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
보길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에 속한 섬이다. 완도군 남서쪽에 위치하며 2개의 유인도와 15개의 무인도와 함께 보길면을 이루고 있다. 보길도는 완도에서 남쪽으로 32km 거리에 있는 섬으로 동서가 12km, 남북이 8km, 노화도, 소안도, 넙도로 둘러싸여 있다. 섬의 면적은 32.98㎢, 해안선의 길이는 41km이다. 전설에 따르면, 영암에서 온 사람이 이 섬에 선친의 묘자리를 잡기 위해 풍수지리에 능한 지관을 불렀는데, 지관이 이 섬을 두루 살핀 뒤에 남긴 글인 '十用十一口'에서 甫吉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보길도의 북쪽해안은 비교적 수심이 얕고 니질로 구성된 간석지가 형성되어 있다. 예송리에서 선창리까지의 남서편 해안은 해안을 벗어나면 곧 20m이상의 수심을 보인다. 이 해안은 산지나 구릉이 연속되고 그 말단 부분이 해수의 침식에 의해 깎여 낭떠러지 해식대와 이에 연속되는 파식대로 해수에 의한 퇴적작용은 볼 수 없고 주로 해식이 강한 암석해안으로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남서쪽 해안은 해식동과 해식대가 연속되어 분포하고, 해식동은 해변에 면한 암석 중 침식에 약한 암석이 차별 침식되어 검고 깊은 바닷가 동굴을 곳곳에 이루고 있어 수려한 해안경관을 보인다.
보길도에는 여러 종류의 해빈(海濱)이 있다. 모래만으로 이루어진 사빈(砂濱, sand beach)은 해수욕장으로 이용되는데, 중리, 통리 해수욕장 등이 있다. 역(礫)으로 구성된 비치를 역빈(礫濱, shingle beach)라 하며 역시 해수욕장으로 이용된다. 자갈(몽돌) 해안이라고도 하는데 예송리 해수욕장이 이에 해당한다. 보옥리는 ‘공룡알 해변’으로 불리는데 공룡알처럼 생긴 돌들로 이루어진 역빈 해안이다. 예송리와 보옥리는 외해에 접해 있어 역빈 해안 발달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보길도는 난류의 영향으로 온화한 해양성 기후이다. 1월의 평균기온은 0.1℃, 8월의 평균기온은 25.3℃ 이며, 연평균 강수량은 1,398mm, 연 강설량은 11mm이다. - 나무위키
☆보길도 가는 방법
● 보길도로 가는 여객선 편은 크게 2개가 있다. 보길도에 직접 도착하는 배는 없고, 대신 보길도와 보길대교로 연결된 노화도에 닿는다. 노화도에서 보길도까지는 육로로 다닌다.
1번째는 해남 땅끝항(갈두항)과 노화도 산양항을 오가는 여객선, 2번째는 완도 화흥포항과 노화도 동천항을 오가는 여객선이다.
● 갈두항에서는 해광운수 뉴장보고호와 완도 농협 카페리호가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 30분까지
매시 정각과 30분에 출항하여 노화도 산양진항으로 향하는데 소요시간은 30분, 배삯은 7,150원이다.
● 노화도 산양진항에서 보길도까지는 차를 가지고 가지않으면 보길여객(농어촌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 윤선도원림(세연정)
‘세연(洗然)’이란 ‘주변경관이 매우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하다’는 뜻으로, 세연정은 주로 윤선도의 연회와 유희장소로 쓰였다. 세연정 주변에는 계담과 계담을 막는 판석보, 동대와 서대, 칠암과 흑약암 등이 있으며, 옥소대라 불리는 석대가 존재한다. 옥소대는 세연지 건너편 산 중턱에 있는 넓적한 바위로 고산 윤선도 선생은 자녀들에게 소매가 긴 채색옷을 입혀 춤추게 하고 그 모습이 세연지 못에 거꾸로 비치는 그림자를 즐겼다고 한다.
☆비홍교
"보길도지"에는 "세연정이 못의 중앙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정자 서쪽, 제방 동쪽에는 한 칸쯤의 넓이에 물이 고여 있으며, 중앙에는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의 암석이 있다. 거북이 등에 다리를 놓아 누(樓)에 오른다"고 기록하고 있어, 이 다리를 비홍교라 불렀다. 지금은 그 자리에 잡석을 쌓아 호안과 방단이 연결되어 있어 흔적을 찾기 어렵다. - 안내 간판
☆사투암
세연정 주변의 잘생긴 바위 일곱을 지칭하여 칠암리라 불렀는데 그 중 하나인 사투암은 옥소대를 향하여 "활을 쏘는데 발 받침 역할을 하였다"고 전해지는 바위로 연못 쪽이 들려진 모습이다. 들려진 부분에 발을 딛고 옥소대쪽 과녁을 향하여 활을 쏘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세연정
‘세연(洗然)’이란 ‘주변경관이 매우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하다’는 뜻으로, 세연정은 주로 윤선도의 연회와 유희장소로 쓰였다.
☆동대
군무 행위를 했던 곳으로 춤을 추며 돌면 정상에 오르도록 나선형 계단을 이뤘다.
☆판석보
우리나라 조원 유적중 유일한 석조보로 일명 "굴뚝다리"라 부르며, 세연지의 저수를 위해 만들었으며, 건조할 때는 돌다리가 되고 우기에는 폭포가 되어 일정한 수면을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보의 구조는 양쪽에 판석을 견고하게 세우고 그 안에 강회를 채워서 물이 세지 않게한 다음 그 위에 판석으로 뚜껑돌을 덮었다.
☆옥소대
윤선도가 사투암에서 활쏘기 연습을 하는 표석으로도 이용했던 곳. 거리는 사투암에서 80m
☆ 동천석실
고산 윤선도 선생은 부용동 안산의 산 중턱에 한 칸의 정자를 짓고 동천석실로 이름을 지었으며, 이를 수시로 찾았고 이곳을 부용동 제일의 절승이라고 하였다. 동천(洞天)이란 문자적 의미로는 신선 또는 은자가 사는 곳으로, 그곳은 선경과 같이 수려한 경관을 지닌 지상낙원이며, 문학작품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공간으로 나타나고, 실제 공간과 관련되어 ‘좁은 입구를 통해 들어가게 되면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곳’이라는 지상낙원의 장소로 표현되어 있다.
☆차바위
동천석실 바로 옆에 움푹 패인 바위로 고산선생이 차를 끓이던 장소라 전한다. 바위에는 차상다리를 고정할 수 있도록 몇개의 구멍을 파 놓았다. 이곳에 올라서 앉아 청별항, 격자봉, 곡수당, 낙서재, 낭음계를 보면서 시상을 떠올리고 즐겼다고 한다. 낙서재 주변지형과 유사한 모양을 한 홈의 형태도 이채롭다.
☆용두암
용두암(용두는 도르레의 방언)은 동천석실 옆에 있는 두 개의 바위로 두 바위 사이의 홈에 도르레 같은 시설을 설치하여 통속에 넣은 음식을 줄에 매달아 낙서재 지역으로 부터 손쉽게 날라다 먹었다고 전한다.
☆연지, 석담, 석천
동천석실 정자 오른쪽 암벽 사이에 솟아나는 석간수를 받아 모으는 연지가 있고, 벼랑쪽을 석담, 바깥쪽 연지를 석천이라 한다.
☆ 낙서재
낙서재는 고산 윤선도가 이곳에 유배할 당시 살았던 곳으로 윤선도가 살았을 당시에는 초가였던 곳을 후손이 기와집으로 개축하였는데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다. 이곳은 고산이 거처하며 시를 짓던 산실이다.
☆곡수당
곡수당은 격자봉에서 흐른 afn이 이곳에 이르거 곡수를 이루고 있다하여 붙인 이름으로 윤선도 아들 학관이 휴식했던 곳이다. 담 밑에 흐르는 물은 낙서재 오른쩍 골짜기에서 연못으로 흘러 내리는데 이곳에 ‘일삼교’가 가설되어 있다. 부용동 팔경중 ‘연당곡수’가 이곳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