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추 어린잎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비비추 나물을 뜯으로 다녀왔습니다. 우리나라 산에 자라는 비비추는 관상용 화초로 유명해서 비비추를 나물로 먹는다고하면 놀라시는 분들이 많은데, 반대로 저는 비비추가 관상용으로 그만큼 인기 있는 식물인지 몰랐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나서 아파트 화단을 보니 비비추가 보이더라구요. 비비꼬여 올라오기에 비비추.
암튼 예쁜 꽃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비비추이지만 야생에서 자라는 조금 다른 종인 산비비추는 4월, 어린잎으로 봄나물로 먹을수 있습니다.
비비추는 군락으로 모여 자라기에 많은 양을 채취할 수 있습니다. 높지 않은산의 반음지나 음지에 주로 자생합니다.
비비추 잎
약간의 독성이 있어서 생으로 먹으면 안된다고 하지만 알려있는데, 산비비추는 독성이 없는 식물이었습니다. (산림청으로부터 받은 답변) 독성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래도 데쳐서 먹는게 좋겠죠.
단 비비추는 박새라는 독초와 닮았기에 해마다 중독 사고가 일어난다고합니다. 채취하려 하신다면 꼭 박새를 구분할 수 있어야합니다.
독초 박새
무시무시한 독초인 '박새' 입니다. 비비추보다 잎에 골이 더 깊습니다.
비비추 사이에 또 다른 독초가 숨어 있습니다.
둥근원 안의 독초 '여로'입니다. 이렇게 비비추는 독초를 조심해야합니다.
좌 산마늘, 우 비비추
산마늘과 비비추 잎 비교
비비추 나물은 약간 쓰고 특별한 향이 있는건 아니기에 고급 나물은 아니지만 4월 한번은 먹을만한 나물입니다. 살짝 데쳐 먹는데 미끄러운 식감에 산나물 특유의 맛이 있습니다.
입자루까지 통째 채취하는데 뽑는 재미가 있습니다.
비비추의 잎과 씨에는 사포닌이 함유되어 있어서 항암, 항산화, 콜레스테롤 저하 효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옛날 민간에선 비비추 잎즙을 젖 앓이와 중이염에 사용했고 잎의 기름 추출물을 만성 피부궤양, 뿌리즙을 림프절 결핵에 꽃의 기름 추출물을 상처에 바르거나 붙여 치료에 사용했다고합니다 .
그리고 꽃을 말린 것을 자옥잠이라 하며 부녀의 허약함과 대하, 유정, 토혈 등에 효능이 있고 뿌리 및 뿌리줄기 말린 것을 자옥잠근이라 하고 치통, 위통, 인후통, 부인병 등에 사용했습니다. 잎을 말린 것은 자옥잠엽이라 하며 대하 및 상처 치료에 이용했다고합니다.
즉 여성에게 좋은 약초이자 나물이 비비추입니다.
비비추
한묶음 정도면 채취해 갑니다.
간단하게 고추장 무침을 했습니다. 오늘은 산나물 종류인 비비추 나물을 소개해 봤습니다.
비비추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원산지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입니다. 비비추는 매년 7~8월에 연한 보라색 꽃을 피웁니다. 야생 비비추의 어린 순은 봄에 나물로도 많이 먹는데, 요즘에는 비비추를 도시의 화단에서 더 흔히 볼 수 있어 야생화보다는 원예종이란 느낌이 더 강하게 들 정도입니다. 이는 그만큼 비비추가 도시에 잘 적응한 식물이라는 방증이겠죠.
비비추라는 이름은 독특하지만, 그 이름의 유래를 알려주는 근거 자료는 보이지 않습니다. 꽃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름의 유래를 파악할 도리가 없더군요.
이에 대해선 몇 가지 ‘썰’이 있습니다. 비비추의 어린 순을 나물로 먹으려면, 독성 제거를 위해 물속에서 거품이 나올 때까지 어린 순을 비벼야 합니다. 곰취, 참취 등 우리가 흔히 먹는 나물을 가리키는 단어가 ‘취’이지요. ‘취’에서 변형된 ‘추’라는 단어 앞에 비빈다는 의미를 가진 ‘비비’가 결합해 비비추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는 ‘썰’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린 순이 비비 꼬인 채로 말려 돋아나기 때문에 ‘비비’라는 수식어가 붙게 됐다는 ‘썰’도 보이더군요.
아무리 흔한 꽃이어도, 이름을 알고 만나는 꽃은 알지 못하고 지나치는 꽃보다 훨씬 더 각별하게 느껴집니다. 비록 ‘썰’이지만 이 같은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비비추라는 낯선 이름을 쉽게 잊긴 어려울 겁니다.
비비추의 꽃말은 ‘좋은 소식’, ‘하늘이 내린 인연’ 입니다. 걷는 것 자체가 고역일 정도로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거리를 화사하게 물들이는 비비추다운 꽃말입니다. 앞으로 자주 만날 꽃이라면, 서로 통성명을 하고 만나는 것이 더욱 반갑지 않을까요? ‘좋은 소식’과 ‘하늘이 내린 인연’은 약간의 관심으로부터 출발하더군요. 기자가 아내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