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현대화 과정의 모델인 웨넘 시(p.45-70)요약 및 소감
김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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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데이비드 웰스는 서론에서 복음주의가 신학적 통일성과 중심 없이 다양한 이해 집단들과 연합함으로써 핵심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주장한다. 세계 복음화와 연합이라는 낭만적 감성에 젖어 문화 전략의 중대성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통일성은 광범위한 문화 전략, 즉 성경을 근거로 해서 작업된 광범위한 세계관을 이식함으로써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복음주의 운동에는 그런 작업이나 전략이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저자는 복음주의자들이 문화를 중립적이고 무해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고, 문화가 마치 기독교 진리를 드높이는 협력자나 되어줄 줄로 착각한다면서 복음주의자들의 천진한 소박성을 냉소한다. 또, 복음주의자들이 어떤 문화가 신앙에 명백히 위협적일 때만 일부 반현대적 입장을 내세우는 것과 달리 자신은 ‘전체에 걸쳐 반현대적 입장에서 글을 쓴다’라고 밝힌다.
저자가 시종 반대하는 현대화는 개신교 정통주의(역사적 정통주의)를 보호해온 문화적 경계들을 모호하고 불안정하게 만드는 포스트 모더니즘적 사상과 문화, 폭발적인 기술 문명으로 야기된 세속화 및 다원주의적 가치관들을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하다. 교회는 이전 시대 역사에서 비교적 피아 구분이 분명한 외부의 적들과 전투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투 그 자체가 조롱받는다. 더욱이 진리와 사랑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웃 종교나 타 문화를 상대로 전투하여 이긴들,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될 일이다. 저자의 위기의식이 드러내듯 교회가 포위되었다는 인식은 타당한가? 어쩌면 현대화 앞에 흔들리는 촛불 같은 운명은 교회가 자초한 상황이 아닐까? 저자는 과연 현대화의 대항마가 될 신학적 돌파구를 보여줄까?
2. 본문 요약
1) 달콤한 낙원이라 불린 웨넘
저자는 뜻밖에도 매사추세츠 주의 웨넘이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wenham/웬햄이라고도 표기함) 이야기를 들고나온다. 원래 웨넘은 세일럼이라는 도시에 포함되어 있었다. 세일럼의 첫 목사이던 청교도 휴 피터스가 1638년에 그레이트 연못(현 웨넘 호수)에 와서 요한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푼 요한복음 3장을 설교했다. 그 설교로 세일럼에서 분리된 새로운 뉴잉글랜드 정착민 마을이 형성되었고, 애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가 후에 영국 서퍽 카운티 부유층 정착민들의 영향으로 웨넘이라는 이름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웨넘의 청교도적 이념은 장로교도도 침례교도도 아닌 ‘정통 회중주의’였다. 19세기 초반까지도 웨넘은 다른 도시들에 밀어닥친 격변에서 완전히 동떨어져 무관심하게 존재했다. 변화에 대한 웨넘의 수용 능력은 제한되어 있었다. 웨넘은 주변 인구 변화에도 거의 영향받지 않았고, 엄청난 산업상의 변화와도 떨어져 있었다. 깨끗하고 맑은 호수에서 생산되는 웨넘의 얼음이 유럽과 인도까지 수출(1844-1873)되기도 했으나 치명적인 화재 발생으로 유일한 현대 산업 경험마저 중단되자 웨넘은 더 이상 산업 시대에 참여하기를 중단하고 구식 생산방식들로 돌아갔다. 이렇게 웨넘은 어떤 면에서도 현대적인 것을 발견할 수 없는 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웨넘이 낙후된 산업과 낮은 인구수로 볼 때 분명 침체된 도시임에도 그 나름의 매력과 특성을 가진, 자기만의 경계를 가진 도시가 틀림없다고 적는다. 단, 현대화의 칼날이 망나니처럼 그 동네의 삶을 파괴하기 전까지 말이다.
2) 청교도 마을이었던 웨넘
청교도적 신앙 교리와 권위는 웨넘 주민들의 관혼상제 등 일상의 모든 국면을 견고하게 잡아주는 중심축이었다. 신앙과 신조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성경은 중심적인 문학책이었다.
다른 고장들에서 기존 권위가 무너져 내린 후에도 웨넘은 청교도 동네로서의 기풍(ethos)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특히 청교도는 가는 곳마다 지역 공동체 중심에 교회당을 건설했는데 마을교회는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장소라고 보았으며, 동시에 사회를 함께 묶어 주는 언약의 끈이면서 삶의 모든 국면을 통합시키는 중추로 보았다. 당연히 목사는 그 마을의 첫 번째 시민이었다.
웨넘이 견지했던 교회 중심성에 균열이 일어난 것은 시청을 짓는 일에서 비롯되었다. 마을 행사 등을 좀 더 넓은 공간에서 치르자는 제안에서 비롯되었는데 몇몇 마을 주민이 맹렬히 반대했음에도 79대 61표차로 안건이 통과되었다. 저자는 반대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18표차로 시청 건립이 통과된 일을 두고 “아마도 이 표결에서 아무도 바람에 날리는 겨를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쓰고 있다. 1854년 교회당 맞은편에 세워진 시청 건물을 중심으로 웨넘 시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저자는 웨넘 시 중심가 양편에 두 중심이 등장했고, 이것은 기독교의 확고한 사실들을 기초로 틀을 갖추었던 예전 인생관이 무너지고, 세속성에 물들어 기독교의 확고한 사실들을 도무지 믿기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 갈 삶의 방식이 그 자리를 대체하리라는 상징으로 평가한다. 교회당 맞은편에 건설된 시청을 중심으로 돌아갈 사회생활 구조가 장차 기독교적 가치관의 견고한 틀을 무너뜨릴 불길한 상징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2-1) 이상적 여성상
저자는 웨넘이 현대화로 인해 실낙원 하는 과정을 그리기 위해 가상의 여성을 등장시킨다. 1836년에 학교에 입학한 이 여성은 1830년대의 단순한 커리큘럼을 따라 대수학, 지리, 독서, 작문을 배웠고 기계적인 암기 학습 위주로 교육받았다. 미국 남학생과 여학생은 어릴 때부터 분리되어 매우 다르게 인생을 준비하는데, 특별히 저자는 이상적 여성상에 대한 자신의 주관을 밝히기 위해 먼저 미국 남자들이 어떻게 함부로 남성성을 과시하며 성장하는지 그 과정을 설명한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미국 가정의 남학생들이 아버지 교육 아래 제대로 성인 수습기를 거치지 않아 유독 거칠고 상스럽다는 평가를 받았다. 따라서 미국 남자들이 ‘흥청거리고 술을 마시고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동안, 미국 가정과 사회의 안전망을 여성들에게 기대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방탕함을 일종의 남성적 낭만으로 여겨도 괜찮은 남자들과 달리 여성은 가정과 사회의 건강과 안정에 충실히 기여해야 했다. “그러나 만약 여성들이 어떤 면으론가 그처럼 타락한다면, 그 사회의 기본 틀이 파괴되는 것처럼 느꼈다.” 저자는 미국 여성들이 남성들의 무책임과 방탕함 중에도 가정과 사회를 지킬 순수한 힘을 갖추기 위해 “지성의 힘과 사상의 독립성을 개발하도록 격려받았다”라고 적는다. 저자가 만든 가상의 웨넘 여성은 바로 이러한 19세기 여인상에 감화되어 있다.
문제는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중반 사이에 유럽 여러 나라로 확산된 산업혁명으로 남녀 간 문화적 차이가 첨예화된 점이다. 산업화는 새로운 도전적 기회와 사고방식을 불러왔는데 남성은 싫든 좋든 이런 변화를 흡수했다. 반면 여성은 거대한 시대적 변화의 지형에서 소외된 까닭에 싫든 좋든 전통적 가치를 보전하도록 요구받았다. 저자는 19세기 미국을 두고 ‘때때로 여성의 낙원’이라고 불렸다면서 물론 모든 19세기 여성들이 이 말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웨넘에 풍미한 여성상을 보여주기 위해 ‘드러난 풍성한 사랑의 수고’ 라는 시를 옮겨놓는다. 헤스터 프라이스라는 젊은 처녀가 자기의 속마음을 노래하는 내용인데, 헤스터가 파이를 얼마나 잘 구웠는지 천국에서 내려온 듯한 그 파이를 맛본 남자라면 현모양처가 될 것이 분명한 헤스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큐피드의 화살에 심장이 뚫리고 만다. 신앙과 가사에 관련된 것 외에 잠재된 재능을 펼치거나 추구할 기회가 차단되었던 19세기 웨넘의 헤스터는 시의 말미에 이렇게 자랑한다. “내가 결혼할 때 당신에게 알려 주겠어요. 내 성경책과 요리책이 성공하게 해주는 책들이라고.” 저자의 생각은 분명하다.
“이 시구가 과연 시적인 완성도를 지니고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참 여성상이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헤스터라는 처녀가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와서 이런 여성 이해가 와해되고 신여성이 참 여성을 대신하게 되었는데 이 일은 노예 제도 폐지와 기계 시대의 도래만큼이나 충격적인 변화라고 바바라 웰터는 말한다.”
바바라 웰터에 따르면 이상적 여성의 덕목 첫째는 경건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천성적으로 더 경건하며 남성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잘 믿고 그 뜻에 순종할 수 있다고 한다. 두 번째 덕목은 성적 순결이다. 남성은 연약하여 봐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성의 타락은 허용되지 않았다. 세 번째 덕목은 남자에 대한 복종이다. 평등주의적인 요구가 거센 사회적 상황이었지만 이런 복종이 성적 차이를 본질적으로 불평등하게 만든다는 이론적 깨달음은 가지지 않았고, 단지 남성 파트너에게 권위의 역할을 할당하는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살림살이 덕목이다. 요리, 원예, 바느질, 간호사 등의 전반적인 살림살이 기술과 가정의 아늑함을 책임져야 한다. 참 여성과 신여성의 차이를 대조하며 논지를 펴나가던 저자는 1880년 이래로 그 시대 작가들이 가부장적인 남편과 아버지들을 독재적 존재로, 어머니들을 억눌려있는 존재로 묘사하면서 전통적 가정 질서가 무너지고 무질서와 부도덕이 증가했다고 전한다.
2-2) 조용하며 착실한 부흥
저자는 조나단 웨드워즈의 영향 아래 메마른 칼빈주의 신앙에 생기가 더해졌던 1차 대각성 운동과 달리 아르미니우스주의로서 찰스 피니에서 완벽하게 구현된 부흥주의가 2차 대각성 운동의 특징이 되어 미국 전역에 파급되면서 마침내 오늘날의 복음주의 대부분으로까지 넘쳐 들어왔다고 비평한다. 저자는 1차 대각성 운동이 칼빈주의 신학을 굳건히 하면서 생기를 부여한 반면 2차 대각성 운동은 부흥주의적 아르미니스주의로서 종교개혁 사고방식을 질식시켰다고 평했다. 뉴잉글랜드 청교도 회중교회주의자들의 도시인 웨넘은 새로운 교리적 사고방식에 완강히 저항했지만, 1810년에서 1825년 사이 즉 15년 동안 겨우 13명이 교회에 들어올 정도로 침체했다. 금식기도의 날을 연 다음 해 59명이 회심했다는 기록 외에 더 이상 괄목할 성장의 기록은 없다. 다만 그들은 어린 시절에 배웠던 교훈에 닻을 내리고 정통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실천하고 규범을 따라 살았다. 새로운 질서의 시대에 자유의 원칙이 정치 영역에서 삶의 모든 영역으로 적용되어 가는 동안 많은 이들이 이 자유의 문화를 호의적으로 바라보았다. 반면 뉴잉글랜드의 회중교회주의자들은 이 물결 앞에서 사회에서의 자신들의 특권적 입지가 끝났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다만 저자는 이 청교도적 혼불들이 웨넘과 같은 소도시에서 여전히 설교를 통해 살아있었고, 개인과 공공 생활이 일치하여 마치 유리처럼 투명했고, 성품과 일은 연결되고, 가정과 세계가 연결되고, 초월적 질서로까지 연결되었다고 적는다.
3. 소감
저자는 95쪽에서 웨넘은 어떻게 현대화가 이 나라의 자그마한 구석에 외부의 거대한 세계를 침투시켰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말하고, 이 현대화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자체 동력을 지니고 있는 혁명이며 인간이 주는 신호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문사회학적 통찰이 일천한 탓이요, 신학적 사유가 모자란 탓이겠지만 나는 저자가 광의의 테크노포비아(Technophobia), 테크노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는 의혹이 생긴다. 저자가 마치 에덴동산처럼 그리고 있는 웨넘은 내가 보기에 달란트를 수건에 싸서 땅에 묻어두고 일체의 변화를 거절하는 데에만 에너지를 쓰느라 정작 교회가 마땅히 마련했어야 할 시대적 전망을 조금도 갖추지 못한 어리석고 불충한 종으로 보인다. 사실 역사는 저자가 두려워하는 세속화, 현대화를 통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개개인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방향으로 전진했다. 세속화의 도전은 늘 종교권력에 심취해서 자기 본분을 잊은 교회를 내려치는 칼날이 된다.
웨넘은 원래 세일럼이었다가 분리된 마을이다 (각주 4). 웨넘의 농부들이 농작물을 말과 수레마차에 싣고 하루 만에 보스톤에 다녀올 수 있었는데 세일럼이 바로 그 보스톤의 어촌 마을이었다. 뉴잉글랜드의 청교도 목사인 휴 피터스가 세일럼의 첫 목사로서 웨넘을 탄생시킨 설교(1638년)를 했으니 세일럼과 웨넘은 모자 관계와 같다. 그런 세일럼에서 1692년, 유럽에서도 사라진 마녀재판이 벌어진다. 매사추세츠의 청교도 목사 새뮤얼 패리스가 자기 딸과 조카가 발작을 일으키자 악령의 소행으로 보고 마녀를 추적했는데 인디언 노예 여자와 구걸하는 노인, 병들어 교회를 1년간 나가지 않은 사람 등 사회적 약자부터 마녀가 되었다. 채택된 증거 중에는 마녀의 영혼이 찾아와 빵을 훔치는 환상을 보았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 광기 어린 재판을 주도한 사람은 코튼 매더 목사였다. 당시 뉴잉글랜드 일대 식민지 청교도 도시들은 목사가 지배하는 신정 왕국들에 가까웠고, 그중에서도 코튼 매더는 '매더 왕조'로까지 불리는 막강한 종교인 가문이었다. 당시 목사 왕조들은 문명이 종교에서 멀어져 타락해간다고 여겼으며, 이 재판을 일종의 명분으로 삼아서 민중의 신앙심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가 이후 재판의 문제들이 드러나면서 신정 체제의 파멸에 결정타가 되고 말았다. 웨넘에서는 이웃 마을 세일럼에 불어닥친 마녀재판의 광풍을 어떤 눈으로 지켜 보았을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본토 영국에서 온갖 핍박을 당하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이 어느새 자기들을 핍박하던 종교권력자들처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마녀사냥을 일삼고 종교적 힘을 이용해 사람들을 옭아매는 타락한 세력이 되었다면, 하나님께서 세속화의 칼날로 그 두꺼운 아성을 무참히 깨어버리실 수 있음을 나는 믿는다. 예루살렘도 버리는 하나님이 아니시던가?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 ‘주홍글씨’는 세일럼 마녀재판에 자기 고조할아버지가 개입했음을 알고 사죄의 마음으로 썼다고 알려진다.
저자가 1장에 배치하고 공들여 쓴 것으로 보이는 이상적 여성상은 기괴한 느낌마저 든다. 저자는 침묵하고 있지만 1920년이 될 때까지 미국 여성들은 투표권조차 갖지 못했고, 미혼여성일 때 가진 재산을 결혼 즉시 남편에게 귀속시켜야 했던 남성의 소유물이었다. 저자가 실종되었다고 외치는 신학은 대체 누구와 무엇을 위한 신학일까? 방탕한 남성들의 성적 타락은 관용하면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는 여성들에게는 가정과 사회를 지켜내라는 사명을 부여하는 그런 신학, 그런 사고방식이 우리가 소중히 지켜내야 할 웨넘의 청교도 혼불인가? 가축처럼 일하고 끝없이 아이를 낳아 기르고 남편을 주인 양반이라 부르며 복종하는 여자들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그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켜주셨는지 대낮처럼 환히 드러내는 신학은 왜 하지 않았나? ‘우리도 인간이다’ 라는 슬로건을 들고 절규하며 참정권 투쟁을 했을 그녀들을 보면서 과연 웨넘의 청교도들은 뭐라고 설교했을까? 헤스터가 만든 파이를 칭찬하는 시를 옮겨놓고 신여성과 달리 참 여성의 모습이라고 추켜세우는 저자를 읽는 동안 국왕의 경주마에 뛰어들어 “우리에게 투표권을 달라”고 외치고 사망한 에밀리 데이비슨이 떠올라 침통했다.
저자가 세속화의 불길한 상징으로 지목한 웨넘 시청 건립은 1854년에 완공되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을 저자는 또 침묵하고 있다. 17세기 뉴잉글랜드에 정착한 청교도 도시들은 정교분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각 고을의 목사는 청교도 분봉왕과 같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졌다. 초기 미국 각 주에 정착한 이주민들의 도시는 대개 교회와 정부가 하나였고 인구 중 소수인 교회 구성원이 시민 생활과 종교 생활을 모두 통제했다. 1833년이 되어서야 매사추세츠 헌법 개정으로 교회와 도시행정이 분리되었다.웨넘 주민들이 크고 넓은 시청 공간을 원한 것은 저자의 묘사처럼 교회 중심성에 도전하기 위한 악의적인 의도가 아니라 교회가 정부 부처와 같이 도시행정을 주관하는 자리에서 분리되어 교회는 교회로서, 행정은 행정가들에게 각각의 역할에 맞게 시대의 흐름이 조정되어가는 중에 자연스럽게 발생한 요구로 보아야 한다.
만약 진리가 시청 건물 하나에 휘청거려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으스러지는 것이라면, 저자의 테크노포비아, 테크노스트레스에 나는 십분 공감하고 동의한다. 진리가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늘 노심초사하면서 웨넘과 같은 도시들을 만들든지 찾아가든지 할 것이다. 웅크린 채 모든 변화에 저항하고 의심하면서 옛날 옛적에는 이 세상 만물을 주관하시고 시대의 변화를 마음대로 주도하시던 하나님마저 어딘가로 숨어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되었노라고 울부짖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공황장애에 빠지지 않을 것인데 교회가 특권의식에 빠져 취할 때 세속의 칼로 내려쳐 잠을 깨우는 하나님의 섭리를 성경으로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세속이 자만심에 가득 차 하나님이 없다 할 때, 낮은 자리에서 겸손하고 의롭게 회복된 교회는 세상의 머리 위로 높이 들려서 그때 선지자의 웅변을 외치게 될 것이다. 신학실종은 사실 교회실종이라고 해야 옳다. 교회는 누구이고 무엇인가? 교회는 지상에서 맥박치는 그리스도의 심장이 아닌가? 더 이상 뜨거운 피를 뿜어내지 않는 차갑고 매정한 권위주의적 교회가 세상의 중심에 서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세속도 자유의 신장을 위해 뜨거운 호흡을 내뿜는다. 세속화나 현대화의 탓을 할 것이 아니다. 비굴했거나 비열했거나. 그 어딘가에서 비틀거리며 영적 권위를 잃어버린 교회의 족적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것이 신학의 기본일 것이다.
2023.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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