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원
윤 종 희
하얀 수련이다. 북촌을 거닐다 들어간 한옥 마당 돌확 위에 핀 수련에서 외가와 큰집 정원을 봤다.
외갓집 뒤안 작은 연못이며 정원은 어린 내게는 경이로웠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은 나를 그곳으로 달려가게 했다.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 우물가 옆 빨간 앵두며 내 주먹보다 더 컸던 모란꽃이다. 여름으로 접어들 즈음이면 연못엔 수련과 마름 부들 개구리밥이 가득 떠 있었다.
외갓집은 옆으로 흐르는 도랑물을 끌어다 연못을 만들었는데 졸졸거리며 흐르던 물소리는 정겨웠다. 정원은 뒷집 담과 연하여 토란밭도 있었다. 내 머리통 두 배나 되는 큰 토란잎에 맺힌 이슬이 또르르 굴러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던 그 아침의 정경情景들이다.
외할아버지가 계시는 사랑채 뒷문을 열면 키 낮은 대나무와 늙은 감나무 한 그루가 집을 지키듯 떠억 버티고 있었다. 외갓집 감나무 중에서도 홍시가 감탕 같았던 나무다. 앞마당에서 멀리 떨어진 뒷간엔 딸을 낳으면 심는다는 커다란 오동나무 한 그루도 있었다. 나무는 바람이 불면 ‘슥~슥~’ 하는 서늘한 소리를 냈고 가을밤에 ‘툭’ 하고 떨어지는 낙엽 소리는 왠지 모르게 슬펐다.
사벌 큰집도 커다란 연못이 있었는데 외가와 다르게 사랑채 누마루 옆 오동나무가 있는 담을 끼고 네모반듯했다. 한가운데 작은 섬이 있고 그곳에는 키 작은 나무 한 그루와 갖가지 연꽃이 폈다. 산을 뒤로하고 연못가에 작은 정자도 있어 가을이면 빨간 고추잠자리 천국이 되었다. 가끔은 조카들과 정자에서도 놀았다. 여름날 대청마루에 배를 깔고 누워 있으면 멍울멍울한 배롱나무 꽃가지를 바람이 가만히 흔들며 여름을 데려가고 있었다.
한국 정원이 일본과 중국과는 다른 은근한 운치를 자아내는 자연미는 어디서 온 것일까. 우리나라는 대개 자연에 기대어 뒤에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앞에는 냇물이 감싸고 흐르는 남향받이가 대표적 집터인 배산임수다. 집에 들어서면 사방 동서남북의 위치에 춘하추동과 음양의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오행의 이치를 좇아 이루어지는 공간이 우리나라 정원이다.
동쪽은 시작하는 곳으로 오행으로 목木이며, 봄은 동쪽에서 시작한다. 그러기에 제일 먼저 봄을 알리는 나무를 동쪽에 심었는데 우물가 텃밭에 앵두나무며 살구나무다. 이렇게 동에서 시계방향으로 남쪽에 이르면 여름이 된다. 여름은 오행으로 화火, 불이다. 그러므로 삼복三伏 염천炎天에 더위를 식혀줄 물이 필요해 다른 곳에서 끌어다 연못을 만든다. 그런데 그 연못이 네모꼴이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 해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났다’ 뜻이다.
음양으로 따지면 하늘은 ‘양’ 곧 남성, 땅은 ‘음’ 여성이다. 고로 네모난 연못 속에 둥근 섬이 들어있다는 것은 여성 속에 남성이 들어있다는 뜻이다. 우리 연못에 이런 신비하고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게 놀랍다. 더위도 식히고 집안의 부귀와 다산을 불러온다는 의미다. 그뿐 아니라 나무로 지은 한옥에 불이 났을 때 연못은 소화전 역할도 톡톡히 했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다.
남쪽 마당 어귀에 오동나무를 심는데 오동나무는 물오름이 좋고 잎이 넓어서 여름에는 햇볕을 가렸고, 겨울에는 가지가 성글어서 잎이 지고 나면 볕이 마루 안쪽까지 들어와 집안을 환하고 따뜻하게 해 줬다. 또 무더운 여름날 잎에 듣는 빗소리는 상쾌하고 싱그럽기까지 하다.
서쪽은 계절로는 가을이요, 오행으로는 금金이다. 싸늘해지는 계절이다. 아쉬운 것은 따뜻한 햇볕이다. 그래서 감나무를 서쪽에 심은 게 아닐까. 저물어 가는 11월 엷은 햇빛에 주홍색으로 익어가는 감은 가을날 서늘해지는 우리 산야를 붉게 물들였고, 잠시 가을 햇볕은 아쉬운 듯 멈칫멈칫하며 외갓집 사랑채 뒤 늙은 감나무에 잠시 머물다 가곤 했다.
북쪽은 모든 것이 얼어붙는 겨울로 수水이며, 엄동설한嚴冬雪寒이다. 사위는 적막하고 그 푸르르던 녹음은 간데없고 여름의 푸른빛을 가져오고 싶은 계절이다. 그래 대나무를 북쪽 뒤뜰에 심었다. 우리 어릴 때 집집마다 뒤안에 대나무가 있었다. 대밭으로 바람을 막아주고 여름 물난리도 막아주는 이중 효과다. 삭막한 회색빛인 계절에도 푸른빛으로 잠시 겨울을 잊게 한다. 어린 날 세차게 바람 부는 겨울이면 뒤안 댓잎 부딪히는 소리에 무섭기도 했던 우리 삶을 지켜주었던 대나무다.
이와 같지 않다고 한들 또 어떠랴. 일본은 인위적인 작업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려 하고, 중국은 한정된 공간 안에서 자연을 과장하려는 경향이 있어 부담된다. 한국 정원은 사람들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일종의 통로로 생각했다. 나무와 산을 모두 마당의 일부로 여기며 건물이나 건축물은 자연에 기대어 동화되도록 지었다. 바로 그곳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나라 대표적인 정원 창덕궁 후원後園인 비원祕苑이다.
정원을 가꾸며 자연의 순환을 본다. 우리네 마당은 계절마다 바뀐다.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누군가 ‘친구 집을 계절마다 가보지 못했다면 그 집을 진짜로 방문한 게 아니다’ 한 것처럼 한국 정원은 사계가 그 안에 있다. 자연 그 자체다. 우리 삶에도 계절이 있으니 내가 어느 계절에 속했는지 알고 이에 맞게 살 일이다. 인간관계도 똑같지 않을까 싶다. 그 사람이 겪는 삶의 계절을 모두 지켜보지 않고 어찌 그 사람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다듬고 쪼개어 만들지도 과하게 다른 곳에서 옮겨 오지도 않은, 있는 듯 없는 듯 열린 세계가 우리나라 정원이다. 우리 것이 주는 자부심과 위안은 유년의 결핍으로 허기졌던 수많은 시간을 내게서 서서히 빼앗아 가고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