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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93년 6월 10일 화요공부방
◆하타원 박우경 교도님 강연
안암교당에 처음 오게 되었는데요
찬란한 광채가 나는거 같습니다.
정전 수행편에 비단같이 꾸미는 말을 하지 말며, 라는 말씀이 있는데
저는 꾸미는 말이 아니고 진짜 보석이 반짝반짝 하는거 같아요
숫자는 많지 않지만 젊은 분들이 앞으로 원불교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보석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간접적으로 안암교당 청년들이 잘하고 있다고 많이 듣고 있습니다.
김제원 교무님을 만나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한 것입니다.
젊은 나이에 정전 공부, 교리 공부를 한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저는 교도이자 가정주부입니다. 학식이 많은 것도 아니고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지만
입교해서 38년간 살아오면서
우리 정산종사 법어 법훈편 73장에
말씀하시기를 [평상심 공부 잘한 이가 참 도인이니, 빈부 귀천 고락간에 도심(道心)이 일관하여야
큰 도인이니라.] 하셨습니다.
저는 살아오는 동안에 눈만 떠도 수많은 경계가 있고, 살아가면서 희노애락이 있고
일생을 살아가면서 흥망성쇠가 돌고 돌면서 있는데 빈부 귀천간에
고락간에 여여한 마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행히도 이 법을 만나서 법맥을 대고 살다보니깐
저 역시 곡절이 많았지만 그동안 여여 하며 살수 있었던 것은
대종사님의 교법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저는 일반 분들 계신분들 곳에서는 많이 했는데 청년 분들 앞에서는 처음입니다.
제가 청년분들 중에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거절을 할까 생각을 했는데요
저는 이제껏 교무님들의 어떤 말씀에 도리도리를 한 적이 없습니다.
오늘도 한번 가보자 하고 왔습니다.
청년들이 많다고 해서 옷도 이렇게 컨셉을 잡았습니다.
머리가 하얀대도 젊은 레벨을 맞추기 위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하하)
제가 알기로는 3주 동안 초청강사를 모신다고 했는데
제가 처음이라서 정말 영광스럽고 행복합니다.
봉공회 활동을 많이 하시기 때문에 여기 일반 교도분들은 잘 압니다.
제가 작년까지 서울봉공 부회장을 했기 때문에 잘 압니다.
젊은 청년들과 인연을 갖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 시간에 일터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오셨을텐데...
편하게 쉬고 싶으실텐데 공부하실려고 오신 분들한테 정말 대단하고
여러분들께 이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됩니다.
청년들도 교화대불공에 대해서는 작년에 최고 지도사이신 경산 종법사님께서
첫 번째로 교화대불공을 하라고 하셨는데 나름대로 잘 하고 계십니까? 대답이 없으시네요
이런 것들은 일반 교도분들께 해야 대답이 크게 나옵니다.
화요공부방이 있을 때 친구들에게 권해서 같이 공부하고
한 나이라도 어렸을 때 교법의 뿌리를 박는다면 나중에 정말 편해요
경전을 많이 읽고 선을 많이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화대불공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공부가 되어야 하고,
사대불이신심(四大不二信心) 이 있는데 진리와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하고,
스승과 내가 하나되는 신심, 법과 내가 하나 되는 신심, 회상과 내가 하나 되는 신심이 있어야
다른 친구들에게도 원불교 같이 가자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겁니다.
확실한 신심을 가지기 위해서는
정전 교의편 제5장 진행사조와 사연사조가 있는데
진행사조는 꼭 해야 할 것, 사연사조는 버릴 것이잖아요
진행사조에 신분의성을 말씀하셨는데 첫 번째 신을 놓아주셨습니다.
신이라 함은 믿음을 이름이니,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마음을 정하는 원동력(原動力)이니라.
내 마음이 확실하게 진리에 대한 믿음, 법에 대한 믿음, 스승에 대한 믿음,
회상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도 권유할 수 있는 겁니다.
대종사 인과품 16장에 보면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람에게 천만가지 경전을 다 가르쳐 주고 천만 가지 선(善)을 다 장려하는 것이 급한 일이 아니라, 먼저 생멸 없는 진리와 인과 보응의 진리를 믿고 깨닫게 하여 주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 되나니라.]
인과보응의 진리, 불생불멸의 진리를 확실히 깨달아야지 다른 사람에게 권유를 할 수 있는 겁니다.
저는 다행히도 믿는 마음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파란곡절에 여여하게 지낼 수 있었던거 같습니다.
제가 서울교구 봉공회에서 혼인상담소 위원회 10년 간로 봉사를 했는데요
결혼 하시기 위해서는 다 조건이 있습니다.
제 남편은 제 결혼 때 아무것도 보지 않고 단지 원불교 다닐 수 있는 사람,
현재 원불교 다니고 있는 사람만을 원했습니다.
익산에 모 다방에서 선을 보았습니다.
중매로 남편을 만났는데 첫 질문이 자기 첫인상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근데 첫인상이 눈에 보이지 않고 컵을 잡고 있는 포동포동한 손이 눈에 띄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신성일 씨 같은 스타일을 좋아했는데 결혼해서 보니깐 남보원씨 같은 스타일이였습니다.
근데 그 순간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질문이 종교가 있습니까? 하는 것이였습니다.
자신은 아무 조건도 보지 않고 원불교에 다니고 있거나,
원불교 다닐 수 있는 사람만을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때 대종사님과 인연이 되려고 했는지 남편 얼굴이 안보이고
손만 보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선이였습니다.
1970년에 입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볼 건데... 한번만 보고 결정을 한 겁니다.
원기 55년 12월경을 했습니다.
저만 입교를 한 것이 아니라 저희 친정식구들까지 모두 입교 시켰습니다.
반백년 행사때 10월 8일 익산 지구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서울교당에서 입교를 하고 다녔습니다.
저는 원불교라는 것이 뭔지 몰랐습니다. 서울교당에 나가는데 재미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강남에 이사를 와서 강남 영동교당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전혀 신심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초대 교무님이 설법을 하시는데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끌려가다시피 하셨습니다.
교무님이 자주 절 불러서 이런 저런 일을 시켰습니다. 일을 시켰을 때 하다가 꾀가 나서
나는 안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저희 남편은 오로지 제가 신심 나게 하는 것 밖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 일을 시키는 것은 남편이 교무님께 부탁한 거라고 하였습니다.
근데 그 남편 말이 너무 싫지가 않고 그 이후부터는 교당에 가서 일을 찾아서 하였습니다.
전 교무님이 무슨 부탁을 하시면 전 도리도리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교무님이 뭐가 필요한가 그것을 찾아서 도와드리고
교당에서 필요해서 부르시면 얼른 가셔서 하시면 더욱 신심이 두터워 지는 것입니다.
청운회 부인들이 부부활동을 하면서 전부 전화하고
같이 열심히 활동하다가 보니깐 언제 갑자기 공부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결혼할 때는 남편이 일곱 집이 사는 수돗물도 나오지 않는 그런 집에서 혼자 자취를 하더라구요
뭐에 반했는지 결혼해서 대호법이 되기까지 여러 일도 많이 해보고
남편 역시 여러 일을 하다가 좋은 때도 있었습니다.
어느 때는 강남에 압구정동에 한양 아파트 55평 에서도 살아보고 그랜저도 타보고
또 한때는 길에 나앉아 본적도 있었습니다.
여러 일이 있었는데 그래도 즐거움에 살 수 있었던 것은 이 교법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순교활동을 하다가 40대 초반 즉, 39세 쯤 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무를 하면서 교당과 저의 집을 둘로 보지 않고 우선 교당 일을 우선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원기 76년 3대 교무님이 오셔서 저를 단장을 시키시더라구요
제가 지금 아무 준비를 하지 않고 섰습니다. 그래서 두서가 없을 겁니다.
하다보면 제 자랑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자랑도 아니고 두서가 없더라도 봐주세요
그 때까지 공부심이 전혀 없고 일만 하였습니다.
차츰차츰 봉공 활동도 하고 주무도 하다보니깐
날 알아 주지 않으면 자꾸 서운해 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상이 나온 것이였습니다.
그러면서 공부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부를 해야 상이 없어지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원기 육십 몇 년도였습니다. 그때부터 교구에 교리강습을 찾아다니게 되었습니다.
차츰차츰 교리가 마음에 들어오고 신심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작년까지 교구 봉공회 13년을 했는데, 영동교당 봉공회장 8년 했습니다. 단장을 13년 했습니다.
무조건 일을 했으면 상처를 입었을텐데
교전을 통해서 공부를 하면서, 교리를 통해서 일을 하다보니깐 너무 즐거웠습니다.
반짝반짝하는 청년들이 저를 쳐다보니깐 가슴이 막 뛰네요
단장을 시키시는데 저는 정말 능력이 있다고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근데 교무님께서 희망을 주시더라구요
그 희망적인 말이 소심했던 제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저를 바꿔 주셨다고 생각이 됩니다.
봉공단에 있다가 정진단을 새로 만들어서 단장을 시켜 주셨습니다.
원불교에 새로 오는 교도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 때 단장을 하면서 드는 생각이 내가 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그때 교전에 신분의성을 보면
정말 믿음이 있어야 분발심이 나고 연마를 하게 되고 정성심이 나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단장을 하기 위해서는 지성이다 감천이다라고 생각하고 정성이 있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이라 함은 간단 없는 마음을 이름이니,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그 목적을 달하게 하는 원동력이니라.
교단품 32장에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큰 회상(會上)을 일어내는 데에는 재주와 지식과 물질이 풍부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물론 필요하나 그것만으로는 오직 울타리가 될 뿐이요, 설혹 둔하고 무식한 사람이라도 혈심(血心) 가진 참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욱 중요하나니, 그가 참으로 알뜰한 주인이 될 것이며 모든 일에 대성을 보나니라.]
저는 그때 혈심이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혈심이 있고 지성으로 하면 단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교무님께 가서 단장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단장을 시작하면서 그 때 목표와 표준을 세웠습니다.
목표는 우리 단을 15명 이상을 만들어 보고 단원들이 신심 공심으로 교당 교단에 뿌리를 갖게 하겠다는 것이고
표준은 단원들이 주는 경계를 당하더라도 그 경계를 고통스럽게 여기지 않고
몸은 하인이 되어서 끝까지 단원들을 귀한 손님으로 여기고 받들어야 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불교의 감투는 정말 봉사입니다. 절대 명예가 아닙니다.
육신 정신을 전부 바치는 것입니다. 사회 같이, 정치 같이 감투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내 한 몸을 바쳐서 단원들을 키우리라 생각을 하고 정성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단의 지침서를 보면 매주 화요일에 단원들의 상황을 교무님께 보고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저의 단이 굉장히 젊었습니다. 제 나름 엄청 불공을 들였습니다.
전화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삼학을 들여야 합니다.
어떤 말을 해야 저 단원이 거부하지 않고 내 말에 끌려 들어 올 수 있을까하고 생각을 합니다.
취사로 바로 전화를 걸죠 전화를 걸때도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많은 연구를 통해서 전화를 들여서 만약 그 사람이 고부갈등이 있으면 그런 것들을 맞추어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항상 신경을 써야 한분 한분의 세정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만 아는 것이 아니라 교무님께 그런 것을 말씀 드려야 합니다.
단장은 단원과 교무님의 중간역할을 해야 합니다.
단장이 그 중간 역할을 잘 해야 합니다.
정전 수행편 수신의 요법 재가의 요법 강자진화상 요법 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이 나오는데
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 1) 지도 받는 사람 이상의 지식을 가질 것이요,
단장은 단원들 이상으로 알기 위해서 미리연마를 해야 합니다.
저는 단회를 하기 전에 관련 법문을 전부 사경을 하였습니다. 인정교화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인정교화만은 안됩니다. 경계를 당하면 쓰러지는 것입니다.
솔성요론 첫 번째가 사람만 믿지 말고, 그 법을 믿을 것이요
불생불멸의 진리와 인과보은의 진리를 먼저 깨닫게 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저는 사경한 노트를 보고 함께 봉독도 하고 연마를 많이 했습니다.
제가 교당에서 성가지도를 하는데요,
새 성가 창작성가, 어려운 성가의 지도들 하는데
교전을 보면서 부르면 기분이 나지 않아서 미리 집에서 완전히 익혀서 가서
교당에서는 얼굴 한사람 한사람을 보면서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정을 살립니다.
성가를 노래로만 알지 말고 진리가 담겨 있다고 대종사님께서 하셨잖아요
상시응용주의 사항 1조는 응용하는데 온전한 취사하기를 주의할 것이요
2. 응용하기 전에 응용의 형세를 보아 미리 연마 하기를 주의할 것이요
뭘 하든지 앞에서 끌어가는 사람들은 내가 해야하는 것이 뭔가를 미리미리 생각하여야 합니다.
저도 단장으로써 미리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단회가 끝나면 가을이면 같이 낙엽도 밝고 콘도에 가서 하룻밤 같이 자면서 먹을거리나
이런 것들을 제가 모두 준비를 하였습니다.
단원들이 이 영동교당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하니깐 너무 기쁘게 일을 하였습니다.
정산종사님 법어 유촉편 29장에 [누구나 대인될 소질이 없지 않나니, 마음을 키우고 국을 더 넓혀서 대인 되는 공부를 부지런히 하라. 몸은 작아도 마음이 크면 대인이요, 몸은 커도 마음이 작으면 소인이니라.]
저희 집에서 단회를 하는 날은 한참 봉사를 했기 때문에
낮에는 복지관에서 봉사하고 저녁에는 여러 일을 합니다.
수도인의 일과가 아침에는 수양정신 점심에는 보은정진 저녁에는 참회반성을 하게 되잖아요
낮에는 보은도 하고 봉공도 합니다. 저녁에 들어올 때 시장을 봐와서 단회를 위해서
열심히 만들게 됩니다. 제가 요리 솜씨가 좀 있습니다. 주위에서 인정한 것이지요
한참 하다보면 새벽 1시도 되고 2시도 되는데 저희 남편은 옆에서 쿨쿨 잡니다.
그리고 저는 단원들을 위해 선물을 준비합니다.
그 당시 저의 집이 굉장히 좁았습니다.
그런 상황이면 다른 단장님은 집을 공개를 하지 않아요
근데 저는 비록 집은 좁지만 집에서 하는게 오붓하고 좋아요
남편이 한참 자다가 잠 안자고 뭐하냐고 물어보면 낼 우리 정진단 단회라고 말하면,
저의 남편은 참 당신네 단원들은 행복하겠네. 당신 같은 단장만 있으면
우리 영동교당이 발전할텐데 하면서 다시 자요
격려하는 말 한마디를 보면 일원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가족이 함께 다녀서 일원가족이 되면 다 이해가 되고, 서로 격려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단원들 역시 처음에는 신심이 없으니깐 그냥 그랬는데, 열심히 하다보니깐
나중에는 단원들 역시 저를 잘 따라왔습니다.
단장을 할 때가 가장 즐겁고 열정이 있던 때였던거 같습니다.
저는 후진을 키우기 위해서 몇 년 하다가 넘겨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런데 저처럼 잘하는 단장이 없어요
제 자랑이 아니고 몇 대 걸친 교무님들이 인정해 주신겁니다.
저희 단에 있었던 신심있는 사람을 단장하는 사람과 중앙하는 사람을 한단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기존에 들어갔던 단원들도 없어져 버리고 두 사람만 남아 있다가
현재 우리단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정산종사 법어 무본편 57장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이 세 딸을 출가 시키며 벼 한 말씩을 주어 보냈는데, 몇 해 후에 살펴보니, 한 딸은 바로 식량으로 소비하고 가난하게 살며, 한 딸은 기념삼아 달아 매어 두고 그대로 살며, 한 딸은 그것으로 종자를 삼아 많은 농사를 지어 잘 살더라는 이야기와 같이, 사람 사람이 이 세상에 나올 때에 복과 혜의 종자를 다 가지고 나왔으나, 과거에 지어 놓은 복과 혜를 다 소비만 하여 없애버리고 빈천하고 무식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근신하여 방탕은 아니하나 새로운 복과 혜는 닦을 줄 모르고 늘 한 모양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끊임 없이 복과 혜를 장만하여 삼대력을 키우며 복도 그 일부만을 수용하고 그 대부분을 정당한 사업에 써서 그 복이 더욱 쌓이게 하는 사람도 있나니, 자기가 타고난 복이라도 남용을 하거나 허비만 하면 복을 덜어 앞 길이 볼 것 없는 것이요, 심신의 수고와 재물을 아끼지 아니하고 정당한 공부 사업에 힘쓰는 이는 혜복이 항상 유여하나니라.]
제 생각에는 단원들을 주면 공을 들여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 단원들을 늘려야 하는데
단원들을 다 없애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제가 답답합니다.
제가 성가지도를 꽤 오랫동안 하게 되었는데
다른 사람을 성가지도 하라고 시키는데 그 교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을 키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주인으로 삼기 위해서 한 것인데
몇 주 하다가 그냥 도로 제가 합니다. 참 답답하긴 합니다.
그래서 단장도 13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잘한다고 하다보니깐 세월이 가니깐 단원들도 제 노고를 알았습니다.
제가 먼저 베풀고 크지 않은 선물이지만, 단원들에게 베풀고 하니깐
단원들이 저에게 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인과품 1장을 보면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우주의 진리는 원래 생멸이 없이 길이 길이 돌고 도는지라, 가는 것이 곧 오는 것이 되고 오는 것이 곧 가는 것이 되며, 주는 사람이 곧 받는 사람이 되고 받는 사람이 곧 주는 사람이 되나니, 이것이 만고에 변함 없는 상도(常道)니라.]
항상 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주라는 진리죠
정전 가운데 사리연구 목적에 보면
이 세상은 대소 유무의 이치로써 건설되고 시비 이해의 일로써 운전해 가나니,
거기에서 한 사람씩 마음을 긁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것이 바로 경계입니다.
꼭 한 사람씩 반대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위해서 나머지 단원들이 양보를 합니다. 단원들이 착했습니다.
한번은 저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있어서 펑펑 울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전을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힘들 때 교전을 보는데요.
정산종사 법어 권도편 31장
말씀하시기를 [송죽의 가치를 상설(霜雪)이 드러내듯이 공부인의 가치는 순역경계가 드러내나니, 각자에 난관이 있는 때나 교중에 난관이 있는 때에 그 신앙의 가치가 더 드러나고 그 공부의 가치가 더 드러나나니라. 국가에서 군인을 양성하는 것은 유사시에 쓰자는 것이요 도인이 마음 공부를 하는 것은 경계를 당하여 마음 실력을 활용하자는 것이니라.]
박수한번 안치시나요? 여러분 박수를 치고 싶어도 제 말이 끊길까봐 못 치시는거 다 압니다.
그 법문을 보면서 그래 나 하나 신심이 나서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그 많은 단원들을 이끌어 가는데 이만큼 경계가 없을까 하면서 마음을 챙기고
다시 단원들을 웃으면서 대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단장을 하기도 싫고 그 사람을 계속 싫어했다면 상극의 씨가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얼마나 저를 도와주고 앞장서서 교당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단장의 역할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렇게 단장을 하는데 봉공회장을 하라고 해서 봉공회장을 8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영동교당 봉공회장이 힘들었습니다. 정리된 노트하나가 없고, 결산, 예산
이런 것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조건 몸으로 봉사하고 주먹구구식으로 할 때였는데
다른 분을 시켰는데 그 분이 이론만 가지고 하였습니다.
이론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절대 다른 분들이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분이 하시다가 제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봉공일을 하게 되고 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을 세워서 무슨 일이 있으면 회의를 걸쳐서
공공사에 걸쳐서 하고 바자회를 하기 전에 회의를 하고 하고 난 후 평가회를 하면서
봉공회가 활성화가 되고 누구든지 노트만 보면 알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 위에 감사를 두었습니다.
누가 해도 할 수 있게끔 그 체계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한사람만 체계를 잡아두면 그 다음부터는 쉬워지는 것입니다.
봉공회를 원기 79년부터 작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교구 일 하랴, 교당일 하랴, 단원일 챙기느랴 바빴는데
그 당시 육신의 경계가 왔습니다. 갑자기 신장이 물혹이 있고
한쪽은 기능을 전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는 약도 없다고 했습니다.
한약방에 갔을 때 진맥을 하는데 금년 봄을 못 넘긴다고 하더라구요
그 때 별짓을 다 하다가 제 건강을 위해서 하던 일을 모두 놓았습니다.
그러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외출시, 문 앞에 나가면서 영주부터 시작해서 독경을 하고
집에 올 때에는 참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 졌습니다.
계속 치료하고 하였는데 몸은 마찬가지로 아팠습니다.
6개월이 지나고 그 당시 원음합창단 총무를 맡고 있었는데
5월 연주회가 끝나고 12월에 단장이 바뀌는 거였습니다.
전 단장이 너무 제가 정성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저를 단장을 시켜두었습니다.
저는 아파서 쉬는 중이였는데 일을 시키시더라구요
이때 일에 일심으로 몰두하다보면 정성으로 하면 낫지 않겠느냐 하는거였습니다.
원기 81년도에 그 당시 원음합창단이 사람이 많이 줄었습니다.
사람만 많았다면 제가 단장을 맡지 않았을 겁니다.
몸이 아팠는데, 이 몸을 회상을 바치면 얼마나 영광이겠느냐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제 몸을 바친다는 생각으로 단장을 맡았습니다.
그 때 합창단 단원이 30명이 안되었는데 50명까지 인원을 늘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집에 전화기를 한대를 더 두었습니다.
계속해서 단원들을 연락을 했습니다.
수십 번을 전화를 하다보니깐 연주회를 할 때 딱 50명이 되었습니다.
제1회 창작 성가대회에서 우리합창단이 대상을 탔습니다.
리더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단체와 조직이 살아날 수도 있고
리더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단처와 조직이 침체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교당을 위해서, 내가 처해 있는 곳에서 발전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제 몸이 좀 더 빨리 회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교전도 좋아했지만,
대산 종사님 법문집을 자주 보았는데,
신성품 82장에
[내가 지금 필요 없는 사람이면 세세생생을 통해 이 공부 할 것이고 만일 나를 살리신다면 오욕락(五慾樂)이나 세상락에 끌리지 않고 이 공부 이 사업에 게으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서약했다. 그래서 지금 삼십년이 되었는데 그 마음이 풀어지지 않았다. 태산을 만난다 하더라도 무서워 하지 않고 그저 뚜벅뚜벅 걸었다. 뚫으려고도 않고 망동하지도 않고 피하려고도 않고 자꾸 자꾸 돌아서 갔다. 그러면 산은 내 뒤에 놓여졌다. 하늘 같은 산이라도 무서워 하지 않고 돌아갈 수 있는 자신이 있다. 그러니 너희들도 거듭나고 접붙이고 대신심, 대서원, 대공부심으로 나가면 된다. 죽지만 말고 밖으로 나가지만 말고 살아 봐라.} (61.6.11)
내 한 몸 육신에 매달려서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을 돌리고 기도만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원로교무님들을 잘 알았는데요 그때 원로교무님들이 저를 위해 많이 기도해 주셨습니다.
내가 내 일만 하고 살았으면 누가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겠습니까.
우선 공을 생각하고 하다보니깐 많은 분들이 저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육신의 경계를 잘 회복하였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다보니깐
정산종사님 일화와 법문이 있는데
인간의 길흉화복과 흥망성쇠를 너무 마음에 두지 않고 바른 길 걸어갈 따름이니,
인간의 길흉화복과 흥망성쇠는 비가 오다가 개는 것과 같다니라고 하셨습니다.
제 남편의 사업이 잘 되었을때, 압구정동 한양아파트 55평까지 살았는데
제가 너무 고생한다고 제 남편이 저 몰래 중도금까지 치루고 저에게 아파트를 샀다고 말을 했습니다.
저는 가기 싫어했습니다. 누군가 시기질투를 할거 같았습니다.
그리고 먼저 희사를 하라고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충주교당에 느닷없이 5천만 희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충주 교당에 한 이유는 남편회사가 충주에 있었는데 충주교당이 작으니깐
회사 사람들을 입교 시키기 위해서는 교당이 반듯하고 좀 커야 위상이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서울은 누가 지어도 짓겠다고 해서 충주교당에 느닷없이 희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꾸준히 있는 것을 나눠야 합니다.
우리가 희사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연습 없이는 희사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희사라는 것도 마음이 있어야 하지 돈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베푸는 것이 있을 때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편이 잘 나갔을때, 그런데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생활이 똑같습니다.
제 나름대로 차를 한대 사가지고 교당에 차가 없었는데
그 차를 가지고 얼마나 활동을 많이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차를 10년간 부리고 폐차를 하는데 내 자식을 버리는 거 같았습니다.
그 차가 정말 소중했습니다.
그렇게 잘 되고 제 나름대로 복도 짓는다고 하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봉사를 하러 나가는데 사람들이 들이 닥쳤습니다.
이 양반이 저 모르게 사업이 힘들어지고 결국 집에다가 차압을 붙이러 왔더라구요
봉사를 하러 가다 말고 기가 막혔습니다.
어떤 경계가 와도 여여한 마음으로 지내시라고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저도 이런말을 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지만, 교도님들이고 가족이기 때문에 이런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 때 딱지도 붙이고 어떻게 하다 보니깐 집도 경매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단원들을 항상 먼저 생각하는데 낼 경매를 하는 날이면 단회를 전날 하게 되었습니다.
내일 경매된다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착찹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단원들을 위해서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문방구에 가서 카드를 사서 그 사람에 맞는 이야기를 내용으로 썼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단원들의 좋은 점만 써서 단회를 하러 가는데
단원들은 저의 상태를 아무도 몰랐습니다.
정산 종사 법어 응기편 20장에
이 제성(李濟性)이 묻기를 [무슨 방법으로 하여야 큰 공부를 하오리까.] 답하시기를 [스승과 사이가 없어야 하나니라.] 또 묻기를 [사이가 없기로 하면 어떻게 하오리까.] 답하시기를 [신(信)만 돈독하면 자연 사이가 없나니라.]
교무님과 저는 거의 한마음 이였습니다. 저의 모든 것을 이야기 해 드리고
저도 교무님의 것을 대부분 알고 있었습니다.
교무님께는 저의 사정을 알고 계시지만 단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단회를 다 마치고 카드를 주면서 읽어보라고 하였습니다.
본인들이 하나하나 읽으면서 어떻게 문장력이 좋냐고 하는데
저는 문장력이 없고 그저 관심이고 정성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교무님 차례가 되었는데 교무님께서 읽으시다가 목이 매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읽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나중에 교무님이 단원들께 단장이 이런 상황인데 단원들을 위해 이렇게 준비를 하였다고
말씀하시자 단원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혼인상담을 할 때 제가 힘들게 사니깐 어떤 단원이 말하기를
단장님 왜 이렇게 힘들게 사세요 편안하게 사시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대종경 요훈품 21장에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중생은 영리하게 제 일만 하는 것 같으나 결국 자신이 해를 보고, 불보살은 어리석게 남의 일만 해주는 것 같으나 결국 자기의 이익이 되나니라.]
저는 남의 일을 하는 거 같지만 결국 저에게 돌아온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복 짓는거 다 제가 받는 거잖아요 그것을 알기 때문에 즐거운 낙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인간이기 때문에 힘듭니다.
남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저렇게 어려우면서 봉사를 한다고 저렇게 다닐까라는 것을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대종경 신성품 12장
대종사 금강산을 유람하고 돌아오시어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번에 산에서 유숙한 여관의 주인이 마침 예수교인으로서 그 신앙이 철저하여 대단한 낙생활을 하고 있기에 그의 경력을 물어보았더니, 그는 신앙 생활 삼십 여년에 자기의 생활상에 많은 풍파도 있었으나 그러한 굴곡을 당할 때마다 좋은 일이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여 주시니 감사하고 낮은 일이 돌아오면 저의 잘못을 경계하여 주시니 또한 감사하다 하여, 좋으나 낮으나 경계를 대할 때마다 마음이 더욱 묶어지고 신앙이 더욱 깊어져서 이렇듯 낙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하더라. 그런즉, 그대들도 각각 신앙 정도를 마음 깊이 대조하여 보라. 그 사람은 아직 타력 신앙에 그치어 진리의 근본을 다 더위잡지 못하였으나 그러한 생활을 하게 되었거든 하물며 자력신과 타력신을 병진하는 그대들로서 만일 파란 곡절에 조금이라도 마음이 흘러간다면 그 어찌 바른 신앙이며 참다운 정성이라 하겠는가. 그대들은 같은 신앙 가운데에도 이 원만하고 사실다운 신앙처를 만났으니 마음을 항상 챙기고 또 챙겨서 신앙으로 모든 환경을 지배는 할지언정 환경으로 신앙이 흔들리는 용렬한 사람은 되지 말라.]
요훈품 15장에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이 그 힘이 세다 하겠으나, 자기를 이기는 것은 그 힘이 더하다 하리니, 자기를 능히 이기는 사람은 천하 사람이라도 능히 이길 힘이 생기나니라.]
남이 뭐라고 해도 내가 확신을 가지고 하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제가 사람들 눈치를 보고 자포자기를 하면 아무 일도 못하고,
결국에는 업장 소멸할 길이 없잖아요
남편이 사업이 안되서 어렵다는 것은 남편만 원망할 수 만 없는 거잖아요
이 생에 업장소멸을 하고 다음 생에 살아 있는 이 생에 좋은 시절이 오면 좋겠지만
다음 생에 가면 복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 자신만 확신을 갖자고 하여서
누가 뭐라고 하든 제 소신대로 해 나가고 있습니다.
2부
젊은 것은 돈 주고 못 사는 거잖아요.
여기계시는 어머님들 보세요
아무리 하고 싶어도 힘이 들어서 못하는데, 젊었을 때 공부도 해야 하고 하지만
우리 원불교 미래가 정말 밝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공부와 사업이 커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동교당에 청년회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타력신앙이기 때문에 믿기도 쉽고 사람이 많은거 같습니다.
거기는 영생을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만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하잖아요
일원상의 제 3절 일원상의 수행을 보면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하는 동시에 수행의 표본을 삼아서 일원상과 같이 원만 구족(圓滿具足)하고 지공 무사(至公無私)한 각자의 마음을 알자는 것이며, 또는 일원상과 같이 원만 구족하고 지공 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양성하자는 것이며, 또는 일원상과 같이 원만 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사용하자는 것이 곧 일원상의 수행이니라.
우리는 신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만 같이 해야 하기 때문에 원불교는 어렵습니다.
제가 금년에 회갑인데, 성가 중에 “한량없는 도의 즐검 늙으심을 잊으시고”
나이가 들어도 세월 가는 것을 잃고 도의 즐거움을 안다.
정말 나이가 들어도 세월 가는지 모르고 도의 즐거움을 아는거지
늦게 할려고 하는것은 잘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안암교당 청년들은 교리 공부 시키시는 교무님 만났을 때,
꾸준히 친구들도 데리고 오고 같이 공부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기독교는 동적입니다.
그러나 원불교는 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법이 높아지시면 더욱 말씀을 안하셔서 입이 더 무거워지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법이 깊어지면 말을 안해야 하는 것으로 알기도 하는데 그것은 아닌거 같아요
어느 기독교 목사는 항상 어디에 가도 대중 속에 들어가면 보통 하는 말도 설교하는
말처럼 하신다고 하는데
스님을 보고 “부처님께도 원수를 사랑하라 한적 있나요?”했더니
충청도 스님께서 “우린 원수가 없구만요” 했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변화하기가 힘듭니다.
젊은 사람들 인터넷 다들 하는데, 어떤 엄마들은 문자메세지 보내는 것도 힘듭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메시지를 보낼 때 사랑해가 사망해로 바뀌기도 합니다.
저도 한문 잘 모르는데요 학교 때 배운 한문은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저보고 법문 잘 외운다, 성가를 잘 외운다고 하는데
나처럼 노력했느냐라고 말합니다.
저는 4시 30분에 일어나고 원음방송에서 성지의 아침에서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6시에 끝나는데 법문 공양까지 하고 나서 라디오를 끄고
앉아서 원불교 전서를 다 외웁니다.
교리도를 제 몸은 종이라 생각하고 제 몸에다가 둘러씁니다.
지난번에 원불교 신문에서 보셨는지 몰라도 기어코 인터뷰를 한다고 하셔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저는 새벽 좌선 끝내고
원음방송에서 대종경이 나오면 수행편이구나 무본편이구나 하고 감지를 합니다.
정전만큼은 걸어다니는 교전이 희망이라고 할 만큼 외우고 있습니다.
내가 머리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또 하고 되어질 때까지 하는것이지요
그게 바로 정성 아닙니까?
세 끼 밥을 먹듯이 간단없이 끊임없이 하는 것이 정성입니다.
여러분 교리도 그리라고 하면 생각이 안날텐데 매일같이 몸에다가 한번 그리시기 바래요
다 그릴 줄 아시나요?
일원상을 얼굴로 그리고
거북이 모양같다고 하셨는데, 거북이가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목선에서 어깨선에서 다리를 하고, 사대강령에 사지에 놓는 것입니다.
몸을 삼두근을 하고 가운데에는
가운데에는 일원은 법신불이니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 제성의 심인이요 일절 중생의 본성이요
밑에는 게송 [유(有)는 무(無)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至極) 하면 유와 무가 구공(俱空) 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 이라.] 해놓고
정각정행은 수행문이다.
우리에게는 한 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두 문이 있다.
진공묘유의 수행문, 수행문에서의 마지막은 무시선 무처선 그렇게 나옵니다.
인과보응의 신앙문, 천지은 부모은 동포은 법률은이 나오고
항상 마지막은 처처불상 사사불공 보은 즉 불공이다라고 하고 나옵니다.
사대강령, 정전을 요약해 놓은 것이 사대강령이며
그것의 결정체는 무아봉공이죠
나는 알지도 못하지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씀드릴 뿐입니다.
그 다음 넘기면 원불교 교전의 제 1부 정전 총서편 교의편 수행편이 다 나오잖아요
나는 목차부터 다 외웁니다.
정전을 매일 외워야 안 잊어버립니다.
대종경 목차와 정산종사 법어는 목차를 외웁니다.
어디를 가든지 몇품 몇장 한다 하면 저는 금방 할 수 있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이것이 습관이 되면 걸어다니는 교전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저는 이렇게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공양하는 것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단별로 하다보니깐 단원들이 굉장히 힘들어 했어요.
저는 직장도 다니면서 여러 활동을 하려니 잠도 제대로 못잤어요
우리 단 4명이 일주일에 한번씩만 책임지면 우리 교도 전체가 편안하게 교당 나올 수 있지 않겠는가.
6년간 한 사람이 돌아가면서 1주일에 1번씩 돌아가면서 했어요
한달에 한번씩 하는 꼴이지요
지금은 할머니 단에 일부러 들어가서 공양을 내가 다 합니다.
할머니들은 기운도 없으시고 한다고 일을 잘 못하신다고 하는데,
제가 가서 기운을 불어 넣겠습니다 해 가지고 할머니들 계시는데 가서
단회도 앞에서 재미있게 하고, 공양도 혼자 준비 다 하고
어머니들은 설거지 할때 마른 걸레질만 도와달라고 하니깐
어른들이 다 좋아해하고 고마워하고 미안해 하십니다.
좀 더 뭐든지 우리 교도님들이 마음이 살아서 적극적으로 봉사와 교화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많지가 않은 것 같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청년 되시는 분들은 앞으로 할 기회가 많겠지만 우리 청년들 지도하실 때 열심히 하시고,
부모님이 혹시 안 나오시나 하면 또 하고,
액수보다는 내고 싶은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
젠가 저절로 더 하고 싶고, 되어질 때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수양을 해서 수양을 얻고, 연구를 해서 연구력을 얻더라도
취사를 하지 않으면 열매 없는 꽃이라고 했잖아요
마음만 가지고 있지 말고 실제 행동을 해서 취사로 옮겨서
종법사님의 5대 경륜을 잘 받들어서 교화도 열심히 하고
이 세상의 파란고해의 일체 생령을 낙원으로 인도하고
대종사님이 밝혀주신 보은자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합장)
질문과 답변
강도인 : 우리 교당에 비전을 만들고 있는데요.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목표와 비전이 있기 때문에 교화 부분에서 엄청난 일을 일으키신 것 같아요. 그 목표를 세울 때 있어서 실천이 중요하겠지만, 3명에서 18명으로 여섯 배를 불리는 것은 힘들기도 한 거 같아요. 그런 것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목표들이 중요한 이유들을 듣고 싶습니다.
하타원 : 목표를 세울 때는 우선 크게 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감히 대각여래위를 꿈꿀 수 있을까? 그냥 항마위까지만 이렇게 세우시지 말고,
대각여래위를 목표로 잡고 가다보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잖아요
단원을 늘릴때도 한번에 18명이 다 늘린건 아닙니다만, 목표인 15명이 넘겼지요
목표를 세우면 그 만큼 취사를 해야 합니다.
머리 속으로만 목표를 세우고 움직이지 않으면 그건 목표가 아니지요
그리고 무단한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 것이지요.
저는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는 이 회상을 통해서 하려면 목숨까지 바치겠다라고 기꺼이 생각했습니다.
목표를 크게 세우면 거기에 도달할려고 열심히 노력하겠지요
박순명 : 여러 가지 일을 하시는데, 일을 함에 있어서 어떤 사람은 내 역량을 한계를 두고 하나를 완벽하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두지만, 저는 역량은 고무줄 같다고 생각해서, 일을 벌리는 편입니다. 80% 정도만 해서 두 가지 하는 게 낫다, 70%해서 3가지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때로는 어디 가서 미안하다고 말로 때우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는거 같은데 근데 이게 사실 힘듭니다.
그리고 기대수준이 높아지니까 빠지는 부분도 생기기도 합니다만, 그걸 어떻게 하시는지요?
하타원: 그건 정신력이지요. 제가 생각해도 대단합니다.
원음합창단 대종경을 연주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 금강 합창단에 있었습니다.
금강합창단이 많이 어려워서 금강합창단 도와준다고 거기에 가 있었는데
원음에서 대종경을 한다고 도와 달라고 해서 늦게 갔습니다.
다른 분들은 미리 연습을 하고 있었어요. 제가 늦게 갔기 때문에 힘들줄 알았는데,
제가 제일 먼저 가사를 놓고 했습니다.
이원파 선생님께서 이번에 그런말씀을 하시더랍니다.
대단하시다고, 늦게 오셨는데 그걸 다 외우시냐고 하시더랍니다.
근데 저는 늦게 갔기 때문에 저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일에 지장을 주면 안 되기 때문에
열심히 하였습니다.
얼마만큼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서 달려있습니다.
수시로 오며가며 외우고, 그 가사가 막히면 다시 불을 켜고, 다시 그 가사를 확인하고 부르면서 자고
부르면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책을 놓고 부를 수가 있었습니다.
해야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어떤 경계가 오더라도
정산종사 법어 응기편 25장
말씀하시기를 [공부는 경계를 지내고 나야 자신의 실력을 알 수 있으며, 없던 힘이 생겨 나기도 하고 있던 힘이 더욱 강해 지기도 하나니라.]
어떤 경계가 와도 주저 앉지 않고 끝까지 해야 되겠다는 힘을 가지고 하다보면 없던 힘도 생기고
또한 소극적이였던 제가 “우현님은 할 수 있어요” 하는 말씀에 하기 시작했더니
요새는 제가 생각해도 내가 대단하다니까요.
신시중 : 어제 미리 하타원님 기사를 검색해보니 2건이 나와서 질문거리를 얻었었습니다.
단장을 그토록 오래 하셨으니까 신심이 나는 단원 안 나는 단원 많이 다 만나보셨을 텐데
신심이 안나는 단원을 어떻게 이끄는 게 맞는건지 알고 싶습니다.
하타원 : 정성을 다하다 보니 정성에 감동해서 신심 나는 단원들도 있고요.
아침마당에 어떤 분이 나오셔서 “팔자여~” 이 말을 자주 하시던데,
전생 팔자인가 신심이 죽어도 안 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도 달래고 달래서 오는데, 나이가 들어도 신심이 안나는 사람은 있어요.
그러나 어쨌든 저 하는 것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대요
그러면 “하타원님같은 분이 한 분이지 또 있나요?” 라고 하시던데
나는 하는데 너는 못하느냐, 그 마음을 정신력으로 보태라고 합니다.
습관적으로 아프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나라고 왜 아픈 데가 없겠습니까
어떤 분이 많이 힘들어하시는데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아야 하는 상태인데도
제가 힘내시라고 말씀드린다. 나라고 물질과 환경이 좋아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력입니다. 내가 활기와 힘을 얻어야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일반 교도님: 아까 굉장히 어려운 생활의 경계까지 오셨는데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사람마다 경계의 정도의 차이고 있지만, 무엇부터 해결하고 봉사를 해야 하나 할 때가 많거든요.
그럴 때는 어떻게 극복을 하셨는지요?
하타원 : 제가 어려워지기 전에는 직장 안 다녔었습니다. 그런데 이 양반이 일이 되고 나서
직장을 나갔습니다. 삼성생명 보험회사 6년간 다녔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모른다.
6개월만에 팀장이 되었습니다.
내가 나갔다 하면 청약서를 들고 와서 달달이 상을 탔어요
나는 상을 탈 때 소장 팀장님 앞에서 상을 탈 때, 한번도 그냥 인사해 본적이 없습니다.
전 항상 합장을하고 대중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 지점장님이 “저 분은 신앙심이 대단한 분이신거 같다” 라고 하셨답니다.
나는 내가 확실하게 원불교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청약서란에 원불교란이 없더라구요.
제가 왜 원불교같이 큰 종교가 칸이 없느냐고 만들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원불교란이 생겼습니다. 항상 확실하게 하였습니다.
내가 그동안 열심히 살아주었으니까 그것이 나에게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돈을 벌면서 집도 전세로 옮기고 하면서 남들은 24시간이라면 나는 24시간 이상을 뛰고 살았습니다. 단원들이 병나실거 같다고 쉬시면서 하시라고 하는데 그래서 제가
요훈품 21장을 외워 주었습니다.
정신력이 문제이지 몸은 움직이면 움직일 수록 힘이 나는 것 같다.
정신력은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진리를 확실하게 믿고 깨달았기 때문에 생긴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교전을 외우는 것이 앵무새처럼 외는 것처럼 이라고 적으셨던데,
나는 걸어다니는 교전이 되어서 항상 대조를 해야 하는데, 모르면 고칠 수 없는 것이잖아요.
알고 짓는 죄보다 모르고 짓는 죄가 더 크다고 하잖아요
교전도 늘 외워서 내 몸에 걸쳐 가지고 다니면서 시시 때때로 내가 활용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버티고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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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면 수강을 하지 못하여 동영상으로 보고 아쉬웠는데 이렇게 정리를 잘 하여준 님께 감사합니다. 하타원님께도 박수 박수. 아들의 중매도 열심히 해 주셨는데 역시 대단하다는 말 만 나오네요.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해요:)
아....감동....감격... 어찌할도리가 없네요...도리가...열심히 정성을 다해...이분도 하셨는데...난 더 젊은데.... 눈물이 납니다. 가슴에 이 큰 울림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네요...(감사합니다. 진실한 말씀 전해주신 하타원님도 감사하고, 셤기간의 바쁜와중에 이렇게 정성스레 글 올려주신 이연교우님도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이 많은 양을 타이핑까지 해주고 고맙네 하타원대호법님은 중학교까지 졸업하신 분이요 결혼후 원불교를 만나신 분이요, 지금은 강북의 전세집에 사시는 분이십니다. 현실 흥망성쇠 길흉화복에 부동하신 불보살이시네요
제가 처해있는 상황이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믿음에서 나오는 정성심으로 일관하시는 삶에 깊은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닮아 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삶의 희망이 보임을 느끼며......글올려주신데에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