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길 1코스인 백악산코스를 계획하고
광화문에서 박대장과 만나 창의문(자하문) 까지 버스로 이동, 중국인이 운영하는 중국식 만두로 점심을 해결하고
성곽 탐방을 시작할려 했지만 창의문 입구에서 막힌다.
오늘까지 성곽 보수 공사로 출입금지다.
할수없이 뒤돌아 인왕산 코스로 전환한다.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태조 5년(1396), 백악(북악산) · 낙타(낙산) · 목멱(남산) · 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개축하였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1396~1910, 514년) 도성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북쪽에서부터
숙정문 · 흥인지문 · 숭례문 · 돈의문이며 4소문은 서북에서부터 창의문 · 혜화문 · 광희문 · 소의문이다.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되었다. 또한 도성 밖으로 물길을 잇기 위해 흥인지문 남쪽에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을 두었다.
사대문이 갖고있는 이름의 의미?
음양오행과 유교사상을 담은 오덕에서
비롯됨
인(仁) 흥인지문(동대문) 어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의(義) 돈의문(서대문) 의롭다. 불의를 부끄러워하는
마음.
예(禮) 숭례문(남대문) 예의 바르다. 남을 공경하고 양보하는
마음.
지(智) 숙정문(북대문),홍지문이라고도한다. 지혜롭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
신(信) 보신각.믿음을 널리 알리기
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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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이 운영하는 만두가게(천진포자)인데 주문을 받고 만두피를 밀기 시작한다.
우리말을 잘 못하는데 3년째 가게 운영중이란다.
맛은 약간 기름진 느낌이 강해 단무지와 같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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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해결하고 창의문에 올랐지만 출입금지다.
창의문(彰義門)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소문(小門) 중의 하나로 서북쪽에 있는 문이다. 자하문(紫霞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창의문은 한양도성의 축조와 함께 1396년에 건립되었다. 현재의 문은 1741년에 세운 것으로,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1413년(태종 13년)에는 풍수지리설에서 이 문을 열어놓으면 궁궐과 왕조에게 액을 불러온다는 미신으로 풍수학자 최양선이 건의하여 폐쇄하였다.
인왕산에서 내려오는 산세가 흡사 지네를 닮아 지네의 독기가 문을 넘어 궁궐에 이른다 하여, 창의문 천장에는 지네의 천적인 닭을 닮은 봉황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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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길 4코스인 인왕산 코스는 숭례문-창의문으로 약 6km다.
인왕산은 해발 339m로 풍수상 우 백호에 해당한다.
치마바위가 있는 산으로도 유명하다.치마바위는 정상 바로 밑이다.
치마바위에는 조선의 11대 왕인 중종과 단경왕후의 애틋한 전설이 내려온다.
1506년 연산군의 실정으로 중종반정이 일어나 진성대군이 왕위에 올랐다. 당시 진성대군의 부인이었던 신씨의 아버지 신수근은 중종 반정때 죽임을 당했는데, 반정 공신들은 죄인 신수근의 딸을 왕비로 삼을 수 없다고 하면서 종묘 사직의 대계를 위해 왕비를 폐위해야한다고 수차례 요청했다.
중종은 어쩔 수 없이 왕비 신씨를 폐했다. 쫓겨난 신씨는 인왕산 아래 사직골 옛 거처로 가서 살았다.
그러나 13살에 혼인해 7년을 함께했던 부부인지라 중종은 신씨를 쉽게 잊을수 없었다. 가장 금슬이 좋을 때인 20살에 헤어져 그리움은 더했다. 중종은 신씨가 생각날 때마다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 기슭을 바라보곤 했다.
중종을 잊지 못한건 신씨도 마찬가지였다.
신씨는 폐비는 됐지만 중종에 대한 깊은 사랑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신씨는 중종이 인왕산 기슭을 바라본다는 소문을 듣고 종을 시켜 자기가 입던 붉은 치마를 경회루가 보이는 바위에 펼쳐 놓았는데, 아침에 내다 걸고 저녁에는 거둬들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바위를 치마바위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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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장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성곽 계단을 오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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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바위도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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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갈 성곽길과 오늘 오르려고 했던 북악산도 담아 보고
성곽들의 모습이 구불구불 곡선으로 모양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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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정상에서 인증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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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바위 뒷 모습도 담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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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 갈길이다. 인왕산 곡성이 아름 다워 보이지만 부대가 위치 해 있어 가 볼수는 없다.
곡성은 주변을 관찰하기 좋은 돌출된 지형을 이용하여 길고 둥글게 내밀어 쌓은 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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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도 잡아본다.안산 정상의 나무는 잎사귀가 다 떨어져 부채 같은 모양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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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 갈길을 한번더 잡아보고. 멀리 희미하게 남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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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길이 가파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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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를 깍아 계단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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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 내려온길을 다시 한번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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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바위를 오르는 박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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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더 뒤돌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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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바위가 선바위 일거 같은데 지도상으로는(?)
가운데 바위도 뭔가 이름이 있을거 같고(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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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사가 중턱에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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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 있던 국사당을 1925년에 옮긴 국사당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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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과 인왕산을 같이 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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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은 끝이나고 여기서 숭례문 까지는 시내 길이다.
홍파동에 홍난파 선생님의 흉상과 6년간 사시던 옛 가옥에 기념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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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장도 지나고
경교장(京橋莊)은 일제 강점기에 건축된 일본식 주택이다. 일제 강점기의 금광업자 최창학의 별장이었으나 8·15 광복 이후 최창학이 김구의 거처로 제공하였는데, 김구가 죽첨장이라는 일본식 이름 대신 근처에 있는 경교[京橋;경구교(京口橋)의 약칭]라는 다리 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개명하였다.
1945년 11월 임시정부 국무위원들과 함께 귀국한 김구는 1949년 6월 26일 경교장 집무실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되기까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건국에 대한 활동 및 반탁, 통일운동을 이끌었다.
김구가 반탁·건국·통일 운동을 주도할 때에는 흔히 서대문 경교장이라고 일컬었으며, 민족진영 인사들의 집결처로 이용되었다. 1945년 11월 4일부터 1949년까지 김구의 사저이자 공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청사, 한국독립당의 당 본부였다. 1949년부터 1952년까지는 주중화민국대사관으로 활용되었다. 별칭은 죽첨장(竹添莊), 죽첨정(竹添町)이다.
이 근처 어디가 돈의문(서대문) 옛터 일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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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 집터에는 농업박물관이 자리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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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근대사의 산골목인 정동 골목을 지나는데
옛날 프랑스어를 가르쳤다는 법어학교터도 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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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부속병원 전신 병원인 보구여관 터도 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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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극장,정동교회,배재학당도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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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에 창의문에서 출발하여 3시간만에 숭례문에 도착한다.
이왕 시작 한김에 3코스인 남산 구간(광희문-숭례문)도 마저 하기로 하고
남산을 향해 출발한다. 해지기전에 마치기위하여 바쁜 걸음으로 걷는다.
3코스는 다시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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