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창세기49장 13-24절) 『해변에 거하리니 그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 지경이 시돈까지리로다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 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서 섬기리로다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갓은 군대의 박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아셀에게서 나는 식물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진수를 공궤하리로다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49장 13절『스불론은 해변에 거하리니(샤칸) 그곳은 배(오니아) 매는 해변이라 그 지경(예레카)이 시돈까지리로다』스불론은 나(레아)와 함께 거하리라는 의미다. 레아가 함께 있다는 말은 하나님이 레아에게 하신 말씀이다. 레아가 야곱과 함께 하는 아들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라는 의미다. 샤칸은 후의 해변에 거한다는 의미다. 모든 인간은 물속(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자들이다. 궁창 아래 물에 거한다는 것이다. 오니아는 하나님이 물고기로 권능으로 나타나신 배라는 의미다. 배, 또는 물고기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배를 상징하는 예수님이 물고기를 낚는 것이다. 예레카는 환도뼈로 생명의 근원이 되는 허리를 의미하는데, 시돈은 고기잡는 곳이라는 의미다. 물고기를 낚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4장 19절에서『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져서 낚여져 오는 물고기가 153마리로서 벤냐민과 같은 자가 된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5장 10절에서도 같은 말을 한다.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취한다는 말이 낚는다는 말과 같은 의미다.
49장 14절『잇사갈(잇사카르)은 양의 우리 사이에(바인) 꿇어 앉은 건장한(게렘) 나귀(하몰)로다』잇사갈은 그가 아세르 값(삯)을 주셨다는 것이다. 양 우리에 쭈구리고 있는 뼈(게렘) 나귀라는 의미를 갖는다. 양 우리는 미쉬파트(공의)다. 샤파(발가벗기다)에서 유래된 말이고, 말씀으로 발가벗겨져서 세상에 온 자를 의미한다. 세상에 온 자들이 양이다. 바인은 분리되어진 양우리를 의미한다. 양 우리는 둘인데, 목자가 지키는 양우리와 그 밖의 양들을 의미한다. 게렘은 뼈라는 의미로서, 단단히 묶다 라는 의미다. 뼈가 흙과 단단히 묶여져 있다는 의미도 되고, 율법에 매여있다는 의미도 된다. 하몰(나귀)은 율법을 의미한다. 묶여져 있는 뼈를 게렘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하나님의 집을 벗고, 벌거벗은 이 나귀들이 흙집을 입고, 양으로 우리에 작은 이스라엘과 큰 이스라엘에 와서 쭈그리고 앉아있는 것이다. 그들이 율법을 지켜서 자기들이 원하는 하나님을 찾으려고 가기에 쭈그리고 있는 것이다.
49장 15절『그는 쉴(메누하)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토브)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서 섬기리로다』왜 나귀가 세상에 왔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이 안식을 주겠다고 하는 그 안식은 샤바트인데, 여기는 메누하 이다. 메누하는 마노아흐의 여성형이다. 마(말씀)노하트(안식)는 말씀 안에서 안식이라는 의미다. 노아흐는 누아흐에서 유래되었고, 노아와 관련이 있는 단어다. 누아흐나 노아는 안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누아흐는 세상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나, 노아는 세상이라는 의미가 없다. 노아는 안식 그 자체이고, 누아흐는 세상에서 괴로워하다가 말씀 안에서 안식을 보고, 그 안식을 얻게 된다는 의미다. 안식을 보는 것(라아)은 하나님의 눈으로 안식을 바라보는 것이다.
토브는 선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안식이 돌아오므로 선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땅(에레츠)이 기쁨이 된다. 에레츠는 땅이지만, 물질세계를 의미한다. 이 뼈나귀들이 기쁨을 보고 세상에 오는 것이다. 짐을 지고 내려왔다는 것은 선악을 알게하겠다는 율법의 짐을 지고 세상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집을 벗고, 흙집을 입으므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가 된다. 이 말은 창세기 12장 1절의 말씀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이 말은 하나님이 첫사람 아담(그리스도)에게 하나님 나라를 떠나 물질세계에 들어가라는 말씀인 것이다.
잇사갈이 하나님이 함께 세상으로 가자 라는 말을 듣고 기쁨으로 같이 내려왔으나 흙집을 입는 순간 모든 기억을 잊어버리고, 자기가 어깨에 짊어진 율법을 가지고, 아바드 하려고 하야 한 것이다. 뼈 나귀들이 이렇게 한 것이다. 『압제 아래서 섬기리로다』섬기다 라는 말은 조공을 바치는 의미다. 조공(미스)을 아바드 하려고 하야하고 하야하는 나귀라는 것이다. 미스는 말씀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려고 아바드(경작)하는 것이다. 땅을 경작하는 것은 왜 인간이 세상에 왔으며 죽음 이후 어디로 가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49장 16절『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 백성(에하드)을 심판하리로다』단은 하나님이 라헬의 억울함을 푸신다는 의미다.『라헬이 가로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소리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인 하여 그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에하드는 둘인데, 하나가 되는 백성이다. 하나는 이쉬이고, 나머지는 이샤 (물고기과 새와 짐승)이다. 이 모든 것들은 네퓌시하이(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들은 구원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이다. 백성은 건너편에서 강을 건너, 율법을 지키며 성에 사는 모든 사람들(히브리인)이다. 백성은 이쉬를 떠나 혼자서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다. 그런데,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하나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공의에 의해서 하나가 되므로 단이 심판을 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공의로 심판한다는 말이다.
49장 17절『단은 길(오라흐)의 뱀(나하쉬)이요 첩경의 독사(쉐피폰)리로다 말굽(수스)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오라흐는 하나님으로 부터 분리되어 울타리 안에 가두어져 있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는 자가 자기는 죽지 않고, 자꾸 살아나는 자들이 오라흐다. 그래서 그들은 팔십(새하늘과 새땅)을 위해서 성령과 말씀으로 삼켜져야 한다. 뱀은 율법을 의미한다. 뱀의 길을 율법의 길 위에 하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은 공의(그리스도)의 심판자라는 것이다. 쉐피폰은 성령과 말씀을 삼켜지는 물고기들이다.
말은 사다리타고 내려와서 사다리타고 다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말굽(수스)을 문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내려와서 자기가 원하는 하나님을 찾아서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자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한다. 그게 떨어트리는 자가 율법 위의 공의의 단이다. 결국 단에 의해서 다 떨어지게 된다.
49장 18절『여호와여 나는 주(예수와)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단이 말하고 있다. 예수와는 야사의 다른 표현이다. 예수와는 야사에서 유래된 단어다. 여호와 야사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여호와 야사는 여호수아(예수)이다. 단은 여호와 야사를 기다리는 자들을 의미한다.
49장 19절『갓(게드)은 군대(게두드)의 박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게드는 기멜과 달렛을 사용하는데, 율법을 사용해서 문으로 들어가는 자다. 군대의 공격을 받는 것은 후의 발꿈치를 공격하는 것이다. 군대는 마귀를 상징한다. 창세기 3장 15절의 말씀과 연결된다. 발꿈치를 물리지만, 결국 후께서 다 데리고 가는 것이다.
49장 20절『아셀(오세르)에게서 나는 식물은 기름진(샤멘) 것이라 그가 왕(멜레크)의 진수(마아단)를 공궤하리로다』오세르는 기쁨이라는 의미다. 오세르와 같은 알파벳을 사용하는 글자 중에, 아세르와 아사르가 있다. 아세르(분리되다)는 분리되는 문은 기쁨이 된다. 곧게 나아가다 라는 의미가 있다. 하나님 나라로부터 곧게 나와서 하나님 나라로 곧게 들어간다는 것이다. 샤멘은 기름이 있는 자다. 열처녀의 비유에서 나타나는 기름과 같은 단어다. 슬기로운 다섯처녀가 샤멘을 가진 자다. 아세르는 후의 기름진 떡(레헴)이라고 했다. 레헴에 기름이 진 성령의 감동이 있어서 인자의 살과 피가 된 것이 아셀가 된다. 이 아셀은 기름진 떡을 주게되므로 왕의 진미를 주리로다 라고 했다. 마아단은 마(말씀)아단(스스로 즐기다)의 합성어다. 아셀이 왕에게 주는데, 말씀으로 진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49장 21절『납달리(나프탈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세페르) 소리를 발하는도다』 나프탈리는 나프톨(씨름하다)에서 유래되었다. 라헬이 자기 언이와 경쟁하여, 이겼다고 하는데, 사실상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씨름하는 자는 야곱(이스라엘)이다. 납달리는 보내는 아름다운 암사슴이라고 했다. 샤파르(빛나다)에서 유래되었다. 빛나는 것은 어둠에서 빛이 비추어진다. 하나님 나라의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빛나는 아름다운 암사슴은 생명을 주는 말씀이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는 자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을 비출 수 있다는 말이다.
49장 22절『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아인)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짜이드)』요셉은 권능으로 세상에 사다리 타고 온 자들을 삼키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요셉은 아들(작은 이스라엘)을 열매맺고, 아들(큰 이스라엘)을 열매맺는다. 샘은 아인으로 율법을 의미한다. 가지는 딸들을 의미한다. 율법 위에 딸들이며, 율법에 있는 딸들은 아들이 되지 못한 자들이다. 딸들이 담(벽) 위를 넘었다는 것은 울타리가 쳐져 있는 것으로 표현되며, 율법에 매여있는 자를 의미한다. 담을 넘었다는 것은 율법 위를 올라간다는 것이다. 짜이드는 성령의 역사로 안식의 말씀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딸들은 남은 자를 상징하며, 작은 이스라엘(먼저된 자), 큰 이스라엘(나중된 자), 남은 자가 다 율법 위에서 사다리를 타고 하나님 나라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49장 23절『활(히쯔)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히츠의 주인은 바알이다. 바알은 남편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여기서는 우상(마귀)을 의미한다. 요셉을 힘들게 하는 율법의 화살이 태초의 주인을 증오하고, 미워하고 핍박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율법에 따라서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는 것을 의미한다.
49장 24절의 『활(케세트)이 도리어 견강하며(파자즈)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야드)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케세트는 23절의 활(히쯔)와는 다른 단어다. 파자즈는 정련되어 영원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율법의 주인인 바알이 요셉(그리스도)를 괴롭히지만(십자가에서 죽고), 결국 정련되어 영원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정련된 금이라는 말은 창세기 2장 12절에서 말하고 있다.『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열왕기상 10장 8절에서도 말한다.『왕이 또 상아로 큰 보좌를 만들고 정금으로 입혔으니』정련된 금으로 말미암아 영원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로부터』라는 말은 정련된 금이 나올 때 라는 말로서, 정금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라고 했다. 반석이신 목자(요셉)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