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집권? 그거 어렵지 않다!
(사회디자인연구소 / 김대호 / 2010-12-23)
이거 농담이 아니다. 낚싯밥도 아니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펌 이후 임의대로 문단을 나누었습니다..)
1. 먼저 전제할 것이 있다. 내가 말하는 진보는 민노당, 진보신당으로 대표되는 정치, 사회 세력이 아니다. 지난 지방선거 때 범야권연대에 참여했던 세력이다. 김대중,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정치, 사회 세력이다. 누가 뭐라 해도 이것이 국민 다수의 진보 개념이다. 진보를 왜곡하고 독점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대한다. (진보와 개혁을 나누어 진보를 좌파로 등치시키려는 자는 무식하거나 사악한 자다)
2. 진보의 화두는 혁신과 통합(연대)이다. 혁신은 크게 이념과 정책(정치노선)의 혁신, 공천제도/경쟁규칙과 당원제도/세력기반(조직노선)의 혁신, 정치적 이미지 내지 매력의 혁신으로 크게 3분야로 나눌 수 있다. 통합(연대)은 ‘국민의 명령’이 지향하는 융합론, 민노당, 진보신당이 중심이 되는 진보대통합론, 빅텐트론, 연합공천, 6.2지방선거식 연합정치(야권 연대), 민주대연합론 등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3. 결론만 먼저 말하면 복지보다 정의가 먼저고, 통합(연대) 보다 혁신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혁신은 깊고 처절한 성찰과 반성을 전제로 한다. 이것이 이뤄지면, 그래서 기존 진보의 철학, 가치, 정책패러다임의 한계를 깨달으면 겸허해지고, 상호 존중에 기반을 둔 통합(연대)도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역인 경우는 통합이 난망하다. 자신이 전적으로 옳았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에게 반성을 요구하고, 정치적 헤게모니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4.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줄기차게 도모한 일은 한마디로 진보의 이념, 정책의 혁신이었다. 이 핵심은 선정의(공평) 후복지론이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확 구부러진 이중왜곡 사회론(보수와 진보의 동시 기형론 또는 우파 가치의 과잉과 좌파가치 과잉의 상호의존론)에 근거한 좌파적 개혁과 우파적 개혁의 병진론이다. 당연히 너무 많은 것을 좌지우지하고, 또 공정과 공평을 구현할 국가(민주주의)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것이 지속가능한 성장과 통합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수백만 swing voter의 결집을 위한 정치적 매력 중시론과 개별 기업 차원이 아니라 국가나 산업적 차원의 동일노동 동일임금론과 정치생태계 담론을 포함한 가치생산생태계 담론도 최근 들어 많이 얘기하고 있다. 어쨌든 이 같은 가설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나는 한국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전근대, 근대, 탈근대로 집약되는 세 개의 시간대(힘) 개념이나 불교의 3독(탐, 진, 치) 개념이 참으로 유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한국 사회는 전쟁, 분단, 휴전, 박정희식 모델의 성공으로 인해, 미처 갚지 못한 민주주의, 공화주의, 시장경제의 외상값이 많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이를 근거로 나는 이념정책 독자개발론=이념정책 오퍼상 탈피론을 주창했다.
그리고 참여정부의 성과, 한계, 오류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진보의 이념정책적 업그레이드의 관건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한국 지식 사회나 정치사회가 하나같이 이론과 실물 간에, 정책과 현실 간에, 국민과 정치사회 간에, 전문 분야 간에 분리 내지 괴리가 심하다는 것도 절감했다. 진보 지식사회 및 언론의 부박함과 좌편향성도 만만치 않다는 것도 절감했다. 이는 대체로 바닥 현실과 풍선효과를 잘 모르고, 1980년대 사고방식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와 같은 인식 내지 깨달음을 깔고서 나는 2008년 이후 많은 공을 들여서 논파하려고 한 담론은 아마도 신자유주의 주적론, 민주당 좌클릭론, 보편 복지 대표 상품론(북유럽 모델론)이 아닌가 한다.
5. 이렇듯 섹시한 얘기 꽤 많이 했지만, 오랫동안 찻잔의 태풍에 불과했다. 물론 시간이 가면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강연이나 발제나 토론 등으로 말할 기회도 날카로운 비판을 받을 기회도 많아졌다. 풍부한 실물 경험에 근거한 내 얘기가 왜 잘 안 먹히는지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내 얘기가 잘 안 먹히는 핵심 이유 중의 하나가,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선명하게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은 바로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
6. 내 얘기의 핵심 중의 핵심은 진보와 보수의 주류적 이념, 정책 패러다임은 유효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생산성 향상, 경쟁력 강화, 자본권 강화(노동유연성 강화, 주주 이익, 경영자 및 종업원 보수 극대화), 신성장동력 확보 등으로 요약되는 보수 패러다임으로도, 복지, 증세, 노동권 강화(자본권 억압, 평생직장 확보), 노사정 코포라티즘, 분권, 신성장동력 확보 등으로 대표되는 진보 패러다임으로도 다수 국민들이 절실히 원하는 괜찮은 일자리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청년 세대와 미래세대에게 너무 팍팍한 세상을 물려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7. 의자를 매개로 한국 사회를 단순화 하면 이렇다. 의자에 앉고 싶은 사람이 10명이 있다면, 현재 한국은 비싼 안마의자(괜찮은 일자리, 신의 직장, 철밥통 등)가 2개가 있고, 나머지 8명은 바닥에 앉거나 나무판자를 깔고 앉을 수밖에 없다. 바닥은 지나치게 차고, 습하고 거칠다. 그러나 유럽은 비싼 안마의자는 없지만 그런대로 앉을만한 의자가 6~7개는 있다. 바닥도 그렇게 차지도 않고, 비교적 푹신하다. 한국 보수의 이념, 정책 패러다임은 금융구조조정에서 잘 나타난다. 주주들과 종업원들의 이익을 극대화 한다. 보수라고 해서 주주들의 이익만 배타적으로 추구하지 않는다.
다만 종업원들의 처우를 높이되-그래서 소수정예주의다-이를 유연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몇 십 퍼센트 감원을 하고, 살아남은 자들과 경영자들에게는 고액 연봉을 지급한다. 경쟁력, 합리화, 유연화, 실력주의, 시장주의 개념은 있지만 이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고용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어쨌든 국가나 산업 차원의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노조만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경영자도 싫어한다. 그리고 신성장동력에 목을 맨다. 중하층 노동자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다. 시장을 너무 과신한다. 하지만 제대로 작동하는 시장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자신의 호주머니로 더 많은 돈이 들어오는 것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으니..... 한국 진보의 이념, 정책적 패러다임은 단순화하면 임금도 높고, 정년도 보장되는 신의 직장을 늘려나가는 것이다. 비싼 안마의자를 늘리고, 보편적 복지를 통해서 바닥을 따뜻하고 푹신하게 만드는 것이다.
8. 물론 한국에서 바닥을 약간은 더 따뜻하고 푹신하게 만드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안마의자를 늘리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내가 복지를 진보의 대표상품으로 삼자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이유는 뒤에서 밝히겠다. 어쨌든 한국 같은 의자-바닥 구조에서는 비싼 안마의자 2개를 놓고 살인적인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사교육, 서열주의, 학벌주의, 고시.공시 열풍, 저출산고령화, 대공기업 생산현장의 구조조정의 어려움과 초고령화 등 수많은 병폐는 바로 여기서 발원한다. 비정규직 문제로 인한 갈등은 대체로 비싼 안마 의자(신의 직장?) 바로 옆에 있는 서 있는 사람들-공공부문 비정규직과 공정 분할 및 외주하청화가 지극히 어려운 완성차 공장의 비정규직 등-의 억울함에서 발원한다. 이들은 자신들도 안마 의자에 앉을 권리가 있다고 절규한다. 차별은 죽음보다도 싫다고 한다.
옳은 말이지만 이런 소박한(?) 소망은 대체로 실현되지 않는다. 이익도 엄청나게 많이 남기고 있고, 유사시 구조조정도 용이한 은행들은 2007년 7월1일 시행된 비정규직법의 취지를 쫓아서 비정규직을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일명 “중규직”으로 전환했다. 중규직은 비유하자면 안마의자가 아니라 그냥 앉을 만한 가죽의자 내지 나무의자 쯤 된다고나 할까? 어쨌든 부족한 의자와 차가운 바닥으로 인한 병폐는 취약한 복지로 인해 더욱 악화 된다. 또한 출발선의 불평등은 이 억울함을 더욱 가중시킨다.
9. 누군가 교육 문제를 얘기할 때, 처음에는 과도한 학생간 경쟁이 문제라고 했다. 이제는 이런 문제의식이 피상적이고, 대체로 배부른 자의 소리라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그래서 이제는 사교육이 잘 먹히는 입시제도와 과도한 서열주의, 학벌사회가 문제라면서 서울대 학부 폐지, 국립대 공동학위제, 각종 선발 방식의 합리화(사교육이나 가족의 영향이 덜 미치게)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일리가 있다. 그런데 내 얘기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간다. 이 문제의 근원은 우리의 생산력(1인등 GDP)과 경제산업구조에 비해 차지하고자 하는 의자가 너무 비싸고, 당연히 그 의자는 너무 적고, 바닥은 너무 차갑고 습하고, 좋은 의자를 분배하는 경쟁 규칙도 합리적이지 않다고!
10. 내 얘기가 새로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나의 현장(특히 국제 비교가 쉬운 자동차 산업) 체험과 수많은 해외 주재원, 유학생들의 체험을 통해서, 또 OECD교육지표나 HEALTH DATA 등을 통해서 우리가 선망하는 직업, 직장의 처우가 우리의 생산력 수준에 비해 너무 높다는 것을 밝힌 것이 아닐까 한다. 또한 우리의 보상체계가 글로벌 경쟁이 벌어지는 분야로 우수한 인재들이 가지 않도록 하는 불합리한 체계라는 것을 밝힌 것이도 추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하나 더 든다면 비싼 안마의자는 우리의 경제산업 구조나 노동문화상 유럽처럼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인들에게는 상식이라고 알고 있다. 왜 그런가?
첫째, 세계화, 지식정보화 시대는 인간의 수명을 제외한 모든 존재들의 수명이 짧아졌다. 필름 산업의 부침과 거의 70년 동안 미국 최대 기업이었던 GM의 몰락을 보면 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업가치의 역전도 그 증거다. 그리고 한국은 유럽 인구 대국(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터키) 보다 해외 무역(국제 경쟁)환경의 영향을 훨씬 더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둘째, 한국은 세계 산업(국제 분업 구조) 지각 변동의 진앙인 중국에 인접한 죄 아닌 죄가 있다. 물론 이는 잘 활용하면 복이다. 어쨌든 이런 지경학적 조건은 격렬한 인력사업 구조조정 압력으로 다가온다. 한편 이 같은 지경학적 조건은 능력과 노력이 뛰어난 자에 대한 유럽 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이는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소득 격차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은 글로벌 시장 경쟁이 일어나는 쪽으로 인재가 잘 가지 않는 희한한 보상체계를 갖고 있으면서도 격차가 크다. 설상가상이다.
셋째, 모두가 선망하는 안마의자를 공급한다고 할 수 있는 대기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유사시 구조조정의 어려움이다. 이는 2001년 대우차, 2009년 쌍용차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적어도 한국 대기업은 정규직에 지급하는 고임금이 아까워서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다.(그런데 진보 학자들의 상당수는 국가가 임금만 좀 보조해 주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나갈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대기업은 공정분할과 외주하청화를 통해서 비정규직 자체를 많이 품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개별기업 차원이 아니라 국가나 산업차원의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실현되지 않으면 대기업 고용비중의 축소와 생산현장의 초고령화는 필연이다. 이는 보편적 복지로도 결코 반전시킬 수 없다. 1인당 GDP의 1~1.5배를 받는 노동자와 3~4배를 받는 노동자를 다 만족시키는(구조조정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드는) 보편적 복지는 지구상에 없다.
넷째, 한국 노조가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익을 추구하는 것처럼 한국의 정부와 금융도 그에 못지않다. 노조도, 정부도, 금융도 하나 같이 거칠고, 심모원려하지 않는다. 단적으로 노조의 실력과 행태는 2005년 2월1일 민노총(이수호 집행부)의 노사정위 복귀를 반대하는 일부 대의원들에 의해 단상에 시너가 뿌려지는 등 폭력 사태로 임시대의원 대회가 무산 된 사례를 보면 안다. 이 날 한 대의원이 “비정규직, 중소영세 노동자들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양보가 필요하다면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자 “너, 이 새끼!”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집어치워”라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런 정서는 그날의 폭력사태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십 명의 강단 좌파들은 (민노총 의 우경화를 막는다고) 이런 극단적 폭력 행동을 지지, 옹호하였다. 6년이 흘렀지만 얼마나 달라졌을까? 정부와 금융에 대해 말한다면, 나는 잘만 구조조정 했으면 지금의 현대기아자동차만한 규모(연산 400~500만대)로 성장할 수도 있었을 대우자동차를 정부, 금융, 김우중, 노조가 분탕질을 쳐서 GM에 헐값에 넘기지 않으면 안 되는 사태가 연출되는 것을 보면서 이들의 무뇌, 무책임을 절감했다.
물론 나는 한국 사회의 역량상 GM매각은 차선 내지 차악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를 지지했다. 이는 내 책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에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정부와 금융이 유능했으면 재벌급으로 성장할 수도 있었을 많은 기업(의료기 업체 메디슨과 디지털 음악시장의 선두주자 소리바다) 등이 중도에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도 이를 절감했다. 나는 한국의 대표적인 벤처 기업인 메디슨 이민화 사장의 절규를 잊을 수 없다.
“실패한 경영에서 얻은 교훈은 분명하다. 차입경영을 하지 말라. 주거래은행에 절대 담보를 주지 말라. 주거래은행을 선택할 때는 기업금융에 노하우가 풍부한 은행을 선택하라.…… (부도가 나고) 정말 황당하고 억울했다. 어떻게 주거래은행이 그럴 수 있는가?” “(어음 40억 원어치를 돌발사태로 막지 못한 상황에서) 하나은행이 안 도와 준 이유는 간단하다고 본다. 이미 담보를 100% 갖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리스크를 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음날 증자대금 200억 원이 들어오는 만큼 리스크가 없다고 설득했지만, 안 먹혔다.…… 지난해 메디슨에 들어온 매각대금이 1,000억 원이 넘었다. 그런데 그 기간 중 제1금융권이 회수해 간 것이 1,000억 원이 넘는다.…… 우리가 자구노력을 통해 확보한 현금을 주채권은행을 비롯한 제1금융권에서 전부 회수해 가 버린 것이다. 숨통을 틔워 주지 않았다.”(월간중앙(2002년 3월))
단기유동성 위기만 넘기면 충분히 황금알을 낳는 거위일지라도, 자신의 선순위채권만 회수할 수 있다면 거위를 죽여 헐값이 된 고기를 파는 쪽을 택하는 것이 한국 은행의 주도세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리스크가 거의 없는 가계대출만 하면 딱 맞을 노하우와 기업문화를 가지고 기업 금융에 나서고, 그런 은행에 메디슨 같은 기업이 의존한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노조와 정부와 금융이 하나같이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익을 그것도 거칠게 추구하면 기업은 보수적, 방어적 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문제(보수적, 방어적 경영)가 주주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선동하는 자들은 정부, 금융, 노조의 어리석음을 몽땅 다 주주이익 중시주의 때문이라고 덮어씌우고 있다. (어떤 사람은 취약한 재벌 지배구조를 너무 급격히 개혁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나는 이 견해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섯째, 한국은 OECD 주요국에 비해 전반적으로 물적 토대가 대단히 취약하다. 한국은 미국처럼 달러 발권 기능이 없다. 빼어난 교육시스템도 벤처기업을 성장 발아시킬 환경도 없다. 해외에서 일자리(영어 강사)를 많이 만드는 영어도 없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처럼 (사실상의 유전이나 다름없는) 농업과 관광도 없고, 영국 노르웨이처럼 진짜 유전도 없다. 핀란드 스웨덴처럼 수력과 임업과 너른 땅도 없다. 일본처럼 100년, 200년 된 낡은(?) 상품을 소비하는 독특한 시장=소비자층이 그리 두텁지 않다. 한국에는 대기업의 최신 상품이 싹쓸이 하지 못하는 시장으로 대표적인 것이 떡집과 음식점이다. 그래서 잘나가는 떡집과 음식점은 2대, 3대, 4대를 물려가면서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한국에서 시장은 너무 작다.
11. 비싼 안마의자가 늘어나지 않는 것은 국가와 시장과 사회가 잘 작동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지만, 적어도 신자유주의와는 별 상관이 없다. 바닥이 너무 차가운 것도 신자유주의와 상관이 없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가 신자유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한국 같은 경제사회 구조에서 인력사업 구조조정 내지 유연화를 막을 수 없다. 이는 단기 수익 극대화주의 때문도 신자유주의 때문도 아니다. 국가가 금융을 움켜쥐고, 주요 기업의 대주주로서 주요 기업을 쥐락펴락하던 박정희 시스템을 되살리면 많은 문제(유연화, 주주이익 중시주의 등)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지만 이는 자본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주의를 도입하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항상 느끼지만 실사구시에 게으른 진보는 실력(리더십)의 문제를 구조나 이념의 문제로 착각하고, 구조나 이념의 문제를 실력(리더십)의 문제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12. 우리가 선망하고 당연시 하는 의자가 비싼 안마의자가 된 것은 우리 국민들과 노조가 욕심이 지나쳐서가 아니다. 원래 개발도상국은 발전전략상 수출부문이나 지식노동에 대한 보수가 상대적으로 높기 마련이다. 또한 부인은 애키우고, 남편은 나가서 일하는 가족 내 분업 구조상, 일하는 사람은 더 많이 일하고, 당연히 더 많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4인 가족이라면 가장이 1인당 GDP의 2~2.5배를 받는 것이 정상이다. (GDP의 50~60%가 노동=피용자 보수와 자영업자의 노동에 대한 보수니까 2~2.5배가 정상이다. GDP의 4배가 정상이 아니다) 그러나 부부가 둘 다 일하는 것이 보편화 되면 일하는 사람은 1인당 GDP의 1~1.5배가 정상이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 특히 여성 취업률이 높은 북유럽 국가들의 임금은 30~40대 노동자의 상당수가 이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는 <OECD교육지표>의 교사 임금 수준이 증명한다. 당연히 노동시간도 짧다. 노동의 양.질에 상응하는 처우 체계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13. 지금 한국에서 복지가 첫째가는 시대정신이라고 부르짖는 사람들은 사실상 비싼 안마의자 당연시 하면서 이를 늘리려는 헛된 꿈을 꾸고 있다. 동시에 차갑고 습한 바닥에 앉는 8명을 위해 바닥을 좀 따뜻하게, 푹신하게 만들려고 한다. 후자는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중심은 그것이 아니다. 상벌체계를 합리화 하여 인재, 권력, 부 등 소중한 사회적 자원을 적재적소에 배분한다는 원칙 하에서 비싼 안마의자 2개를 중장기적으로 유럽인들이 앉는 보통 의자 4~5개로 바꿔야 한다. 이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같은 무식한 대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벌체계를 합리화 하면(국가나 산업 차원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시, 각종 특권, 특혜의 합리화, 불로소득 환수 등 조세 개혁, 유연안정성 시스템 등)기업의 신성장동력도 살아나고, 고용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들어 부와 일자리의 총량이 늘어나기에 기득권의 훼손이 그리 크지 않다. 무엇보다도 사회 전반에 만연한 억울함이 감소한다. 물론 재정구조를 합리화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여 그런 의자 1~2개를 추가하고, 전반적으로 바닥을 좀 더 따뜻하고 푹신하게 만들어야 한다. 요컨대 한국의 유럽화는 복지망의 확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1차 분배 구조인 일자리, 소득과 보상 체계에서도 거대한 변화를 동반해야 한다. 내가 복지가 아니라 정의와 공평이 먼저라고 얘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편 정의와 공평은 단지 일자리, 소득(보상체계), 세금, 재정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은 제대로 작동하는 국가와 민주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14. 내 얘기는 당장 신의 직장이나 철밥통을 깨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런 좋은 의자를 구조적으로 늘릴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일자리, 복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난 지방선거때 야권연대의 깃발이 민주당 지도부로 하여금 경남에 대해 공천을 안 해도 되는 명분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민노당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만약 야권연대의 깃발이 없었으면 민주당이나 민노당은 무조건 경남에 공천을 했고, 무난히 같이 망했을 것이다. 나는 비싼 안마의자를 결코 늘릴 수 없다는 컨센서스가 형성되면, 그래서 눈이 위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바닥에 앉을 수밖에 없는 청년세대와 미래세대를 향하면, 대기업, 공기업, 공공부문 노조에서 높은 임금인상을 쟁취하지 못한 지도부가 죄인이 되고 탄핵되는 풍토는 좀 약화 되리라 생각한다. 나는 한국 사회가 어디 쯤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안다면, 비싼 안마의자에 앉은 행운아들에 대해서도 좀 더 긴호흡으로 좀 더 현실적인 대책(기득권 존중)을 내 놓을수 있지 않을까 한다. 너무나 억울하지만, 기득권을 일정 정도 존중하지 않으면 청년세대와 미래세대는 기회 자체를 가질 수 없다.
15. 나는 진보가 기존 패러다임의 한계를 인식하고, 자신의 기득권을 약간이라도 양보하여 수십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대안을 내 놓는다면, 막말로 “비정규직, 중소영세 노동자들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양보가 필요하다면 이를 받아들이는” 기적을 연출한다면, 진보의 집권은 따 놓은 당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가진 것 약간을 내 놓는 기적을 통해서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거기다가 토건위주의 재정구조를 복지 위주로 바꿔서 또 수십만 개, 토지관련 불로소득 환수율을 높이고 각종 세금 감면을 없애서(사실상 증세로) 또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또 불공정 거래를 타파하고, 글로벌 경쟁 영역으로 인재들이 몰려가는 동기부여(상벌) 체계를 만들어 또 수십만개를 만들어내면 진보가 집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아마도 99%의 사람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약간이라도 내 놓고 미래 세대와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적이 가당치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예상한다. 그래서 진보의 집권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이리라.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진보의 위기도, 보수의 위기도, 정당(연대)의 위기도 단순화 하면 자기가 가진 부당한 기득권을 거의 내 놓지 않고 남의 것을 빼앗아서 뭔가를 해보겠다는데 있는 것 때문 아닌가? 진보의 집권? 그거 어렵지 않다. 보수도 마찬가지다. 국민에게 감동과 기대를 주는 혁신을 먼저 하면 되니까!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첫댓글 음.... 벌써부터 시동이 걸리나보네요. 그런데 참 질기다는 느낌이...
헝그리 울프님!요즘 두드러진 활약상~계속되었으면 합니당~^^^(바쁜 와중에서도)
보수가 한나라당? 동의 절대 못합니다. 친일민족반역자들과 쿠테타로 민주주의를 짓밟고 수많은 국민들을 죽인 군부정권잔존세력이 보수라? 악독한 매국Gsaekki족속들이 보수 맞습니까?
'자기가 가진것 약간을 내놓는 기적을 통해서 수십만개의 일자리를 창출' 이게 참 어려운거죠 ㅎㅎㅎ 긴글 쓰셨지만 결국 세상사람들이 모두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세상이라면 뭐가 문제일까요. 문제가 있기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