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화 - 봄의 향연, 소백산 철쭉제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1%2F28%2F20220128114755940_thumb.jpg)
철쭉으로 대표되는 소백산
단양 여행 첫날 늦은맥이재에서 능선 산행을 시작해 제2연화봉에 이르는 동안 철쭉으로 뒤덮인 소백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하루 종일 소백산 철쭉을 보았음에도 단양을 떠나지 않고 있었던 건 단양 곳곳에서 열리는 축제를 만끽하기 위해서였다. 철쭉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소백산 산행이 축제의 가장 큰 행사였지만, 몇몇 축하공연을 비롯해 단양군에도 즐길 거리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도 많았지만 단양의 패러글라이딩이 서서히 인기를 얻어갈 무렵이라 단양읍은 사람들로 붐벼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둘째 날 축제의 행사는 아침에 열리는 소백산 산신제를 비롯해 다양한 공연과 꽃 전시회 등이 있었다. 소백산 산신제는 단양읍에서 열리는 게 아니고 소백산 등산로 초입인 천동리에서 열렸다. 이왕 천동리까지 간 거 산신제에 참여한 뒤 비로봉에 한 번 더 오르기로 했다. 능선을 한 번 걸었기 때문에 비로봉에 오른 뒤 곧장 어의곡으로 내려가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단양읍에 돌아와 축제를 즐기는 것이 이 날 일정이었다.
국립공원 이야기 50 - 소백산이 일으킨 갈등
소백산은 충청북도 단양과 경상북도 영주의 경계가 되는 산이다. 삼국시대 고구려 영토였던 영주는 마지막까지 신라에 저항하다가 6세기 말, 신라 파사왕 때에 이르러 완전히 신라로 복속되었다. 영주는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중심지가 된 적이 없었고 많은 전쟁이 벌어진 장소였지만 온전히 보전된 문화재가 많다. 소백산의 봉우리 이름인 비로봉, 연화봉, 도솔봉에서 알 수 있듯이 영주 쪽 소백산 자락에는 수많은 불교 사찰이 세워졌다. 특히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소백산 부석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정도로 가치가 높다.
영주는 불교뿐 아니라 유학의 메카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이 영주시 순흥면에 있으며, 이 또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퇴계 이황은 풍기군수로 부임하면서 1549년 소백산을 오른 뒤 <유소백산록>을 남기기도 했다. 영주의 수많은 불교유산과 유교 유산은 모두 소백산 자락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영주의 역사와 문화를 안다는 건 소백산을 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영주와 이웃한 단양은 영주에 비해 소백산에 대한 의존도가 적다. 예부터 단양은 단양팔경으로 유명했으며, 고수동굴을 비롯해 남한강을 따라 형성된 수많은 비경이 소백산보다 인기가 많았다. 영주가 소백산을 문화유산으로 본다면 단양은 자연유산으로 보고 있던 경향이 강하다. 단양군은 1983년부터 소백산의 철쭉을 기념하여 소백산철쭉제를 개최하기 시작했으며, 단양의 축제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축제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소백산이 단양에만 속한 것도 아니기에 이웃한 영주시에서도 소백산 철쭉제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1999년부터 서로 양보하여 격년제로 축제를 열기도 했지만, 2006년부터 두 자치제 모두 철쭉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소백산을 두고 마치 경쟁하듯 축제를 벌이던 두 지자체의 갈등은 2011년 영주에서 단산면을 소백산면으로 바꾸는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극에 달했다. 이에 단양군은 소백산이란 이름이 특정 지역의 소유가 될 수 없다며 반발했고, 2016년에 중앙분쟁조정위원회는 소백산면 명칭 불가를 선언하며 단양군의 손을 들어주었다.
매년 발표되는 '한국관광 100선'에 2015년 소백산이 선정된 적이 있었다. 해당 관광지의 지역 또한 함께 표시가 되는데, 이때 경북 영주만 달랑 표기가 되자 단양군에선 당연히 한국관광공사 측에 항의하였다. 한국관광공사는 영주시만 소백산을 응모하고 단양군은 다른 관광지를 응모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단양군민을 납득시키진 못 했다. 결국 소재지를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으로 함께 표기함으로써 갈등이 일단락되었지만, 소백산을 놓고 벌이는 두 지자체의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산신제를 보고 다시 소백산에 오르다
소백산을 경계로 맞닿은 두 고을인 단양과 영주의 풍경은 너무나 다르다. 소백산의 물줄기가 젖줄이 된 영주의 풍기와 순흥 땅은 예부터 살기 좋은 땅으로 여겨져 수많은 문화유산이 남아있다. 반면 험준한 산지인 단양은 같은 소백산임에도 이렇다 할 문화유산이 남아있지 않다. 험준한 산지이자 삼국시대의 전쟁터인 탓에 산성과 적성비가 단양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일 뿐이다.
하지만 단양군의 소백산에 대한 사랑은 영주시 못지않다. 영주시에서도 소백산철쭉제를 개최하지만 단양의 소백산철쭉제만큼 지역의 대표적인 축제는 아니다. 이는 영주가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땅이기에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과 특산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단양군은 소백산을 신성스럽게 여겨 축제 기간 동안 소백산의 산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있다. 소백산 산신제는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소백산과 함께 살아가는 단양의 정성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소백산 산신제를 지켜본 뒤 산악인 허영호와 함께하는 등산 행사에 참여했다. 등산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산행을 시작했음에도 축제 참여자분께서 참여자에게 주는 수저 세트를 선물로 주셨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포근한 산행길에 오르며 초록빛으로 물든 소백산을 감상했다. 천동계곡은 겨울에 올랐던 산행길인데 봄에 오르니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전 날에 소백산을 올랐지만 다른 등산로를 통해 오르니 색다른 모습을 또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능선길에 다다르자 겨울과 달리 칼바람은 온 데 간 데 없고 따뜻한 햇살 아래 핀 분홍빛 철쭉이 만개해 나를 맞아준다. 어제 본 풍경이지만 다시 봐도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다. 상대적으로 이른 시간임에도 철쭉을 보기 위해 수많은 등산객들이 능선에 서 있다. 다들 철쭉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하며 밝은 표정으로 등산을 즐기고 있다.
비로봉에 다시 한번 올라 맑은 날씨 아래 능선길을 눈에 담은 뒤, 어제 등산을 시작한 어의곡으로 하산했다. 어의곡에서 늦은맥이재로 오를 수도 있지만 비로봉으로 곧바로 하산하는 등산로도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가파르고 계곡길도 아니기 때문에 재미는 덜하지만 빠르게 하산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철쭉제를 맞아 어의곡에서 단양읍으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양읍으로 가는 길도 편했다.
단양읍에 다시 도착한 뒤 읍내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구경시장을 비롯해 단양읍 곳곳을 둘러보았다. 야외공연장에서는 버스킹 공연이 한창이라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철쭉이 주제인 축제답게 다양한 종류의 철쭉을 전시하고 있는 공간도 있다. 소백산의 자연 그대로인 철쭉과 다른 모습이지만 산철쭉 또한 향긋한 냄새와 아름다운 빛깔로 철쭉제를 빛내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 소백산
소백산은 구인사와 부석사로 대표되는 불교 사찰과 철쭉과 설경이 상징인 아름다운 자연을 갖춘 국립공원이다. 이름만 보면 태백산이 더 높은 격인 산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다양한 문화유산과 다채로운 자연을 뽐내는 소백산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많은 사람들은 설악산의 장엄한 풍경을 보고 설악산을 최고로 꼽지만 나는 포근한 능선길과 수많은 문화유산을 갖춘 소백산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아직 소백산에 가보지 못한 이라면 지리산과 비견될 정도로 다채로운 매력을 갖춘 소백산에 한 번 가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