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임씨 (長興任氏) 시조 (始祖) : 임호 (任顥)
공(公)은 중국 소흥부 출신이시다.
당시 중국의 정세가 군소열국(群小列國)이 정립하여 국난을 당하게 되자 고려가 건국하여 비교적 국기가 안정되어 평화를 유지하고 있던 정종(靖宗) 연간인 서기 1035-1046년경에 고려국에 오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공은 당시 우리나라 남단인 현 장흥군 관산면 (당시는 정안현)의 대안에 있는 임씨도(任氏島-돌의도)에 일시 정박하였다가 관산면 천관산 아래 당동에 정착 세거하였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장흥(長興)이라 하였다.
공은 상서공부원외랑(尙書工部員外郞.정六품)을 역임하시고, 태자태부 (贈太子太傅)에 증직되셨으며,
배위는 양원군대부인 이씨(陽原郡大夫人 李氏)다.
상서공부원외랑은 중앙관청인 6부의 하나로 이 부서는 산림천택 공장 영조의 일을 맡은 곳으로 원외랑은 정6품의 관직인데, 시조공께서 중국에서 건너와 전라도 변방인 정안현에 임씨가계를 일으켜 세웠을 뿐만 아니라. 바로 당대에 중앙정부의 주요관청인 상서6부중 공부에까지 나아가 정6품의직인 원외랑에 올랐다는 것은 당시 임호 시조님의 학문적 기반이 상당했을 뿐만 아니라 지방호족으로 짧은 기간에 크게 성세하였음을 나타내는 증거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종인들을 만나, 인사 를 할 때 태자태부공 00세손입니다, 고 소개하므로 써
항렬을 알게 되게 되며, 백대지친은 같은 일가로서 친목을 도모하면서 화목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후에 아들 정경공(貞敬公) 임의(任懿)가 문종에서 예종에 이르는 6조에 걸쳐 벼슬이 수태위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守太尉 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 판상서이부사로 수상(首相)직도 맡았고 상주국이 되고 좌리공신에 올랐으며, 손자인 임원숙(任元淑)은 중서시랑평장사판호부사로, 임원후(任元厚)는 벼슬이 문하시중에 오르고 정안공에 봉해졌고, 임원준(任元濬 : 일휘 任元順)은 중서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판형부사 등을 역임하여 손자 3형제 모두 재상(宰相)반열에 올라 고려 재상지종(宰相之宗)의 가문이
되었다.
관산읍은 고려 때 정안현(定安縣)이었는데 고려 제17대 인종(仁宗) 왕비인 공예태후임씨
(恭睿太后任氏) 의 탄향지(誕鄕地)라 하여 장흥부(長興府)로 승격되었다.
고려대학교 박용운 교수의 논문에 의하면,
정안임씨는 문종조부터 예종조에 걸쳐 크게 활약하는 임의(任懿) 때에 와서유력한 가문으로 등장하는 집안이다.이 집안의 선세(先世)에 관해서는 임의 의 아버지 호(顥. 공부원외랑. 정6품)만이 전하여 지고 있어서그 자세한 내용은 잘 알 수 없는데, 다만 임씨가 정안현의 제일 토성(土姓)이며, 또 이곳이
후삼국시대 선종(禪宗) 9산의 하나인 가지산의 소재지요. 일찍부터 중국과 교류가 활발하였던
지역인 점으로 미루어 호족적 전통(豪族的 傳統)과 문화적 유산(文化的 遺産)을 아울러
지닐 수 있었으며, 그것이 이들의 진출에 배경이 되었을 것이라는 연구는 이미 되어 있다. ...
고 논술하고 있다.
참고문헌 : 기미대동보, 임씨세덕록, 정경공묘지명, 임충빈묘지명,고려경벌정안임씨
고려사회와 문벌귀족가문 (박용운 박사). 을유대동보(200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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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흥임씨 (長興任氏) 시조 (始祖) : 임호 (任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