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강화양명학 국제학술대회 축하 및 한국 심학과 양명학의 연구 과제

제20회 강화양명학 국제학술대회 축하 및 한국 심학과 양명학의 연구 과제2023년 11월 21일   한국 학계가 현대 학술 관점에서 양명학을 연구한 성과를 보면 정인보 선생이 신문에 게재한 간략한 『양명학 연론』이 1933년에 출판되었습니다. 벌써 1백 년을 바라봅니다. 일본에서는 명치유신 시기에 양명학을 연구하여 중앙집권화에 이용하였고, 중국은 중화민국 시기(1911년)부터 양명학을 연구하여 서양 근대철학에 연계시켜보려고 소위 중서대화(中西對話)에 노력해왔는데 특별한 성과는 없으나 연구 기간이 벌써 1백 년을 넘겼습니다. 서양 학계에서는 동남아시아와 티베트의 불교를 연구할망정 중국 양명학을 비롯하여 동아시아 국가들의 양명학 연구에는 아무런 흥미와 관심도 없습니다. 현재 동북아시아 학계와 서양 철학계가 서로 대화하지 못하는 까닭에는 동북아시아 학계에서 왕양명 개인의 학술과 양지에 관하여 많은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또 깊이 사색하여 새로운 주장을 내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왕양명의 학술 자체는 학술적 완정성(a complete academic system of theory and practice)이 부족하고 또 학술적 정체성(the ambiguous academic identity whether Confucianism or Buddhism)을 의심받아왔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현재까지도 한국과 중국 및 일본 학자들은 대체로 왕양명이 성리학과 선학(禪學)을 두루 이해한 성인이기에 학술체계도 상당히 잘 갖추어졌을 것이라고 믿는 선입견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왕양명 개인이 생존 당시의 학계와 정치사회 상황과는 상관없이 양지 또는 치양지를 제시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큰 오해입니다. 첫째, 왕양명이 젊었을 때 학술활동을 시작하던 정덕 연간(正德, 1507-1521, 왕양명 39살부터) 전반기에는 종교와 학술 또 문학과 예술문화에서 큰 변동이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왕양명의 학술을 왕양명 개인에 국한하여 연구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둘째, 현재 남아있는 왕양명의 문헌 자료는 왕양명 개인이 갖고 있던 자료의 1/3이며 왕양명 본인이 의도적으로 많은 자료를 없앴기에 왕양명을 당시의 정치사회 상황과 개인 교류 관계에 넣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셋째, 가장 중요한 문제는 왕양명이 말한 내용 모두가 왕양명 본인이 체험한 것이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해 왕양명 본인이 어떤 수양공부 방법을 배워 수행하고 체험하였는지 또 체험하지 못한 내용은 어느 학술에서 가져왔는지를 잘 걸러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왕양명이 살아생전에도 왜 선학(禪學, 불교)이라고 비판받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 홍치 연간(1470-1505)의 중흥(中興)부터 정덕 연간 전반기에 일어난 커다란 변동을 간단히 보겠습니다. 불교계에서는 임제종과 조동종이 간신히 명맥이 이어오는데 북경 대흥륭사(大興隆寺)에서 화엄종 제25조 노암 보태(魯庵普泰) 스님이 간화선의 대안으로 『능엄경』의 수양공부를 제시하고 또 유식학(법상종)을 부흥시켰습니다. 명나라 말기에 법상종, 화엄종, 천태종, 정토종의 부흥뿐만 아니라 청나라 초기에 율종 부흥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명나라 말기에는 유식학과 『능엄경』 연구 붐이 일어났고 여기에 기초하여 화엄종과 천태종을 결합하려는 바람도 불었습니다. 따라서 보태 스님이 후세에 끼친 영향은 아주 컸다고 평가합니다. 성리학 학계에서는 정학(正學)운동과 함께 문학에서 이몽양(李夢陽, 1473-1530)과 강해(康海, 1476-1540)를 비롯한 전칠자(前七子)는 송나라 시기의 글을 읽지 말고 차라리 한(漢)나라 시기의 글을 읽고 짓는 고문운동(古文運動)을 일으키고 민간문학을 발전시키자고 주창하였습니다. 화단에서는 심주(沈周, 1427-1509)와 문징명(文徵明, 1470-1559) 등이 문인화를 그려 소위 오파(吳派)를 열었습니다. 이러한 큰 변동은 이들 자신이 송원 이래로 관습적으로 살아온 상황을 자각하였기에 명나라 150년의 관행을 바꾸고 다시 관행의 원형이었던 송대를 넘으려고 시도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당시 관행을 바꾸고 송대를 넘자는 변금추고(變今追古)입니다. 이 말은 효종 황제가 1502년(홍치 15년)에 장원급제한 강해(康海)의 정시(廷試) 대책을 보고 내린 평론입니다. 물론 당시 관행을 바꾸는 진도는 분야마다 다르게 나타났고 또 송대를 넘어 찾아간 과거 시기도 분야마다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어떤 분야는 당대까지 또는 위진까지 심지어 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송대 이래로 만들어진 당시의 관행을 반성하였습니다. 사실상 명말청초에 유행한 고증학 정신은 홍치 말년부터 일어난 자각에서 비롯되었다고 평론할 수 있습니다. 왕양명은 일찍부터 보태 스님을 비롯하여 많은 스님과 교류하였고 나중에는 스스로 불교를 공부하여 잘 안다고 자신하면서 정덕 황제가 티베트 불교의 법왕을 북경에 초치하려는 것도 반대하였습니다. 왕양명은 28살(1499) 2월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북경에서 관원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이몽양과 강해가 주도하던 정학(正學)운동과 고문(古文)운동에 참여하였고 심주와 고청(顧淸, 1460-1527) 등 화가와 감식가들과 교류하며 시와 그림을 즐겼습니다. 따라서 왕양명 개인과 양지에 관한 연구는 당시 문화적 변동 현상을 반영할 수 있도록 연구 범위와 시각을 넓혀야 합니다. 왕양명의 정좌공부와 양지에는 중요한 학술적 문제가 있는데 양명학의 학술적 완정성 부족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국 불교 전반에 걸쳐있는 교리와 공부에 관한 두 가지 제한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중국 불교는 당나라 시기에 화엄종, 천태종, 법상종, 선종 등이 건립되어 대승불교를 주창하였습니다. 현장(玄奘, 602-664) 스님이 인도에서 유식학과 인명론을 배워와서 널리 전파하였습니다. 의정(義淨, 635-713) 스님이 진나(陳那)의 『집량론』을 번역하였으나 크게 유행하지 못하고 잃어버렸습니다. 따라서 진나의 양론(量論)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법칭(法稱, Dharmakirtti, 약 600-680)의 『석량론(釋量論)』은 중국에 들어오지 못하였기에 중국 불교가 양론을 발전시키지 못하여 불교 인식론과 논리학이 발전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중국 불교의 발전을 가로막는 교리 문제이며 아울러 불교의 영향을 받은 송대 성리학뿐만 아니라 명대 왕양명의 학술에서도 인식론과 논리학이 부족한 것은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둘째, 위진시기에 불교계에서 교판(敎判)이 일어나고 당나라 시기 천태종 지자대사(智顗, 538-597)가 사교(藏通別圓)를 교판하여 원교(圓敎) 기준을 내놓은 뒤에는 누구나 대승불교에서도 원교에만 관심을 갖고 소승불교를 멀리하였습니다. 따라서 대승불교의 참선 공부는 소승불교의 입문 없는 헛공부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현재 동남아에 전해오는 소승불교의 내관(內觀)공부가 중국 불교에서는 비었기에 중국의 대다수 스님이 참선 수양을 하더라도 초선(初禪, prathama-dhyana)에도 들어가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심지어 욕계(欲界)에서 색계 문턱에 다가가는 미도정(未到定, anāgamya)에서 나타나는 심리 현상과 생리 현상이 종교적 최고 경지를 증험한 신비체험처럼 오해하였습니다. 이런 오해는 도교와 유가의 수양공부에서도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한국 학계가 앞으로 연구할 과제들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왕양명이 보태 스님과 어떻게 사귀었는지를 조밝히고 나아가 왕양명 수양공부가 도교 존사법에서 42살부터 선정(禪定)에 입문하는 『능엄경』의 최초방편(最初方便, 初心方便, the early phase understanding to prathama-dhyana)으로 바꾸었는지를 밝혀야 합니다. 둘째, 왕양명이 55살 이후에는 공개적으로 『대승기신론』의 진망이심(眞妄二心)에 근거하여 학생들에게 양지를 가르치고 아울러 유식학의 제6식 자증분을 들어 양지를 설명하였는지를 밝혀야 합니다. 다시 말해 왕양명은 유식학의 심학과 『능엄경』의 수양공부를 참고하고 또 화엄종 교리를 빌어 양지를 설명하였다는 것을 밝혀야 합니다. 종합하여 말하면 왕양명이 44살에 확신한 입지(立志)공부는 『능엄경』의 최초방편이며 현재 말하는 정념(正念, sati)에 가깝고 49살에 제시한 양지 뜻은 사실상 『염신경(念身經)』의 정지(正知, sampajāna)에 가깝다고 평가합니다. 위와 같이 밝힌 뒤에 앞으로 양명학을 비롯한 유가학술을 연구하는 방향 두 가지를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성리학과 심학에서도 서양철학이나 티베트 불교의 인식론을 빌어와서 유가의 인식론(量論)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서양철학의 인식론은 불교 양론에서 보면 세간현량(世間現量)이며 선정(禪定)상태에서 깊이 사유하는 유가현량(瑜伽現量, 居定現量)이 아닙니다. 따라서 수양공부를 강조하는 동아시아 학계에서는 유가현량을 더욱 자세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성리학의 수양공부에서는 주정(主靜)이나 주경(主敬)을 억지로 막연하게 강조하지 말고 욕계정을 지나 색계의 초선에 들어가는 미도정을 연구하여 수양공부의 차례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물론 한국의 조선 시기에 일어난 학술 변동을 참고하여 명청시기 학술을 연구하여야 합니다. 조선 중기에 서산대사 휴정 스님이 『능엄경』의 입문공부를 깊이 연구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백파 긍선(白坡亘璇) 스님이 간화선보다는 『능엄경』에 큰 관심을 갖고 연구하였습니다. 또 서울에 살았던 거사 김대현(金大鉉)은 지자대사가 정리한 『석선바라밀차제론』을 요약하여 출판하였고 조선 성리학의 공허함을 완전히 지적하였습니다. 위와 같은 대학자들은 일찍부터 색계 선정(禪定)에 들어가는 초심자의 입문공부 곧 신비체험 다시 말해 미도정을 연구하였습니다. 따라서 조선 학계의 변동을 참고하여 명청시기 학계와 양명학을 연구하고 평가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