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 김취려 장군묘
위열공 김취려 장군은 고려후기 무신정권때 거란족의 침입을 막아 이름을 날린 언양출신의 명장이다.
언양출신 김취려 장군의 태를 묻었다는 이곳에 조선 현종(1670년)때에 태지유허비를 세웠다.
비각은 최근건물이며 방치되어있다.
태지유허비 를 세운때는 현종 (1670년) 이아니라 조선철종(1857) 때이다.
설명판의 오기이다.
현종 (1670년)에 세운비는 김취려 장군 묘소앞에있다.
태지유허비각안의 김취려 태지 유허비- 이수를 제외한 비신과 좌대는 조선철종(1857) 세운 태지 유허비이다.
위열공 김취려 태지유허비라 새겨져있다.
태지비를 뒤로하고 김취려장군묘로 올라가는길의 유허비각 뒷모습
유허비를 뒤로하고 올라온 화장산 북쪽 능골에 있는 김취려 장군묘
그러나 이묘는 최근 1미터이상 복토하여 높인후 묘를 손질 하였으며 새로이 석물을 보강 하여 원향이 많이 훼손되었다.
후손들에의해 새로이 수준이하의 문인석 무인석 각 1쌍, 묘암 좌우의 동자상 1쌍, 일본식 석등 , 중국풍의 돌사자1쌍등을 조성하여 매우 어지럽고 조악스럽다.
오래된 묘비로 조선 현종 (1670년) 찰방인 12세손 김려와 언양현감 강응이 세웠다.
묘를 조성할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문인석 -묘의 오른쪽에있다.
400여년의 풍파와 세월이 남아있다.
오른쪽 문인석의 뒷모습
왼쪽 문인석-이역시 묘를 조성할 당시의 것으로 보인다.
좌우의 문인석이 서로 마주보고있다.
반대편에서 잡은 좌우 문인석
새로이 조성된 조악스런 오른쪽 무인석 뒤에 목이 잘린채 누워있는 묘 조성 당시의 무인석
새로이 조성된 조악스런 왼쪽 무인석 뒤에 목이 잘린채 누워있는 묘 조성 당시의 무인석
중국풍이 물씬나는 조악스러운 돌사자상- 돌사자의 하단 받침돌은 복련이 뚜렷하게 새겨진 옛 석등의대석을 이용하엿다.
석등 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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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자료 감사 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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