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eveiw MDCCLXXXVII / 휴머니스트 41번째 리뷰]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마다하는 이는 없다. 그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행복한 결말'로 끝을 맺는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사랑의 결실을 이룬 뒤의 이야기에는 왜 흥미를 잃는가? 두 남녀가 뜨거운 사랑 끝에 '결혼'에 성공한 뒤에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해가는 모습을 기특하게 바라보며 늙어가는 이야기는 왜 아름답게 그리지 않느냔 말이다. 신데렐라가 왕자와 함께 무도회에서 춤을 추는 장면을 좋아하고, 왕자가 유일하게 남겨놓은 신발 한 켤레를 들고 신붓감을 찾는 장면에서는 애를 끓으면서 '행복한 결말'인 성대한 결혼식의 뒷이야기에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느냔 말이다. 그건 아마도 '흥미가 떨어지게 때문'일 것이다. 결혼 생활이 녹록치 않은 것이 '사실'이고, 종종 부부싸움을 벌일 정도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이 '팩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딱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까지만 관심 있어 한다. '행복한 결말'을 이루는 것에 더 없이 감동하지만 '그 이후'에 벌어질 현실적인 비극에는 눈 감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허나 '금지된 사랑'이라면 어떤가? 달콤한 사랑이야기에도 아드레날린이 뿜뿜하며 흥분할 지경인데, 그 사랑이 '허락되지 않은 사랑'이라면 더욱더 애가 닳게 만들 것이 틀림없다. 도파민을 비롯해서 각종 호르몬이 폭발하며 '허락'되지 않고 '금지'된 사랑을 '극복'하고 두 남녀가 바라마지 않는 사랑이 위대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응원'을 아낌없이 건낼 것이다. 여기 그런 '금지된 사랑'을 하는 운영과 김진사의 사랑이야기가 담긴 한국고전소설이 있다. 바로 <운영전>이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과 대군을 모시는 열세 살의 아름다운 궁녀 운영이 등장하고, 운영과 운명적인 만남을 이루는 소년 수재 김진사가 곧이어 등장한다. 이렇게 셋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왜 '금지된 사랑'인 것인지 단박에 감이 올 것이다. 바로 시대적 한계인 '조선사회 유교적인 틀'이 궁녀와 사대부의 사랑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틀에 박힌 '신분제도의 벽'이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며, 이미 '임금의 여인'으로 다른 남자와 연을 맺을 수 없는 궁녀신분이라는 것이 또 하나의 제약인 것이다. 그런데도 운영과 김진사 두 남녀는 서로가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그 애뜻한 감정이 '시'로 드러나며, 두 사람이 나누는 '편지'에서도 오롯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벅찬 감정이 두 남녀를 '하나'로 합칠 수 있게 하지만, 그것은 '허락'되지 않은 사랑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둘만의 비밀로만 지낼 수 있다면야 사랑을 나눌 수 있었겠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기 마련이고 둘의 나누는 '금지된 사랑'을 알게 된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위기는 점점 두 남녀를 향해 조여올 뿐이었다. 그러다 끝내 운영과 김진사의 사랑이 낱낱이 밝혀지게 되자 두 남녀는 '사회적 제약'을 뛰어넘지 못하고 끝내 자결을 하고 만다. 행복하지 못한 '슬픈 결말'인 셈이다. 다행히 천상에서나마 두 남녀는 재회를 하였고,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는 뒷이야기를 남겼지만, 사랑했다는 죄만으로 이승에서는 고통만 당하고 저승에 가서야 이룰 수 있는 결말이라니, 이 땅에 살아가는 수많은 사랑꾼들에게 얼마나 비극적인 결말이란 말인가.
그러나 '금지된 사랑'은 운영과 김진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운영이 김진사를 만나기 이전에 이미 '안평대군'과 운영도 이루지 못할 사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안평대군이 사회적으로 허락하지 않은 일을 서슴지 않게 만들었는지 짐작해보면 어렵지 않게 '둘의 사랑'이 이미 싹트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여자에게 '글'을 가르치고 '학문'을 하도록 배려하지 않았다. 애초에 여자에게 재능이 없었다기보다는 제도적으로 여자에게 '사회적 진출'을 허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거에 급제하여 실력을 뽐내고, 그 능력을 사회에 공헌하는데 쓰며, 널리 이름을 날려 명성을 쌓을 수 있는 글재주를 여자들에게 가르쳐봐야 아무짝에 쓸모없는 일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처럼 애초에 '글공부의 즐거움'을 알지 못했으면 그런 안타까움도 없을테니, 여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일은 거의 '금기'시 되던 일이었다. 그런데도 안평대군은 굳이 자신의 수성궁에 살고 있는 궁녀들 가운데 열 명을 뽑아 글을 가르치고 '시'를 짓는 재주를 가르쳤다. 그리고 그 재주는 빛을 발하였으며 당대의 내노라하는 문인들 앞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뛰어난 수준으로 올라버렸다. 안평대군의 기쁨은 하늘을 찌를 듯 했을 것이다. 그 열 명의 궁녀 가운데 가장 뛰어난 수재가 바로 '운영'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안평대군의 사랑은 거기까지였다. 안평대군도 '사회적 제약'을 뛰어넘지 못하고 자신의 사랑을 펼치지도 못하고 스스로 꺾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애뜻한 감정도 몰라주고 대군의 어머님이 운영을 '친자식'처럼 대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궁으로 들어온 운영이 친부모와 형제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다가 집밖 출입조차 허락치 않는 궁녀가 되어 궁궐에만 갇혀 지내야하니 얼마나 갑갑하고 힘겨워했겠느냔 말이다. 그런 운영을 '손주'를 돌보듯 손수 키우듯 보살핀 이가 바로 안평대군의 어머니였다. 그런 운영에게 사랑의 감정을 키워나간 대군은 소녀티를 벗고 아름다운 처녀로 성숙해진 운영에게 그만 홀딱 빠져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운영을 '후궁'으로 삼는다면 어머니께 불효를 저지르는 일이 되고 말 것이기에 안평은 속내를 꺼내지도 못하고 운영을 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운영에게 '다른 남자의 느낌'을 받은 것이다. 바로 운영이 지은 시에 '자신은 궁에 갇혀 지내야 하는 외로운 몸'이고, '자신이 마음을 내어준 님을 만나지 못해 슬프다'는 속내를 드러내는 시를 쓰자, 안평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을 것이다. 허나 수성궁 안에 다른 남자를 들이지 않았으니 '그 아픔'마저 당당히 드러내어 운영을 꾸짖을 수도 없었다. 운영은 내 여자인데 그 말을 할 수가 없으니 더욱 애달파지는 안평이었다.
그러다 일이 틀어지고 말았다. 운영이 사랑하는 님이 자신이 총애하던 김진사였고, 둘은 이미 높다란 궁궐의 담을 넘나들며 사랑을 나누는 사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안평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무릇 궁녀가 주인이 아닌 다른 남자와 사통한 사실만으로도 죽음을 면치 못할 터인데, 자신이 그 '주인'으로서 직접 운영을 벌하여 죽음에 이르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자를 어찌 제 손으로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안평은 끝내 운영을 죽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운영의 사랑을 허락치도 못하였으니, 안평이 얼마나 운영을 사랑했었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렇게 운영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자결'을 하고 만다. 김진사도 운영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특이 죄값을 치루는 것을 확인한 뒤에 곡기를 끊고 자결을 한다. 안평도 얼마 뒤에 벌어진 '계유정난'에 휘말려 강화도에서 사사되었으니, 사랑으로 얽힌 세 남녀는 모두 이승에서 사랑을 이루지도 못하고 고통만 받다가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리고 저 세상에 가서야 사랑을 이룬 운영과 김진사는 그 기쁨을 이루 말할 수 없고,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 그 즐거움을 한껏 누리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다. 어찌 보면 자신들의 사랑을 이룰 수 있도록 배려(?)해준 안평대군은 끝내 평안을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랜 시일이 지났다고하나 안평대군이 살았던 수성궁터가 쑥대밭이 되어 쓸쓸해졌기 때문이다. 그토록 아름답던 궁궐인데 말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사랑이 결실을 맺었던 곳인데, 이토록 쓸쓸해졌으니 옛추억을 돌이켜 보았을 때 안타까움만 커져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운영전>은 '금지된 사랑'으로 짜여진 슬픈 이야기다. 수많은 사람들은 '사랑의 감정'을 최고로 여기는데, 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이런 최고의 감정조차 '제약'을 두려하는가? 허락된 사랑보다 금지된 사랑이 더욱 뜨겁고 짜릿한 감정을 선사하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만약에 그렇다면 '슬픈 결말'이라도 두지 말 것이지 왜 사랑하는 사이를 갈라놓게 만들고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 정도로 가슴 찢어지게 만드냔 말이다. 하긴 아무리 '사랑'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사랑이라고하기엔 너무 더러운 사랑도 있기는 하다. 물론 사랑엔 나이도 숫자에 불과하고 국경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진리이지만, 적절히 절제할 때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사족에 가깝지만, 개인적으로 운영의 짝으로 김진사보다는 안평대군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은 건 나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