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도움이 절실한 상태에서 뜻하지 않게 받은 도움은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수치감을 느끼게 하는 도움도 있다. 그런 도움은 필요에 의해 받으면서도 고맙기보다는 불편한 감정이 앞선다. 어떤 형태이든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것이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나에게 그만큼의 여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넉넉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쉽게 나누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각자가 살아가면서 세워놓은 기준이 있어 그 기준에 합당하면 기쁨으로 나누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마음이 차가워져 손을 내밀지 못하게 된다. 도움을 주지 않는 천 가지, 만가지 이유를 찾아내어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돌아서곤 한다.
며칠 전 남편과 내가 외부에 나와 있을 때 우리가 하는 식당에서 전화가 왔다. 한국 사람이 손님으로 왔는데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어 난감하다고 했다. 그 통화가 끝나자, 이번에는 스시 매니저가 또 우리를 찾았다. 그 손님의 거친 언행으로 직원 한 명이 울고 있다는 것이다. 달려가서 만나보니 가끔 교회에 나오곤 했던 한국분이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여 한국말로도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가만히 있다가도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모르는 손님 자리로 가서 그 옆에 앉기도 했다. 곤란해진 우리는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다는 J구역장에게 연락했다. 그동안 그녀를 가끔씩 돌보고 있던 J집사는 한걸음에 달려왔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하여 이혼당하고 딸의 양육권도 가져오지 못해 그동안 혼자 살아온 그녀는 몇 달전만해도 건강상태가 양호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상태가 이렇게 나빠진 연유를 알 수 없었다. J집사의 노력으로 우리는 그녀가 그동안 살던 집에서 쫓겨나 차에서 자다, 그 차도 빼앗기고 거리에서 며칠 밤을 지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공항에 갔는데 그곳에서도 비행기를 태워주지 않고 쫓아내 밤을 지새우고 걸어 우리 식당까지 왔다는 것이다. 우리 동네에서 한시간정도 떨어진 곳에 살던 사람이라 우리 가게를 어떻게 알고 그 정신에 찾아 올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우리의 질문과는 상관없이 횡설수설하는 그녀를 일단은 먹이고 깨끗한 곳에서 재우기로 했다. 가게 근처의 모텔에 방을 얻었다.
다음날 만난 그녀는 그 전날보다는 훨씬 양호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르는 듯했다. 자기는 일자리를 구해 돈을 벌어 남편에게 빼앗긴 딸을 되찾아 올 것이라고 했다. 또 공부를 더 해서 우리 동네에 있는 대학에 교수가 되겠다고도 했다. 담배를 끊임없이 피워대며 그런 계획을 말하는데, 모든 단어 사이사이마다 에프로 시작하는 욕설이 쉴 새 없이 섞여 나왔다. 누가 보아도 정상이 아니었다. J집사는 그런 상태의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정부의 지원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녀가 원하면 들어갈 수 있는 기관이 몇 있었지만, 그녀는 그런 병원은 절대 가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우리가 강제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 이틀 잘 먹고 푹 쉬자 그녀의 상태는 한결 좋아졌다. 교회에서 무엇이든지 도와주고 싶은데 어떤 도움을 받기를 원하냐고 묻자 그녀는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이곳에는 가족이 아무도 없어 엄마와 언니가 있는 한국으로 가고싶어했다. 그녀의 상태가 언제 더 나빠질지 몰라 우리는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휠체어 서비스를 포함한 비행기 표를 구입했다. 한국까지 직항이 없어 이곳에서 국내선을 타고 애틀랜타로 가서 대한항공을 타야 하므로 혼자 보내기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가기 위해 공항에 간다고 하니 그녀는 자기가 탑승할 때까지 함께 있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자기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경찰들이 자기를 싫어해서 자꾸 이상한 질문을 하고 자기를 내 쫓는다는 것이다. 그녀를 한국에 보내는 날 새벽에 남편과 J집사는 그녀와 함께 공항에 갔다. 그녀의 탑승수속을 해주고 휠체어를 끌어줄 사람에게 그녀를 당부하고 돌아왔다. 그녀가 닷새 동안 묵었던 모텔은 술병과 담뱃재와 오만가지 잡동사니로 난장판이었다. 두 사람은 쓰레기 봉지를 가지고 들어가 그 방 청소를 하고 나서 체크아웃을 했다.
무례하고 도움을 받아도 감사할 줄 모르는 그녀를 돕는 일이 나는 그리 즐겁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과는 아무 상관 없이 깊은 사랑과 관심으로 그녀를 돕는 J집사를 가까이서 보며 그랬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며칠 동안 밤잠도 제대로 못 자며 그녀를 돕고, 온전하지 못한 그녀를 혼자 한국으로 보내는 것에 마음 아파 눈물 짓는 J집사에게서 <dead man walking>이란 영화에 나왔던 수녀님의 모습을 보았다. 죄 없는 청소년을 무참히 살해한 죄인을, 그 죄를 보지 않고 그 불쌍한 영혼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그를 도우려 했던 그 수녀님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본 것처럼, J집사에게서도 동일한 사랑을 보았다.
만일 그녀가 우리 식당으로 오지 않았다면 그녀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어느 길가에 누워 횡설수설하는 노숙자가 되었을 것이다. 상상하기도 싫은 험한 일들을 겪었을 수도 있다. 공항에서부터 우리 가게까지 걸어오는 그 여정에는 하나님의 도움이 함께 했음이 분명하다. 한국에 도착하면 연락하겠다던 그녀는 지금까지 감감 무소식이다. 공항이나 기내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에게 연락이 오도록 해 놓았는데,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한국에는 잘 도착한 모양이다. 부디 지금쯤은 길고 고단했던 남의 나라 살이를 잊고 푸근한 엄마 품에 안겨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