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테의 수기
작가 ; 라 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 백혈병으로 죽다)
초판 발행 ; 1910
소설다운 줄거리의 전개가 전혀 없다. 일기 형식의 단상이라든가 편지의 일부, 과거의 추억과 비망록 같은, 여러 개의 단편적 수기가 집성된 것이다. 주인공 말테 라우리즈 브리게는 파리에 살고 있는 덴마크의 귀족 출신인 28세의 청년이다. 그는 참담한 처지와 무서운 고독 속에서 살며, 남몰래 이와 같은 수기를 엮는 것이다
말테의 수기가 씌여진 20세기 초의 유럽은 그야말로 많은 것이 혼재되어 나타난 혼란의 시기였다. 시인으로 알려진 릴케의 일기집이라고 해서 관심이 갔다. 이름조차 시적인 릴케’의 연대기를 쭉 읽다보니 어릴때 5살까지 여자아이처럼 키워졌다고 한다. 그 어릴적 정서가 여성적인 감수성과 시적인 온화함으로 나타난듯하다. 연애초기에는 여자친구에게 시로 연애편지를 썼다고하니 낭만적이기도하고, 그 당시의 마음의 표현이 어쩌면 한 호흡을 쉬고 또 더한 한숨으로 마음을 전달하지 않았나싶다. 요즘은 글 한줄 쓰기가 어려운 시대이다. 물론 문자를 보내는것이 일상사가 되었지만, 그건 어쩌면 현재만을 발빠르게 전달하고 찰나를 놓치고 싶지 않은 욕구이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나중에는 어떤 시대가 올지 모르겠지만, 느린것이 곧 나쁜건 아닌듯하다.
성의 혁명이 꿈틀거렸고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었고, 고조된 사회 분위기와 삶의 동화가 물결치던 시대였다. 그리스교의 전통이 폐기되고 유럽 각 국의 인구가 급속하게 늘어 농민과 장인 증가로 인해 가업이나 재산 상속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기대감을 안고 도시로 몰려들지만 도시의 현실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살기 위해 도시로 오지만 질병과 가난과 굶주림으로 인한 비참한 생활을 이기지 못해 길바닥에서, 병원에서, 심지어 차안에서 쓸쓸히 죽어갔다.
말테의 하루는 그 모든 것을 파리의 거리에서 목격을 하고, 돌아와 글을 쓰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며, 그것만이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
’맙소사, 여기에는 없는 게 없다. 그저 와서 생을 발견하면 그만이다.’
라고 기록한다. <말테의 수기>는 줄거리 전개 없이 일기, 편지, 회고록, 베네치아로의 여행, 사랑, 죽음에 대한 기록들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그 전반에 일관되게 흐르는 ’나는 누구인가’ 에서 더 나아가 ’사람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담긴 수기인 것이다.
루 살로메에 의하면 릴케는 <말테의 수기>를 ”어린 시절의 부활”이라고 불렀단다.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집과 어머니와 르네로 살던 시절, 시종관인 브리게 할아버지의 죽음과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그저 조각조각 단
이 산문 작품(초판)은 65의 패러그래프(paragraph)로 되어 있는데, 말하자면 나무토막을 이어 맞춰서 쌓아 올린 것 같은 구성에 의하여, 새로운 참신미(斬新味)를 자아내고 있다. 그 소재(素材)는 대별하여, 파리에 있어서의 주인공의 생활, 유년시절의 추억, 풍부한 독서(讀書)의 추억이라는 3부로 된다.
감수성이 강한 28살의 청년 말테는, 덴마크의 고향을 떠나 「살기 위하여」 파리로 온다. 지금은 부모도 없는 천애의 고아이다. 「나는 지금 외톨박이다. 아아, 비가 눈에 스며든다. 그의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슬픈 인생의 이면과 패배된 모습 뿐이다. 앙상하게 드러나 있느 부서진 집의 담벼락, 병원, 간이 숙박소, 눈먼 야채 장수, 여자 걸인, 신문팔이, 길거리에서 본 괴상한 몰골을 한 정신 병자, 밀크홀에서 만난 빈사(瀕死)의 사내, 말테의 아파트에 사는 신경 쇠약의 의학생 등등」.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그렇다는 것은, 결국은 그것들이 모두 그 자신의 마음의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시인이었다. 그는 지금 「보는 것을 배우고 있다」. 「아무리 추악한 현실일지라도, 현실을 위하여서라면, 일체의 꿈을 기꺼이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준비가 없다면, 어떻게 그가 파리의 싸구려 하숙 생활을 이겨 낼 수 있겠는가.
원래 말테는, 덴마크의 유서있는 집안의 태생이다. 할아버지 크리스토프 디드레프 브리케는 우르스골 촌(村)에 광대한 영지를 가진 시종직(侍從職)이었고, 아버지는 주렵관(主獵官)이었다. 외가의 조부 불라에 백작(伯爵)의 영지 우르네크로스타에는 몇 마리의 사냥개가 있었는데, 소년 말테의 친구였다. 소년 말테는, 발걸음 소리도 나지 않는 두터운 융단이 깔린 대저택 안에서 고이 키워졌다. 곧잘, 열병에 걸려 환각(幻覺)을 보는 선병질적인 어린애였다. 어느 겨울 날 해질 무렵, 마루에 떨어진 연필을 주울려고 책상 아래로 몸을 웅크린 말테에게, 별안간 맞은 편 벽에서 큰 여읜 손이 불쑥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소질은 성인이 된 말테에게 그대로 남아 있어, 의사로부터 전기 요법을 권유받을 만크, 파리의 말테는 여러 가지 불안과 환상 속에서 시달림을 받았다. 그러나, 세느 강변을 거닐 때에는, 고서점(古書店)의 주인이 된 기분이 나고, 국립 도서관에서 프랑시스 쟝을 읽으면, 인적이 끊긴 곳에 별장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고, 크류니 박물관에서 「여자와 일각수(一角數)」의 고브랑을 보면, 한때 연모 하였던 절은 숙모(叔母) 아페로니가 생각나기도 하였다.
말테는 특이한 연애관(戀愛觀)의 소유자이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사랑을 단념함으로써, 사랑을 지속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베니스에서 본 덴마크의 한 여자 가수에서 아페로니의 옛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그 가수가 부른 노래 「한번도 그대를 붙들지 않았기에, 나는 더욱 굳게 그대를 끌어 안고 있지」는, 정녕 말테가 아페로니에 대하여 품고 있는 심정이었다.
『수기』의 마지막 패러그래프는 「방탕한 아들의 이야기」다. 말테에 의하면, 이것은 「사랑받는 것을 바라지 않은 사내의 이야기」, 세속적인 사랑을 끊고 오로지 신(神)의 사랑을 찾은 사내의 이야기라고 한다. 「그는 무척 사랑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리고, 그는 다만 일자(一者)만이 사랑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자는 사랑하려고는 하지 않았다」라는 일구(一句)로 이 수기는 끝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