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사원의 Ananke(운명)>/구연식
인간의 운명을 예언자들은 때로는 희망과 절망으로 갈라놓아 혹자들의 애잔한 삶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사옹(沙翁)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기성세대의 옹고집으로 매정스럽게 청순한 젊음을 가두어 생을 마감하게 했다. 그러나 빅토르 위고는 『노트르담의 꼽추』에서 애틋하지만, 지고지순한 사랑의 아름다움과 종말을 우리들 가슴 속에 영원히 안겨주었다.
어느 날 빅토르 위고는 노트르담 사원 길을 거닐다가, 콰지모도가 사금파리로 담벼락에 긁어 새긴 「Ananke(운명)」의 낙서를 보고 잠깐 상상에 젖어 담벼락에 이마를 맞대고 서 있었다. 순간 속에 콰지모도의 절규를 듣는다. 저주스러운 육체적 외모로 태어나, 설움과 그늘에서 여인의 사랑은 유년 시절 잠깐 어머니 외에는 괄시와 천대 속에 노트르담 사원의 종지기로 살아왔다. 어느 날 무지개 위로 걸어가는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바라보게 된다. 에스메랄다는 흉악한 외모를 보고 측은한 눈빛을 보낸다.
콰지모도는 그 눈빛을 난생처음 천사의 후광처럼 받아들여 연정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의 외모는 이 세상 미(美)와 추(醜) 극치의 대립이다. 절대자가 아니면 두 사람 관계를 어느 누구도 주선할 수 없다. 위고는 펜촉에 잉크를 풍덩 적셔 두 연인의 사랑과 임종을 아름답게 써 내려가 마감하게 한다.
그래서 동서고금 연인들은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의 플라토닉(Platonic love)적 순애보 이야기는 지금도 심금을 울리고 있다.
위고 형보다 300여 년 전에 태어난 칼뱅 아저씨는 인간의 운명을 사주팔자대로 살아가야 한다며 곧이곧대로 예정설(豫定說)을 강조했는데, 위고 형님은 에로스(Eros)의 분신(分身)인지 인간의 운명을 철필 끝 잉크 몇 방울로 잘 먹고 잘살며 또 가슴이 으스러지도록 젊음과 사랑을 누리라고 강조했다.
그래도 콰지모도는 위고 형 덕분에 에스메랄다와 사랑하며 살다가 임종을 지켜주었다. 오랜 세월 속에 두 유골은 짚불의 불티처럼 서로 엉켜져 있다가 작은 바람에 사그라지더니, 부둥켜안고 민들레 꽃씨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 후 어쩌다가 드높은 하늘을 보면 외롭고 작은 조각배처럼 떠 있는 구름 한 점은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의 영혼이 되어 내게 다가와 진정한 사랑의 방정식을 알려주곤 한다.
우리 땅 김다인(조명암) 선생은 『갑순이와 갑돌이』에서 무슨 억하심정인지 그 어린 소꿉친구를 갈라놓았다. 그래서 많은 갑돌이 같은 사람들은 밤이면 들창을 남몰래 열어 놓고, 달님을 갑순이 삼아 혼잣말로 소곤거리며, 자리에 누워 이불로 눈가를 닦으면서 그대로 잠이 든다. 친구는 영원하며 그리움은 태워도 재는 남는다.
노트르담 사원이 아니어도 나의 시골 마을에는 고샅길마다 담벼락이 많이 있다.
그 많던 동갑내기와 위아래 한 살 차이 친구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 사금파리로 담벼락에 새겨 놓지 않아도, 이제는 별의별 통신 수단이 넘치는 요즈음 세상에 잠깐 클릭하면 손바닥 손금 보듯 모두 다 알 터이지만… 보고 싶다, 동무들아?
먼 훗날 하늘나라에서 만나면 지금까지 살다 간 지구촌 사람들 모두 다 모였을 텐데, 어디서 어떻게 알아보고 만날 수 있단 말이냐? 손에 든 것 없어 줄 것은 없어도, 가슴에 식지 않도록 오랜 세월 속에 간직한 그것을 꼭 쥐여 주며, 지금 이 땅 위에서 만나보고 싶다.
위고 형? 그중에서 갑순이 친구가 제일 만나보고 싶어요, 갑순이는 옛 모습 그대로 있을 테지만, 나는 세월의 껍질이 온몸을 어느 사이 감싸고 있어 갑순이가 못 알아봐도 내가 갑순이를 알아볼 수 있으니, 걱정은 마세요.
올해는 위고 형 나라 파리에서 세계인들의 체육 잔치가 열린다. 지구촌 사람들 모두 다 모여 올림픽 구경은 물론이고 에펠탑 구경도 빠지지 않겠지요, 위고 형님! 노트르담 사원 담장 대신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이고 가장 잘 보이는 에펠탑에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찾는 사람 『갑순이』” 이름을 붙여도 될까요?
꼰대 적 발상이라고 소가 웃을 일인지도 모른다. 속 풀이는 빠를수록 좋다. 오래 지체하면 응어리가 되어 쉽게 녹지 않는다. 그리고 본인의 속 풀이는 원초적 방법부터 자신이 제일 잘 안다.
외모도 마음도 에스메랄다보다 더 고운 갑순이가 보고 싶다. 유난히 파리 거리가 북적거리며 에펠탑이 높아 보이더니, 노트르담 사원의 종소리가 고막이 터지도록 울려 퍼진다. 시민들은 행여 콰지모도가 환생하여 사랑에 굶주린 연인들에게 아모르파티(amor fati) 초청으로 착각하여 모여든다. 파리 하늘에는 만국기가, 에펠탑에는 『갑순이』의 광고가 올해는 꼭 만나주도록 하겠다며 힘차게 펄럭거린다.
노트르담 사원은 잔다르크가 마녀에서 성녀로 태어난 곳이며, 나폴레옹이 대관식을 치른 성당으로 종교적 의미 외에도 정의와 승전 그리고 사랑의 전당으로 인류가 염원하는 것들의 소망 사원이다.
올해는 나에게도 노트르담 사원의 Ananke의 기적을 기대해 본다.
(2024.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