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기계 유가보조’와 ‘공영주기장 설치’ 입법발의 약속이 나왔다. 3선의 이낙연 의원(민주통합당, 담양함평영광장성, 기획재정위원)이 지난달 25일 전국건설기계광주전남연합회(회장 김종성) 사무실을 찾아와 건기업계의 애로사항을 들은 뒤 이같이 언급한 것이다.
이를 두고 내년 치러질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표심잡기에 나선 것이란 해석이 있는가 하면, 건기업계의 사회적 위상이 커지고 있고 그 근저에 중앙·지방 정치권을 향한 로비력이 향상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에 본지가 최근 건기업계의 정치(로비)력 변화를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법제개정과 중앙정치 로비=건기 대여업계가 최근 달라지고 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풍토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 첫 움직임은 대정치 로비로 나타나고 있다. 사업자 개인이 발버둥쳐도 해결되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당위 때문. 업계 생존을 위해 법제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던 것이다.
전국건설기계광주전남연합회(회장 김종성, 이하 전남연)가 지난해 8월 주승용 국토해양위원장을 만나 ‘건설기계대여료 지급보증제’ 마련을 요구하면서 움직임이 가시화했다. 전남 여수를 지역구로 둔 주 위원장와 지역 건기연합회가 상호 협력관계를 활용해 물꼬를 튼 것.
광주전남건기연은 주 위원장과 대담에서 “보증지급제가 하도급대금에 국한돼 시행되고 있는데 임대료도 함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건의했고, 주 위원장은 “일하고도 돈을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임대료 보증지급제를 국회 차원에서 마련해보도록 앞장서겠다”고 답했다.
두 달 뒤 주 위원장은 ‘건설기계대여료 지급보증제’가 담긴 ‘건설산업기보법 개정안’을 국회에 입법·발의했다. 광주전남건기연은 이밖에도 △건설기계임대차 표준계약서 작성 의무화 △건설기계 수급조절 △임대료 산정요율제 등의 법제화도 건의했다.
대통령선거 공간을 활용한 정치로비도 이어졌다. 10월 23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를 광주시당 사무실에서 면담하고 건기업계의 애로사항을 전달한데 이어 △영업용 건설기계 유가보조금 지원 △건설기계 임대료 체불 근절 △건설현장 작업환경 개선 등의 정책마련을 주문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당시 후보)은 “구구절절 필요한 정책들”이라며 “제도 마련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새누리당은 건설기계 임대료 지급보증제 마련 등을 당론으로 정하고 추진하고 있다.
전국건설기계연합회(회장 박영근, 이하 전건연)도 투표일 직전인 11월 22일 새누리당 선거본부를 찾아 업계 현안을 담은 정책제안서를 이성헌 의원(당시 국민소통본부장)에게 전달했다.
전건연은 또 김성태 의원(새누리당 서울강서을, 환경노동위원)을 통해 지역별로 설립돼 있는 공영주차장에 건설기계 주기를 허용토록 하는 주차장법 일부개정안과 건설기계관련 공법단체의 설립 기준을 완화한 건설기계관리법 일부개정안 발의에 힘을 쏟았다.
△업계 정치력 강화 원인=최근 건기업계가 정치권 로비에 힘을 쏟는 데는 사업자 개인 또는 지역·규격 단체들만의 노력으로는 ‘벼랑 끝에 내몰린 건기업’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생사의 기로를 벗어나려면 법제나 정책이 필수고, 이를 위해 대정치 로비가 불가피하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이는 건설기계 수급조절 좌절에서 출발한다. 두 번에 걸친 수급조절 추진. 정부의 거듭된 약속 파기. 이를 조직력으로 돌파하려했지만 지도력 부족을 절감했다. 행정소송을 제기했다가 철회한 것도 그 중 하나. 대여업계가 갈라져 있는 것도 힘을 분산하는 요소.
급증하는 유가는 건기대여업을 어렵게 했다. 1990년 212원이던 국내 경유 값이 99년 620원, 현재 1720원을 기록하고 있다. 연평균 12.6%의 상승률. 대여료 절반이 유류대로 지출되는 현실앞에 업계는 유가보조를 주문했다. 2004년 정부는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을 개정해 영업용 화물차에게 유가보조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3년 뒤에는 택시와 버스에도 유가보조를 시행했지만, 건설기계는 제외됐다.
‘수급조절 좌절’ 값진 교훈
유가보조에서 제외된 건기업계는 정부에 거듭 정책마련을 촉구했고, 정부는 보조금 대신 영업용 건기의 수급조절을 약속했다. 2007년 수급조절이 포함된 건설기계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영업용 덤프·믹서트럭 만 시행되고 굴삭기 등은 끝내 시행되지 않고 있다.
대여료 체불도 업계를 좌절시켰다. 민사소송을 통한 압류가 법적 해결책의 전부였다. 하도급대금은 1981년 4월 1일부터 시행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과 1984년 제정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을 통해 보호받아 왔다.
건기업계는 사업자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76년 설립된 대한건설기계협회가 나름의 대정부 정책기획활동을 벌였지만 대여업계 전체보단 일반대여업자(지입사) 이해를 앞세운다는 비판을 받았고, 개별사업자들이 지역·규격별로 임의단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건설기계경영인연합회와 전국굴삭기연합이라는 전국적인 단체가 생겼고, 2011년 3월 통합(전국건설기계연합회 발족)하면서 개별사업자를 대변하는 전국 단일조직인 전국건설기계연합회가 태동했다. 이로 업계는 건기협회와 전건연으로 갈라졌고, 정책 목소리 역시 분산된 것이다.
건기대여업은 70년 중반 시작됐다. 지하철, 항만, 아파트 등의 대형 건설공사가 활발히 진행됐고 해외(중동)건설 붐이 일면서 건기의 수요가 상당했기 때문. 서울에서 30년간 임대업을 해온 박태성 서울건설기계연합회장은 “당시 지입사가 건기대여사업을 했는데, 어느 정도 자본이 있으면 대여사업에 투자하라는 얘기들이 나돌았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개발붐에 발맞춰 호황을 누리던 건기대여업이 90년대 들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건설경기가 하락하기 시작한 것. 대한중기협회(현 대한건설기계협회)가 89년 국내 한 언론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대여용 건설기계가 2만4천여대였고, 가동률은 49%에 불과했다.
협회 직무유기, 조직분화로
그리고 지입사에 가입해 대여사업을 하던 실사업자들 요구로 개별대여업이 93년 5월부터 시행됐다. 누구든 건기를 소유·등록하면 개인적으로 건기대여업을 할 수 있게 돼 무한 경쟁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 치열한 경쟁은 일감감소와 대여료인하 및 불평등 임대차계약으로 이어졌다.
90년대 중반 이후 건설경기가 급속하게 위축되기 시작했고, 97년 IMF사태가 터지면서 대여업계는 중대 기로에 섰다. 송종화 인천10협회장은 “건설사들이 부도를 내면서 많은 건기대여사업자들이 큰 피해를 당했다”며 “건기를 파는 등 구조조정을 통해 간신히 사업을 이었다”고 말했다.
△지방정치 활용=전국건설기계경남연합회(회장 최병기)는 12월 18일 한나라당 당대표였던 홍준표 경남도지사(당시 후보)를 예방하고 △공영 주기장 설치 △건기전담 공무원 배치 △일자리 늘리기 △체불근절 등을 주문했다.
지방정치권과의 교섭도 활발했다. 전국건설기계대전충남연합회(회장 김덕환)는 지난해 3월 개최한 이취임식에 이명수 국회의원과 장기순·김정숙 도의원 그리고 조기행 아산시의장과 성시열 시의원의 방문축하를 받았다.
전국건설기계전북연합회(회장 권영덕)도 지난 19일 열린 회장 취임식에서 김관영 국회의원과 정길수 군산시의원의 하례를 받았다. 이 외도 각 지역 시군연합회 마다 행사에 지역의원들을 초대해 우호적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지역 건기단체의 정치권 교섭은 ‘체불 없는 조례안’ 제정에 큰 역할을 했다. 서울·강원·대구·울산·인천·전북·전남·경기 등 대부분의 광역에서 조례안을 통과 시켜 지역내 건기업자를 체불로부터 보호토록 했다.
강기대 익산연합회장은 “체불을 없애기 위해서는 법적 제도장치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며 “제도라는 것은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결코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습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행정·공기관으로의 교섭확대도 이어졌다. 서울건설기계연합회(회장 박태성, 이하 서건연)는 국토해양부를 비롯해 서울시청과 공정거래위원회, 조달청 그리고 주택공사와 국방부 등을 예방해 체불 해결을 촉구했고 공정한 임대계약과 적절한 임대단가가 형성될 수 있게 관리해 줄 것을 당부했다.
지역정치와 결합, 그 미래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업계의 노력도 기대된다. 지난 25일 이낙연 의원이 전남연 순천사무실을 예방해 ‘건설기계 유가보조’와 ‘공영주기장 설치’를 뼈대로 하는 입법 발의를 약속한 것도 그 한 예다. 이 의원은 전남지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치 참여=김영주 의원의 국회입성도 건기업계의 정치력을 키우는데 한몫하고 있다. 19대 총선에서 자유선진당 비례대표(2번)로 당선된 그는 “50만여대 등록 건기, 10만여명의 관련사업자에 80만에 육박하는 조종사 이해를 대변할 정치인이 없어 출마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 31일 건기 대여계약을 하도급계약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갖도록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치인 활용=과거 정치인을 임원으로 둔 건기단체도 생겨났다. 광주전남건기연은 지난 8월 유수택 전 순천시장(현 새누리 광주시당위원장)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했고, 대한펌프카협회(회장 류재현)는 임종인 전 17대 의원과 우문수 전 종로경찰서장에게 자문위원와 고문변호사직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