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을 걷는 호사
시월 둘째 화요일이다. 새벽에 잠을 깨 몇 줄 글을 남기고 어제 다녀온 당항포 연안 낚시꾼이 낚던 보리멸을 시조로 남겼다. “당항포 내해 연안 내산리 대천 돈막 / 물때를 알고 나온 현지인 아주머니 / 지렁이 끼운 바늘은 연이어서 물었다 // 햇살이 내려앉은 볕 좋은 방파제엔 / 차 몰아 달려왔을 외지인 사내 셋은 / 밑밥이 가득 보여도 살림망은 비었다” ‘당항포 보리멸’ 전문.
이어 동진대교를 건너 진동 고현리 갯가 선두마을에서 봤던 화강석을 쪼아 세운 듯한 남근석으로도 시조 운율을 다듬어 놓았다. “섬들이 바라보인 진동만 연안 갯가 /고현리 뒷개 지나 한갓진 작은 포구 / 방파제 서낭당 제단 남근석이 지킨다 / 펄럭일 만선 깃발 풍어를 기원해준 / 드러난 그 모습이 보태진 손길인 듯 / 매미가 덮친 태풍도 발기 각도 같았다” ‘선두 남근석’이다.
날이 밝아오는 새벽에 약차를 달여 놓고 아침 식후 산책을 나섰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나서 이웃 동 꽃밭으로 가 밀양댁 할머니와 꽃대감 친구를 만나 아침 안부를 나누었다. 할머니는 호미를 들고 금관화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친구는 분꽃과 유홍초 꽃씨를 따 모았다. 나는 나대로 자연학교 등교를 위해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차를 몰아올 지기를 만나려고 횡단보도 근처로 갔다.
건너편 아파트단지 지기를 만나 팔룡동에서 차를 몰아온 지기와 더불어 도청 앞을 지나다가 행선지를 정했다. 집을 나설 때는 을숙도로 가서 물억새와 강물 위로 내려앉을 가을빛을 완상하려 했는데 동선을 변경했다. 한 지기가 점심나절 이후 시내에서 처리해야 할 업무가 기다려 행선지가 먼 곳은 복귀에 시간이 늦을 듯해서였다. 그리하여 도심에서 멀지 않은 주남저수지로 향했다.
도청과 창원대학 뒤에서 정병산터널을 지나 동읍 용잠에서 무점마을 어귀로 들어섰다. 동판저수지 둑에는 한 달 전부터 피기 시작한 코스모스꽃이 절정을 지나는 때였다. 동판저수지 둑길에 꽃을 가꾼 무점마을은 주말에서 한글날로 이어진 연휴에 코스모스 축제가 열려 끝났더랬다. 추석 전후 열리던 코스모스 축제가 코로나가 닥쳐 몇 해 열지 못하다가 펜데믹이 풀려 재개했다.
자연 학습을 야외로 나선 지기들과 추석 전 한 차례 답사한 바 있고 나는 그 이전에도 다녀가 올해만도 세 번째여도 눈 앞에 펼쳐지는 전경은 그때마다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전날 행사를 치른 휴게 시설 테이블과 의자에서 고구마를 먹고 차를 마시며 환담이 오가다 둑길을 걸었다. 꽃길 탐방을 나선 이가 적어 일행들과 호젓한 둑길을 걸으니 벼들이 익은 들판도 함께 드러났다.
저수지 수면으로 물에 잠겨 자란 갯버들은 연잎들과 같이 무성한 모습을 드러냈다. 판신마을 근처 수문까지 갔다가 발길을 돌려 되돌아오다 들판으로 내려가 설치 미술처럼 일렬로 세워둔 허수아비들의 열병을 받았다. 허수아비들은 각자 의상이나 모자의 개성이 독특해 멋져 보였다. 차를 둔 곳으로 와 지기는 시동을 걸어 일행은 들길로 들어 주남저수지 재두루미 쉼터로 이동했다.
주남저수지에서 소속이 다른 걷기 행사 참여 군상들과 함께 길고 긴 둑길을 걸었다. 봄날에 유채꽃이 저문 자리는 뒤늦은 가을 파종으로 잎줄기가 야윈 메밀은 하얀 꽃을 점점이 피웠다. 길섶에 핀 돼지감자꽃과 나팔꽃도 봤다. 내수면 어로 고깃배를 묶어둔 계류장을 지나 용산마을 근처에 이르니 탐방 인파가 줄어들어 지기들과 벤치에 앉아 배낭에 넣어간 김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둑길에서는 물억새꽃과 살이 통통한 청개구리와 배불뚝이 암사마귀를 만났고 수면에는 노랑어리연이 피운 꽃들도 봤다. 재두루미 쉼터로 돌아와 차를 몰아 사내로 들어와 창원대학 캠퍼스 청운지 편백 숲에서 피톤치드를 흡입하면서 나머지 간식을 들며 환담을 나누다가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로 들어왔다. 나는 지기들에게 꽃대감과 안씨 할머니가 부재중인 꽃밭 현황을 소개해 주었다. 23.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