접목시켰다.
클래식 음악을 본격적으로 연주한 최초의 재즈 뮤지션은 ‘스윙의 제왕’ 클라리네티스트 베니 굿맨이라 할 수 있다. 그가 1983년에 연주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는 오늘날까지도 재즈 음악가들에게 교과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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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베니 굿맨은 러시아계 유태인 가족의 샛별이었다. 이미 10세때부터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프란츠 쇠프로부터 2년간 체계적인 음악수업을 받았다. 그는 굿맨에게 독일식의 엄격한 규율에 의한 클래식 테크닉뿐만 아니라 폭넓은 재즈 음악가들과의 교류도 터주었다. 이미 다양한 밴드와 함께 방송악단에 출연하면서 명성을 쌓아오던 굿맨은 1934년 독자적인 빅 밴드를 조직했다.
1938년 카네기홀의 재즈 콘서트에서 연주한 그의 ‘스윙’은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당대 유례가 없던 ‘굿맨 마니아’까지 생겨나게 했다. 이어 ‘베니 굿맨 스토리’ 라는 영화까지 제작되는 등 그는 소위 흑인 음악밴드의 백인 리더로 하룻밤에 스타가 되었다.
‘스윙의 제왕’ 의 수식어가 붙은 굿맨은 클래식으로 발을 옮긴다. 그는 부다페스트 현악4중주와 모차르트 클라리넷5중주 음반 제작에 이어 베어의 클라리넷 협주곡, 2개의 브람스 소나타, 닐슨의 협주곡 등 고전에서 낭만주의 레퍼토리까지 섭렵해 간다.
굿맨의 클래식 음반 중에는 1950년대 샤를 뮌시가 지휘하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보스턴 심포니 현악4중주와 연주한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과 클라리넷 5중주 음반이 있다. 이 음반에서 그의 프레이징은 지극히 클래식적이며, 저음역에서는 아름답고 풍부한 음색을 보이지만 고음역으로 가면 아주 가늘고 비음이 난다. 또 다이내믹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보면 힘있는 구성이라기보다 오히려 서정적이고 절제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굿맨은 클래식음악 연주뿐만 아니라 동시대 작곡가들에게 작품위촉에도 누구보다 앞섰다. 1938년 나치를 피해 미국에 망명 중이던 바르토크는 굿맨을 위해 ‘클라리넷을 위한 실내악’과 1939년에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품’을 썼다. 이 작품은 굿맨이 1940년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시게티와 바르토크의 피아노 연주로 녹음해 지금까지도 귀중한 음반으로 남아있다. 1947년에는 쿠프랭과 힌데미트가 클라리넷 협주곡을, 1974년에는 말콤 아널드가 굿맨에게 직품을 헌정하기도 했다.
베니 굿맨은 그 시대는 물론 당대를 뛰어 넘어서까지 재즈 뮤시션으로는 보기 드문 ‘예외의 음악가’로 진지함과 깊은 관심, 양심있는 예술가로 많은 팬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그의 뒤를 이어 클래식 연주에 뛰어든 재즈 음아가로는 1980, 90년대에 나타난 칙코리아, 윈턴 마살리스, 키스 자렛을 들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일찍부터 음악을 시작해 전채적인 재능을 보인 점과 정규 음악 대학에서 교육을 받지 않고도 성공한, 이른바 ‘샛길로 들어 온 음악가’라는 점이다.
칙 코리아의 음악은 1960년대 라틴 음악과 살사에 기반을 둔다. 그 흔적은 활기 넘치는 그의 재즈음악과 빛나는 타악기의 리듬에서 잘 나타난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그의 관심은 1982년 프리드리히 굴다와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특히 모차르트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이던 두 사람은 만나 지 몇주 후에 아르농쿠르가 지휘하는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의 ‘두 대를 위한 피아노 협주곡’(K.365)을 연주했다.
칙 코리아의 클래식 음반으로는 세인트 폴 체임버 오케스트라(지휘/바비맥퍼린)와 협연한 ‘모차르트 세션’ 이 있다.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K.466,K.488)을 담은 음반으로 프렐류드의 즉흥연주가 백미다. 작품 K.466은 맥퍼린이 보컬로 도입부를 시작하고 피아노가 천천히 가세하는 서정적인 재즈 프레이징이 매력적이고, K.488에서는 섬세하고도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연상케하는 칙 코리아의 부드러운 프레이징이 아름답다. 아쉬운 점이라면, 오케스트라의풍부한 표현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을 준다.
칙 코리아와 바비 맥퍼린이 남긴 또 다른 모차르트 음반은 두 개의 피아노 소나타(K.280/189)가 있다. 아다지오 부분을 듀오로 편곡해 실험적이면서도 조심스러운 재즈 형식으로 연주한 작품이다. 그 외에도 칙 코리아의 클래식 음반으로는 ‘모차르트의 정신과 음향’ 이라는 주제 아래 연주한 피아노 협주곡1번이 있다. 이 작품은 모차르트가 라스베이거스와 할리우드를 거쳐 뉴욕의 웨스트 사이드나 브로드 웨이쯤에 이른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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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턴 마살리스는 1962년 뉴 올리언스 아프로 아메리칸 출신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트렘펫 연주자. 그는 재즈, 비밥, 하드 밥의 전통을 바탕으로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단단한 커리어를 쌓은 재즈 음악가다.
이미 11세에 음악수업을 받았고 전설적 기카 연주자 대니 바커와 협연했으며, 14세에는 뉴 올리언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연주하기도 했다. 마살리스가 클래식 음악에 정식 입문한 계기는 탱글우드 페스티벌을 통해서였다. 이어 클래식 음악교육의 메카 줄리아드에 입학하지만 1940년대 마일스 데이비스나 다른 재즈 뮤지션처럼 오래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온다.
마살리스는 브루클린 필하모니아, 멕시코 시티 심포니, 브로드웨이 극장 오케스트라를 징검다리로 1980년대 들어와 유럽투어에 나섰다. 거기에는 하드 밥의 중심 인물이자 스승인 전설적 드러머 아트 블래키의 ‘재즈 메신저스’가 동반한다.
이처럼 양 분야에서 인정을 받아 오던 마살리스는 재즈와 클래식 분야에서 그래미 상 동시 수상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마살리스의 바로크 음악 연주를 들어보면 그가 재즈 뮤지션이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영국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연주한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BWV1047)을 들어보면 그의 눈부시고 부드러운 프레이징에 탄복하게 된다. 이오케스트라와 연주한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에서도 그의 흠없는 선율과 트릴, 명확하고 세밀한 악센트는 절로 감탄을 자아 내게 한다.
마살리스는 재즈뿐만 아니라 바로크와 고전주이 음악, 현대음악 연주에서도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 그의 ‘20세기에서’(On the Twentieth Century)앨범에서는 라벨과 플랑크의 작품을 편곡 연주했으며 앙리 토마지(1901~1971), 아르투르 오네게르 등의 20세기 초반 현대 작품도 담았다. 뒤이어 그는 트렘펫음악의 진수로 알려진 두 작품, 힌데미트와 핼시 스티븐스(1908~1989)의 소나타와 라벨의 ‘하바네라’, 풀랑크의 ‘에펠 탑의 신혼 부부’ 등 다양한 클래식 음반을 내놓았다. 이 음반에서 마살리스의 트럼펫은 마치 플루트처럼 부드럽고 섬세한 음에서 금관악기 특유의 억센 음향까지 오로지 비르투오소만이 가능한 재능을 마음껏 쏟아낸다.
힌데미트가 1939년에 쓴 ‘피아노와 트렘펫을 위한 소나타’에서 마살리스의 테크닉과 음악성은 더 없는 빛을 발해 마지막 악장의 ‘ 장송곡’ 부분에서는 청중의 가슴을 온통 슬픔으로 몰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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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에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난 키스 자렛은 재즈 피아노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거장이다. 그는 3세에 피아노를 시작, 7세에 이미 천재 음악가로 공식 연주회장에 섰다. 보스턴의 버클리 음대에 입학했으나 배울 것이 없다는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고 1965년 본격적으로 재즈 음악가의 길을 걸었다.
마살리스처럼 그의 재즈음악 또한 아트 블래키에서 숙성된다. 그는 색스폰 주자 찰스 로이드, 마일스 데이비스와의 연주 활동을 바탕으로 훗날 ‘스탠더드 트리오’라는 그룹을 독자적으로 구성해 전세계를 순회했다. 주로 즉흥연주를 통해 개성적인 피아니스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자렛은 클래식 피아노의 거장 번스타인과 글렌 굴드까지도 찬사을 아까지 않은 연주자다.
그가 비르투오소로 불리는 이유는 뛰어난 테크닉뿐만 아니라 건반을 다루는 천재적인 기교와 예술적인 프레이징으로 음악을 마치 문학작품처럼 강하게 표현해 내기 때문이다.
1980년 중반부터 자렛은 바흐, 스카를라티, 베토벤과 쇼스타고비치의 작품 등을 솔로 리사이틀을 통해 연주해왔다. 1991년 출발된 고난도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쇼스타코비치의 ‘24개의 플레류드와 푸가’(Op.87)연주는 그를 일약 ‘클래식을 연주하는 재즈 뮤지션’으로 부상시켰다. 이 음반은 1952년 초연 이후 1987년 타티아나 니콜라예바의 음반에 이은 두 번째 음반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으며, 니콜라예바와 음악적 해석으로 비교해봐도 자렛의 것이 결코 뒤떨어지지 않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니콜라예바의 해석은 표현적이지만 전체적으로 유연함이 결여돼 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2번, 8번, 13번, 20번, 22번, 24번 작품에서 자렛은 현격히 빠른 템포를 설정했음에도 높은 수준의 연주를 보인다. 응축되고 깊은 사고를 담아내는 오른손의 흠없는 레가토와 프레이징, 악센트를 도드라지게 살려내는 왼손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물 흐르듯 유연한 구성을 보인다. 그의 자유롭고도 완벽한 해석의 컨셉트는 13번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바로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의 플렐류드에서 자렛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한 예다.
그는 유일하게 1악장만은 니콜라예바보다 느린 포를 택하는데 아마도 곡의 전체적인 극적 구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바로 작품 속에 강하게 깔려있는 내적인 음악적 표현을 남김없이 살려내려는 열망으로 볼 수 있다.
쇼스타코비치 음반 이전 자렛은 1989년 바희의 ‘골든베르크 변주곡’(BWV988)을 녹음한 바 있다. 여기서 그는 1982년 사망한 글렌 굴드의 전설적인 음반과 철저한 차별화를 위해 피아노 대신 쳄발로를 택했다. 뒤이어 1991년 비올리스트 킴 캬슈카시안과 쳄발로로 협주한 3개의 소나타(BWV1027~1029)는 그에게 ‘최고의 바흐 해석가’ 란 명성을 안겨주기도 했다.
자렛이 솔로 재즈리사이틀과 트리오 앙상블을 통해 심어준 인상은 ‘믿음이가는 연주가’ 다. 왜냐하면 그의 해석이 극단을 달리며 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성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에서 일반적인 바흐 해석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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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언급한 바로크, 고전, 낭만주의 음악뿐만 아니라 근래에 들어서는 20세기 작품도 재즈 뮤지션의 레퍼토리에 자주 오른다. 사티의 ‘짐노페디’, 쇤베르크의 모티브, 포레의 ‘파반느’ 가 그 예다. 굳이 재즈만 고집하지 않는 다면 볼프, 드뷔시, 오르프와 헨델의 작품까지 불러온 바바라 스트라이센드도 같은 카테고리 안에 포함시킬 수 있다.
‘바흐 플레이어’ 라는 고유명사가 붙은 프랑스의 재즈 피아니스트 자크 루시에 또한 ‘스윙글 싱어’로 끊임없이 바흐 음악을 고무시키며 미국 태생의 피아니스트 유리케인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 말러까지 다루며 거장 자렛에 도전한다.
마지막으로 짧은 시기이지만 즉흥 재즈 음악가로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준 클래식 음악가들이 있다. 첫 번째가 프리드리히 굴다로 그는 두 장르를 광적으로 오갔던 사람이다. 그리고 피아니스트 출신의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 번스타인과 바렌보임, 1960년대 상당량의 재즈 음반을 선보인 앙드레 프레빈이 있다. 또한 현재 상당히 재즈에 접근한 연주활동을 보여 주고 있는 기돈 크레머를 들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재즈음악가들은 클래식을 연주하는데 아무런 장애를 느끼지 않는다. 굳이 다른 점을 꼽는다면 별로 박자를 맞추는 재즈 뮤지션들이 지휘자에 의해 결정되는 박자에 결코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클래식 연주자들은 테크닉적인 면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재즈 음악가의 즉흥적인이고 자유로운 연주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있다. 이는 재즈든 클래식이든 음악 작품의 해석이란 결국 즉흥 연주의 부산물리기 때문이다. 표현의 수준이라는 것도 연주자가 어느 분야에서 테크닉을 배웠는지는 전혀 무관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자체’ 와 연주자가 실현할 ‘음악의 진실성’ 이다. 재즈나 클래식이나 음악은 결국 스스로 말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