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산~구름산~가학산~서독산
"세상에 어려운 일은 없다.등산하듯이 한 발 한 발 기어오르면 된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마오쩌뚱이 내뱉은 말이다.그의 말을
빌리면 세상만사와 등산은 여러 면에서 유사한 점이 많다고 하겠다.
천하태평을 가장한(?) 느긋함과 기회가 왔다 싶으면 전광석화와 같은
결단력,능글능글맞고 치밀한 정보력 등으로 평천하를 이룬 그의 공과는
수도 뻬이징 한복판 천안문에 아직도 치워지지 않고 여태 내걸린 그의
커다란 사진이 대신한다.
마오의 말마따나 등산은 인생과 너무나 닮았다.무거운 배낭을 메고는
오래도록 걸을 수 없으며,혼자서는 빨리 갈 수 있지만 먼 길을 떠날 수 없고,
먼 길을 떠나려면 배낭이 가벼워야 하고 함께하는 동료들이 필요한 법이다.
높은 산을 오르는 고달픈 산길도 그렇게 한 발 한 발 기어오르면 못 오를 곳이
어디 있겠는가? 도덕산,구름산 그리고 가학산과 서독산은 높이가 200여 미터
남짓에 불과한 광명시를 주소로 하는 고만고만한 산이다.그
런데 이 작으마한 산들이 연봉을 이루고 있으므로 당일치기로 종주산행하기
에는 안성맞춤이거니와 연계교통망도 불편스러울게 그닥없으니 산꾼들에게는
반가울 수밖에 없는 먹잇감(?)이 아닐 수 없겠다.철산전철역 2번출구를 빠져
나와서 직진을 하면, 곧바로 삼거리 차도를 만나게 되는데,이 신호대기를 건너서
우측의 약국(명지)을 왼쪽으로 끼고 비탈진 골목을 직진으로 따른다.그리고
화장품(광명)가게에서 우측으로 돌아가면 곧바로 좌측으로 꺾여들어가는 골목길
로 들어선다.
그런 후 직진방향으로 곧장 걷다보면 콘크리트 벽 위에 "광명동굴,도덕산 0.3km"라고
쓰여있는 화살표 방향을 알리는 표식을 만나게 되는데, 그 화살표의 지시를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이 후의 경로는 때맞춰 모습을 드러내는 안내화살표가 대신하니 들머리
로의 안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게다.굳이 시가지를 벗어나 산길 들머리에 이르는 과정
을 나열하는 이유는 초행자에게는 그 과정이 도심의 수많은 뒷골목만큼이나 복잡하고
불편하고 까다롭기 때문이다.
화장품가게 길 건너편 편의점에 들려 주섬주섬 먹거리를 준비한다.홀로산행이니,
갈증과 굶주림을 면하려면 배낭에 챙겨야 할 물품은 뻔하다.제일 중요한 식수인
생수부터,그리고 굶주림을 막아 줄 물건은 편의점에서는 우선 빵으로 손길이 간다.
과일은 집에서 챙겼으니,이제 곁들여야 할 양념 같은 물품이 필요하다.빵과 어울릴
만 한 것은 우유와 요것트가 궁합이 맞을 것 같고,식전음료인 에피타이저로 분위기
를 돋울 필요가 있다.
습관인지 중독인지는 딱히 구분이 안가지만, 기껏해야 한 두 잔만 마시고 멈추겠다는
의지는 매번 읊조리곤 한다. 아전인수에 불과한 심뽀지만 손은 어느 새 술병을 집어든다.
산상성찬과 암브로시아 수준에 비길바는 아니지만 산중의 낭만을 고려할 이유는 다분
하지 않은가? 핑게를 내세우는 논리가 반박의 여지를 없애려는 의도가 은연중에 숨어있다.
갈증해소에 탁월한 효능을 발휘하고 게다가 분위기 상승에 일조하는 양수겸장,2타점
적시타의 안타 역을 톡톡히 해낼 역량이 그 놈에게는 담겨있다고 나는 종종 그렇게
우기곤 한다.
들머리에는 산행안내도가 번듯하게 세워져 있고 영산홍이 울긋불긋 꽃밭을 이루고
있다.주변의 빈 터에 빼곡히 들어 찬 자가용들을 뒤로하면 꽃단장을 한 숲길이 산객을
맞이 한다.광명시에서 꾸며놓은 산상야생화단지,개나리와 진달래를 비롯한 이른 봄꽃
들은 이미 모습을 감추었고 아쉽지만 영산홍 위주의 울긋불긋한 농염함이 산상화원을
붉게 달구고 있다."화유정"이란 현판이 걸린 사각의 정자를 뒤로하면 송신탑 서너 기가
세워져 있는 멧부리에 이르게 되며,이곳에도 사각의 정자가 그늘막쉼터 역할을 한다.
주변의 공터에는 여러 종류의 운동기구도 설치되어있다. 노익장을 과시하려는 늙은
사내 두엇이 식식거리며 운동에 몰두하는 모습이 열정적이다.송신탑 곁을 지나서
비탈을 내려서면 송신탑 사거리,"도덕산 정상은 0.5km,구름산 정상은 4.5km"라고 안내
하는 표식에 눈길이 머문다.산길은 수렛길이나 다를 게 없는 널찍한 숲길,주말에다 맑은
날씨가 겹친 탓인지 입산객들이 다소 북적인다.팔각의 지붕을 얹고있는 여수정,우측
절벽아래 인공폭포 주변은 수량의 빈곤으로 자못 활기를 잃어가고 있는데,그래도
폭포주변 데크의 쉼터시설에는 서너 명의 입산객들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모습이 평화롭게 내려다 보인다.
땀을 훔쳐가며 가파른 계단 오르막을 올려치면 팔각의 정자 도덕정이 산객을 맞는다.
도덕산의 정상 멧부리다.도덕정 2층누각을 오르는 대리석 계단입구를 해태 두 마리가
꼼짝않고 파수를 보고 있다. 도덕정에서의 조망은 광명시 일원의 도회지 풍광이다.
어느 도시이건,도시 근교 멧덩이들의 숙명과도 같은 모습이 이곳이라고 달라질 수가
있겠는가.나 뿐만 아니고, 나 아닌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생활터전,그리고 생존
경쟁으로 얼룩져가는 삶의 현장을 발치에 두고 내려다 볼 수 있다는 더 할 수 없는
후련함과 쾌감을 가져다 준다.그러한 카타르시스를 느껴보고,게다가 작은 성취감까지
얻을 수 있는 소득만으로도 산을 오르는 이유가 충분하다.
도덕산은 광명동 철산동 하안동에 걸쳐있는 해발 183.1m의 겸손한 크기의 멧덩이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이 산 기슭에 사는 덕쇠라는 도공이 처녀로 죽은 대감집 딸과
부부의 연을 맺어 죽은 처녀가 한을 풀고 덕쇠를 실제 남편처럼 받들어 사람들에게
부부의 인연의 소중함을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오고 있으며,그후 사신들이
이 산봉우리에 모여 도(道)와 덕(德)에 대한 의견을 자주 교환했다고하여 도덕산으로
불렀다고 전한다.
도덕정을 내려서면 이내 수양고개 안부다.그곳에도 쉼터정자가 쉬어감을 권한다.
생수로 목을 적신 뒤에 밤일 안부에 닿게 되고 언덕 같은 봉우리를 올라서면 밤일
분기점이다.오른쪽으로는 노은정,왼쪽으로는 구름산과 가학산을 가리키고 있다.
한 늙은 사내가 작은 손자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두 번 다시 안 따라오겠다는
손자의 완강한 버티기 전략, 배낭에서 꺼낸 먹거리를 들이밀며 구슬리는 할아버지의
유화책,그러나 신경전의 승패는 어떻게 갈릴 지 예단키 어렵다.밀고 당기는 전투는
목하 지구전으로 국면전환이 이루어질 기미가 보인다.
금빛 햇살이 기하학적 무늬를 산길에 어지럽게 구사하며 쏟아져 내린다.삽상한
봄바람이 연두빛 나뭇잎 새순을 파르르 흔들어 댄다.실루엣조차 비치지 않는 산새들의
지저귐이 소음에 지친 귀청을 말끔이 닦아준다.분기점에서는 어느 방향으로 진행을
하든지 다시 산길이 합쳐지므로 구름산을 오를 경우에는 어느 곳이나 상관이 없다.
구름산을 3.5km 남겨 둔 지점이다.송전철탑 밑을 지나고 산길 오른쪽으로는 공동
묘지도 지나게 된다.밤일 갈림길을 뒤로하면 우측으로 철망 울타리를 끼고 이동을
하게 된다.울타리 안은 노은정수장이다.
노은정 울타리와 함께하는 산길을 벗어나면 곧바로 노은정수장 입구에 이르게 되는데,
정문 길 건너 소공원에서 도로(소사구~금천구)를 건너는 육교가 있다. 한치고개를
가로지르는 통로다.바람을 가르는 차량들의 웅웅 거리는 헐떡임을 뒤로하면 가파른
계단길에 이어서 사각의 지붕을 인 정자가 지친 산꾼을 맞이한다.구름산 발치에 스며
들면 새미약수터가 갈증의 산객을 유혹한다.수량은 다소 빈약하다.
초록의 그늘을 휘적휘적거리며 시나브로 고도를 높여나가면 "구름산전망대"라는 현판을
이마에 매단 팔각정에 도착한다.팔각정에는 조망과 휴식을 취하려는 등산객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밋밋한 산길을 십여 분 이동을 하면 닿는 멧부리,해발 240m의 구름산 정수리다.
"雲山亭"(운산정)이란 현판이 붙은 팔각정의 단청이 오색창연하다.시각은 정오를 훌쩍 넘긴
시간이다.곳곳마다 입산객들로 마땅한 자리잡기도 궁색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허기가 밀려오기 시작하니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한다.
들머리 편의점에서 구한 메뉴를 펼쳐 헛구레를 시나브로 채워보는 느긋한 쾌감에 빠져
본다.다음에 오를 가학산은 이곳에서 2.3km 거리에 있음을 안내팻말은 알린다.운산정을
뒤로하는 산길이 급경사를 이룬다.가드로프의 도움으로 급경사 내리막을 벗어나면
군부대 후문 갈림길을 만나게 되며,이곳에서부터는 산허리를 굽이굽이 따르는 산길을
이어나가게 된다.산등성이부터는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연두빛으로 물든 숲의 그늘 산길을 고분고분 따르면 노두(路頭)갈림길,이곳에서 우측으로
0.5km이동을 하면 광명동굴을 만날 수 있다.그러나 동굴관람은 다음으로 기약하고 발길을
재촉하여 가파른 비탈을 올려치면 영당정갈림길이다.영당정갈림길에서 산등성이를 타고
이어지던 철조망은 방향을 좌측으로 꺾여 산길 반대방향으로 줄달음친다.갈림길 한구석에
사각정자쉼터가 자리하고 있는데 입산객 서넛이 둘러앉아 오찬을 즐긴다.
아! 무더운 날씨다.땀이 비오듯 한다.생수로 잠시 목을 적셔본다.
이내 가학산 정상,해발 220m의 멧부리에는 팔각지붕의 정자 "가학정"이 우뚝하다.
데크일색의 멧부리 구조물,삽상한 바람이 일렁이는 그늘에서 땀을 식힌다.음료수로
목을 축이고 서독산이 1.4km거리에 있음을 알리는 안내팻말의 지시대로 발걸음을
옮긴다.산등성이를 가로지르는 임도 고갯마루,도고내 고개다.고갯마루를 뒤로하는
산길은 수렛길처럼 널찍하다.사거리 갈렛길,쉼터정자가 한켠에 세워져 있으며 서독산
은 좌측의 오르막 산길을 따라야 한다.돌탑 두 개를 잇따라 지나면 데크전망대가
나오는데 이 멧부리가 서독산 정상이다.서독산 정상을 알리는 표식이 하나도 없다.
데크전망대에서 Ktx 광명역사가 손을 뻗으면 닿을듯하고 기아차 소하리 공장 전경이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조금 전의 갈림길 사거리로 되돌아와 최종 날머리인 안서초교
방면으로 잰걸음을 친다.해발 200여 미터의 능선줄기, 거뭇한 물때가 낀 바위들이
등성이를 따라 울멍줄멍하다. 시원한 바람이 힘차게 불어오는 활공장(滑空場)을 지나면
펄럭이는 붉은 깃발도 만나는데 얼마 안가면 비슷한 활공장이 또 나타난다.산길은 다시
산등성이를 버리고 산허리를 전전하며 곧바로 산행을 마무리 할 것 처럼 시나브로 고도
를 낮춰나간다.
약수터 갈림길,커다란 바위 밑 움푹 들어간 곳에서 샘이 솟는 모양인데 흙탕물이다.
약수터라고 이름을 지었다면 관리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을까.이곳 갈림길에서 날머리인
안서초교로 가려면 좌측의 비탈진 산등성이를 넘어가야 한다.심술궂은 안내팻말의
검지손가락(?)이 비탈진 산기슭을 냉정하게 가리킨다.생수병을 탈탈 털어 목을 적신다.
애면글면 오른 등성이,능선줄기를 따라 이어진 군부대 철조망은 이 지점 직전에서 맞은
쪽 골짜기 방면 너머로 도망이나 가듯 이어진다.
이제부터 막바지 하산은 우측의 능선길을 따르면 된다.이때다! 어느 쪽에서 피어
오르는 냄새인지 역겨운 오물의 악취가 코를 찌른다.곧바로 만날 안서초교가 위치한
지역인데,이런 냄새가 학교주변에 심심찮게 풍기고 있다면 심각한 거 아닌가? 악취의
강도(强度)가 제법 세다.이내 차도변 학교입구,주말이라서 학교주변은 조용하기
그지없다.학교입구의 구멍가게도 문을 닫았다.궁금한 입을 달래 줄 주점부리를 마련
하려던 참이었는데...
그러나 저러나 이 근방에서는 조금 전의 고약한 악취가 풍기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오고가는 차량들도 비교적 뜸해보이고 버스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도 하나 없고보니,기다리는 버스(11번)가 언제나 오려는지,혹시 마냥 기다려야
하는건 아닌지,이런저런 오만가지 끌탕을 하며 노심초사에 빠지려는데,오매불망 기다리던
초록색버스가 털털거리며 늙은사내 앞에 머문다.승객은 할멈 둘에 머리가 하얗게 센
늙은 기사양반,거기에 내가 끼어들은 거다. 4인1조의 고스톱 멤버 성원도 단박에 달성
되었으며, 골프 라운딩을 함께 할 짝도 자연스레 이루어졌으니, 가능성은 다 열려있는 셈이다.
KTX광명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