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그라드 사본
모세가 시내 산에 율법을 받은 이후로 하나님의 말씀은 돌판에 그리고 때로는 파피루스에, 양피지에 때로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시대를 거쳐 오늘날 우리의 손에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기까지 “성경의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또는 “성경 말씀은 변하였다.”라는 두 개의 견해가 있는데요. 첫번째의 것은 우리 기독교인들의 신앙이 고스란히 담긴 말이고, 두번째 문장은 매우 신성모독적인 말이면서 불쾌한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 사본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 두 말이 완전히 다른 말도 아니고, 서로 부딛치는 말도 아닙니다. 둘은 다르지만 같은 말이거든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점일획도 바꿀 수 없는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성경을 필사하다가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과거 사해 바다 북서쪽 곁, 쿰란(Qumran)이라고 불리는 지역에서 살던 야하드(Yahad) 공동체의 전통에서 보건데, 성경을 필사하다가 잘못 썼을 때에는 쓰던 양피지를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쓰기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모세오경을 다 쓰려면 대략 90마리 이상의 양을 잡아야 한다고 합니다. 양피지 조각들을 꿰메어 긴 두루마리를 만드는데, 양 한마리를 잡아서 만들 수 있는 양피지 조각의 크기는 제각각이겠지만, 이 조각의 가격이 비쌌을 것은 분명합니다. 양피지 조각의 가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기록이 하나 있기는 한데요. 쿰란의 야하드 공동체가 살던 때보다 대략 200-300년 뒤이기는 하지만,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244-311년) 시대에 대략 30cm의 양피지의 가격이 40 데나리온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한 데나리온은 은 3g 이었다고 하네요. 오늘날의 은 시세로 따지면이야 10만원 정도의 가치이지만, 과거는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의 기록은 나와 있지 않아서 정확히 알수 없지만,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98-117년)에는 1 데나리온이 숙련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다고 하니, 40일을 꼬박 일을 해야 가로 세로 대략 30cm가 되는 양피지를 구입할 수 있다는 거지요. 트라야누스 시대보다도 100여년을 과거로 더 거슬러 올라가 쿰란의 야하드 공동체의 시대라면, 그 가격이 비슷하거나 아마 더 비쌌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하여튼 대단히 비싼 가격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양피지에 성경 말씀을 쓰다가 잘못 썼을 때, 야하드 공동체가 감당해야했을 경제적인 손실은 어마어마 했을 겁니다. 그래서 였을까요? 성경을 제외한 다른 두루마리들에는 글을 잘못 썼을 때, 줄을 긋고 다시 쓰거나, 줄과 줄 사이에 빠진 내용이나 더할 내용을 작은 글씨로 첨가한 경우들이 허다했습니다.
쿰란에 살던 야하드 공동체의 전통을 모든 유대인이 지켰던 것은 아닙니다. 성경 필사본 중에서 레닌그라드 사본(Leningrad Codex)이라고 불리는 필사본이 있습니다. 현재 구약 성경이 온전히 기록되어 있는 유일한 필사본이기도 합니다. 이 필사본은 1008년 또는 1009년에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필사되었습니다. 카이로의 유대교 회당에서 사용되던 것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러시아의 레닌그라드(현재는 성 페테스부르크 St. Petersburg라고 불림)의 유대인 회당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863년 이후로는 성페테스부르크에 있는 러시아 국립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데요. 이 사본을 연구하던 학자가 사본을 읽던 중 필사자가 잘못 쓴 부분을 고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레위기 25:36 인데요. 우리말 성경에는 “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필사본의 ‘너와 함께’라는 부분에 있는 히브리어 알파벳 ‘아인’(ע) 아래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또다른 글씨의 잉크 자욱을 본 것입니다. 모양은 딱 알파벳 ‘알렙’(א)입니다.
“왜 그랬을까?”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략 두가지의 대답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레위기 25:36는 두가지 다른 형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히브리어 알파벳 ‘알렙’으로 쓰는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히브리어 알파벳 ‘아인’으로 쓰는 형태인 것이지요. 1,000년 전에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성경을 필사하던 사람들은 이 두가지 형태를 모두 알고 있었는데, 누군지는 몰라도 이 부분을 기록한 사람이 ‘알렙’으로 쓰여진 사본을 보고 베껴 쓴 것이지요. 그런데 이 사본을 필사자들이 함께 검토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사본에는 ‘아인’으로 쓰여 있는 것을 보고 필사자들이 토론을 한 결과 ‘아인’이 맞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 썼던 ‘알렙’을 지우고 ‘아인’으로 고쳐 썼다는 설명입니다.
두번째 대답은 이 필사자가 실수로 ‘아인’을 ‘알렙’으로 잘못 쓴 것을 모르고 양피지들을 꿰메어 책으로 만든 후에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알렙’을 지우고 ‘아인’으로 바꿔 썼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에서는 발음상 ‘알렙’과 ‘아인’이 매우 헷갈리거든요.
사실 ‘알렙’이면 문법적으로 맞지 않고, 의미적으로도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인’이면 둘 모두가 매우 매끄러운 문장이 되지요. 그래서 우리말 성경의 번역도 ‘아인’을 기준으로 번역이 된 것입니다. 그럼 “’알렙’으로 기록되었다고 성경의 문맥과 취지에 맞추어 그 내용이 심각하게 변하는가?”라고도 물어 볼 수 있겠지요. 대답드리자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알렙’으로 써도, 읽으면서 ‘아인’으로 이해하거든요. 이런 것을 학자들은 좀 유식한 말로 ‘크티브 כתיב-케레 קרא’의 전통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맨처음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성경의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또는 “성경 말씀은 변하였다.”는 말은 둘다 맞는 말이 되는 셈입니다.
레닌그라드 사본(Leningrad Codex, 라틴어: Codex Leningradensis)은 티베리아(en) 마소라 본문에 바탕을 둔 히브리어 성경 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본 가운데 하나이다. 마소라 본문 내의 사본기록(콜러폰(en))에 따르면, 작성은 1008년으로 되어 있다. 레닌그라드 사본보다 오래된 사본으로, 수십년 정도 더 오래된 완전본으로 일컬어졌던 알레포 사본이 있으나, 1947년 이후 사본의 일부가 분실되어, 레닌그라드 사본이 오늘날까지 손상이 없이 현존하고 있는 티베리아 마소라 학파에 의한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성경 사본이 되었다.
레닌그라드 사본(표지 E, folio 474a)
레닌그라드 사본은, 현대에 들어와 비블리아 헤브라이카(1937년) 및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투트가르텐시아(1977년)의 히브리어 본문으로 복제되며 주목을 받는다. 이 사본은 알레포 본문의 분실된 부분을 채우는 대체 자료로 학자들에 의해 이용되고 있다.
내용
레닌그라드 사본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성경 본문은 티베리아식 모음 기호(en) 및 영창 기호(en:cantillation)가 부가되어 있는 히브리 문자로 기록되어 있다. 본문에 추가로 바깥 쪽에는 마소라 주석이 게재되어 있으며, 본문상 및 언어학적 상세 내용을 다루는 여러 가지 기술적인 보완이 실려 있으며, 대부분 기하학 문양으로 그려져 있다. 레닌그라드 본문은 양피지에 기록되어 있으며 가죽으로 묶여 있다.
레닌그라드 사본은 천년 전의 서물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손이 가해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중세 유대 예술의 일례를 보여준다. 사본 내의 16장에는 본문 절을 꾸미는 장식형태의 기하학 문양이 그려져 있다. 서명 페이지에는 양 가장자리에 필경사의 이름과 함께 별이 그려져 있고, 중앙에는 기도문이 적혀있다.
레닌그라드 사본의 성경 각권의 배열은 티베리아 계열 본문의 전통을 따르고 있으며, 이 전통은, 후대의 세파르딕 계열의 성경 사본의 전통과 일치한다. 성경 각권의 배열은, 다른 히브리어 성경 판본과 비교하여 케투빔(성문서) 부분이 현저하게 다른데, 역대기, 시편, 욥기, 잠언, 룻기, 아가, 전도서, 에스델기, 다니엘서, 에즈라-느헤미야기 순으로 되어 있다.
역사
레닌그라스 사본 본문의 견본(탈출기 15,21~16,3 부분)
레닌그라드 사본의 출판기록(콜러폰)에 따르면, 이 사본은 아론 벤 모세 벤 아셰르(en:Aaron ben Moses ben Asher)가 작성한 필사 내용을 카이로에서 복제한 것이다. 이 사본 자체는 벤 아셰르의 사경실에서 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벤 아셰르 본인이 사본을 봤다는 증거는 없다. 마소라 학파의 사본으로는 이례적으로, 자음자, 모음부호, 마소라 주석을 동일 인물(사무엘 벤 야콥)이 기록했다. 학자들은 레닌그라드 사본이 (벤 아셰르 본인이 직접 편집한) 알레포 사본은 별도로, 벤 아셰르의 전통에 가장 충실하게 따른 필사본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단 필사본의 글씨체가 수려하지 않고, 마소라 주석에는 몇백군데에 모순점이 존재한다., 수정 부분 및 삭제 부분이 여러 곳에 존재하는 것은, 모셰 고셴 고트슈타인(en:Moshe Goshen-Gottstein)의 주장에 의하면, 벤 아셰르의 본문에 따르지 않은 기존의 문서들이 벤 아셰르의 문체에 맞추는 식으로 다수 수정이 발생된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 레닌그라드 본문은 '필코비치 B 19 A'라 명명되어 러시아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원 소유자는 크리미안 갈라이파의 수집가 아브라함 필코비치(en:Abraham Firkovich)로, 그는 어디서 이 사본을 입수했는가에 대해서 자신의 저술에 남기지 않았다. 사본은 1838년 오데사로 옮겨져,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제국도서관에 양도되었다.
이름
레닌그라드 사본은 1863년 이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었던 이유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본', '페테르부르겐시스 코덱스'란 이름으로 불리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이후 페트로그라드로 명칭이 바뀌고, 러시아 혁명 발발 후인 1924년, '레닌그라드'로 명칭이 바뀌었다. 1937년 이 사본이 비블리아 헤브라이카의 기본 본문으로 사용되면서, '레닌그라드 사본'로 국제적으로 통용되게 되었다. 1991년 소련 붕괴 후 도시명은 원래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으나, 러시아 국립도서관측의 요청으로 사본의 '레닌그라드'라는 명칭은 그대로 남았다. 물론, 경우에 따라 코덱스 페테르스부르겐시스(Codex Petersburgensis) 또는 페트로폴리타누스(Petropolitanus), 혹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코덱스로 불리기도 하나, 이 명칭에는 애매한 점이 존재한다. 1876년에 이들 명칭이, 레닌그라드 사본보다 더 오래된(916년) 또다른 성경 코덱스(MS. Heb B 3, 후기 예언서만 현존)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현대판비블리아 헤브라이카
1935년, 레닌그라드 사본은 라이프치히 대학의 구약성서 세미나에 2년간 대출되었다.이 시기에 파울 E. 칼레는 비브리아 헤브라이카(BHK)의 제3판의 히브리어 본문으로 이 사본의 복제를 감독했다. 이 판은 1937년 슈투트가르트에서 출판되었다. 후속판인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투트가르텐시아(BHS)에도 사용되며, 개정판인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퀸타(BHQ)에서도 이용되었다.
이 레닌그라드 사본의 이용으로, 그전까지의 히브리어 성경의 본문으로 사용되었던 다른 히브리어 사본 성경 사본보다 수백년 정도 이전으로 앞당겨졌다.
BHS의 공인 전자판인 웨스트민스터 레닌그라드 본문은 J. 알란스 그룹즈 센터가 웨스트민스터 신학연구과의 고급 성경 연구용으로 보존한 레닌그라드 사본의 온라인 디지털판으로, 몇가지 교정 및 수정이 이루어졌다. 온라인 판에는 복사된 주석 및 배열을 분석하기 위한 도구가 제공되어 있다. The Leningrad Codex, A Facsimile Edition, ed. D.N. Freedman (W.B. Eerdmans and E.J. Brill, 1998)가 편리하다.
유대 판
레닌그라드 사본은, 이하의 주요 히브리어 성경 유대판 두가지의 바탕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