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산업 도시 특성상 울산 동구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포함해 다양한 국적의 이주민들이 살고 있다. 지난 3월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157명의 정착문제로 지역사회가 몸살을 앓았다. 치안에 대한 우려를 중심으로 외국인들의 집단 정착이 주민들에게 주는 스트레스가 주요 요인이었다. 이렇듯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집단이 주류문화 속으로 들어올 때 지역사회가 불안함을 호소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또 정착한 이주민들을 돌려보내거나 외국인들의 정착을 막을수 있는 방안도 없다. 그런데 최근 조선업 인력난을 해소하기위해 정부가 지금까지 시행해 오던 외국인 쿼터제를 폐지할 것이라고 한다. 이럴 경우 동구에 외국인 인구가 더 늘어날 게 자명하다.
이에 따라 필자는 동구에 다른 문화권의 이주민들과 기존의 지역주민들이 공생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5월부터 `글로벌 동화`로 만나는 다문화 체험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이 사업은 글 작가와 그림 작가의 협업으로 진행된다. 글 작가로는 동구에 거주 중인 6개 국적 8명의 다문화 여성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이 들려 준 모국의 구비(口碑)동화가 15편의 한글 동화로 작업됐다. 그림 작가로는 애니원고등학교의 학생 8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한글로 작업된 다문화여성들의 이야기를 읽은 후 각 나라별 의상 등 문화적 특성을 학습해 가며 학생들마다의 개성 있는 삽화를 15편의 동화에 그려 넣었다. 이렇게 다문화여성들과 여고생들의 멋진 협업을 통해 지난 10월 말 `우린 모두 다 예뻐`라는 다문화 동화책 초판 1천권이 발간됐다. 이 책은 11월 중 교육청을 통해 울산 전 지역의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배포될 예정이다.
그러나 동화책 발간과 배포가 이 사업의 마무리가 아니라 시작이란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책 배포가 완료되면 동구에서 중년의 지역여성들로 구성되어 활동중인 `그림책 봉사단`이 다문화 글작가들의 멘토가 되어 함께 동화책을 읽어주는 봉사활동으로 이어갈 예정이다. 이를 통해 지역의 아이들은 `다문화 수용성`이 증진되고, 다문화여성들에게는 지속가능한 사회활동의 계기가 될거라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본 활동은 책 제작 과정에서는 여고생들과 다문화여성들의 협업을, 책 발간 이후에는 지역 여성봉사단체와 다문화여성들의 협업을 이끌어 내며 변방에 있던 다문화여성들이 자연스레 지역사회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했다.
열다섯 편의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금도끼 은도끼`에 등장하는 산신령이 필리핀에서는 대나무의 마디를 붙였다 뗐다 하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산신령으로 등장한다. `아기돼지 삼형제`에 등장하는 돼지 삼형제가 아프간에서는 아기염소 삼형제로 등장하는 걸 보면서 언어와 피부색은 다르지만 인류는 결국 하나라는 결론에 닿게 된다.
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언어가 상이할 뿐 인간이 지니는 보편적 인식과 도덕 기준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책들은 다른 외모를 가진 다문화여성들을 친근한 이웃으로 느끼게 한다. 그래서 이 세계화 시대에 외국인과 우리를 편가름하는 시각이 얼마나 편협된 것인가를 새삼 깨닿게 하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많은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울산 동구에서 이런 `세계화 작업`이 진행된 것은 남다른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동화 중에 하나의 수박씨가 퍼져 나라 전체에 수박이 열린다는 내용의 "마이안딤과 수박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처럼 이번 사업이 하나의 씨앗이 되어 다문화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폭이 넓어지는 열매가 동구지역 곳곳에 퍼져 나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