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7년 정사년(영조13년)/청대일기
5월6일 맑음 감영으로 길을 나서 언양에서 점심밥을 먹고,언양현감과 함께 비근당에 자리 하였다.경치가 그윽하고 한갓졌다. 북쪽 지게문을 여니 작은 연못이 있는데,갓 피어난 연꽃이 푸른 물 위에 떠 있어 아름다웠다.石南寺에서 잤다.절은 운문산 아래에 있다. 산골짜기는 그윽하고 깊었으며,물 밑에는 모두 돌이었는데,서쪽 위로 두어 리쯤이 다 그러하였다.또 옛날 석조가 있었는데,넓고 평평하며 깨끗하여 물을 받아두고썼다
5월7일 가랑비가 내렸다.견여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는데,길이 몹시 험준하여 견여를 멘 중들이 번갈아가며 메었으나,모두 가쁜 숨을 몰아쉬고 땀을 흘렸다. 마음이 너무 안쓰러웠다. 주부자(주희)의 이때 소식이 아주 분명하다(此時消息甚分明)라는 구절을 묵송하였다.말을 타고 싶으나 그럴 수 없으니 한스럽다. 산아래 집에서 머무르다가 이윽고 운문사 중들이 견여를 가지고 왔기에 곧바로 타고 동구로 내려왔다.ㅁㅁ촌에서 말먹이를 먹이고,운문사에서 잤다. 절은 청도군 호거산 아래에 있다.계곡 이름은 약아인데,물이 아주 맑았으며 암석이 기이하였다.그 가운데 평평한 언덕이 아주 넓게 이루어졌는데,경계가 불곡사(경남 창원시 고려전기의 절)에 비해 배나 아름다웠다.절의 사적을 보니,진무제 천가 원년 에한 도승이 다섯 개의 갑사[560년(진흥왕21)한 신승(神僧)이 호거산에 세운 것으로, 중앙의 대작갑사,동쪽의 가슬갑사,남쪽의 천문갑사,서쪽의 소작갑사,북쪽의 소보갑사를 말한다.]를 갑사를 지었는데,그 중 대작갑사가 곧 지금의 운문사이다. 수나라 개황11년(591),신라 진평왕 35년에 중 원광이 중창하고,후량의 폐제 청태4년, 고려 태조 때 중 보양이 중창하였으며,송 숭년 2년(1103),고려 숙종때 왕사 원응이또 중창하였다. 네 개의비석,다섯 개의 갑사,다섯 개의 탑,네개의 굴이 있다. 전에 신주백의 말을 들어 보니,임춘(예천임씨의 시조)의 서하문집을 운문사 중이 약야계의 돌 상자속에서얻었다고 하였는데,지금 운문사 중의 말을 들어보니 과연 그러하였다.
5월8일 경산 읍내에서 말먹이를 먹이고,오후에 감영에 당도하였다.의례대로 명을 맞이한 다음에 관찰사를 들어가 뵈었더니,극진히 환대해주었다.또 말하기를 나와 울산 부사는 모두 외직에 보임되어 있으나 내-외직을 막론하고 국사에 온 마음을 쏟아야 할 것 이오,라고 하였다.잠깐동안 조용히 이야기를 나눈 뒤에 하직하고 물러나와 영주인의 집에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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