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웃음과 울음 사이』(푸른사상 시선 188). 2024년 5월 17일 간행.
시인은 강과 산, 물과 바람, 자연 속에서 추구하는 인간 가치와 생명의 충일함을 노래한다. 사람은 착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인식으로 삶을 긍정하고 이웃을 품는 시인의 마음이 봄 햇살처럼 따스하다.
■ 시인 소개
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해양문학상, 시흥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문학박사로 홍익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한국문화원연합회 논문공모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연극배우, 환경보호 실천가, 무료 봉사자, 도보 여행가, 자전거 여행가로 활동하며 5년여 세계 오지 도보 순례, 한강 1,300리, 섬진강 530리, 폐사지 등 도보 여행, 80일 동안 자전거 전국 일주를 한 바 있다. 2016년 평화, 환경, 휴머니즘 국제 영상제에서 <초인종 속 딱새의 순산, 그 50일의 기록>으로 환경부장관 대상을 받았고, 2020년 인사동 마루아트센터 국제 칼렌다 사진전에 참여했다. 『투데이 신문』 『이모작뉴스』 『ESG코리아뉴스』 칼럼니스트로서 글을 쓰고 있다.
■ 시인의 말
한번 서가에 꽂히면 그곳에서 먼지나 쌓이며 존재의 가치도 없어져버리는, 이 국토에서 푸르게 일렁거리는 나무 몇 그루만 베어내는, 그런 책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여기에는 이 나라에서의 시와 시인들의 위상도 불안스럽게 놓여 있다. 무작정 시를 붙잡고 아무런 경제적 대가도 따르지 않는 시가 좋아서 쓰는, 순정한 이 땅의 시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이 시집이 누군가의 가슴속으로 들어가, 작은 위안이나 정서의 울림이라도 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 시집 속으로
웃음과 울음 사이
윤재훈
“웃”이라는 글자를 가만히 보면
아이가 동산 위에 반듯하게 서
웃고 있다
금방이라도 어깨춤이 튀어나올 듯
두 손을 가지런히 올리고
깔깔거리고 있다
그 웃음소리에
꽃들이 사방에서
지천으로 터진다
“울”이란 글자를 가만히 보니
아이가 무릎을 포개고
울고 있다
엄마라도 어디 갔는지
설움이 북받쳐
어깨까지 들썩인다
받침 하나일 뿐인데
세상은 온전히 그 자리에 있는데
천지간(天地間)에 이렇게
흔들리는 내 마음
울음과 웃음 사이
세상 이야기가 가득하다
■ 추천의 글
「흰 소를 찾아서」라는 시에서 보듯이 그의 시 속에는 ‘진리’라는 도(道)가 숨어 있고, 「나비 박제」라는 시에서는 ‘사라짐의 미학’이 있다. 「산방(山房)의 방석 하나」에서는 구도(求道)의 궁행(躬行)을 통한 기다림을 본다. 이렇듯 그의 시는 한 편 한 편 펼쳐갈수록 진선미의 대궐 속에서 벌어지는 생명의 충일한 향연을 맛보며, 미세한 떨림의 격조 있는 향음(響音)을 듣는다. 가난과 그리움의 시어로 죽음과 죽임이 난무하는 황폐해진 넓은 바다에서 ‘생명’이라는 고기를 연신 낚아댄다. 아주 작고 가는 희망이라는 낚싯대로.
― 이명권(코리안아쉬람 대표·비교종교학박사)
남들보다 한 뼘 더 높은 그이의 시평선(視平線)에 잡히는 세계가 궁금하였다. 간짓대 위에 앉은 선승, 끊어진 남북 철로, 사막을 지나는 배가 보이고…. 더 깊은 생명의 아픔, 더 먼 우주의 빛을 그이는 고비샅샅 살펴오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 丁明(시인)
윤재훈 시인의 『웃음과 울음 사이』는 시라는 언어를 통해 삶의 깊이와 자유를 표현하고 있다. 신이 만든 자연과 인간이 만든 언어는 시라는 언어를 통해 하나가 된다. 윤재훈 시인의 『웃음과 울음 사이』는 자연과 인간의 삶을 가장 폭넓고 깊이 있게 표현하는 시집이다.
― 윤재은(국민대학교 교수·건축가)
■ 발문 중에서
오지와 사막을 걷고 타던 그이가 목화솜 같은 시를 썼다. 오지는 단순히 걷고 타는 것이 아니고 미지를 탐험하는 것이 아니던가. 사막을 걷는 것은 막연의 허허(虛虛)를 헤엄치는 것이다. 아랍의 골목을 헤매는 것은 원초의 시대로 가는 여행이고 아시아의 오지를 헤매는 것은 미지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던 그이가 먼 산에 연초록빛이 들어차자 이참에는 꼭 세상에 내놓겠다며 20년을 벼르던 시집을 꾸몄다.
― 김란기(홍익대 건축학 박사·문화재전문위원)
■ 작품 세계
윤재훈 시인은 자신의 항심(恒心)을 심화 및 확대하는 시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시인이 인식하는 항심이란 사람은 착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으로 맹자의 성선설을 토대로 삼는다. 맹자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의 불행을 가엾고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남에게 사양할 줄 아는 마음,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중략)
맹자는 사람이 악을 행하지 않고 본성을 유지하거나 진전시키려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항산(恒産)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항산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재산이나 생업이다. 항산이 있어야 항심을 잃지 않게 되어 경제가 안정되고 사람들 간에 다툼이 없고, 항산이 없으면 항심을 가질 수 없어 생계에 얽매여 타락하고 범죄가 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맹자는 항산을 왕도정치를 이루는 근본이라고 역설했다.
윤재훈 시인의 시 세계에는 맹자의 사상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인의예지의 마음이 작품 세계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