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날마킹 스타일로 흉내내서 적어봤습니다.
3월 1일. 겨울 내내 기다리던 K리그 2018시즌이 시작됐다.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는 우승후보로 꼽히는 전북과 울산의 빅매치가 열렸다. 두 팀 간의 경기가 미디어와 축구팬들의 가장 큰 관심을 끌었지만 오늘 있었던 3경기 중 가장 신선하고 충격적인 경기를 보여준 팀은 전남이다. 지난 시즌 전남은 '잔류 당했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엉망인 경기력을 보였었고 오늘 수원전에서도 고른 영입으로 스쿼드의 두께를 두텁게 한 수원의 승리가 점쳐졌다. 하지만 전남은 신임 유상철 감독의 동계훈련 기간을 지나면서 몰라볼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 확실한 역할 배분
지난 시즌 노상래 감독 하의 전남은 자일, 허용준 등 재능 넘치는 공격자원들을 갖고 있었지만 선수들의 수비 조직력과 선수들의 수비에 대한 적극성은 프로답지 않았다. 중앙미드필더 한찬희를 어울리지 않는 측면에 배치하기도 했고, 유고비치의 역할은 공수 모두에서 확실치 않았다. 유상철 감독은 한찬희를 선수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포지션에 배치하고, 지난 시즌 다소 공격적으로 뛰는 비중이 높았던 유고비치를 수비형미드필더로 확실히 못 박았다. 박준태로 하여금 2선에서 공격을 이끌게 하였고 수비 시에도 3선까지 내려오게 하지 않았다. 2선에 머물면서 공격전환 시 공격을 진행하는 역할을 확실하게 맡겨둔 셈이다. 하태균이 원톱에 섰고, 완델손과 박대한을 양 측면 미드필더로 기용했다.
# 박준태와 유고비치
전후반 내내 전남의 중심을 잡아준 선수는 공격형미드필더 박준태와 수비형미드필더 유고비치다. 박준태의 피지컬 컨디션은 좋아보였다. 부드러운 턴동작과 드리블로 수원 선수들을 따돌렸고 침착하고 노련한 플레이로 수원의 압박을 빠져나왔고 경기를 조율했다. 양측면에서의 윙어, 사이드백들과의 연계도 훌륭했다. 유고비치는 오늘 가장 환상적인 선수였다. 수원의 볼란치인 최성근과 김은선을 압박해 전진패스가 나가기 어렵게 만들었고, 수원의 패스를 모조리 끊어냈다. 공격진영으로 전진했을 때는 수비전환 시 수원의 공격을 미리 눌러줬다. 또한 풀백 선수들을 서포터하며 공격전개를 부드럽게 하는 데에도 일조했다. 덕분에 기세에서 약간 밀리는 듯했던 전반 초반부터 수비가 단단해진 한편 간간히 순도높은 공격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고 경기를 박빙으로 끌고 갈 수 있었다.
# 데얀을 살리지 못한 수원
데얀은 전성기에 비해 활동량이나 속도가 떨어졌지만 여전히 한방을 갖고 있는 선수고, 발밑으로 볼을 주면 주변을 감각적으로 살려줄 수 있다. 다만 지난 시즌 수원의 스트라이커 조나탄처럼 상대 배후공간을 깊숙히 침투하기에는 스피드와 힘이 부족하다. 수원은 데얀을 살리기 위해서는 중앙에서 창의적인 연계를 만들어야 하고, 측면에서의 크로스도 정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수원은 후반 중반까지 두 가지 모두 하지 못했다. 전반 초반 윤용호가 창의적인 스루패스로 데얀에게 한번 완벽한 일대일 기회를 만들어줬을 뿐이다. 이후 전남은 데얀에 대한 경계 수위를 높였고 염기훈이 이기제의 오버래핑을 살려주며 크로스가 살아나왔지만 정확성이 떨어졌다.
# 바그닝요의 변칙적인 활용
데얀이 배후공간 침투에 약점을 가졌기 때문에 수원은 다른 방법을 택했다. 오른쪽 윙어인 바그닝요를 공격 시 스트라이커처럼 전방에 위치시키고 전남의 뒷공간을 노리게 했다. 전남 최재현이 몇 차례 바그닝요를 놓쳤지만 전남의 센터백 양준아의 커버링과 협력수비가 좋았다. 바그닝요는 드리블 돌파도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고 결국 후반 15분 임상협으로 교체되었다. 가솔현은 가솔현대로 데얀은 마크했고, 공중볼을 확실하게 따냈다.
# 잘 준비된 피지컬
전남은 개막전이었지만 이미 피지컬적으로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 선수들의 몸은 가벼웠고, 또 강했다. 박준태와 한찬희가 수원 선수들의 몸싸움을 여러 차례 이겨내고 공격을 전개해 나갔다. 또한 컨디션이 우려되었던 하태균도 빠른 시간 안에 폼을 끌어올린 듯 하다. 전방에서 양측면으로 활발하게 움직여 주었고, 구자룡과 조성진을 상대로 승률 높은 포스트플레이를 펼쳤다. 수원의 두 센터백은 공중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고, 이는 수원의 수비라인과 경기흐름을 밀리게 하는 원인 중 한 가지로 작용했다. 설상가상 수비형미드필더 주장 김은선이 전반 30분 부상으로 조기 아웃되었고, 조원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조원희는 박준태, 한찬희, 유고비치와의 경합 장면에서 힘겨워 하는 모습을 노출했다.
# 후반 흐름을 주도하기 시작한 전남
후반 15분 경까지 전반과 흐름이 비슷했지만 전남 박대한 대신 이유현이 교체투입되면서 후반 25분 경까지 전남이 흐름을 주도했다. 이유현은 광양제철고 시절부터 사이드백 포지션을 전문적으로 소화한 선수였지만 이날 유상철 감독은 그를 윙어로 활용했다. 조금 의아한 용병술이었지만 불과 2~3분 만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유현은 빠른 발놀림을 선보이며 크로스와 슈팅을 시도했고, 볼도 잘 빼앗기지 않았다. 박준태와 협력해 수원의 측면압박을 무력화시켰고, 이는 전남이 흐름을 주도하는 데 있어 좋은 영향을 끼쳤다. 전반부터 질높은 롱패스를 성공시켰던 양준아의 공로도 인정받아야 한다. 이 시간동안 전남은 구자룡의 핸들링에 의한 PK를 선언받지 못했지만 70분 얻어낸 프리킥을 완델손이 성공시키며 성과를 얻어냈다. 비록 이기제의 머리를 맞고 굴절된 행운의 골이었지만 이는 전남이 공격을 주도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행운이다.
# 김종우 투입으로 반전
수원은 실점 이후 조원희까지 과감히 공격진영으로 전진하며 전남을 밀어붙혔다. 그리고 김종우가 투입되면서 공격의 제대로 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김종우는 빠른 패스템포와 볼키핑능력을 보이며 수원의 공격에 창의성과 활기를 불어넣었고, 윤용호는 물론 데얀의 플레이스타일도 살아났다. 패스가 돌기 시작하자 전남 수비진은 뒷걸음질 쳤고, 볼이 중앙을 거치면서 전남의 수비가 중앙으로 밀집됐다. 그로 인해 측면에 공간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전방에 위치해 있던 염기훈이 왼쪽 측면에서 박스쪽으로 접근해 오던 이기제를 향해 패스를 했고 이기제가 강력한 슈팅을 꽂아넣었다. 이로써 승부는 원점이 되었다.
# 극장
후반 32분 하태균 대신 투입된 신인 김경민이 괜찮은 모습으로 고군분투한 가운데 후반 44분 이유현이 재치있는 플레이로 코너킥을 얻어냈다. 완델손이 코너킥에 나섰고, 완델손의 날카로운 왼발킥이 문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정확한 타이밍에 힘있는 움직임을 가져갔던 최재현이 그 킥을 자신의 머리로 기술적으로 돌려놓았고 극장골을 연출했다. 전남은 수원의 공세를 막아내는 한편 끝까지 완벽한 역습 플레이를 만들어 냈고 비록 골을 성공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사진출처 = K리그
# 결론
수원은 핵심 무기인 데얀을 살리지 못했고,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짐승같은 오버래핑을 보여주던 크리스토밤이 전남의 몸싸움에 밀린 것은 물론 오버래핑도 억제 당했다. 반면 전남은 선수들의 숨겨져 있던 장점을 분명하게 끄집어 내는 데 성공했고, 선수에게 맞는 역할 분배로 팀으로서의 완성도를 높였다. 전남의 윙어들, 완델손, 박대한, 이유현 모두 사이드백을 뛰던 선수들이었다는 건 오늘 경기의 특이한 점이다. 유상철 감독의 전술과 선발라인업, 교체카드, 그리고 그들의 피지컬 컨디션까지 모두 잘 준비됐다. 비록 필드골로 경기를 이긴 것은 아니지만 지난 시즌과 확연히 달라진 전력을 보여줬고, 공격을 잘 끌고 간 덕분에 얻은 세트플레이 기회들로 골을 성공시켰다. 감독으로서 완벽한 승리를 거머쥔 유상철 감독이 다음 라운드에서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지 기대된다.
첫댓글 이유현은 애매한 풀백자리보다 움직임이 프리한 2 3선에 뛰는게 낫겠다 싶더군요
오늘 일단 좋더라구요. 계속 윙으로 뛸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지난 시즌보다 기량이 향상된 것 같은데 풀백에서 뛰는 것도 한번 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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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일단 체력, 수비전환, 압박이 되니까 수비안정화에는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Hunt_K 그래도 몸싸움 상황에서는 집요하게 싸워주더라구요. 몸으로 틩겨내면서 전진하던 장면들은 굉장히 의미있는 장면이었던 것 같고, 수비할 때 수싸움만 좀더 좋아지면 진짜 클래스가 확 달라지는 건데 그게 오늘 좀 아쉽긴 했네요. 그래도 옆에 유고비치랑 유상철 감독한테 보고 배우면 늘지 않을까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좋은글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