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순영이 느닷없이 절에 가자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날씨도 초겨울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장사도 할 수 없고 할일도 없으니 불공이나 드리러 다녀야지요.”
“자동차를 타고 갈 수도 없는데.”
전쟁이 계속되면서 기름도 배급을 했다. 자동차용 기름은 돈이 있어도 살 수가 없었다. 자동차를 끌고 다닐 수가 없다.
“기차로 가지요.”
“돈은 있나?”
이재영은 전쟁이 시작되면서 돈을 아끼고 있었다.
“돈이 없겠어요? 돈은 내가 쓸 테니 따라만 다녀요.”
류순영이 눈웃음을 쳤다. 류순영은 주로 금을 사고팔아 축재를 했다. 대구에서는 금이 많다고 하여 금가락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어느 절에 가나?”
“경주 불국사도 가고… 양산 통도사도 가고… 온천에도 갑시다.”
“허어. 남들은 전쟁으로 죽어 가는데 우리는 놀러다니자는 거요?”
“인생은 짧아요.”
류순영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웃었다. 그가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온 뒤에 류순영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이재영은 여행을 떠나는 것이 썩 내키지가 않았다. 그러나 가방 하나를 챙겨서 류순영을 따라 나섰다.
장사꾼이 돈을 벌어야 하는데 장사를 할 수 없었다. 장사를 하면서 일본인들과 부딪치기도 싫었다. 일본인들은 공연히 조선인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물자가 부족해져 일본인들의 눈빛이 흉포해지고 있었다. 광기가 가득한 눈빛이었다.
이재영은 류순영과 함께 경주로 향했다. 대구에서 기차를 타고 가는데 차창으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첫눈이에요.”
류순영이 환호했다. 이재영도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잿빛의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쌀 같네요.”
류순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일본이 쌀을 공출하면서 많은 땅을 갖고 있는 이재영네도 잡곡밥을 먹어야 했다. 조선에서 생산되는 쌀의 60%가 군량으로 보내졌다. 조선은 쌀 부족이 심각해졌다.
“정식이 장가도 보내야 하지 않아요?”
아들 정식이 어느덧 성년이 되어 있었다. 학도병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절에 들어가 있었다.
“전쟁 중에 어떻게 결혼을 시켜?”
결혼을 하다가는 학도병으로 끌려가기가 십상이다.
“정식이는 괜찮을까요?”
류순영이 아들에 대해서 물었다.
이재영도 아들을 머릿속에 떠올린 참이었다. 도쿄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불러 지리산 청학동에서 한문공부를 하게 했다. 군자암이라는 작은 절이었다. 절을 찾아 여행을 하자니 아들이 떠오른 것은 당연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아들을 보려는 것이 목적인지도 몰랐다.
“괜찮겠지. 지리산 깊은 산속에 있으니까.”
“정식이 있는 절에도 한 번 가볼래요?”
“잘 있는 아이 건드리면 안돼. 학도병으로 끌려가면 죽어서 돌아오는 사람이 많대.”
일본의 전쟁은 조선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많은 유학생들이 학도병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벌써 1년이 되었잖아요?”
“굳이 가고 싶으면 갑시다.”
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정을 말릴 수는 없다. 아버지인 이재영도 때때로 아들을 생각하고는 했다.
경주에 도착하자 불국사에 올라가 보았다. 첫눈인데도 절에 이르렀을 무렵에는 눈이 하얗게 쌓였다. 류순영은 대웅전에서 오랫동안 절을 했다. 이재영은 류순영이 자식들의 무탈을 빌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절을 구경하고 시내로 내려와 방을 잡았다.
“불국사도 대단하지 않네요.”
“처음인가?”
“처음이죠.”
사진이나 그림으로 보던 절의 위용과는 달라 보인 모양이었다.
여관방은 아늑했다. 경주의 왕릉이 내다보이는 곳이었다. 왕릉에도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저녁 먹으러 가요. 경주에 아바이 순대국이 유명하대요.”
류순영이 이재영을 데리고 시장으로 갔다. 시장에 순대국을 파는 허름한 식당이 있었다. 함경도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했다. 순대국을 시키고 소주도 주문했다. 류순영도 술 두 잔을 마셨다. 맛있는 집으로 유명하여 손님들이 많았다.
“당신 오늘 밤 나한테 봉사해요.”
술을 마신 류순영이 뜬금없이 말했다. 순대국은 소문처럼 맛이 좋았다.
“무슨 소리야?”
이재영은 어리둥절했다. 류순영의 말에 하체가 묵직해져 왔다. 그녀의 말을 못 알아들은 것이 아니다.
“내가 구경도 시켜주고 술도 사주잖아요?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요?”
“허허. 남편한테 안 사주면 누구한테 사줄 거야? 나는 당신한테 안 사주나?”
“어찌되었건 여자가 봉사하라면 봉사하는 거예요.”
류순영이 입언저리에 미소를 매달았다. 얼굴이 약간 붉어진 것 같기도 했다. 사방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식사를 하고 여관으로 돌아오는데 류순영이 그의 팔에 매달렸다.
“남편이 있어서 좋다.”
류순영이 달아오른 목소리로 말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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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보았읍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