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남파랑 길> 제8차, 하동 남해대교에서 남해지나 삼천포대교까지.
2023년 10월 넷째 주 주말인 10월 27일(금요일) 29일(일요일)까지 경남 하동군 금남면 남해대교에서 어딜 가나 아름답고 역사가 서린 남해 바닷가를 거쳐 삼천포 대교까지 답사할 예정입니다. 서해 해남의(땅끝)에서 해 뜨는 동해(부산 오륙도)까지 아름다운 바다 다도해와 한려수도를 바라보며 걸어가는 이번 기행은 신정일의 <신 택리지>를 중심으로 역사와 문화, 그리고 문학의 현장들을 답사하면서 실시 될 예정입니다
하동의 남파랑 길,
신라 때 다사군多沙郡이라 부르다가 신라 경덕왕 때 하동으로 바꾸었다. 《세종 실록지리지》에 “땅이 기름지고 기후는 따뜻하다”라고 기록된 하동의 당시 호수 는 346호이고 인구는 1,108명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정양의 기문에 “산을 지고 바다에 임했다”라고 기록된 하동은 조선 초기의 학자였던 정인지의 고향이다. 정예는 그의 시에서 “1면은 넓디넓은 창해와 임했고, 3면엔 높고 높은 벽산이 솟아 있다”라고 했는데,
남해의 남파랑 길,
하동 동쪽에 자리한 남해南海는 본래 바다 가운데 있던 섬이었다. 신라 신문왕 때 처음으로 전야산군轉也山郡을 설치하였고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남해현은 바다 복판에 있는 섬으로서 진도(珍島), 거제(巨濟)와 함께 솔밭처럼 우뚝 하다. 토지가 비옥하고 물산이 번성하여 국가에 도움이 되는 것이 적지 아니하다. …… 이 고을은 하늘 남쪽에 있는 훌륭한 지역으로서, 해산(海産)의 풍족함과 토산(土産)의 풍부함이 나라 쓰임에 필수가 된다. 그리고 진도와 거제를 부흥하는 것도 또한 기대할 수 있다.
정이오의 기문에 위와 같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남해는 뭍에서나 바다에서나 모든 물산이 풍부해서 왜구의 침략만 없다면 사람들이 살기에 모자람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 남해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 본 섬이다. 1592년에 시작된 임진왜란이 1598년 8월 전쟁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 죽으면서 전쟁은 막바지에 이른다.
왜장 고니시 유끼나는 명나라 장수 유정에게 뇌물을 바쳐 육로를 열었고 명나라 제독이었던 진인에게 뇌물을 바쳐 바닷길을 열어 달라고 한다. 그 때의 상황을 이순신은「난중일기」에다 이렇게 적었다.
“11월 14일 / 왜선 두 채가 강화할 목적으로 작은 배를 타고 도독부로 들어와서 돼지 두 마리와 술 두통을 도독에게 바쳤다고 한다.”
“11월 15일 / 왜선 두 채가 강화하는 일로 두 번 세 번 도독의 진영으로 들어왔다.”
“11월 16일 / 왜선 세 채가 말과 창, 칼 따위를 도독에게 뇌물로 바쳤다.”
칼까지 뽑아 들고 바닷길을 열 것을 강요하는 진인에게 왜구에게는 바닷길을 절대로 열어줄 수 없다고 설득한 이순신은 11월 19일 왜구와 마지막 결전을 벌린다. 그 싸움이 노량해전이었다.
싸움을 이틀 앞둔 11월 17일에 기록한 글은 이렇다.
“11월 17일” 어제 복병장 발포, 만호 소계남과 당진 포만호, 조효열 등이 왜놈의 중선 한 채가 군량을 가득 싣고 남해로부터 바다를 건너는 것을 한산도 앞 바다까지 쫓아가니 왜적들은 언덕을 의지하고 육지로 도망갔고 잡은 왜선과 군량은 명나라 군사에게 빼앗기고 빈손으로 돌아와 보고했다.“
1598년 11월 19일 충무공 이순신은 노량해전에 나아가 손수 북채를 쥐고 북을 두드려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다가 왜구의 유탄에 맞아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그때 이순신의 나이 쉰 넷이었고 그가 이끌었던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함대 150여 척은 왜선 500여 척을 불사르거나 바다 밑에 잠기게 하였다. 선조실록 무술 11월 27일자 기사는 노량 앞 바다의 싸움을 이렇게 그려 놓았다. “왜적의 송장과 깨어진 뱃 조각, 찍어진 옷자락들이 바다를 뒤엎었고 바닷물은 피로 물들었다”
그 처절한 싸움이 끝난 뒤 이순신의 시신은 노량 앞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관음포에 며칠 동안 모셔졌다가 고향인 충청도 아산으로 갈 때까지 노량 나루(현 충렬사)에 가매장되었다.
그때부터 관음포는 “충무공의 목숨이 이곳에서 떨어졌다”고 하여 이락포李落浦라고 바꾸어 불렀고 그 뒷산도 이락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시신이 묻혔던 자리에 빈 봉분을 짓고 사당을 세운 뒤에 충렬사라고 이름 지은 뒤 1973년에는 사적 233호로 지정하였다. 9173년에 남해군 설천면 모량리와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 노량해협을 잇는 남해대교가 생기면서 남해군은 섬 아닌 섬이 되었고 뒤를 이어 삼천포 대교가 생겼다.
한편 남해는 고려 때부터 유배지로 알려진 곳이다. 조선 초기에 안평대군, 한석봉, 양사언과 함께 4대 서예가로 알려진 자암自菴김구는 기묘사화로 인해 유배를 와서 경기체가인 〈화전별곡花田別曲〉을 남겼고(화전은 남해의 옛 이름), 조선 영조 때 사람인 유의양은 1년 남짓한 유배 기간에 한글로 남해의 풍물을 묘사한 《남해견문록南海見聞錄》을 남겼다.
그리고 남해에서 1킬로미터쯤 배를 타고 건너면 닿는 자그마한 섬 노도로 유배를 왔던 사람이 서포 김만중이었다. 1679년(숙종 5)에 다시 등용되어 대제학, 대사헌에 이르렀으나 1687년(숙종 13) 경연에서 장숙의張淑儀일가를 둘러싼 언사言事로 인해 선천에 유배되었고, 이때 《서포만필》 을 지었다.
김만중은 “사람의 마음은 입에서 나오면 말이 되고, 말이 절주(節奏, 리듬)를 가지면 문학 작품이 된다.”라고 하면서 조선 사대부들의 중국 문화 추종과 한문학 모방을 질타하였다.
우리나라 시문은 우리말을 버리고 다른 나라의 말을 배우므로 설사 십분 비슷하다고 해도 그것은 앵무새가 사람 말을 하는 짓이다. 일반 백성이 사는 거리에서 나무하는 아 이나 물 긷는 아낙네가 “아아” 하면서 서로 화답하는 노래는 비록 천박하다고 하지만, 만일 진실과 거짓을 따진다면 참으로 학사, 대부의 이른바 시(詩)니, 부(賦)니 하는 것들 과 함께 논할 바가 아니다.
김만중은 많은 시문과 잡록 그리고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구운몽》, 《사씨남 정기》 등의 소설을 지었다. 《서포만필》에서는 한시보다 우리말로 쓰인 작품의 가치를 높이 인정하여 정철의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들면서 우리나라의 참된 글은 오직 이것이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한편 노도와 가까운 양아리의 두모와 두모리 사이에 있는 바위를 서불제라고 부른다. 앞면에 화상문자(畵象文字, 한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문자)로 글을 새 겨놓았는데, 전설에 진시황에게서 삼신산 불로초를 구하라는 명령을 받은 서복(서불)이 동남동녀童男童女5백 명을 거느리고 가던 중 이곳 명지를 지나다가 자신 의 자취를 후세에 알리고자 기록을 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초대 천황인 진무神武가 되었다고 한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화상문자라고 하며, 고고학 연구에 귀중 한 자료가 되고 있다.
1973년에 남해군 설천면 모량리와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 노량해협을 잇는 남해대교가 완공되면서 남해군은 섬 아닌 섬이 되었다. 남해군에 자리한 금산에 보리암이 있다.
신정일의 <신 택리지> 경상도 편에서
그 아름다운 상주해수욕장, 독일인마을과 물건리 방조림, 죽방혐, 남해와 삼천포를 잇는 삼천포 대교를 걸어갈 이번 남파랑 길에 참여를 바랍니다.
1. 일시: 2023년 10월 27일(금요일)-29일까지(일요일)
2. 출발 시간 및 장소: 서울 저녁 7시, 양재역 12번 출구 서초구청 앞
전주 월드컵경기장 싸우나 입구, 밤 9시 40분,
3. 참가비: 20만원
4. 어디로 가나요: 남파랑 길 47구간에서 35구간까지.
하동군 금남면 남해대교에서 남해 충렬사, 이락포(이순신이 순절한 곳,) 남해 다랭이 마을, 앵강만, 남해 보리암, 상주해수욕장, 미조포구, 독일인 마을, 물건리 방조림, 죽방렴, 삼천포 대교,
5 안내 도반. 신정일(문화사학자, 우리 땅 걷기 대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신 택리지( 경상도의 저자)
6. 신청방법: 댓글로 신청하고 참가비 입금해야 완료(코로나 접종을 마친 사람)
7. 참가비 입금계좌: 국민은행 754801-01-479097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8. 참가비 입금 후 취소 시 환불 규정
(1) 행사일 5일전 인지: 은행 수수료를 공제 후 전액 환불
(2) 행사일 4일전부터 3일전까지: 참가비 50%를 공제후 환불
(3) 행사일 1일전부터 당일까지(미참가 포함): 환불액 없음
위와 같이 행사 참여 취소 시 행사비 환불을 명심하시어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회비를 입금하시고 대기자로 기다리셨다가 참여를 못하시는 회원님들의 불편함을 없게 하고자 함이오니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9. 문의전화: 010-9144-2564
10. 주의사항: 모든 걷기의 안전에 대해서는 참석자 본인이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카페나 진행자는 안전사고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첫댓글 임영혜 안성 출발
박현임, 신종인/ 죽전
장상수/ 양재
손남순/ 전주
이동심 / 전주 /
요번참에 가야겠네 / 전주요/ 남자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10.06 11:28
참석합니다./이광호/양재
참석합니다/이대주/남/양재
정유순/양재
참가/임영남/여/전주.
참가합니다 한차수/남.정숙녀/여/양재탑승
참가합니다. 조옥희 전주 경주걸로대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가합니다
7차걸로 대체해주세요
전주 출발
참가 함니다/조재훈/남/양재
참가/이미경/여/전주
김정주 / 양재 / 참가합니다
참가합니다/고문규/양재
참가/강선익,조창숙/여/양재
집안일로 이번기행은 취소합니다. 다음기행에 뵐께요.
혹시 섬진강 하구인 망덕포구는 안 가는지요?
가보고 싶은 그 곳
지난 기행에 빠뜨려서 무척 아쉬웠어요
토요일 아침에 망덕포구 답사 할 예정입니다.
참가합니다/한석희/양재
참가합니다/유성/정종진 (태국여행귀국으로) /참가비송금완료
참가합니다/전주/장유정
참가합니다/고영오,서순옥/양재
참가합니다/박양덕/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