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신선생 묘 및 신도비(고양시 향토유적 18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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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의 제27차 능원묘 답사의 일정에 서오릉과 익령군 묘 그리고 서삼릉 답사를 마치고 일정에는 없었지만 서삼릉 주변에 있다는 김전선생(김제남의 증조) 묘를 찾았으나 주변을 몇 바퀴 돌면서도 찾지 못하여 김주신선생 묘를 찾았습니다.
서삼릉 답사 중에 나홀로의 회원이시라는 풀소리님께서 전화를 주셔서 나홀로의 답사 일정을 보셨다면서 다음 일정인 김주신선생 묘와 김홍집선생 묘를 잘 아신다고 대자동 초입에서 기다렸다가 안내를 해 주셔서 묘를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풀소리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김주신선생 묘는 대자동의 성령대군 묘역 도로 건너편 산자락에 있었습니다. 묘역 입구에는 김주신선생의 신도비가 있었으며, 좌측 계곡으로 조금 오르면 우측에 김주신선생묘와 바로 10여미터 옆에 김홍신선생 묘가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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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초입에 세워진 김주신선생 신도비 |
▲ 김주신선생 묘역 곡장 모습 |
김주신(1661~1721) 선생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숙종의 장인으로 자는 하경(하경),호는 수곡(수곡), 세심재(세심재), 본관은 경주(경주)이다. 박세당의 문인으로 숙종 22년(1696) 생원시에 합격된 후 장원서별겸이 되었다.
숙종 28년(1702) 순안 현령으로 딸이 숙종의 계비(인원왕후)가 되자 돈령부도정, 이어 영돈려부사에 이르러 경은부원군에 봉해졌다. 도총관으로서 상의원, 장악원의 제조 및 호위대장을 겸임했다. 시호는 효간이다. 저서에는 수곡집, 거가기둔, 수사차록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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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신선생 묘역 전경 |
대자동 대자골에 위치해 있으며 가림부부인(嘉林府夫人) 조씨(趙氏)와 부좌되어 있다. 호석을 두른 봉분을 중심으로 벽돌, 기와를 사용한 운치있는 곡장이 조성되어 있다. 묘 앞 우측에는 화강암에 옥개석을 갖춘 묘비가 있으며 중앙에는 상석, 향로석, 장명등 그리고 좌우에는 망주석, 문인석이 각각 배치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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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신선생 묘역 내 석물 모습 |
▲ 김주신선생 묘역에서 바라 본 김홍집선생 묘역 |
특히 문인석의 조각수법은 매우 뛰어나 아름다운 운문을 연상케 한다. 영조 10년(1734) 3월에 세워진 묘비는 최규서(崔奎端)가 짓고 서명균(徐命均)이 썼으며 갓형의 두부와 기단이 갖추어져 있다. 현재 비의 크기는 높이 100cm, 폭 65cm, 두께 33cm이다.
신도비는 화강석 재료의 장방형 비좌와 옥채를 갖추었고, 비의 총 높이는 300cm, 폭은 95cm, 두께는 45cm의 규모이다. 순조 26년(1826) 7월에 건립된 신도비의 비문은 박종훈이 글을 짓고, 김조순이 전한 것이다. - 고양시청 홈페이지 내용 발췌 - |
김주신선생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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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덕양구 대자동 산26-1 화살표 ↑ 위치에 김주신선생 묘역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