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행본 장 36장 장차 움츠러들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벌리게 하고 장차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하며 장차 없애려면 반드시 먼저 높이고 장차 빼앗으려면 반드시 먼저 줄 것이다. 이것을 미묘한 데서 밝다고 하니 유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법이다 고기는 못을 벗어날 수 없으니 나라의 좋은 물건은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將欲翕之, 必固張之. 將欲弱之, 必固强之. 將欲去之, 必固擧之. 將欲奪之, 必固予之. 是謂微明. 柔弱勝强. 魚不可脫於淵, 邦利器不可以示人.1) 장차 움츠러들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벌리게 하고, 장차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하며, 장차 없애려면 반드시 먼저 높이고, 장차 빼앗으려면 반드시 먼저 줄 것이다 將欲翕之, 必固張之. 將欲弱之, 必固强之. 將欲去之, 必固擧之. 將欲奪之, 必固予之 이 문장은 유명하다. 『노자』를 권모술수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 문장이 그런 인식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송대에는 이런 각도에서 『노자』를 비판하는 것이 하나의 흐름이었다. 아마도 성리학의 엄숙주의는 『노자』의 이러한 '얄팍한' 술수를 성인의 말로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리라. 그래서 정이(程頤)는 "『노자』라는 책의 말은 서로 함께할 수 없으니 마치 숯과 얼음의 관계와 같다. 처음에는 도의 극히 현묘한 점을 이야기하려는 듯하다가 나중에는 오히려 권모 사술로 들어가버리니 '장차 취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주어라(범응원본)'는 따위가 그것이다"라고 말한다(설혜). 정이는 대유학자고, 송대 이후 중국 지성사에 막강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사람은 『노자』를 이렇게 생각했고, 그래도 『노자』를 사랑했던 사람은 『노자』를 변호하려고 하였다. 예를 들어 범응원은 이런 게 『노자』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잘못된 해설의 문제라고 하였다. 그의 안목으로 보면 가령 다음 문장에 나오는 "나라의 좋은 물건"이라는 말에 대한 잘못된 해설이 문제를 낳는다. 『한비자』는 이것을 상벌이라고 하였고, 하상공은 권도(權道)라고 하였으며, 왕방(王雱)은 강함〔强剛〕이라고 하였다. 범응원에 따르면 이런 사람이 노자를 그르친 사람이다. 그는 "나라의 좋은 물건"이란 도를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 『노자』를 사랑하는 또 다른 사람은 약간 다른 관점에서 이 글을 설명한다. 육희성은 이 글을 권도에 관한 것으로 보면서 성인의 심오함은 권(權)·실(實)을 어떻게 저울질하느냐보다 오묘한 것이 없다는 전제 아래 이런 권도를 사용하는 것은 성인도 어려워하는 바 모름지기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고 경계했다. 소철도 여기에서 하는 말들이 꾀를 쓰는 것에 가까운데, 그렇다면 관중·손무와 다른 것이 무엇인지를 자문하고는 성인의 하는 일은 세속의 하는 일과 비슷한 바가 있지만 세속에서는 꾀를 쓴다고 한다면 성인은 이치를 타는 것〔乘理〕이라고 자답하면서 『노자』를 변명했다. 이 글의 교훈이 '이치를 타고' 있다는 것은 정확한 지적이다. 이것은 승리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단순한 전략이 아니라 "뒤집어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40)"라는 세계관에 바탕하여, "현묘한 덕은 깊고도 아득하구나. 뭇 사물과 다른 길을 택하여 크게 순응하는 데 이른다(65)"는 실천론에 기반하여, 사물의 변화를 정확히 꿰뚫은 이후에, 그 변화의 흐름에 적절히 올라탐으로써 승리를 이끌어내는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천박한 권모술수가 아니다. 이것은 벌려진 것은 반드시 움츠러들게 마련이고, 강한 것은 반드시 약해지기 마련이라는 통찰에 기반하고 있고, 그런 면에서 역시 지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장은 노자를 사랑하는 사람이 염려했고, 노자를 비판하는 사람이 경멸했던 그런 요소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음모의 냄새가 그것이다. 지금 문장은 누가 뭐래도 나의 승리와 상대방의 파멸을 위한 전략이다. 아무리 지혜로운 통찰이라도 공존이 아니라 승리를 위한 것이라면 역시 음모고 권모술수다. 이 문장에서 권모술수의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는 것은 이것을 인용하는 다른 자료를 검토해보면 금세 알게 된다. 가령 『한비자』 「설림상」에는 이 문장이 과거에 어떤 맥락으로 사용되었는지 잘 보여주는 고사가 등장한다. 그에 따르면 지백(智伯)은 위 선자(宣子)에게 아무런 까닭도 없이 땅을 요구했다고 한다. 위 선자는 처음에는 그 요청을 거부했다. 그렇지만 그는 임장(任章)의 충고를 듣고 나중에 지백에게 땅을 할양했다. 지백은 기고만장해졌고, 조나라에도 땅을 요구하였다. 그렇지만 조나라는 그 청을 거부했다. 자만에 빠진 지백은 군사를 일으켜 조나라를 침공했다. 그렇지만 결국 한·위·조 삼국의 연합군에 의해 지백의 군사는 패퇴했고, 그의 가계는 완전히 끊어지게 되었다. 이때 임장이 위 선자에게 한 충고는 이렇다. 임금께서 땅을 주신다면 지백은 반드시 교만해서 경적할 것이고 이웃 나라는 반드시 두려워하여 우리나라와 친해지려고 할 것입니다. 서로 화친한 병사로 경적하는 나라를 대한다면 지백의 명은 길지 않을 것입니다. 『주서(周書)』에 말하기를 "장차 패하게 하려면 반드시 잠시 도와주고, 장차 취하려면 반드시 잠시 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임금께서 땅을 주어 지백을 교만하게 하는 것이 낫습니다. 지백을 멸망시킨 것은 이 뛰어난 전략이었다. 그리고 이 전략은 지금 『노자』의 전략과 같다. 일단 앞의 인용문에서 지금 문장과 비슷한 글을 『주서』의 말이라고 한 사실에 주목해보자. 「설림상」은 『한비자』 중에서도 한비가 직접 썼을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글이다. 그곳에서 『노자』와 유사한 문장을 인용하면서 『노자』가 아니라 『주서』를 언급한 것을 보면 적어도 한비의 시대까지는 이런 글을 담고 있는 『노자』가 없었거나 잘 알려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지금 『노자』의 문장은 옛말에서 온 것이다. 이 점은 다른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여씨춘추』 「시군람·행론」은 이 말이 『시』에서 왔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제나라가 송을 공격하자 연왕이 사자를 보내 제나라를 도우려고 하였으나 제 민왕(=王)은 오히려 사자를 처형해버렸다고 한다. 분노한 연왕이 복수를 위해 전쟁을 준비하자 범요(凡繇)는 그것을 말리면서 다시 사자를 보내 사죄를 청하라고 충고했다. 연왕은 범요의 충고를 따랐고, 민왕은 큰 자만에 빠지게 되었다. 그 결과 나중에 민왕은 연나라에 크게 패하여 제나라를 송두리째 잃을 뻔한 지경에 빠지게 되었다. 이 고사를 전하면서 「행론」은 이렇게 평한다. 『시』에 말하기를 "장차 무너뜨리려고 한다면 반드시 거듭 쌓을 것이고, 장자 넘어뜨리려고 한다면 반드시 높이 올려세워야 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을 이름인가. 쌓았으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높이 올려 세워졌으면서도 넘어지지 않는 것은 오직 도가 있는 사람뿐이리라. 본문과 유사한 문장이 여기에서는 『시』에서 인용되었다.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일시(逸詩)지만 『노자』보다 앞선 문건임에 틀림없다. 『전국책』 「위책」의 기록도 있다. 그 내용은 위에 소개된 「설림상」의 기사와 거의 똑같다. 단지 위 선자가 위 환자(桓子)로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이야기 말미에는 역시 "장차 패하게 하려면 반드시 잠시 도와주고, 장차 취하려면 반드시 잠시 줄 것이다"라는 말이 『주서』를 출처로 하여 인용되어 있다. 『한비자』, 『여씨춘추』, 『전국책』은 모두 전국말에서 진초의 작품이다. 이런 책에서 『노자』와 유사한 문장을 '인용'하면서 『노자』가 아니라 다른 책을 명기한다는 것이 『노자』를 전국 말기∼진대의 작품으로 보게 하는 배경 중의 하나다. 이제 다시 권모술수의 문제로 돌아가보자. 지금 문장에 권모술수의 느낌이 있다는 것은 확인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이 문장만 그런가? 『노자』 전체가 권모술수 아닌가? 『노자』는 생존을 위한 지침서이므로 살아남는 것보다 도덕 의리를 더 강조하는 사람에게는 그 지침 자체가 권모술수일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인물이 한의 창업에 결정적 공헌을 한 진평(陳平)이다. 사마천에 따르면 그는 소시적에 "본래 황제·노자의 술법을 좋아하였다"고 한다. 곧 황노학을 신봉했다. 그런 그는 나중에 이런 감회를 피력한다. 나는 음모를 많이 꾸몄으니 이것은 도가(道家)가 금하는 바다. 내 세대는 이제 그만이므로 그래도 괜찮지만 내 후손이 끝내 다시 재기하지 못할 것이니, 이는 내게 음화(陰禍)가 많기 때문이다(『사기』 「진승상세가」). 진평은 자신이 음모가였음을 고백하고 그것 때문에 후손이 번영하지 못할까를 걱정했다. 실제로 그의 후손은 증손대에 가서 지리멸렬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진평은 음모가 도가의 금기라고 말한다. 이 말을 보고 액면 그대로 도가와 음모의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도가와 음모의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이런 금계가 생겨난 것이라고 본다. 곧 도가의 '술법'은 언제나 음모로 잘못 사용될 염려가 있었기 때문에 도가에서는 그것을 경계한 것이다. 정말로 멀리 있다면 구태여 금할 필요도 없다. 음모와 가깝지만 『노자』는 음모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거짓을 선전하여 생존을 도모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노자』가 음모가 아닌 이유다. 생존을 도모하되 자연 만물이 면면히 생존할 수 있는 이유를 통찰하여 본받으려고 했던 것이 『노자』다. 이런 정신을 다음 문장과 비교해보자. 용병이란 속이는 길이다. 그러므로 능하면서도 불능한 것을 보여주고, 사용하면서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며, 가까우면서도 먼 것을 보여주고, 멀면서도 가까운 것을 보여준다(『손자』 「계편」). 이것이 음모이며 권모술수다. 승리와 생존을 위한 방법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손자』는 능하면서도 불능한 것을 보여주는 속임수를 쓰고, 『노자』는 벌려진 것은 반드시 움츠러든다는 이치에 기대고 있다. 그것은 가까우면서도 먼 것을 보여줘서 자기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지 않고, 강한 자가 약하게 될 때까지 기다린다. 『손자』는 공격하고, 『노자』는 순응한다. 『손자』와 『노자』가 같은 외양을 입었으면서도 속이 다른 이유는 이런 것들 때문이다. 본문에서 "움츠러들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벌리게 하라"거나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하라"고 한 것은 상황의 조작이 아니라 대세를 거슬러 억지로 움츠러들게 하거나 약하게 하려고 하지 말라는 조언이다. 『노자』는 결코 억지로 일을 꾸미려고 하지 않는다. "하늘의 도, 사물의 이치, 인간의 일에 그 흐름〔勢〕이 이렇지 않은 것이 없고(여혜경)", "벌리는 것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움츠러들고, 주는 것이 심하면 반드시 빼앗는 것이 이치의 필연이기 때문에(동사정)", "사물의 성질을 따라 스스로 망하게 한 것뿐이다(왕필)." 오징은 "진실로 『노자』의 입언에 폐단이 없을 수는 없지만……그 말을 보고서 그 마음까지 의심한다면 또한 지나친 것이다"라고 하였다. 유연한 평이라고 하겠다. 이 문장에서 뒤의 네 구절은 통행본과 약간 다르다. 가령 본문의 '높인다〔擧〕'는 말은 통행본에 '흥하게 한다〔興〕'로 되어 있다. 백서의 원래 글자가 '여(與)'이므로 통행본처럼 읽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본문의 '없앤다〔去〕'는 말이 통행본에 '망하게 한다〔廢〕'로 되어 있는 것은 백서의 '여(與)'를 '興(흥)'으로 읽은 다음에 그에 맞추기 위해 글자를 고친 결과일 것이므로(고명) 백서를 기준으로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을 미묘한 데서 밝다고 하니 유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법이다 是謂微明, 柔弱勝强 강한 것이 쇠약해질 때 그것이 약해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다. 하지만 쇠약해질 기미가 전혀 없이 왕성하게 운동하는데도 결국 그것이 약해질 것이라고 살펴보는 것은 쉽지 않다. 강한 것이 쇠약해질 때는 그 쇠약함의 기미가 분명하고, 강한 것이 왕성하게 운동할 때는 그 쇠약함의 기미가 은미하기〔微〕 때문이다. 이렇게 은미하고 미묘한 조짐에서 결국을 읽어내는 능력이 '미명(微明)'이다. '명'은 눈이 밝은 것이다. 천세(千歲)를 보려고 한다면 오늘을 헤아릴 것이고, 억만을 알려고 한다면 하나둘을 살펴라. 상세(上世)를 알려면 주나라의 도를 살피고, 주나라의 도를 살피려면 그 사람들이 귀하게 여긴 군자를 살필 것이다. 그러므로 "가까운 것으로 먼 것을 알고, 하나로 만을 알며, 은미한〔微〕 것으로 밝은 것〔明〕을 안다"고 하였으니 이것을 이르는 말이다(『순자』 「비상」). 『순자』의 이 글을 보면 '미명'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왔음을 알 수 있다. 역시 옛날 말이다. 단지 『순자』에는 '안다〔知〕'는 동사가 있기 때문에 "은미한 것으로 밝은 것을 본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노자』는 그럴 수 없다. 그 뜻을 그대로 담으려면 『노자』의 미명은 본문처럼 "미묘한 데서 밝다"고 옮겨야 할 것이다. "유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법이다"는 여러 통행본과 약간 다르다. 하지만 대의에서는 차이가 없다. 보통 이 구절은 바위를 뚫는 물에 비유된다. 『상이』도 마찬가지 비유를 사용한다. "물은 도를 본받아 유약하다. 그러므로 능히 벼랑을 녹이고 바위를 뚫는다." 앞에서 나온 '음모적인' 문장에 부담을 느끼는 연구자는 이 구절이 그 문장을 요약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곧 강한 데 안주하지 말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길 수 있음을 깨달아 언제나 겸허·유약의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 앞문장의 본래 뜻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왕진은 "유약함이 강함을 이긴다는 것은 유약한 무리가 반드시 강한 적을 제압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왕후가 이미 강한 곳에 처하고 있으므로 마땅히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곧바로 지적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시 참고할 수 있겠다. 고기는 못을 벗어날 수 없으니 나라의 좋은 물건은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魚不可脫於淵, 邦利器不可以示人 이 문장에는 세 가지 비유가 있다. '고기'와 '못'과 '좋은 물건'이 그것이다. 이것은 비유이므로 참뜻을 헤아리기 어렵다. 단지 일정한 독해의 맥락에 부합하는가만을 따질 뿐이다. 『한비자』는 고기는 임금이고 못은 권력이라고 말한다. 권세가 중한 것이 임금의 못이다. 임금이란 신하들 사이에서 그 권세가 중한 사람이니 그것을 잃으면 다시 얻을 수 없다. 간공(簡公)은 전성(田成)에게 그것을 잃었고, 진공(晉公)은 육경(六卿)에게 그것을 잃어 나라도 망하고 목숨도 부지하지 못하였으니 그 때문에 "고기는 깊은 못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유로」). 『한비자』의 맥락에서는 이런 설명이 충분히 가능하다. 또 그에 따르면 나라의 좋은 물건이란 상벌인데, 그것도 『한비자』의 맥락에서는 합당한 해석이다. "상벌이라는 것이 좋은 물건이다. 임금이 잡으면 신하를 제압할 수 있고, 신하가 얻으면 임금을 옹립할 수 있다(「내저설하·육미」)." 동일한 설명은 「유로」에도 나온다. 『한비자』의 해석은 『회남자』 「도응훈」에도 계승된다. 「도응훈」은 사성(司城) 자한(子罕)이 송나라의 임금을 도와 재상일을 볼 때의 고사를 이 문장과 연결시킨다. 그에 따르면 자한은 임금이 백성에게 존경받을 수 있도록 벌을 내릴 일이 있으면 자기가 하고 상을 내릴 일이 있으면 임금이 하도록 권유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자 백성들은 살육의 권한이 모두 자한에게 있는 줄 알게 되었고, 결국 모든 권력이 자한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어 일 년 만에 임금을 내쫓고 정사를 전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고기는 못을 벗어날 수 없으니 나라의 좋은 물건은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 고사는 『한시외전』 권7과 『설원』 「군도」에도 그대로 나온다. 곧 『한시외전』과 『설원』도 이 문장을 이렇게 해석하는 데 공감했다. 이 고사는 원래 『한비자』 「이병」 및 「외저설우하」에 소개되어 있는데, 그곳에서는 『노자』가 언급되지 않는다. 으레 그렇듯이 「도응훈」은 여기에서도 선진 전적에서 고사를 빌려와서 말미에 『노자』를 붙여넣는 수법을 쓰고 있다. 『한비자』와는 달리 범응원은 본문에서 고기는 사람을 가리키고 못을 도를 가리킨다고 해설했다. 역시 가능한 해석이지만 『한비자』만큼 생동감은 없다. '좋은 물건'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한 주장도 많다. 왕필은 신하를 다스리는 술법이라고 보았고, 하상공이나 육희성은 권도(權道)를 가리킨다고 보았으며, 왕진은 군대를, 임희일은 도를, 범응원은 날카로운 무기를, 설혜는 위무(威武)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그보다 앞서서 『장자』의 관점도 있다. 『장자』는 "저 성인은 천하의 좋은 물건(「거협」)"이라고 말한다. 이런 해석들도 그 해석의 맥락에서 타당하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지만 『노자』에서 이 말은 이미 글자 그대로 좋은 물건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57). 용병이란 속이는 길〔詭道〕이다 그러므로 능하면서도 불능한 것을 보여주고 사용하면서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며 가까우면서도 먼 것을 보여주고 멀면서도 가까운 것을 보여준다 ―『손자』 「계편」 각주 1) * 갑·을본은 서로 일치한다. * 갑·을본이 잘 보존되어 있다. 서로를 보완하여 완전한 문장을 얻을 수 있다. * 11구의 가(可)는 갑본에는 없다. 을본에 의거하여 보완한다. * 흡(翕)은 습(拾: 갑본)·흡(㩉: 을본), 고(固)는 고(古: 갑·을본), 거(擧)는 여(與: 갑·을본), 유(柔)는 우(友: 이하 갑본), 연(淵)은 소(潚), 시(示)는 시(視)의 본 글자이므로 모두 이렇게 고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