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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생생외국 경험방 스크랩 중국 조-중국경지대를 가다(단동-압록강편)
단군세상 추천 0 조회 1,210 06.07.27 10:36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압록강 철교에서 수풍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찍은 동영상입니다

이 영상에 자세한 설명은 다음에 올리기로 하고 단군세상의 압록강유람기

1부만이라도 먼저 감상해 주세요

 

이번 8월말에는 압록강 최남단 하류의 비단섬과 황금평을  동영상에 담아

완성된 동영상과 기행문을 가지고 여러분들

찾아 뵙겠습니다.

 

 

 

 

조중국경지대를 가다(단동-압록강편

  우리는 대한민국이란 조국이외에. 또 다른 조국이 존재하는 지구상에 유일한 민족이다.  60년간 반목과 대립으로 정체된 남북 분단의 현장에서 국민 대다수가 분단이후에 태어난 우리 세대는. 현실적으로 상대방을 멸시하며 대립의 각을 극도로 몰아가는 교육과 체제 속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상실해 온 것이 현실이다.

  21세기는 이념의 해체 속에서 다민족 연방 국가는 해체되어가고 있고.  하나의 단일민족 다국가는 신민족주의 통일의 대세 속에서 한반도를 제외한 모든 국가들이 통일의 장을 마련하였다.

  21세기 ‘한반도 통일은 요원한가란’ 명제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만.  6-15 남북정상회담이후 한국정부의  햇빛정책과 북조선 김정일 정권의 개방화 정책에 따라. 정치적 이념의 대립을 빼곤 경제 사회 관광 과학 문화 스포츠 등 모든 방면에서  급진적인 민족 공동체적 밀월 관계로 들어서고 있다.

  나는, 어느덧 분단의 질곡 속에서 내 나이만큼 가졌던 매우 편향된 이념 교육과.  내가 개인적으로 설정해 놓은 경계 속에서 벗어나 또 다른 조국에 대해 현실과 진실을 얻고 싶었다. 그들의 사고와 냄새를 맡으려 바다 건너 조-중 국경도시인, 단동을 자주 가 본다. 단동 심양만큼 북조선 동포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곳도 그리 흔치 않은 곳 중에 하나이다.

  단동의 현장에는 한국 북조선 중국 그리고 동포인 조선족까지 4가지 유형의 인간 군상들이 있다. 관광객들을 빼곤 한조중 삼각무역을 하는 상인들이 집합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여기서는 가식적 이념은 거의 무시되며 경제 논리만이 판을 치고 있는 곳이다.

돈만이 이들의 공통적인 대화의 도구이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남북의 통일된 미래의 경제 논리도 조금이나마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압록강 단동에서 두만강 도문까지 나와 또 다른 내 조국 북조선. 그리고 제국주의 열강들과 이념의 강권 앞에 무참히도 짋밟힌 민족의 한과 정체성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싶었다. 또한 고정된 이념적 사고를 해체 하고 싶은 개인적 사고로 “중국 내 북조선을 찾아서”란 명제를 가지고 여정에 올랐었다.

  지금 써내려 가는 글은, 여정의 일부분 이었던 압록강 편을 적어 본 것이다. 글은 단순한 기행문 형식과  단동과 압록강에서 북조선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중점을 두었다.


(가)인천에서 단동까지...


   단동으로 가는 교통편은 인천공항을 통해 심양을 거쳐 들어가는 항공편과 인천 제1국제여객터미널에서 일주일에 월, 수, 금. 3회 출발하는 동방명주호를 통해  단동(동강)으로  직접 갈 수 있다.


(1)비자문제

  중국 입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여권이외에 비자문제가 있다.  중국 본토에서 현지인의 한국으로 입국하려는 위조여권과 위조비자가 비일비재하여 한국여권과 방문비자를 상세히 챙겨 보는 경우가 있다.

중국여행시 개인적 방문이라면 비자는 꼼꼼히 챙겨 보아야 할 사안이다.

단동 입국시 심양을 통해 방문하는 경우에는 현지 공항비자가 있고 여객선을 통해 단동으로 직접 들어가는 경우에는 현지 선상비자가 있어 급한 용무로 중국에 들어갈 일이 있으면 여권하나만 챙겨들고 바로 중국으로 입국할 수 있다. 한국에서 중국 입국이 가장 편리한 코스다. 위의 비자들은 방문과 관광으로 분류되어 비자 용도는 F비자로 분류된다. 체류기간은30일이다.

중국현지에서 공항비자와 선상비자에 필요한 준비물들....


  먼저 공항비자와 선상비자를 받기에 필요한 준비물은 여권용 사진 1매와 미화20$이다

  두 비자 모두 신청순서는 비슷하다.  ticketing 할 때 항공사 발권 담당자가 여권과 함께 비자 유무를 체크한다. 먼저 현지비자를 신청한다고 밝혀두는 것도 진행상 착오 없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선상비자는 선표에 선상비자 신청이라 선명히 기록되어 있어 출국 시에도 제안 없이 바로 여객선에 오른다.

  반면 공항비자는  선상 ticketing과 비슷하게 진행되는데 다른 점은 현지비자 확인서를 발급한다. 출국 수속시 현지비자 확인서를 반납해야 된다.

  중국에 도착하면 선내나 기내에서 비자양식에 신상명세를 기록하고 현지에서 비자발급비와 사진을 제출하면 바로 30일짜리 관광비자가 발급된다.

현지에는 조선족동포 직원 등이 도우미로 활동하고 있어 발급절차의 어려움은 없다.

해외여행시 여권용 사진을 가지고 가는 것은 기본이다. 혹시나 사진을 잊고 가셨다면 현지에서 즉석 폴로라이드 사진을 제공하고 있어서 당황할 필요는 없다. 사진 값이 비싸다는 건 염두 해 둬야 한다.


(2)비행기로 통한 심양 입국 -> 단동

  흔히 인천 영종도공항을 통해 출국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에 심양공항 도착 이후 교통편에 중점을 두어 정보를 취합해 보겠다.

  공항에서 심양의 시내까지 택시로 약 30분 정도 걸리는 먼 거리이다. 공항에서 서탑까지 택시요금은 인민폐로 100원 정도 든다. 심양에서 한국을 오가는 비행기중 가장 저렴한 노선은 아침 8시반에 청주로 출국하는 비행기로 편도 요금은 인민폐로 1600원(한화 210000원)이다. 청주행 항공편은 서탑 국제여행사 앞에서 새벽 5시반에 리무진 버스가 있고. 청주에서는 무료로 서울까지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심양은 여진족 후금의 수도이다. 후금 누루하치가 명나라를 멸하고  청나라를 창건한 후 심양은 중국의 고도가 되었다.

청나라 초기 유물들과 고궁들이 유적으로 남아있지만 크게 관광지로 어필할 수 있는 상품이 풍부한 곳은 아니다.  한국인 거리 서탑이 유명하지만. 주로 숙박시설과 민박집, 유흥업소와 

식당가가 많이 있다.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이 있기 때문에 의사 소통에는 어려움이 없다.

  심양은 4~5개의 북조선식당이 있는데 주로 서탑에 몰려있다, 평양관과 동묘향산 식당이 유명하다.  저녁 7시에 식당을 방문하면 30분 동안 행해지는 북조선 식당 여성복무원들의 공연을 볼 수 있다.

  심양에서 단동까지 거리는 4시간 정도 걸린다. 중국에서는 워낙에 기차 편이 발달해 있지만, 심양-단동 간 노선은 한국인 이용객들이 많아 고속버스도 화장실이 갖춰진 고급 리무진버스로 편성되어 있다. 한국인들이 이용하기가 용이하다.

  중국은 장거리 버스가 일찍 끊긴다.  야간에는 기차를 이용 하거나 사설 택시로 운영되는 자가용택시를 이용할 경우 1인당(인민폐 100원=원화13000원)을 받고 있다. 가능한 택시는 긴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차를 이용하는 신변 안전에 유익하다.

심양-단동 간 기차(인민폐 27원=원화 3500원) 고속버스(인민폐65원=원화 8500원)

심양-단동의 숙소는 아래 사이트로 들어가면 상세히 상황에 따라 편안하게 호텔과 민박집을 예약할 수 있다.


(3)여객선을  타고 단동으로 입국

 중국을 오고 가는 여객선은 인천항과 평택항 두 곳이 있다, 특히 인천에 집중되어 있다. 인천은 넘쳐나는 국제여객선으로 인해 제1, 제2의 두 곳의 국제여객터미널을 운영하고 있다.

단동행 동방명주호는 제1국제여객터미널로 찾아가면 된다.

  서울에서 국제여객터미널까지 찾아 가시는 방법 중 제일 편한 방법이, 서울역 광장에서 염천교 방면으로 조금 걷다 보면 파출소 앞에서 인천으로 가는 삼화여객이 있다. 연안부두행 버스를 타시면 1시간 20분 정도 걸려 연안부두 종점에서 하차 하면 옆에 국제여객터미널이 눈에 들어온다. 단점은 1시간에 한대만이 운행된다는 것이다. 여차하면 놓치기 쉬운 버스 중에 하나이다. 요금은 교통카드 이용시 2000원, 현금 승차시는 2500원이다.

전철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제물포역에서 하차하셔서 33번 인천 시내버스(900원)나 택시(6000원내)를 타시고 연안부두 옆 제1국제여객터미널로 가자고 하면 편안히 손님을 모신다.

주의할 점은 반드시 연안부두 옆 국제여객터미널을 밝혀야 한다. 종종 제2국제여객터미널로

손님들을 모시고 가는 경우가 있다.

남성분들이라면 탑승 전 약간의 술안주를 장만하시는 것을 권하고 싶다. 긴 여정의 지루함으로 인해 옆 손님들과 담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항상 모자란 것이 술이 아니고 안주이기 때문이다. 선상에서 파는 안주 맛이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고 비싼 편이다.

  배는 오후 5시에 출항하기 때문에 최소한 3시까지 여객터미널에 가셔서 출국 수속을 마치는 것이 초행길에 착오가 없을 것이다.

  인천과 단동을 오고가는 배는 동방명주호다. 한국과 중국을 오고 가는 국제여객선중 가장 붐비는 노선중 하나이다.  승객 중 40프로 가까이는 보따리상인들이 차지하고 있고  노후된 시설과 잠자리는 공동으로 이용하는 다다미방이어서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분들께는 그리 권할만한 교통편은 아니다.

  또한  선내 써비스도 한중 노선 중 가장 질이 떨어지는 노선이라 불편한 점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동행하는 일원이 4명선 정도이면 4인실 전용 디럭스실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에 하나이다. 혼자서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를 즐기려는 손님은 닭장 같이 생긴 공동 침대실도 있어 미리 탑승 전 예약하는 것도 나름대로 좋은 방법일 것이다.

비싼 1등실은 권하고 싶지 않다. 정 불편하시면 심양 비행기 편을 이용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나는 왕복 교통편 중에 하나는 꼭 배를 이용 할 것이다. 초행이거나 비행기만 주로 이용하신 분들이라면 한번 정도는 선편을 이용할 것을 강력히 권하고 싶다. 중국의 현실적 정보를 보따리 상인들과 일반승객, 조선족 동포들에게서 긴 시간 동안 상세히 들으면, 나름대로의 여정의 맛도 듬뿍 맛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동방명주호를 타면서 느끼는 하나의 즐거움은 아침 7시에 기상해서 선상에서 바라보는  북조선 해안의 모습은 언제 봐도 잊을 수 없고 항상 가슴이 뭉클해 져 오기 때문이다.

동방명주호는 왕복 이용에도 할인 혜택이 없다. 왕복 배편을 끊는 것 보다, 편도(12만원)로 끊고 심양에서 청주행 할인 편도 비행기(약 20만원)를 이용해 나오는 것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여객선이 입항하는 곳은  단동시 동항(東港 동강)으로 단동 시내와는 택시로 30분 정도 가야 한다.

터미널 대합실을 빠져나오면 민박집과 택시 호객꾼들이 나와 한국어로 호객행위들을 한다.

단동시내 목적지까지 택시비는 혼자서 자동차로 이동할 경우 인민폐 50원(원화 6500원) 합승할 경우에는 1인당 인민폐 10~15원(원화2000원)이다.


단동페리 

TEL (02)713-5522 http://www.dandongferry.co.kr


제1국제여객터미널(연안부두)행 삼화고속직행버스

TEL (02)599-1003 http://www.samhwaexpress.com



(나)단동에 대해서...


(1)우리에게 단동이란 도시는....


  단동은 요동성 남동쪽에 위치한 중국 최대의 국경도시이다. 1965년까지는 안동으로 불렸다. 한국-중국 고대시대부터 조선후기까지 수많은 국경분쟁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항상 부침을 겪으며 군사요충지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잃어버린 우리의 국토이기도 하다.

단동의 생활풍습은 우리와 유사점이 많다. 현지에서 주민들 사이에 인기 있는 놀이 중에 하나가 제기차기이다.

  단동은 명나라 말 16세기 후반에 진장바오(鎭江堡 현재 호산장성)란 요새를 세워 만주족( 여진족,후금=청)의 침략을 방비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러나 단동은 변경의 국경이란 점에 사람들이 모여살기에는 부침이 컸던 전략적 지형이란 점에서, 도시로 발전할 요소들이 매우 미약했다. 도시로 형성된 것은 1860년 청나라 말기 산동성 주민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도시로서 성장의 틀을 마련했고, 일본의 조선 침략 후 대륙진출을 위한 교두보의 거점 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2002년 북조선의 신의주 특구 발표로 단동은 국제뉴스의 이슈로 떠올랐다.  한국의 투자가들과 중국의 자본가들이 모여들면서 부동산값이 폭등하기도 했다. 중국정부의 신의주 특구 개발 거부와 한국 투기자본으로 부동산시장의 부침이 있었지만. 중국 경제 성장과 함께 안정화로 접어들었다.

   특히 단동 시정부는 남북의 경의선 철도 연결이후 유라시아철도의 거점 물류 도시로서 성장하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남북의 경제협력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단동이 중국의 변방의 작은 도시라고 착각하기 쉬운데. 중국에서 시(市)란 의미는 단순한 도심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市 개념이  도(道)에 해당한다.  단동은 도시로서의 현대적인 시설기반은 미약하지만 북조선과 중국의 경계중 1/4에 걸친 거대한 도시이다. 인구는 약 250만명의 추산되고 있다.

  단동시 동항구에 신개발구가 세워져 한국인들이 모여들고 있고 단동의 새로운 시장체제의 거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신 압록강철교도 조-중간 합의하에 건설을 추진중이다. 


(2) 단동에서 느끼는 북조선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느낀 북조선은 한국 관료조직의 일방적 대북 정보와. 운동권의 편협된 대북 편애 시선이었다. 양극화로 느낄 수 밖에 없었던 북조선이란 도대체 내게 어떤 나라이며 그들 개인이 가지는 사고는 ‘무엇인가’란 의문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북조선 사람들은 은둔의 제국처럼 폐쇄적인 국민성향과 한국 매스컴에서 보여 진 일방적인 이념적 사고방식에 젖어 사는가?

  개인적으로 북쪽에 내가 갖는 환상과 현실 앞에 늘어나는 건 답답함과 궁금증이었다. 2002년 부산아시아드와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때 내려온 북측여성응원단 학생들을 보면서 일상의 통제 앞에 숨겨진. 내면의 순수와 활달함은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한 북측응원단의 모습 속에서도 내가 놀란 건 양극화된 이념의 평가처럼 북측여성응원단은 한순간 20세 소녀의 순진함이 내 눈을 가렸고, 한 순간 체제 전사로서의 행동은 당혹감을 안겼다.

  난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도 그들이 궁금해졌다. 2004년 금강산관광을 시작으로 북조선식당 탐방과, 2005년에는 조-중 국경지대를 돌아보았다.

 그 귀착점이 단동이었으며, 또 다른 사고의 출발점이 단동이 되었다.

  동북3성에 북조선 주민과 관리직 요원들이 1만명 내외로 상주 하고 있다고. 한국에서 추측하고 있다.  단동에서는 현재 2000명 정도가 정보수집 무역업 변경무역 유학 등 다방면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근래 들어 많이 소개되고 있는 북조선 식당도 단동에는 중국에서 가장 많은 8개나 된다. 전에는 옥류관으로 대표되던 식당들도 각자 독특한 메뉴와 서비스를 가지고 북조선 식당끼리도 경쟁적으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한때 북조선식당으로 대표되던 옥류관도 압록강개발과 함께 화려해진 압록강변의 북조선식당과 중국과 합작으로 운영되는 조-중식당의 공격적인 경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있다. 우리는 흔히 식당들이 북조선 정부의 일체적인 관리 하에 운영되는 걸로 알고 있으나 대외협력부, 체육성 등 정부산하 아래  여러개의 회사 소속으로 상호 경쟁적으로 식당이 운영되고 있다. 

  특히 2003년부터 북조선 식당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북조선 식당의 채산성이 많이 떨어졌다. 일부 여성복무원의 이탈 사건으로 일순간에 폐쇄되는 경우도 목격되고 있다.

단동의 북조선 식당 중에 압록강변의 송도원식당이 맛있다고 소문났고. 옥류관은 복고풍적인 맛을 즐길 수 있다. 옥류관은 북조선 인사들도 많이 이용하고 있어. 대북사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이용하기에 안성맞춤인 식당이다.

북조선 식당을 이용하면서 가장 중요시 볼 것은 우리가 잊고 살아온 북조선 음식의 입맛도 아니고 저녁 7시에 행해지는 공연도 아니다. 여성 복무원들의 활달함과 발랄함에 동포애의 교감을 얻는 것이다.

  단동에서는 북조선과 보따리무역을 하는 조선족과 변경무역을 위해 나온 북조선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한 예로 해금강이란 사우나에서 발 맛사지를 받는데 어디선가 낯선 한국말이 들려왔다. 자세히 들어보니 북조선 동포들이었다. 주변에 한국말을 하는 북조선인들이 대다수인 반면 유일하게 나만 한국인이었다. 그들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자니. 변경무역을 통한 수금과 거래처에 대한 평가 등 본격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선행하고 하고 있었다.

  단동에서 분단이란 용어는 없다. 개인적 목적 하에 한-조-중 3국의 외화벌이가 성행하고 있고 여기서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논리만이 존재한다. 단동은 이미 한국의 자본주의와 북조선의 개방주의 사고와 이기주의가 맞물려 돌아가는 곳이다.

이제 단동은 남북의 사람들이 자기 이윤을 담보로 상호 의존적이며 적의 없이 협조하고 살아가는 민족의 집합체이다..


(3) 21세기 미래의 동반자 통일한반도와 단동

 

  6-15남북 정상회담이후 남북의 중점적인 사안은 개성공단 활성화와 남북철도의 연결이다. 2005년 경의선 철도의 복구가 상징적으로 완성되었고 현재는 개성까지 지상교통의 직접적인 왕래가  형성되고 있다.  북조선측의 열악한 전기사정으로 균일한 제품 생산에 어려움 겪고 있는 와중에 개성공단의 활성화와 남측의 송전으로 북조선 경제가 어느 정도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 측은 특히 경의선을 중심으로 유라시아 철도 계획에 많은 우려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러시아도 원산-청진-나진-블라딕보스톡으로 이어지는 경원선 복구에 많은 관심과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 중국의 이에 대한 견제도 상당하다. 러시아측은 노후된 경원선의 철로로 고심하고 있다. 시속 20km 이상 속도를 낼 수 없어 철로를 정상화 하는데는, 24억$ 이상의 재원을 확보하고 투입해야 한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도 러시아는 미래 경제의 이윤을 획득하고자 경원선의 유라시아 철도연결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문제는 한-조-중-러 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까지도 유라시아 철도의 중요성과 러시아 교역의 부동항을 확보하고자 한국에는 한일해저 터널을 제안했고. 북조선에는 나주-선봉지구 조차권을 북조선에 제의한 바 있다.

  중국은 이에 대한 견제로 강력한 대북 군사-경제원조와  2005년 중국 후진타오 주석의 방북에 맞춰 나진-선봉지구 개발권을 얻어냈다.

  중국은 1국2체제건 통일한반도 이후의 국경분쟁에 많은 노파심을 안고 있다. 특히 간도문제와 백두산분할 문제로 대두될 통일한반도와의 대립각에 상당한 경계를 보내는 건 사실이다. 조선연변 자치주 해체와 동북아 공정 등에서 보듯이 21세기 이후에 일어날 한반도와의 분쟁에서 사안을 선점하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일 것이다.

  중국은 그릇된 역사의 왜곡을 통해서라도 강력한 중화주의 속에 내재된 민족적 분파성과 한국-미국-일본으로 이어지는 대 중국 봉쇄의 압력 속에서 통일한반도와의 분쟁적 요소를 강제적으로 제압하려는 것이 그들의 의도이다.

  4년전 신의주특구 개발에 난색을 표했던 중국이 돌연히 유라시아 철도에 관심을 가지고 뛰어드는 건 경제적 이윤 효과가 너무나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단동의 조중우의선으로 대변되는 조-중간에 현재 물동량에도 교각의 노후 피로강도가 심해져 우려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은 수년 후 유라시아철도가  현실화 될 경우 일어날 물동량과 조중우의선 안전에 대비책을 제시했다.

  중국 단동시 발전개혁위원회 우건동(于建東 위젠둥)은 2005년 6월16일 단둥 중련호텔에 서 열린 제1회 남북물류포럼에서 조중우의교 남쪽에 신압록강대교를 만들기 위해 중국 중앙정부와 북조선측간에  사전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위치는 단동시 동항(東港 동강)과 안민(安民)사이이고 북조선 쪽에서는 황금평에 가까운 위치로 보고있다. 


(4) 단동 현지에서 바라본 신의주특구의 미래와 한계


   2006년1월20일 서울신문에 아주 각별한 기사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 이후에는 언제나 북한에서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1월27일자 시사저널은  “신의주를 중국에 넘겨주었는가”란 충격적인  머리 기사이다.

2년만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에 주변국의 관심이 증폭되었다. 위의  자극적인 문구처럼 방문동기에 대해 많은 의구심과 관심이 쏟아지는 가운데 방문결과에 대한 소식들이 하나 둘씩 들려오고 있다.   

  결국 방문의 화두는 새로운 신의주특구였다.

4년전 신의주특구 개발과정에서 조-중간에 상당한 의식의 차이를 보였다고 한다.

북조선은 자주적인 상해식 개발을 원했고 중국은 심천과 같이 위탁 개발을 주장했다고 한다. 신의주 양빈장관 구속사건 이전에 신의주 특구 개발에 대한 중국의 견제가 상당 했던 것 같다.

  이번 신의주특구의 중국 위탁개발로 결론지어지는 현시점에 작년 후진타오주석의 행보와 일맥상통 하는 경과를 주의 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1) 신의주특구 북조선의 독자개발에서 중국 중심의 위탁개발

(2) 단동-신의주간에 신압록강대교 건설 추진

(3) 나진-선봉지구 중국에 개발권 부여

(4) 북조선 광산 채굴권에  대한 중국회사들의 개발권 계약

(5) 서해안 대륙풍 유전 공동 개발

(6) 중국측 주도의 경의선 복선화

(7) 중국 민간업체들의 전방위적인 북조선 투자(운수업 백화점 등)

  위의 사례들을 보면 광산 채굴권이외에는 단동과 신의주를 중심으로 조-중간에 교류증대가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 2005년 10월 후진타오 방북을 전후로 하여 급속히 진행된 상황을 분석해 보면 양국 간에 사전 교감이 오랜 시간에 걸쳐 있었던 것 같다

  시사저널은 1년 전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 주도하에 북조선 경제를 개방으로 이끌어 가는 여러 정황들이 포착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 왜 4년 만에 중국은 신의주특구 견제에서 개발 쪽으로 급선회하는지  복귀를 해 보았다.  먼저 핵심적으로 중국은 북조선의 자주적인 신의주특구 개발에 중국은 신뢰를 갖지 못했던 것 같았다.

  (a) 거대 개발 자본에 한국과 일본, 구미의 서방 쪽 투기 자본이 선점되어 단동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대 중국 공략작업에 경계의식이 대단히 컸다는 것이다.

  (b) 북조선 회사들은 실질적으로 상품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해, 신의주 특구 개발에 있어 북조선의 자주적인 개발은 시간적으로 요원했다는 점이다

  (c) 신의주 특구 개발에 핵심적인 사업의 하나가 카지노였고 신의주특구에 제일 상대인 중국정부는 내부적인 반발감이 있었을 것이다

  (d) 동북아 공정과 연변 자치주 해체 등 동북3성에서도 유독히 민족적 자긍심이 강한 조선족 동포에 대해 중국정부는 와해 공작을 계획적으로 진행시켜왔다. 이런 와중에 신의주특구 개발에 부합된 한국의 투기 자본 등이 신의주를 중심으로 단동에 유입돼  조선족 촌이 형성되는 것에 상당한 알레르기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e) 신의주특구 양빈장관의 내정 문제였는데, 중국과 교감 없이 북조선 임의로 선임했지만, 이전부터 양빈장관은 중국내에서 부동산 불법 유용과 탈세협의로 내사를 받고 있었다. 중국정부는 양빈이 정치-법적인 탈출구로 북조선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등에 업고 신의주특구 개발 프로젝트에 동참하지 않아나 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정부는 지속적으로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와 북조선을 중심으로 한 경제블록 형성 과정에 한국과 일본 러시아를 상대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세적 입장에서 신의주를 동북3성과 연결 짓는 특구 개발에 전면으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중국의 외교 경제 측면에서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상호 보완적 측면이 증대되고 있고, 교역 측면에서도 급팽창 하고 있다. 남북 정권은 통일의 당위성에 의존한 유대 강화로 급속히 친밀해 지고 있다, 한반도의 경제 불록화로 북조선의 지리적 위치도 확대되고 있는 과정이다.  이제 한-중 양국은 북조선을 경제적 파트너로 삼으려는 시기가 앞당겨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중국의 경제적 자신감이다 . 매년 500억$ 이상의 해외 자본의 투자가 이어지고 있고, 홍콩의 외환보유고를 합칠 경우 1000억$이 넘어서는 세계최고의 외환 보유국이 되었다. 신의주특구와 단동을 중심으로 한반도 경제블록화에 100억$ 정도의 자금도 확보해 두었다는 소문과 화교의 움직임도 활발하다고 한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동북아정공의 완성 등 한반도 경제블록화에 대응할 수 있는 자신감이 충만한 것 같다

  가장 중요한 점은 미국의 대 북조선 압박 정책이 심화되는 과정에 북조선은 내적으로 경제적 빈곤, 개방화 정책에 따른 권력분쟁,  김정일 국방위원장 차기 후계구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외적으로는 대중국 견제가 주목적인 미국의 대 북조선 전방위적인 압박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중국은 북조선의 합법적 경제적 비상구 역할을 조속히 담당하려고 한다. 특히 통일 한반도 이후에 북쪽 지방의 광범위한 경제 선점을 통해 한국 일본의 자본을 미리 차단하고 한반도 경제블록의 선두자로서의 자리매김하려는 시점이 다가왔다는 점이다.  

  북조선은 차기 한국정권에 보수파가 들어설 경우 대북관계 유동성 문제에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 현재 북조선 정권은 대외적으로 의지할 힘과 파트너십을 가진 나라로 중국만이 유일하다는 기로에 선 것이다.

  단동은 북조선과 중국을 잇는 대동맥이고 개성공단 평양 신의주특구로 이어지는 동북아물류의 허브로 강력한 브레인을 만들어 갈 도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강력한 압박 속에서 단동과 신의주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블록의 실효성이 시기적으로 아직도 요원하다는 점이다. 단순한 경제적 논리만이 아닌 정치-외교적 논리가 지배할 확률이 지극히 높기 때문이다.


(5) 북조선과 관련된 단동의 추천 여행지


a. 단동역


  북조선과 단동이 연관된 모든 요소는 기차와 압록강변으로 대변된다.

왜 중간 크기의 기차역인 단동역이 관광지가 될 수 있을까란 물음이 있을 것이다.

중국 최대의 변방 국경도시인 단동. 북조선과 가장 많은 교통편이 움직이는 단동역은 한국사람들에게는 각별한 곳 일 수밖에 없다.

  단동역 앞 광장에  모택동의 거대한 동상이 서있다. 언뜻 봐도 역과 비대칭인 동상의 위치가 확연히 들어온다. 동상의 위치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후에 세워진 단동역사가 바뀌어서 동상과 역 정문이 비대칭이 되었다고 한다(헬로우 중국에서).

  중국 종착역의 끝 지점인 단동 역은 플랫폼을 들어가는데 별도의 두개의 개찰구 출입문이 있다. 하나는 역 중앙통로로 들어가면 중국 내로 움직이는 국내 기차선 개찰구와 다른 하나는 본관 사무실로 들어가는 국제선 개찰구가 있다. 입구 중앙에는 조선어로 열차 이용 방법과 주의할 점이 쓰여 진 푯말이 걸려있다.

  단동 역에서 근무하는 친구 도움으로 역내 북조선행 플랫폼에서 북조선 사람들 사진을 무단으로 찍다, 북조선 동포에게 단단히 혼난 적이 있다.

  단동역은 국제역사답게, 3개국(한국어, 중국어, 영어) 안내 방송이 나온다. 부 역장격인 왕총웨이란 분이 착안하였다고  한다. 한국어 방송은 코이카에서 요동대학 한국어강사로 파견 나왔던 박선생님이란 여자 분이 녹음하셨다. 이국 단동역에서 한국어 안내 방송을 듣는 것은 색다르게 느껴진다. 여러분도 단동역을 이용하실 때 방송을 들으면 느낌이 색다를 것이다.

  방송을 고안하고 녹음하셨던 두 분은 평양행 안내 방송도 같이 녹음하셨는데.  방송 전까지 북조선에서 불만이 나오지 않을까  고민하였다고 한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유유히 방송이 틀어지는 걸 보면, 북조선분들도 남한어투의 발음이 익숙해졌나 보다.

  평양행 기차는 화 목 토 오전 9시에 한번  단동 역에서 출발한다. 평양출발 단동행 기차는 월 수 금 오후에 지나간다.



b. 중국해관


   단동역에서 압록강철교 쪽으로 10분쯤 걸어가다 보면 20층 높이의 중국해관이 보인다. 한국으로 따지면 세관이란 개념이다. 압로강철교 앞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북조선 쪽으로 들어가는 물품에 대해 총괄적으로 통관 통제하는 조-중 교역의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본관 뒤쪽은 정문 쪽으로 물품에 대해 검수를 하는 넓은 공간과 창고들이 있다.

정문 앞에는 북조선과 보따리무역을 하는 소상인들이 모여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아침 일찍 나와야만  목격할 수 있다. 근래 들어 한국매스컴에 많이 소개되었는지 이런 보따리상들의 모습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없었다. 내 경험으론 여름 보단 겨울에 많이 목격된다.

  용천 폭발사건으로 구호물품이 매우 붐볐던 이곳은 용천이 상흔을 이기고 안정감을 찾은 현재  구호물품 보단 교역물동량이 눈에 띈다. 

  북조선의 잡곡 수확시기와 맞춰 본다면. 북조선 화물차들의 이동을 쉽게 볼 수 있고 용기와 운만 따른다면. 북조선 운전사들과 대화도 가능하다.  북조선으로 들어가는 주된 물건은 중고 전자제품과. 유리, 플라스틱 용기류의 생활용품들이라고 한다. 반면 중국으로 반입되는 품목은 인삼 잡곡 석탄등 1차 상품들과 한국으로 반입이 많이 되고 있는 북조선 한방의학품인 금당 등 예방 의학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c. 압록강철교


  압록강에는 조-중을 잇는 여러개의 다리들이 있다. 그러나 현재 다리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은 압록강 철교뿐이다. 압록강철교는 이란성 쌍둥이와 같이 두 개의 다리가 있다. 하나는 1909년부터  2년간의 공사 끝에 1911년에 준공된 현재의 압록강 단교이다.

  총연장은 944km이며, 위치는 신의주와 단동을 직접 연결하고 있으며. 압록강하구에서 45킬로 미터 떨어져 있다.  개폐식철교였으나 압록강변의 빠른 유속 등에 대비. 다리 보호착원에서 1934년 11월에 회전을 멈췄다.

  근세 한반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단교는 끊어진 이후 생명을 다하고도, 한 많은 우리 민족의 질곡의 세월만큼 역사의 상흔으로 현재 남아있다.

  1905년 을사늑약과 함께 잉태된 단교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적 건축물로써 일본의 야욕과 맞물린 한 서린 근세 한민족의 역사를 지닌 다리이다.  일제시대에 만주침공을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대동아전쟁 때는 일본 군수물자 수송의 핵심적 동맥 역할을 했다. 해방이후 한국전쟁 때는 중국의 북조선 원조 물자 수송과 중국군의 이동을 막고자 미군의 주된 공습 목표물로 북조선쪽 다리가 완전히 반파된 체 다리로써 일생을 마감하였다.

  현재까지 단교가 보전되어 있는 것은 중국군의 한국전쟁 참전 기념과 냉전 시기때 사회주의 이념을 고취시키고자 중국정부의 항미抗美 의식의 상징으로 항미원조관과 함께 단교가 보존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단교는 한 많은 세월만큼이나 사후에도 우리민족의 한 서린 역사를 각인시키고 또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못하게끔 이국에서 통일을 기원하며 조국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입장료는 인민폐 30원이다.

  

  현재 운행되고 있는 압록강철교는 1943년에 완성되었고 단교로부터 상류쪽으로 75m 지점에 세워졌다. 다리 폭은 1개의 철로와 1개의 화물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는 국제 철교로써 조중의우의선으로 불리며 조-중 교역의 대동맥 역할을 하고 있다.  용천 폭발사고 이후 원조물자가 주로 운송된 곳으로 세계적 관심을 일으켰던 상징적인 곳으로 북조선 관문으로 여겨지고 있다.

  압록강철교는 대동아전쟁의 원활한 전시물자 수송과 만주일때의 식민지 수탈을 강화하고자 세워진 다리이다. 단교가 세워진 30년 후에 철교를 쌍둥이 다리로 다시 만든 걸로 보아 운송량이 급증하고 노화된 단교의 피로강도가 증가하여 단교의 보호 차원에서 만들어 진 것 같다. 다리 곳곳에 한국전쟁때 공습의 흔적인 기관총탄 자국이 아직도 다리 곳곳에 남아있다.

  현재 양국에서 공동으로 반씩 관리하고 있다. 북조선의 경제난으로 북조선쪽에서 맡아 관리하고 있는 철로는 정검 정비 부족으로 노후 피로강도가 극심하여 중국 측에서 많은 걱정  을 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도 북-중간에 물동량이 급증하고 있고. 남북의 유라시아 철도계획에 현실화됨에 따라

중국쪽에서 다리의 안전과 물동량의 원활한 처리를 위해 새로운 압록강 철교를 계획하고 있다.

  통행은 여객열차가 일요일을 제외한 주중에 편도(평양행 화 목 토, 북경행 월 수 금)로 한번만 운행되고. 화물기차는 수시로 운행되고 있다.  도로운송은 편도선인 관계로 한 시간씩 번갈아 가며 일방으로 통행된다. 가끔 북-중 두 나라간의 화물차가 다리에서 마주치는 정체 현상도 볼 수 있다.

  철교 밑에서 자국인에 한에 철교를 유료 관람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한국인 경우에는 중국인 보증이 있을 경우에 철교의 부분적인 관람이 허용된다.  만약 압록강철교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 된다면. 땅은 아니지만 북조선령의 북조선 신의주의 철로를 밟아 볼 수 있다.

  압록강철교의 풍경은 상징성과 함께 압록강 관람의 압권이다. 특히 중련호텔에서 신의주와 압록강철교를 배경으로 바라본 일출 관경은 백미다.

 호텔은 직접 체크인하는 것 보다. 여행사를 통행 방을 얻는 것이 비교적 저렴하다. 호텔은 아름다운 압록강변과 철교를 전망으로 가지고 있고 단동에서는 보기 드물게 4성급이며 겨울에도 항상 만원을 이룬다고 한다.    



d.압록강


  수컷오리의 머리처럼 녹색이라서 이름 붙여진 압록강鴨綠江.

  백두산을 발원으로 하는 한반도에서 제일 긴 강이다. 길이가 925.5km이며 중국과 국경선으로 맞대고 있는 국제하천이기도 하다. 하구 쪽에선 넓이가 5km에 이르기도 하지만. 북쪽으로 올라 갈 수로 강폭은 급격히 줄어들고 폭이 5m 내외인 곳도 있다.

  압록강에는 205개의 섬들이 있는데. 섬들에 대한 총 명칭은 하중도河中島라고 한다.

하중도는 강의 수량에 따라 대다수가 물에 잠기는데. 대략 40개 정도의 섬이 항상 수면위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1962년 조중변계조약으로 북한이 127개 중국이 78개의 하중도를 나눠 가졌다. 그러나 대개의 큰 섬은 북조선이 소유하고 있어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압록강은 북조선의 강으로 느껴진다.

  북조선과 중국의 경계는 압록강을 기준으로 하여 자국 쪽에 가까운 강변을 자국의 국경으로 삼고 압록강은 공유하는 중립지대로 삼았다. 그러나 압록강 중앙에 위치한 하중도는 조중변계조약에 설정한데로 양쪽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수로를 공유한다고 하여 모두 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압록강 하류는 대다수의 큰 섬이 북조선 소유라 배가 다닐 수 있는 수로水路도 거의 북조선이 점유하고 있다. 중국 배는 거의 북조선 수로를 무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점 때문에 위화도의 남쪽 내하(內河) 같이 일정 정도의 북조선 내하는 중국 쪽에서도 북조선 소유권으로 인정하고 있다

   압록강은 퇴적현상으로 인해 북조선의 섬들이 북조선 본토 보다는. 중국 본토와 함께 퇴적층이 형성되어 수로로 인한 자연적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이로 인해 전에는 탈북자 문제가 심각했고. 현재는 밀무역이 매우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e. 압록강유람선- 1,신의주


  단동을 여행할 때 한국 사람이 가장 먼저 짧은 시간에 필수적으로 관광하는 곳이 단동시내 압록강 유람선이다. 압록강 유람이기 보다는. 북조선 신의주와  주민들을 보고자 하는 것이 큰 주안점이다. 요즘은 한국사람 보다도 생활수준이 향상된 중국 사람들이 더 많이 이용하고 있다. 급격히 벌어진 북조선과 중국의 경제력의 차이만큼 북조선 주민의 궁핍한 생활상이 중국 인민들에게 조롱거리로 비치는 것에.  개인적으로 참을 수 없는 심적 아픔도 겪었다. 또한 강 건너편에서 바라 본 북조선 공장들의 굴뚝이 서 있는 걸 보면 애처러운 맘을 가눌 수 없었다.

  압록강 중심은 중립지대로 상호 인적교류나 배들이 자유로이 양쪽 강변을 이용하고 있지만. 북조선의 경제난으로 주로 중국 배들이 강변을 이용하여 북조선을 관광 상품으로 이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북조선 배들은 북조선 4대 명절을 기해 북조선 유람선과 놀이동산을 운영한다고 단동 현지 여행사 직원이 증언하고 있다.

  압록강 유람선은 인민폐 10원-30원 거래되고 있는데. 가격표에 적힌데로 지불하기 보다는 30프로 정도 깍아서 승선하는 것이 현지에서는 다반사이다.

  작은 쾌속보트가 가격적으로 비싸다.  스피드한 속도만 일시적으로 느낄 수 있지만. 진중하게 북조선을 탐방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큰 유람선을 이용해 천천히 압록강과 북조선을 탐방하는 것이 최적의 선택이다. 큰 배일 수록 배의 요동이 적어 사진을 편하게 찍을 수 있다.

  단동은 주로 심양과 동북3성으로 들어가는 입구로만 인식되어, 단순하게 압록강 유람만 마치고 이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압록강변을 탐방한다면 3일도 모자란 다. 특히 여름에 압록강변에는 북조선 주민들과 아이들이 강가에서 물장구치는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목격할 수 있다.

  

e. 압록강유람선- 2,위화도

  

  태평만댐 이하 압록강변을 탐방하기에 딱 알맞은 상품이 하나 있다. 단동시에서 주관하여 매일 아침 8시반에  출발하는 호산산성 선상유람투어가 있다. 압록강 하구를 아주 세밀히 볼 수 있는 최적의 상품이다. 

  상품 가격은 인민폐 150원으로 왕복 배편과 호산산성 입장료. 점심식사가 제공된다.

소요시간은 왕복 총 7시간 정도 소요되며. 안내원은 동승하나 중국어로만 정보가 제공된다.

압록강 평화공원강변-압록강단교-위화도-추유도-다지도-우적도-호산장성-조중변경일보하

매일 출발한다고 고지 되어있지만. 기본 15명 인원이 탑승해야 출발한다. 주로 관광객이 몰리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항시 탈수 있다.

인원이 약간 모자라면 추가요금을 내고 배를 움직일 수 있는 융통성도 있다.

단동금도여행사 0086-0415-233-6865~8

  배를 타고 압록강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압록강 철교 밑으로 여의도 보다 1.5배(12.3km2) 큰 압록강 하중도 최대의 섬 위화도가 보인다. 단동 압록강 강변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위화도이다.  중국에서는 위화도 북쪽 면만 볼 수 있다.  우리에게는 고려말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으로 조선 창건의 계기가 된 것으로 유명한  위화도는 경쟁력 있는 섬의 크기와 위치적 호조건을 가졌다, 생각보다 인적이 적은 느낌이 들었다. 압록강 충적토로 토질이 매우 비옥하다고 한다.

  아침에 단동 압록강변에서 바라보면, 위화도는 호반의 쉼터처럼 물안개에 젖어 수채화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섬이다.

  유람선을 타고 위화도를 지나  올라가다 보면. 대체로 북조선 영해 쪽을 이용하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압록강이 공유지대란 이유로, 우리는 중국의 유람선을 타고 있지만, 실제로는 북조선의 강변과 영해를  관망하는 여행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e. 압록강유람선- 3,압록강의 하중도....

 

위화도를 지나면 다지도 우적도를 스쳐지나간다. 우리가 흔히 달력에서 볼 수 있는 유럽의 정원 풍경과 별반 다른지 않은 전경은, 민족적 미와 어우러져 한편의 수채화를 우리 육안에 그려 넣는다. 중간 중간에 남녀노소 구분없이 다스한 맘으로 유람선을 맞아 손 인사를 하는 동포들을 보면서 난 삶의 여유를 느끼기도 하였다.

  하중도의 북한 주민들은 중국과의 밀무역과 압록강변의 비옥한 토질로 북조선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영유하고 있다고 한다.

  강변에는 우물정과 수영장등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흔적들이 곳곳에 보였다. 아직도 무리없이 사용되어지는 걸 보면 일본제국주의 시절의 토목기술 특히 압록강철교, 수풍댐을 보면서  압도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적으로 근 10년간 북조선  경제가 붕괴되어 압록강변에 비쳐진 북조선의 공장들과 건물들의 황폐함에 당혹감도 지울 수 없다. 배를 타고 올라가면서. 파괴된 건물의 모습은 솔직히 영화에서 보는 묵시록처럼 보였다.

  공장의 굴뚝은 가끔 피어오를 정도였고. 큰 건물은 관리 부족으로 파괴되었다. 작은 집들은 창문을 비닐로 대체하였다. 비닐을 말리는 북녘 아낙네 모습을 보면서는 난 눈물을 적시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 없이 펼쳐지는 압록강변의 수채화와 시골 농가에서 느낄 수 있는 정감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난 이 자리에 서 있었다는 결코 기뻐할 수도 없었지만 또한 후회하지는 않는다. 난 진정 나의 또 다른 조국의 인간적 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e. 호산장성

  

  단동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호산장성이다. 한-중의 역사적 충돌만큼 역사의 애환을 가지고 있는 단동에서 역사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특히 단동은 중국의 영토라고 결론짓기에 앞서 고대사에 한국의 국토였고 중세에는 몽고조, 거란족, 만주족(여진족)이 변경 거점 지역으로 충돌이 잦았던 도시이다.

  유유히 흐르는 압록강과 압록강 충적토가 이루어진 평야에 군계일학으로 쏟아 있는 곳이 호산장성이다. 위치는 압록강 하구에서 37km 단동 시가지 변경에서 북동쪽으로 4km 떨어져 있다. 높이는 145m이다.

  고구려시대에는 박작성터의 일부로도 알려졌다. 수-당의 고구려 침략에 전위에서 대항한 핵심적 역할을 했던 호산장성은 명나라 후기 만주족 후금의 세력이 거대해지자 진장바오(鎭江堡)란  요새를 세워 후금(청)을 견제하고자 했다. 청나라 초기까지 중요 군사요충지로서 조선과 거란족 등 북방민족의 침략을 대비했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흔히 중국에서는 만리장성의 동쪽 최동단기점이라 하여 중화주의에 기초 과대포장으로 만리장성의 일부로 보고 있다. 만리장성은 흔히 진나라 진시황제가 만들어 진 것으로 오해 하고 있으나 진나라 이전부터 북방의 민족의 침략을 두려워했던 중국 고대 정권이 마련한 성벽을 진나라 때에 이르러서야 만리장성의 일부 체계가 잡혔으며 명나라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다. 당시 동북3성은 이민족의 터전으로 인정하고 만리장성의 시작을 요녕성과 하북성의 경계인 진황도의 산해관으로 보았다

  송나라말기 동북지방은 요나라(거란족) 금나라(여진족=만주족) 원나라(몽고족) 등이 득세로 송은 남쪽으로 밀려가고 북경을 중심으로 한 지역은 북방민족 지배하에 들어간다. 이시기는 명나라를 제외하곤 근 600년간 중국 동북세력에 의해 중국 전역이 지배받았다.

  원을 멸망시킨 명나라 말기 만주족과 여진족의 세력이 비대해 지고 외침이 잦아지자  진장바오鎭江堡 장성을 세운다. 이것이 현재에는 호산장성으로 불리고 있다.

  중국정부는 중화주의 사상에 기초에 소수민족을 껴안고 동북3성의 주권을 확립하고자 동북아정공 등, 공산당 와해 이후 민족적 분할에 대비 사회 문화 역사를 왜곡하기 이르렀다

  호산장성을 만리장성의 동북단 기점이라고 하여 고대 중국 정권하에 지배받았던 곳으로 규정지으려고 하나 고구려 우물터와 유물 등이 출토되는 등 고구려 옛 성터인 박작성의 흔적은 만리장성의 허구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동북3성 곳곳의 출토되는 고구려 물증 앞에서 다급해진 중국정부는 고구려 발해를 자국의 역사를 편입하는 등 동북아정공의 전방위적 왜곡을 시작했고 현재는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호산장성을 관람을 마치고 출구 쪽으로 가면 박물관이 있다. 호산장성과 만리장성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역사왜곡의 현장이다.

    


f. 조중변경일보하


  호산장성 정상에서 바라보면 북조선의 우적도가 보인다. 압록강 충적토로 중국본토와 섬이 연결되어진 곳이다. 압록강의 하중도 섬과 연결된 곳은 황금평, 고루자, 우적도이다.

우적도를 바라보면 정말 이곳이 북조선 땅인지 중국 땅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중국쪽에 치우쳐 있다.

  방산대에서 보트를 타고 조금 올라가다 보면 개울(압록강)을 두고 북조선이 있다.  한쪽 다리만 뻗으면 북조선 우적도라고 하여 조중변경일보하로도 불린다.  건너편에 있는 북조선 마을을 중국 사람은 방산마을이라고 부른다. 북조선 주민과 군인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지만 그들의 궁핍한 모습과 생활은 이곳에서도 관광 상품이 되고 있는 것이 뼈아픈 현실이다. 

 

g. 태평만댐


  한국에 태평만과 댐에 관한 자세한 자료는 없다. 인터넷상에 올려진 자료는 아래와 같이 기술되어 있다.

   “단동시와 수풍댐 중간에 위치해 있고. 중국에서 축조한 댐으로 중국 측에서 관리한다. 이 땅은 북한측 영토이지만 중국에서 임대 사용하고 있다.  치외법권적인 지역이므로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북조선에 입국하지 않고 북조선 땅을 밟아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땅이다.”

  태평만댐은 태평만풍경구에 위치하고 있지만 진안구振安區에서 별도 관리되고 있다. 중국지도상에도 중국 영토로 그려져 있다.

  태평만댐은 다양한 종류의 유람선을 운영하고 있다. 태평만만 관람할 수 있는 유람선과 수풍댐까지 오가는 압록강변 유람선을 특별히 운행하고 있다. 태평만댐 풍경구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댐 입장료를 지불하여야 한다.  1인당 인민폐 30원 자동차는 10원을 별도로 할증하여 받고 있다.

  수풍댐까지 요금은 10인승 짜리 쾌속선은 인민폐로  800원  24인승은 1200원이다  30인 이상 탑승할 수 있는 대형 유람선은 기본 30명을 이용한도로 보고 1인당 30원을 받고있다.

태평만댐 연락처는 아래와 같고.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못할 경우 조선족 동포 직원이 직접 나서는 경우도 있다.

태평만댐 관리소 0086-0415-252-1489


 개인적으로 난 태평만댐에서 선상유람선을 이용하지 않고 더 북쪽으로 올라가 조선민속촌이란 마을에서 배를 임대하여 수풍댐까지 압록강변을 거슬러 올라갔다. 

  수풍호만큼 강변이 산으로 굽이치지는 않지만 물안개에 갇힌 압록강의 풍경은 절로 탄성이 나올 정도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물안개와 압록강 산하의 조화는 북조선 주민의 모습과 어울려 입으로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한 맛이 있다. 압록강 중심에서 바라보는 수풍댐의 모습은 장엄함 그자체이다. 유람선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수풍댐의 정경은 한편의 대서사적인 영화의 한 장면이다. 백번의 말보다 한번 직접 관람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h. 수풍댐  


  수풍댐은 단동에서 약 90km 떨어져 있다. 단동에서 택시로는 약 1시간. 태명만댐에서 유람선을 이용할 시는 약 2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소양감댐 건설 이전까지 동양 최대의 댐으로도 유명세를 단단히 치렀다. 강폭이 좁고 물길이 깊어 수력발전소로서는 최고의 지형조건과 경쟁력을 갖춘 댐이다. 길이 899.5m 낙차 106.4m. 용적 330만m3 유효저수량 76억톤의 중력식 콘크리트댐 이다. 발전용량은 70만kVA이지만 장비개선에 맞춰 늘어나고 있다.

  수풍댐은 근세 우리의 역사와 함께 파란만장한 역사의 상혼을 가지고 태생하였다.

1937년 일본 식민치하에서 건설된 발전소로 당시 한반도 전역에 전기를 송출하고도 남았다. 일본 대동아전쟁의 전력 공급 창이기도 했던 수풍댐은 해방이후에도 한국전쟁당시 주 폭격 대상으로 전체 설비의 70프로를 상실하였다.  북조선과 중국은 1960년 조중압록강수력발전회사를 설립, 발전소를 공동으로 복구하여 전력비를 반씩 나눠 가지고 있다.

  단동시내에서 수풍댐까지는 왕복 2시간 정도 소요된다. 택시를 대절할 경우 인민폐 200원~250원 정도에 대절할 수 있다. 육상으로 이동한다면 겨울에 움직이는 것도 하나의 낭만을 가질 수 있다. 한겨울 눈으로 뒤 덮힌 압록강변을 질주하다 보면 설산과 설평원 그리고 꽁꽁 얼어붙은 압록강 위에서 얼음 제치는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유람선은 여름에만 주로 운영된다. 난 장마철에 맞춰 압록강댐을 방문하였는데 마침 수문을 개방하여 수풍댐의 장엄함을 느끼건 행운이었다. 주민들까지 몰려 나와 수풍댐의 방류를

즐겼을 정도였다.

  수문 방류로 안전문제 상 댐 상류의 모든 유람선은 운항 정지되었고. 도로쪽 통행도 경찰이 아닌 예비군에 의해 통제 되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지닌 카메라가 덩치가 크고 촬영금지 구역이라 그런지 예비군은 우리 일행을 30분간 찾아 헤매었고 우리 일행을 발견하고는 강한 경고와 촬영금지 및 통행까지 강력히 막았다. 

  지난 겨울에는 촬영 및 통제가 없었던 걸로 보아 수문 방류시 안정상의 문제로 통제가 있었던 것 같다.

  난 아쉽게도 수풍호 유람을 놓쳤지만 여러분은 철저한 계획으로 아름다운 수풍호 유람을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댐 상류 수풍호를 유람하려면 수풍댐 관리소 연락처는 아래와 같다.

수풍댐관리소 0086-0415-562-4004   0086-0415-562-4203



(다)한국으로 돌아가면서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급격히 가까워진 남북은 군사분계선을 경계를 두고  현재도 금강산관광. 개성공업단지. 아리랑 평양관광과 앞으로 이어질 백두산관광 등 왕성한 왕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중국 쪽에서는 남북의 만남이 상호 견제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념의 대립과 정보전이 아닌 상업적  잇속 수단 속에 상호 이해와 견제가 자연스럽게 공연되고 있는 것이다.

  북조선의 2002년 7월21일 경제개선관리조치 이후 중국 현지에서 급격히 늘어난 북한주민들의 외화벌이 일환으로 단동을 비롯한 동북3성을 중심으로 전방위적으로 보따리무역에서 정식 무역업까지 활동 폭을 넓히고 있어 한국 사람들과 잦은 교류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 “돈 버는 것이 애국이란” 슬로건 아래   개방주의 정책을 독전하고 있다. 또한 2004년 10월 이후 김일성 뺏지를 떼는 등 우상화 정책을 철회하고 보다 현실적인 대외접근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 현지에서 대북사업의 어려움은 북조선의 현지 생산품이 제한적이고 북조선측 인사들이 현금 가동능력이 없어 실질적 교역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내재되어 있다. 특히 조선족 분들은 북조선 정부와 회사에 대해 무원칙적인 일 처리에 대해서 상당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사회주의 선행 지표의 목표 달성의 미명아래 샘플 제품에서 인수 제품으로 이어지는 신용적 거래의 미흡한 점은 북조선은 아직도 많은 이해와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1세기 통일한반도란 의제 보다는 상호 동반적인 협력자로서 남북관계는 자리매김 할 것 같다. 아직도 북조선의 개방화 정책에 따른 권력암투와 미국의 무원칙적인 대북견제. 한국내  보수주의자들의 반북성향 등 많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지만. 일반 국민들과 중국 현지에서 느낀 것은 한-조-미-중 위정자들의 책동 보다는 한국과 북조선 양민들의 가슴이 더 뜨겁고 간절한 통일적 열망과 경제적 동반자로서 상호 인정해 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006년 2월 단군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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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07.28 14:46

    첫댓글 결국 이글에서 한국내 좌파정권과 그지지자들(운동권.민노총+호남)의 목적이 한국주도의 통일이 아니며 김정일정권과 공존하는 ..즉 한반도의 영구분단이라는 결론이 나오죠 (물론 표면적으로는 30~40년후 점진적 통일이라고 내세움),, 북한이 핵보유를 하는것까지도 감내하고. 중국의 경제식민지가 되는것까지도 감내하고. 북한주민 수백만이 아사하는것까지도 감내하면서 한반도 영구분단화를 추진하겠다..이게 현정권의 대북정책입니다...도대체 그들이 내세우는 민족공조라는 단어에서..민족이란 누굴 가리키는것일까요? 아마도 그들의 잘못된 대북정책으로 인해 굶어죽은 수백만 북한주민들은 아닐겁니다..

  • 작성자 06.07.28 22:13

    제가 이 글을 쓴 것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적은 것이고 뭐교수님의 청탁글을 받아 작성하게 된 것입니다.. 이글이 편향적인 글입니까 오히려 북한에 비판적 성향이 크다고 전해들었는데요...그리고 점진적 통일...북한과 당장 통일 할까요? 한국은 현재 통일할 자금도 없고 시민들의 통일에 대한 공존 의식도 없습니다...현 상황에서 북한이 만약 붕괴된다면 중국에 먹히지 않는게 다행이죠...한국의 전 가정에서 일괄적으로 30만원씩 5년간 통일 세금을 지불한다면 경제적 흡수 통일은 가능할 수도 있겠죠....

  • 06.07.28 19:34

    에혀.. 사람 호도시킬려고 이상한 소리 하시네요. 현대가 금강산 개발권 및 개성전체와 주요 단지의 개발권을 따낸것을 모르시나요? 그 현대가 투자를 1조나 부었씁니다. 그리고 금강산과 개성에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래서 돌아온것은? 툭하면 현대를 사업자에서 제외할려고 롯데와 할려다가, 롯데도 안한다, 삼성도 안한다.. 해서 현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 06.07.28 19:36

    북한에 투자할려고 해도 이렇듯 개판5분전의 약속이행을 하는데 누가 투자를 하겠습니까? 그리고 현대이외에 정부에서 보증스고 북한에 투자하는 각종 회사들에게 큰 보증을 해주었습니다. 또한 더 유도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북한의 뻘짓 때문에 투자가 어렵습니다.

  • 06.07.28 19:37

    현재 북한의 주요 공업단지 중에서 "중국이 직접적으로 투자한 곳은 어디이며, 얼마를 투자했는가"에 대해 확실히 말하실수 있겠습니까? 거 잘나가시다가.. ㅡ.ㅡ;; 왜 정치얘기로 빠지시는지 모르겠습니다.

  • 작성자 06.07.28 21:58

    북한을 말할때 정치적인 제고 없이는 이야기가 안됩니다...북한에서의 최우선은 정치가 앞섭니다...그리고 중국의 대북투자 상상할 수 없을 정도 추진되고 이미 제가 위에서 밝힌 내용들은 이미 계약이 체결되었고 공사가 진행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작성자 06.07.28 22:03

    올 4월부터 중국의 화교권을 중심으로 한 자금이 북한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북한 정부에서도 자주권이 침탈 될까봐 우려하고 있습니다. 조-중간에 무비자에서 비자로 바뀐것이 일예입니다. 중국정부는 북한과 관련되 사업분야 50억불 예산이 잡혀있다고 밝힌바 있고 들리는 이야기로는 100억달라 정도 책정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이사업은 동북3성 개발과 맞물려 있습니다..

  • 작성자 06.07.28 22:21

    북한과 중국의 경제적 동업은 이미 한국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고 사업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계약이 끝났고 진행형 사업들입니다...kbs 스페셜에서 방영된 프로그램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나 일부 화면의 저작권 문제로 다시보기는 제한되었습니다

  • 작성자 06.07.28 22:19

    북한이 개성공단과 백두산 관광에 롯데관광을 유치하려는 것은 제가 입으로 밝힐 수 없고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 보시고 연구해 보시면 해답이 있을겁니다..다음카페 정추모에 가시면 아실수 있을겁니다

  • 06.08.02 21:26

    소중한 정보인데 왜 그리 시비인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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