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
백석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 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헝겊 조각도 막대꼬치 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文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 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 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갓신창 : 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질긴 끝의 한 종류. 개니빠다 : 개의 이빨. 재당 : 서당의 주인. 또는 향촌의 최고 어른. 초시 : 초시에 합격한 사람으로 늙은 양반을 이르는 말. 갓사둔 : 새사돈. 붓장사 : 붓을 파는 장사꾼. 몽둥발이 : 손발이 불에 타버려 몸뚱아리만 남은 상태의 물건.
남신의주(南新義州)유동(柳洞)박시봉방(朴時逢方)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는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디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아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삿 :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쥔 : 주인. 딜옹배기 : 아주 작은 자배기. 북덕불 : 짚북더기를 태운 불. 나줏손 : 저녁 무렵. 바우섶 : 바위 옆.
여승(女僧) 백석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平安道)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山)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山)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가지취 : 참치나물. 금덤판 : 금을 캐거나 파는 산골의 장소로 간이 식료품 등 잡품을 파는 곳. 섶벌 : 울타리 옆에 놓아 치는 꿀벌. 재래종.
탕약(湯藥) 백석
눈이 오는데 토방에서는 질화로 위에 곱돌탕관에 약이 끓는다 삼에 숙변에 목단에 백복령에 산약에 택사의 몸을 보한다는 육미탕(六味湯)이다 약탕관에서는 김이 오르며 달큼한 구수한 향기로운 내음새가 나고 약이 끓는 소리는 삐삐 즐거웁기도하다
그리고 다 달인 하이얀 약사발에 밭어놓은 것은 아득하니 깜하야 만년(萬年) 옛적이 들은 듯한데 나는 두 손으로 고히 약그릇을 들고 이 약을 내인 옛사람 들을 생각하노라면 내 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또 맑어진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곱돌탕관 : 광택이 나는 곱돌을 깍아서 만든 약탕관. 숙변 : 숙지황(熟地黃). 한약재의 한 가지. 백복령(百茯嶺) : 솔뿌리에 기생하는 복령에서 나오는 한약재. 땀과 오줌의 조절에 효험이 있고 담증, 부증, 습증, 설사등에 쓰임. 산약 : 마의 뿌리. 강장제(强壯劑)이며 유정(遺精), 몽설(夢泄), 요통, 살사 등에 쓰임. 택사 : 택사과에 속하는 다년초로 한약재에 쓰임. 늪이나 논에서 저절로 나는데, 땅밑의 괴경(塊莖)은 작고 잎은 장병전형(長柄箭形)임. 택사의 뿌리는 약재로 쓰이며 성질은 조금 차고 이수도(利水 道). 습증(濕症), 부종(浮腫) 따위에 쓰임. 옛적본 : 옛날 분위기. 고전풍. 휘장마차 : 휘장을 두른 마차. 어느메 : 어느 곳. 금귤 : 작은 귤의 한 종류. 눌한 : 빛이 흐리게 누르스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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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또 맑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