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8장,
주성은 가만히 안방 문을 연다.
“엄마!”
박순분여인과 영미가 새로 마련한 옷을 보고 있다가 동시에 고개를 들어 주성을 바라본다.
“니가 웬일이고?”
박순분여인은 마음과는 달리 차가운 음성으로 말한다.
“웬일이라니요?
명절을 보내려고 왔지요.“
“니가? 여그서 명절을 보내?”
“엄마! 이제 그만 노여움을 거두세요.“
“.................”
주성은 그런 어머니께 큰 절로 인사를 한다.
영미는 슬그머니 방을 빠져 나간다.
“니 혼자 여그 와도 되는 거이가?”
“그럼 어떻게 해요?
그 사람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더 역정을 내실 것이 아닌가요?“
“하모!
여가 어데라고 그아들이 온다 말이가?
내는 그 아들을 보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엄마! 한 달 반전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내캉 아무런 상관도 읍다.”
영미는 찻상에 떡과 식혜 그리고 남편이 좋아하던 육포를 가져온다.
남편은 구정 때가 되면 육포를 매우 좋아하면서 즐겼던 것이다.
소고기를 다져서 온갖 양념을 해서 얇게 펴서 말려
차례 상에도 놓고 손님들의 술안주도 하는 것이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 좋고 연한 부위로 며칠을 정성을 다해야만
맛깔스럽고 부드러운 육포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거........
명섭이와 명규를 주려고 사 왔는데....“
주성은 가지고 온 것을 영미에게 내 민다.
“니가 이자 아비라는 것이 실감이 나는 거이냐?
참말로 이자 철이 쪼개 드는 모양이구마!“
박순분여인은 아들이 조금은 변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바라본다.
“고맙심더! 허지만 이것을 직접 아들들에게 주이소.
그라믄 아들들도 좋아할끼라예!“
“오야! 애미 말대로 그기 좋겠다.“
박순분여인도 영미의 말을 거들고 나선다.
주성은 아내가 가지고 온 찻상 앞으로 가 떡을 먹고 식혜를 마신다.
참으로 입에 달라붙는 감칠맛과 함께 깊은 맛이 나는 것이다.
주성은 자신이 좋아하던 육포를 맛본다.
너무도 그리운 고향의 맛이었다.
이제는 어머니의 손에서 아내의 손으로 넘어간 맛이었다.
참으로 깊고도 정겨운 맛이다.
“역시 우리 집안의 이 맛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어요.
부드럽고 향긋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는 이 맛을 찾을 수 없어요.“
”음식이라 카는 거이 하루아침에 맹글어지는 거이 아이다.
모든 거이 시간과 정성과 노력을 통해서만이 읃어지는 거이다.
명섭 애미가 그 맛을 내는데 을매나 많은 정성과 시간을 보냈는지 아나?
여자란 자고로 한 집안을 책임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아낙으로서 빛을 발할 수가 있는 거이니라!“
주성은 어머니의 말에 아내의 고생과 정성이 얼마나 들어 있는가를 알려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말없이 뒤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 한 집안을 이끌어 나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아내는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참, 내사 이라고 있을 일이 아니제!
내사 잠시 댕겨올 곳이 있구마 깜빡 했제!“
박순분여인은 바쁜 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주성은 어머니가 집을 나서자 살며시 영미의 손을 잡는다.
“와 이라예!”
“여보! 당신에게 고마운 말을 하고 싶소.
가을에 보낸 것은 모두 당신이 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어!
정말 너무 고마웠소!“
“집에 있는 것을 나누어 주었을 뿐이라예!
내 아들의 아버지가 집에 있는 것들을 먹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 아닌겨?”
“그래도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오.
내가 당신에게 얼마나 못된 사람인줄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마음이 나올 수가 있겠소?
정말 미안하고 뻔뻔스럽소!“
“..................”
“당신 말대로 이제부터라도 명섭이와 명규에게
아버지로서 조금은 자격을 갖추도록 노력을 하겠소.”
“그라믄 그것으로 지는 됐슴더!”
주성은 가만히 영미의 어깨를 끌어안는다.
영미 또한 뿌리치지 않고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얼마나 오랜만에 남편의 가슴에 안긴 것인가?
영미는 갑작스럽게 서러움이 북받쳐 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주성의 품을 빠져나와 밖으로 나간다.
주성은 새삼스럽게 아내의 고마움을 느끼면서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그리고 주성은 아이들의 방으로 간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주춤거린다.
아버지와 정이 들지 않은 명섭과 명규였다.
“미안하다!
아버지가 너희들에게 너무 무심했지?“
“.................”
“.................”
“자!
별것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우리 명섭이와 명규주려고 사왔어! 받아줄래?“
두 아이는 주성이 내미는 선물을 받는다.
“어서 끌러봐!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
명섭과 명규는 서로 눈을 마주 교환하다 각자의 것을 끌러본다.
“와!
형! 이거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게임기야!“
“나도........
나도 가지고 싶었던 게임기!
아버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두 아이는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는 말을 한다.
“너희들이 좋아해 주니까 아버지가 정말 고맙다.
이제 가끔씩은 너희들을 생각해서 필요한 것을 사다 줄게!“
명섭과 명규는 금방 게임기에 정신이 팔린다.
주성은 그런 아들들을 바라보다 방에서 나온다.
“명섭아부지! 밥상을 들랐습니더!“
영미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흐뭇해진다.
“어머니도 안계시고 아버지도 나가셨는데 당신하고 함께 먹으면 안 될까?
모처럼 집에 와서 혼자서 밥맛이 나겠어?“
“................”
“나 우리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곳으로 당신 밥하고 가져와!”
주성이 그렇게 말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자 사랑으로 내 갔던 밥상을
다시 부엌으로 가져와서 다시 상을 챙겨 가지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처음으로 남편과 겸상을 하는 영미였다.
“어서 수저 들어!”
“와 이캅니꺼!
어무님이 아시면 역정을 내실 낍니더!“
“아직도 부엌에서 밥을 먹소?”
“아니요! 지금은 어무님과 함께 방에서 먹습니더!“
이제는 시아버님과 아들들이 겸상을 하고 영미는 시어머니와 함께 상을 받는 것이다.
이제 아들들이 있고 이 집안의 모든 경제권을 넘겨받은 영미였다.
박순분여인은 모든 재산을 영미와 명섭과 명규 앞으로 이전을 해 놓은 것이다.
당신들 두 부부의 나이를 생각하고 아들이 이중 살림을 하는 것을 마음을 놓지 못한 박순분여인은
당신들이 졸지에 무슨 일이라도 당한다면 아들을 믿지 못해 당신이 정신이 맑을 때 모든 것을 정리했던 것이다.
아들의 손에 단 한 푼도 넘겨주지 않을 생각인 것이다.
또한 박순분여인은 며느리인 영미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아들에게 마음을 털어버린 뒤로 박순분여인은
더 늙고 힘이 없어진다는 것을 느끼면서 영미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아들이 없어도 집안은 끄떡없이 잘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만일 영미가 없다면 집안은 하루도 지탱을 할 수가 없다는 박순분여인의 나름대로의 계산이고 생각이다.
당신이 모든 일을 맡아서 관장하기에는 이제 당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안다.
영미는 온 집안의 일을 소상하게 알면서 사람을 부리고 집안의 모든 일들을 처리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가을이 되어 모든 곡식들을 추수해 드리고 나면 나누어 줄 사람들을 빼 놓지 않고
나누어 주고 수매할 것들을 수매하고 집안에 들일 것들을 빈틈없이 준비해 나가는 영미였다.
영주 시내에 있는 건물의 관리도 빈틈없이 관리하면서 임대료를 받곤 한다.
박순분여인은 그런 영미를 아들 주성이보다 믿음직스러워하면서
손자들의 앞날과 영미에 대한 배려를 해 놓은 것이다.
손자들의 재산에 대해 법정 관리인을 영미로 못 박아 둔 것도
행여 아들이 그것을 빌미로 영미를 괴롭힐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모든 재산, 영주의 건물과 산과 밭 그리고 논과 인삼밭과 살고 있는 집을
모두 영미와 명섭과 명규 앞으로 이전 등기를 해 놓은 박순분여인이다.
아들 주성이에게 다른 여자와 가족이 있는 한 아들을 믿지 못하는 박순분여인의 마음이다.
그것은 아들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일뿐더러 아들의 다른 가족을
이 집안으로는 한 발자국도 들이지 못하게 하려는 마음인 것이다.
“명섭엄마! 내가 밉지 않소?“
거의 밥을 다 먹은 주성은 영미를 보면서 묻는다.
“미워도 우짜겠어예?
내 아들들의 아버지가 아인겨?“
“나를 용서해 줄 수 있겠소?”
“지가 용서하고 말고가 어디 있어예?
그저 우덜을 잊지 않고 찾아와 주는 것을 고맙다 해야지예!“
영미는 담담하게 말을 한다.
“고맙소! 당신의 그 마음을 잊지 않으리다.
그리고 이제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제사 때고 명절 때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생신 때 내려오도록 하겠소!“
“그리만 해 준다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슴니더!
그럴 때마다 당신을 기다리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을매나 쓸쓸해 보이시는지 마음이 아픔니더!
지는 아무래도 상관없슴니더!
부모님 가심을 아프게 해 드리지 말았으면 합니더!“
주성은 영미의 손을 잡는다.
“당신이 있어 내가 철없이 그런 행동을 한 모양이오.
당신을 믿는 마음이 커서 아마 당신을 믿고 그리 한 모양이오.
지금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절대로 당신을 마음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이오.
나를 용서해 주시오.“
“명섭아부지! 그리 말을 해 주니 지가 고맙슴니더!“
주성은 다시 영미를 살짝 끌어안는다.
“이라지 마소!”
영미는 주성을 밀어내고 일어서려 한다.
그러나 주성은 이미 영미의 입술위에 자신의 입술을 덮는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부부는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것이다.
영미는 한참 만에 남편의 품을 벗어나 상을 들고 나간다.
그런 영미의 가슴을 심하게 뛰고 있었다.
주성은 영미가 나가자 침대위에 누워 영미의 입술의 감촉을 생각한다.
아직도 뜨거운 아내의 입술이었다.
오랜만에 아내가 여자라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잠이 든다.
밖에서는 음식을 준비하랴 명절 준비에 분주하다.
차례 상에 놓을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북적인다.
영미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혹시라도 남이 알새라 조심을 한다.
남편과의 키스로 자신이 아직도 여자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인식을 하는 것이었다.
여자로서보다는 아이들의 엄마로서 한 집안의 며느리로서 자신을 잊고 살아온 세월이다.
남편이 무슨 짓을 하든 밉지 않았던 영미였다.
그저 가끔씩이라도 집에 들르면 남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 남편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서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견하고 든든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영미는 그렇게 자신의 마음이 남들에게 들키기라도 하듯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아가면서 일을 한다.
영미가 일을 모두 마치고 집안을 단속한 다음에
방안으로 들어간 시간은 상당히 늦은 시간이다.
주성은 이미 침대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
사랑채로 나가지 않고 그대로 잠이 들어 있는 남편의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던 영미는 옷을 벗고 주성의 옆으로 조심스럽게 눕는다.
잠결에 영미가 온 것을 알고 주성은 눈을 뜬다.
“당신을 기다리다 잠이 들었소!
늦게까지 당신이 너무 고생이 많은 것 같소.“
“늘 하던 일입니더!”
영미는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을 한다.
“명섭 엄마! 내가 당신에게 너무 죄를 많이 지었소.“
“...........”
“내가 당신에게 그렇게 못된 짓을 했는데도 변하지 않고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을 키워가면서 집안을 다스리는 당신을 보니 정말 내 자신이 부끄럽기 짝이 없소.”
“.................”
주성은 살며시 영미의 손을 잡는다.
“나를 용서해 줄 수 있겠소?”
“용서고 뭐고 어디 있습니꺼?
당신을 한 번도 미워해 본 적이 없습니더!“
영미는 자신의 마음을 감추려 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을 한다.
“고맙소! 아마 내가 당신을 너무 믿어 투정을 부린 모양이오.
이제 나도 조금은 철이 들어 당신이 고생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오는 모양이오.“
”명섭 아부지!
누가 뭐라캐도 당신은 내 아들들의 아부지 아입니꺼!
미안해하실 일도 없습니더!“
주성은 가만히 영미를 끌어안는다.
그런 남편의 행동에 영미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남편의 가슴에 안긴다.
주성은 참으로 오랜만에 아내의 몸을 애무한다.
자신이 없어도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지 않고
집안을 다스리며 부모님께 지극정성을 다 하는 아내였다.
아들들 또한 밝고 명랑한 성품으로 잘 키워내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고맙고도 미안스러운 마음이 든 것이다.
그렇게 주성은 정성을 다해서 아내의 몸을 애무해 나가고 있었다.
영미 또한 오랜만에 남편의 손길을 받으며 여자로서의 행복을 느끼며 남편의 모든 것을 받아드린다.
그들은 다시 새롭게 시작되는 부부처럼 뜨거운 밤을 지낸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즐~~
감사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감사
즐독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