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일 노동절… 잠은 않오고 한국에 두고 온 가족 생각도 나고… 일전에 글 좀 올려 달라는 후배의 말이 갑자기 생각나 못쓰는 글이지만 몇자 적어봅니다.
92년에 수교가 되었지만 이미 그 보다도 오래전인 80년대 중반부터 안기부의 허락을 받아가며, 중국에 한국사람이 드나들기 시작한지 어언 20년이 되었다. 나도 회사에서 해외를 가라하니 중학교 실력 밖에 안되는 영어실력을 가지고 러시아로 날라가 해외근무를 하다가 중국에는 95년 초부터 와서 지금껏 지내고 있으니 중국에서 그래도 꽤나 오래묵은 편이긴 하다.
지금 중국에서 개인사업을 하거나 회사 주재원으로 근무하는 많은 사람들 중 그래도 오래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IMF 시절이나 그 이후에 나온 사람들이고, 그 전 세대들은 이미 은퇴를 하거나 망해서 쪽박차고 한국으로 돌아 간 경우가 허다하다 보니 열에 아홉이 망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였는데 난 그래도 아직 살아 남아 있으니 목숨도 질기다.
92년 수교 이후 전혀 검증되지 않은 중국 시장을 개척하면서 셀 수 없는 시행착오와 수업료를 지불하였던 1세대와 IMF 시절 어려운 국내사정을 극복하고자 도피처처럼 몰려 나왔던 중국 2세대… 그리고 요즘 중국유학까지 마치고 노련한 중국어 실력과 중국문화에의 낯설음 없이, 탄탄한 기본기로 무장한 채, 당당히 진출하고 있는 3세대 젊은이들…
처음 중국에 와서 머물던 곳은 도시가 개방된 초창기다 보니 외국인을 쉽게 접하지 못했던 중국사람들은 나와 나의 가족이 주말에 나들이라도 하던가 재래시장에 장이라도 보러 가면 저 먼데 있던 시장 상인들까지 달려와서 더듬거리며 중국말을 하는 우리를 쳐다보고 즐거워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재래시장에서 10위안 어치 장을 보면 들고 다니기가 힘들 정도로 양이 많았던 그런 시절이다.
여름철 어여쁜 아가씨들이 미니 스커트를 입거나 얇아서 하늘거리는 치마를 펄럭거리며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 도시의 여자들은 속치마를 입지 않아 속이 훤히 다 비쳐 보인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걸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하다가 아내에게 핀잔을 듣기도 하였고, 대책없는 교통 무실서와 아무데나 마구 버려대는 쓰레기들…
회사 일로 여러 중국회사의 사장들을 접해야 했는데, 우리 사무실을 방문한 그들의 모습은 반바지에 샌달, 머리는 며칠을 안 감았는지 새 둥지를 몇 개씩 틀고서 담배를 휙휙 던지며 시커먼 이빨을 들어내고 떠들어 대는 통에 정신이 다 나갈 지경이었다.
공원을 가면 외국인이 표 사는 곳이 따로 있어서 돈을 더 내야 하고, 중국인인 것처럼 행세하며 내국인용 창구에서 말없이 돈을 내밀어도 귀신같이 알아보고는 옆에 가서 표를 사라고 손짓하곤 했는데, 물론 1년인가 지나니깐 그런 건 없어지고 똑같은 요금을 받기는 했었다.
기억해 보면 끝도 없이 많은 일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난다. 즐겁고 재미있던 기억, 때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중국이 싫어지던 기억, 가끔씩 찾아오는 한국을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덧 10년이 후딱 넘어버리고, 격식에 얽메이지 않는 그들의 자유로움과, 없어도 만족할 줄 아는 여유로움. 눈 찡그리던 무실서에서도 이제는 오히려 편안함이 느껴지며 가끔 방문하는 한국이 낯설기만 한 것은 내가 중국사람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중국에 가면 조심할 것 3가지가 있는데 술, 여자, 조선족이 그것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이것은 남자들에게나 통할 말이 될 것이다. 술, 여자, 조선족… 그 3가지를 한꺼번에 모아놓은 곳이 있으니 바로 가라오케이다. 가라오케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패가망신하고, 단란하던 가정이 무너져 내리며, 심하게는 목숨도 잃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고 들었고 지금도 가끔씩 들려오는걸 보면 요즘이라고 해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버린 지금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그런 표면적인 것은 아니다. 그런 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서점에 가면 산더미 처럼 쌓여 있고, 인터넷만 접속해도 많은 유사한 글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지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진정한 친구를 사귀라는 것이다. 그는 중국사람이래도 좋고, 조선족이래도 좋고, 한국 사람이래도 관계없다. 남자, 여자의 구분도 물론 있을 수 없다.
중국에서 지내면서 진정한 중국친구를 사귈 수 만 있다면 그 사람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니 딱히 사귀질 못했다 하더라도 노력한 것만 가지고도 망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돈 있으면 친구고 돈 떨어지면 감옥가기 쉬운 곳 또한 중국이긴 하지만, 중국에서 사귄 진정한 친구라면 그의 국적과 민족과 관계없이 진정 커다란 힘이 되고 의지가 되며, 서로 돕고 도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사람들은 어떠한 모습이 되었건 간에 서로 얽혀져 있다. 중국땅이 넓어도 한국사람 사는 곳은 정해져 있다. 하다못해 한국 식당을 찾아가 밥 한끼 먹는 것만 해도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이 될 것이다. 멀리 이국땅에 와서까지 서로를 못 믿고 서로 헐뜯으며 제살 깍아먹기 하면 안된다. 도우며 살아야 한다.
조선족을 무시하고, 경계하고, 한족 보다도 못한 존재로 폄하하는 행동… 그러면 안된다. 그 사람들 할아버지 세대까지만 올라가도 지금 우리 할아버지 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나라를 사랑하셨던 분들이고, 그런 분들의 후손이 조선족이다. 세계 여러민족 중에 두 가지 언어를 그렇게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들의 뛰어난 능력을 지켜주고 개발해 주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나 되돌아 볼일이다.
중국사람. 즉 한족이 되겠다. 나도 처음 몇 년간 정말 그 사람들이 싫었다. 생긴 거 부터도 맘에 않들고, 행동하는 거 생각하는 거, 외국인이라고 바가지 씌우고, 또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하나서부터 열까지 죄다 맘에 않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사람들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배우고 너무 많은 것을 도움 받으며 지내고 있다. 중국 땅에서 지내면서 중국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다면 일찌감치 보따리 쌓아야 한다. 괜히 한국사람 욕 먹이지 말고…
중국을 사랑하지 않고, 중국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한국 사람끼리 경계하고, 조선족을 업신여기면서 중국에서 성공한 사람 보지 못했다. 국적과 민족을 떠나서 내 스스로 거짓을 일삼지 않으며, 교만하지 아니하고, 먼저 다가가서 친절하게 성심껏 교류 한다면 진정한 친구 몇 명쯤은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성공은 그런 친구들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한국을 떠나서 외국에 살 때는 본인 스스로가 한국을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하면서 지내야 한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욕하지 말고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 보고, 담금질 하며, 내공을 쌓아 나가야 할 것이다.
중국이 어떻고, 중국사람이 어떻고, 갖은 무용담을 떠들어 대며 아는척하는 사람, 3년도 안된 하수이다. 이때가 가장 망하기도 쉽고, 위험하기도 한 시기이다. 중국말도 꽤나 하겠다 괜히 술 취해 흔들고 다니다 다치는 사람 많이 보았다.
몇번 쓰린 경험을 하고 나니 이젠 중국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하며 겸손해 하는 사람, 5년 넘은 중수이다. 절대로 중국을 쉽게 보지 않고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쉽게 망하지 않는다.
산전수전 다 겪고도 10년 넘게 살아남아 중국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십성의 공력을 갖춘 고수이다. 쉽게 앞에 나서지도 않지만 언제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이제금 새로이 중국에 진출하는 3세대들이라면 충분히 세월을 뛰어 넘어 3년도 안돼 십성의 공력을 갖추어 진정한 고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탄탄한 기초를 갖추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중국통…그거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쓰고나서 보니 지루하고 재미없이 길기만 했군요…. 담에 기회가 되면 재미있는 중국 이야기도 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원 여러님들 좋은 만남. 좋은 연분 많이 만드시고 중국에서 성공신화 이루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