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천안문 광장>/구연식
북경 방문 2일째이다. 오늘은 천안문 광장 일대를 관람하기로 했다. 가이드 말로는 천안문 주요 구역은 관광버스 하차도 국가 보안상 제한되고, 연중 외국인보다 내국인이 장사진을 쳐서 새벽부터 서둘러야 한다고 몇 번이고 강조한다. 그래서 평소보다 이른 새벽에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 다녀올 시간이 맞지 않아 재촉하는 관광버스에 승차했다. 심리적 현상은 생리적인 것을 충동하는지 멀쩡하던 뱃속이 급하게 화장실을 부른다. 하차 구역과 특히 화장실은 제한구역이라 많이 걷고 줄을 서야 한다고 한다. 인간의 본능적 생리 구조는 체면 도덕 등 아무것도 문제가 될 수 없으며 오직 원초적 실현 욕구뿐이다. 그 먼 거리 긴 시간을 오만상을 찌푸리며 버티고 겨우 해결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일행과 합류했다. 보통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고 실행하는 장소는 아무 거리낌 없는 개방된 곳에서 이루어진다. 가족 또는 이웃끼리는 마당이 있고, 국민적 의미로는 광장이 있다. 중국의 천안문 광장은 물리적 규모로는 민주정치의 진정성을 논할 수는 없겠지만, 동서고금 통틀어서 가장 큰 광장이다. 한때는 세계 제1 인구수로 민중의 함성이 집결된 장소로 지금도 천둥과 지진의 전율을 느끼게 한다. 천안문 광장은 현대 중국인에게는 정신적 메카로 정립되어 성지순례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 오늘도 입추여지 없이 구름처럼 모여 든다. 중국 근·현대사의 중심 무대인 천안문 광장은, 신중국의 수도를 베이징으로 정한 마오쩌둥이 구시대의 자취를 없애고자 성벽과 성문, 옛 관청 등을 허물고 천안문 광장이라는 열린 공간을 조성했다. 광장 사방에 배치된 건축물 구도를 보면, 과거의 유물이 가득한 중국국가박물관이 현재의 중국을 이끌어 가는 인민대회당(人民大會堂)과 마주 보며 서 있다. 마치 현재와 과거가 서로를 응시하고 있는 듯하다. 숱한 권모술수와 정쟁 속에서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을 세운 마지막 거인 마오쩌둥의 정당화 정책으로 15억 인민을 잠재우려는 통치의 수단인 양, 문화적 뒷받침도 중요하지만, 당장 시각적 효과가 심리적 유발로 이어져서 정당성의 파급효과를 노리려는 정치적 상징물들이 압도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전 왕조인 명·청 시대의 궁궐 자금성(紫禁城)은 근·현대사의 가교 역할이며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궁전으로 인류 문화적 가치가 인정되어 이미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꼼꼼히 살펴보기로 했다. 자금성은 명나라 영락제의 명으로 건설되어 명·청 시대 궁궐로 24명의 황제가 살았으며, 800여 채의 건물에 9.999개의 방이 있다고 한다. 양적 규모가 질적 내용을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매머드 급 규모에 대해서는 위축이 든다. 서울의 경복궁과 용도별 배치는 비슷한데 공연히 너절 그래한 건물을 덧붙인 기분이 든다. 한편으로는 방대한 영토에 엄청난 인구수 대비에 궁궐을 짓다 보니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는 긍정적인 동정을 해본다. 자금성내 건물은 모두 다 목조건물이어서 화재에 취약했다. ‘유금동항(鎏金銅缸),이라는 거대한 방화수통이 308개에 물을 가득 채워 그 옛날부터 화마에 대비하는 철저함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규모문화에 정착된 중국인들의 사상이기에 그들의 문화를 중화사상(中華思想)이라고 우쭐해하며 다른 국가문화를 졸렬하게 얕보는 자문화중심주의(自文化中心主義)에 사로잡혀있는가 보다. 이런 자금성의 궁궐을 미로처럼 헤매다가 천단공원(天壇公園)으로 넘어갔다. 천단공원(天壇公園)은 자금성과 동시에 완공된 제단(祭壇)으로,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이다. 국운(國運)과 천재지변을 하늘의 뜻과 결과로 돌리려는 인간의 나약한 기대심리는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 같다. 청나라 조정은 자강운동(自强運動)인 양무운동(洋務運動)을 시행했다. 그러나 중국에서 반외세 운동인 의화단운동(義和團運動)과 대립하면서 정세가 혼란하여 한때는 유럽 열강들이 베이징을 점령했다. 청은 연합군과 베이징 의정서에 조인하고 청나라는 그 시절 명목상 자주 국가일 뿐, 사실상 서양 열강들의 공동 식민지나 다름없는 시기도 있었다. 이런 소재의 영화를 60여 년 전 고교시절에 ‘북경의 55일’에서 보았다. 특이하게 생겼던 거대한 원뿔형 모양의 건물이 화염 속에 싸였던 천단(天壇) 모습이 떠올라, 이곳에만 오면 콩닥거렸던 가슴이 억제가 안 된다. 지금이야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하여 얼마든지 눈속임을 할 수 있지만, 그 시절에는 실물이 타는 줄만 알았다. 하도 궁금하여 영화제작 내용을 찾아보니 그 당시는 미국 현지에서 다행히 세트 촬영이었다고 한다. 오늘도 영화 속의 천단 화염이 염려되어, 관람객 사이를 비집고 천단 정문에서 고개를 쑥 집어넣고 코를 훌쩍거리며 냄새를 맡아봐도 탄내는 없었다. 인간은 누구나 처음 섬뜩한 경험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으며 동일 현상이 재현되면 또 들춰지는가 보다. 주변을 살펴보니 전통의 ‘유금동항(鎏金銅缸), 이 군데군데 지키고 있었고, 현대식 방화시설이 완벽하여 안심된다. 인류 문화는 그민족 생활상의 반영이며, 종합예술의 결정판이다. 아무리 부존자원이 넉넉하고 역사가 깊어도 올바른 위정자들의 사고와 단합된 국민의 뒷받침 없이는 철옹성도 무너진다는 교육을 깨닫게 하는 역사의 현장에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