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김은숙!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주역!

[人+間(인+간)] 김은숙 부산美문화원방화사건주역 2011-04-09 [16:28:00] | 최종수정: 2011-08-22 [15:46:17] 고은 시인은 그를 '숨은 꽃'이라 했다. 당당하게 여기 있노라며 자신의 삶을 과시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세상은 오랫동안 그를 잊고 있었던 걸까.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일명 '부미방' 사건의 주역 김은숙(53) 씨. 그는 '김백리'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쓰고 번역 활동을 하며 조용히 살아왔다. 잊혔던 그를 다시 불러낸 사람은 '통일의 꽃' 임수경(43) 씨다. 임 씨는 트위터를 통해 '은숙 언니'의 투병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민주주의에 바친 '청춘' 긴 옥살이 끝에 다시 일어서 재소자들의 따뜻한 벗으로 저소득층 아이들의 친구로 사회 구석구석 밀알 되어… #1. 2011. 3. 28. - 트위터(@su_corea·임수경) ·28일-1982년 부산미문화원 방화 사건의 김은숙 님. 말기 위암 투병 중에 상태가 악화되어 지금 병원에 후송되셨다네요. ·29일-위암이 복막으로 전이되어 지난해 9월부터 투병 중입니다. 복수가 많이 차서 매우 고통스러운 상태. 몸무게는 20㎏ 이상 빠졌고 모든 체력이 고갈되어가는 상태. 남은 날이 몇날일지는 모르지만 삶의 희망을 우리 함께 다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30일-지긋지긋하다. 김은숙 하나 건사하지 못하고 지나온 무려 29년. 내년 3월 18일이면 '부미방' 30년인데 대체 우리는 무엇을 했던지. 희망 계좌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전달하겠습니다. [농협 302-0378-0560-01 임수경] ·31일-지인들을 보고 싶어합니다. 주치의 소견으로는 면회 가능한 기간 2주 정도. 통증이 심합니다. 누적 모금액 490만5천 원. 보이지 않는 손길, 따뜻한 마음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2. 2011. 4. 5 -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 트위터의 김은숙 돕기 바람이 오프라인으로까지 번졌다. 지난 5일 오후 7시 서울 중랑구 면목동 녹색병원 로비에서 열린 '김은숙과 함께하는 작은 음악회'. 임 씨가 사람들을 모으고,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이 자리는 트위터로 시작됐습니다. 오늘로 모금액이 6천만 원을 넘어섰습니다. 80년대를 살아 온 우리들은 굉장히 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무관심 속에서 은숙 언니를 보내게 될까 걱정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기억해 주시니 엄청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은숙 언니'의 동생을 자처하는 임 씨. 그는 "성을 '김'으로 바꿨어요"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김 씨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그에 대한 추억을 쏟아냈다. 소설가 윤정모 씨가 낭독한 편지에서는 그동안 말 없이 살아온 김 씨의 아픈 심경을 엿볼 수 있었다. "그대는 항상 죄를 지은 듯이 쭈뼛거리고 숨었지만 사실 구석구석 숨은 밀알을 심었다. 그대가 가슴 아파하고 죄의식 느껴하는 그 '부미방' 사건도 노예 같은 한·미조약을 조금이라도 평등하게 만들 길을 열지 않았는가." 그를 평생 따라다녔던 1982년 봄의 사건,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3. 1982. 3. 18 - 부산 미문화원 18일 오후 2시께 부산 중구 대청동 2가 부산 미국문화원 1층 도서실에서 불이 나 도서실 안에 있던 동아대학교 상경대 3년 장덕술(22) 군이 연기에 질식돼 숨지고 같은 학교 회화학과 4년 김미숙(21) 양, 허길숙(23) 양 등 3명이 2~3도씩의 중·경화상을 입고 부산대학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은 미문화원에 불이 난 것과 거의 같은 시간에 인근 백화점에 불온 전단이 뿌려진 것과 미문화원 경비원이 방화범을 목격했다는 진술에 미루어 이 불은 불순사범에 의한 방화일 것으로 보고 범인 색출에 나섰다. (중략) 불이 난 같은 시간에 미문화원에서 50m가량 떨어진 유나백화점 6층 남자 화장실 창문을 통해 불온 전단 77장이 뿌려졌고 이로부터 15분여 후 부산 중구 충무동 3가 국도극장 3층에서도 불온 전단 176장이 살포되었다. 불을 처음 본 이곳 경비원 문흥석(62) 씨는 미문화원 안쪽 안내실에서 근무하던 중 20대 여자 2명이 노란색 물통 2개씩을 들고 들어오는 것을 발견, "무엇이냐"고 묻는 순간 여자들이 물통에 든 내용물을 도서실에 붓고 뒤따라 들어오던 20대 남자 1명이 불을 붙인 후 국제시장 쪽으로 함께 달아나더라고 말했다. -1982년 3월 19일자 본보 11면 기사 중에서 #4. 2011. 4. 6 - 김은숙 씨의 병실 지인들은 하나 같이 그를 "고운 언니", "맑은 후배"이라고 했다. 임 씨는 "언제나 가녀린 코스모스 같았던 언니"라고 회상했다. '방화범'이나 '전사'라는 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주변의 평가. 임 씨와 함께 김 씨의 병실을 찾았다. 임수경(이하 임):언니는 너무 조용한 게 탈이야. 가슴에 맺힌 게 많아 병이 된 건지도 몰라. 김은숙(이하 김):그래. 아픈 데 성격도 영향이 있는지 모르지.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큰일을 저질렀냐고. 글쎄. 20대 땐 당찬 데가 있었는지도. 임:그때 언니 변호했던 사람 중에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있었잖아. 대통령 되고도 만났어? 김:아니. 청와대 들어가기 전에 본 게 마지막이었어. 그땐 신참 변호사였지. 당시 고(故) 김광일 변호사가 지목해서 '새끼 변호사'로 참여했지. 임:거기다 지금 언니 간병해 주는 분 동생이 리영희 선생님을 마지막까지 돌봤던 간병인이라니. 참, 인연이다. 김:그러게 말이야. 감옥 갔다 와서 리영희 선생님 댁에 살 때 김치가 정말 맛있었는데. 윤영자 엄마가 담가주는 김치, 너무 먹고 싶다. 나 오늘 종일 죽 일곱 숟가락 먹었어. 임:조금씩 먹어야 돼. 참, 편지가 왔어. 경주교도소 있을 때 같이 있었던 후배라는데. 기억나? 지금은 국책연구소 연구원이라는데 언니 소식 듣고 편지 쓴대. 앞만 보고 달리느라 연락도 못했다고. 김:기억나. 그때 경주교도소에 사람이 정말 많았거든. 방이 모자랄 정도였어. 이 후배가 오게 됐는데 방이 없어서 창고에 보낸다는 거야. 말이 돼? 그래서 내 방을 주라고 했지. 내가 창고로 가겠다고. 나는 교도소가 익숙했으니까. 멀리 서울에서 내려온 애를 창고로 보낼 순 없잖아. 임:참, 언니도. 김:근데 걔 되게 웃긴 애였다. 이상하다는 뜻이 아니고. 여름에 덥다고 그 후배가 수건 한 장만 덮고 자는 거야. 옷은 안 입고 가슴이랑 주요 부위만 가려지게. 교도소 안에 화제였지. 바퀴벌레 바글거리던 대공분실 화장실 너무나 처참했던 취조 때 아픔… 추운 감옥에 오래 살아서 다른 사람들은 덥다고 그늘로 피할 때 난 햇볕만 찾아다니지요 당시 사건으로 4년여 동안 독방에서 옥고를 치러야 했던 김 씨. 그는 교도소 생활의 외로움과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소설가 윤정모 씨는 "감옥에 갇혀 있어 봐서 감옥에 있는 이들의 외로움을 안다며 재소자들을 위한 소통의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영치금이나 면회가 아니라 친절한 소통이라며 주변 작가들을 모았다"고 전했다. 그는 번역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홀로 두 딸을 키웠다. 10년 전쯤 이혼했다. 필명 '백리'는 꽃향기가 백 리를 간다는 '백리향'에서 빌려왔다. 최근에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지역아동센터 '참신나는학교'를 운영하며 봉제공장 노동자 등 저소득층 자녀들을 돌봐 왔다. 임:언니가 '참신나는학교' 대표 교사였지? 김:응. 너 김 모 국회의원 알지? 그 사람도 어제 음악회에 왔다며? 임:성금도 꽤 많이 내고 갔어. 김:예전에 우리 학교 좀 도와달라고 할 땐 모른 척하더니…. 누가 나 도와달라고 했나? 공부방 아이들 도와달라고 했지. 임:그래도 고맙잖아. 안 그래도 언니 몸 생각 안 하고 공부방 일 너무 열심히 한다 했어. 우리가 뭘 시작했다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긴 하지만. 김:나 어제 음악회 너무 보고 싶었는데. 건석(그의 주치의이자 고(故) 리영희 선생의 아들이다)이가 못 가게 하더라. 내가 아프니까 "진통제 또 놔 드릴까?" 하더라고. 수경아. 나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 그런 기분이 들어. 지난 5일 서울 녹색병원 로비에서 열린 김은숙 씨를 위한 작은 음악회. 음악회 사회를 맡은 임수경 씨, 고은 시인, 김 씨가 입원한 병원. 맨 아래는 임수경 씨가 보내온 2009년 1월 김은숙·임수경 씨, 유시춘 작가, 리영희 선생의 부인 윤영자 씨와 고(故) 리영희 선생. 박희만 기자 phman@ 그는 정말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간병인이 떠먹여 주는 데운 식혜 몇 숟가락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해 심한 고통을 호소하던 그. 앙상하게 뼈만 남은 팔, 퉁퉁 부은 발. 간병인은 젖먹이 아이에게 트림을 유도하듯 그의 등을 자꾸만 토닥였다. 간병인에 몸을 기댄 그의 육체는 쇠약했지만, 눈빛은 여전히 생에 대한 의지로 빛났다. 긴 고문과 옥살이 끝에도 꿋꿋하게 일어서 외로운 재소자들을 찾아다니고, 가난한 아이들을 돌봤던 그가 아닌가. # 5. 1982. 4. 1. - 서울·부산의 대공분실 소설가 유시춘 씨는 지난 5일 음악회에서 "살면서 참담하게 부끄러웠던 적이 서너 번 있는데 그중 한 번이 김은숙과 관련돼 있다"고 고백했다. 1980년대 당시 숱한 '고문의 기록'을 역사로 남기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유 씨. 그러나 그는 정작 고문 당하고 잡혀갈 게 두려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이름 아래 숨었다고 했다. '나의 손발을 묶는다 해도'라는 제목의 수기집 엮은이를 '민가협'으로 하고, 자신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김 씨는 출옥한 지 한 달도 안 된 상태에서 유 씨가 부탁한 글을 주저 없이 써주었다. 그 수기집은 현재 절판된 상태다. <첫째날> 1982년 4월 1일, 우리는 수사망이 좁혀지면서 좌경·용공으로 몰려지고 급기야는 간첩으로 호도되어 당황하기 시작했다. (중략) 남산에 있는 안기부에 도착하자 문부식 씨와 나는 각각 다른 방으로 데려가졌다. (중략) 화장실에 가고 싶어 화장실 문을 여는 순간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욕조와 변기가 있는 그곳 주위에는 바퀴벌레가 빈틈도 없이 바글바글 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저녁부터 다음날 오후까지 한 번도 화장실을 가지 못했다. <둘째날> 꼬박 밤을 새우고 다음 날은 어느 곳인가 한 군데를 들러 남영동 대공분실로 갔다. (중략) 나는 밤새도록 같은 내용을 되풀이해서 이야기했기 때문에 아침이 되자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팠다. 난 이틀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고 잠도 한숨 못 잔 것이다. <셋째날> 저녁 무렵, 우리는 부산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중략) 수사관은 "이건 너무 약해. 그것 있잖아, 니들 하는 말들. 그러니 좀 더 세게 써. 사회주의인가 뭔가 하는 이야기가 들어가야 하잖나." (중략) 현 군부정권의 광주사태를 암묵 지원한 미국을 고발하고 미국이 더 이상 우리의 우방이 아님을 시민들에게 자각하라고 외치려 했던 우리의 방화 이유는 묻지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중략) 물이 쏴 하고 쏟아지는 소리에 내 머리는 번개가 스치듯 감전이 된다. (중략) 떨고만 있는 내게 두 남자가 와락 덤벼들어 내 옷을 벗긴다. (중략) 팬티는 오줌으로 젖었고 차가운 바닥에 꿇어 앉힐 때마다 너무나 추워서 몸은 흡사 신들린 사람 마냥 바닥에 부딪혔고, 말을 하려 해도 입이 벌어지지가 않아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섯째날> 더 이상 써나가는 것이 지금 내겐 새로운 고문으로 느껴진다. 수감된 후 나는 처음 몇 개월 간은 세면장에서 물이 쏴 하고 쏟아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몸을 부르르 떨었고 귀를 틀어막곤 했다. (중략) 독방생활 4년 5개월 동안에도 너무나 비참했고 처참했던 취조 때의 아픔들을 잊을 길이 없었다. -김은숙 수기 '우리는 더 이상 참아서는 안 된다' 중에서 #6. 2011. 4. 6. -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김 씨는 "너무 추운 감옥에 오래 살아서 다른 사람들은 덥다고 그늘로 피할 때 우리는 햇볕을 찾아다닌다"고 했다. 임 씨가 "나는 아직도 내복 입고 있다"고 맞장구쳤다. 병실에서 나온 뒤 임 씨는 한 잡지사의 창간 10주년 행사 때문에 효창공원 내 백범기념관으로 향했다. 그의 걸음은 지난 19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다 판문점을 거쳐 귀환할 당시처럼 당당했지만, 얼굴에는 씁쓸하고 착잡한 심정이 묻어났다. "언니가 저렇게 다시 일어난다고 할 때마다 마음이 참…. 사실 암이 전이가 많이 돼 손쓸 수 없는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수술도 못하고 진통제 투여 외에는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인데…." 그러나 임 씨는 '은숙 언니'를 그냥 보낼 수 없다고 했다. 트위터를 통해 그는 세상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우리 모두가 김은숙 님의 보호자가 될 수는 없을까요? 그녀가 치열하게 살았던 격랑의 80년대, 이제는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겨져야 할까요? 그녀는 지금 지치고 외롭고 아프고 가난합니다.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사위어 갑니다."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김은숙 1958년 강원도 철원 출생 1977년 고신대 기독교육과 입학 1982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1987년 출옥 1995년 첫 장편소설 '이성이 잠들면 요괴가 눈뜬다' 발표 2008~ 2010년 지역아동센터(서울 종로구 창신동) '참신나는학교' 대표 교사 부미방 사건 1982년 3월 18일 부산지역 대학생들이 부산 미국문화원에 방화한 사건.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및 독재 정권 비호에 대한 미국 측 책임을 물어 미문화원에 불을 지른 사건으로, 당시 도서실에 있던 대학생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건 발생 14일 만인 4월 1일 주모자 문부식과 김은숙이 자수했다. 다음날 가톨릭 원주교육원에서 문부식과 김은숙 등에게 의식화 교육을 시킨 혐의로 김현장이 체포됐다. 문부식, 김현장은 1심에서 사형, 김은숙 등은 무기형을 선고 받았으나 그 뒤 감형됐다. 1980년대 반미운동의 효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