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산 가을 야생화
근래 며칠은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가을 축제 행사장을 다녔다. 그제는 형제들과 산청 동의보감촌 한방 엑스포장을 다녀오고 어제는 지기들과 주남저수지 일대 들녘과 꽃길을 걸었다. 교외로 나갔더니 어디나 가을빛이 완연하고 자연을 완상하며 건강을 지켜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평소 산중 수행승처럼 혼자 걷기를 좋아했는데 가족과 지인들과도 같이 어울려 시간을 보냈다.
시월이 중순에 접어든 둘째 수요일이다. 혼자 호젓한 산길을 걸어보려고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신마산 마산의료원 앞으로 나가 진동 방면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밤밭고개를 넘어 동전터널을 지나 진동 환승장에 닿았다. 낙남정맥의 봉화산이 광려산으로 건너가는 진고개를 향해 가려고 지역 순환 버스로 바꾸어 탔다. 산업단지 신촌에서 추곡과 대티와 정현을 지나니 대현이었다.
창원 진북과 함안 여항을 경계로 79번 국도가 지나는 고개를 진고개라고 부르는 듯했다. 지금은 휴업 상태였지만 고갯마루에는 ‘진고개 가든’이라는 휴게소가 나왔다. 진북의 자연 부락으로 대티의 ‘티’는 ‘고개 치(峙)’의 구개음이다. 대현이나 정현의 ‘현’은 ‘고개 현(峴)’을 뜻하는 한자어인 듯했다. 그곳의 진고개가 대치와 대현 정현의 마을 이름에서도 고갯마루임을 알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아침 기온이 제법 쌀쌀한 느낌을 받았다. 대현 종점엔 납골 사찰로 안내된 용광사가 나왔다. 독립가옥에서 떨어진 모텔도 한 채 보였다. 길섶에는 칡넝쿨과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줄기를 뻗어간 호박넝쿨에서 늦둥이 호박이 두 개 달려 살이 올라 통통해갔다. 고갯마루에 이르니 노란 산국이 화사하게 피려는 즈음이었다. 베틀산으로 가는 정현지구 임도로 들었다.
봉화산을 바라보며 해발고도를 점차 높여 가는 길섶에는 구절초와 쑥부쟁이꽃은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꽃은 어느 산자락에나 개체 수가 많아 이즈음 가을을 대표하는 야생화다. 예초기가 자른 풀이 시든 검불에 가려진 분홍 꽃을 한 송이를 발견했는데 귀엽고 앙증맞은 끈끈이대나무꽃이었다. 역시 분홍색인 송이풀꽃은 꽃잎을 층층이 탑처럼 쌓아 올려 피웠다.
길섶 피어난 야생화에 홀려 따라간 임도에는 갈림길이 나왔다. 진행 방향을 계속 나아가면 베틀산을 넘어 서북산에 오르고 오른쪽은 봉화산 허리를 돌아가 여항 봉성저수지에 이르게 되었다. 후자를 택해 산허리를 돌아가니 수종 갱신 지구에는 건장한 인부들이 어린 조림수 주변의 풀을 잘라주고 있었다. 소나무 일색인 숲을 편백을 비롯한 경제림 수종으로 바꾸는 산림 경영이었다.
산모롱이를 돌아가니 예초기의 소음이 들리지 않아 산중답게 고요와 적막이 찾아왔다. 개울을 건너는 임도와 이어진 바윗돌에 걸터앉아 가져간 삶은 옥수수와 고구마를 꺼내 먹었다. 요깃거리는 간식을 겸한 이른 점심으로 때운 격이었다. 쉼터에서 일어나 산허리를 돌아가니 내곡리 건너편은 대산이 광려산으로 이어져 무학산으로 뻗쳐가는 낙남정맥의 산세가 병풍처럼 에워쌌다.
인적 없는 곳에 피어난 야생화들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무념무상 걸었다. 산초나무 가지 틈새로 보랏빛 꽃잎이 보여 다가가 살피니 투구꽃이었다. 투구꽃은 여러해살이 미나리아재비과 초오속으로 봄날에 산나물 중독 사고를 일으키는 유독 식물의 하나다. 산나물로 뜯는 오리방풀도 보라색 꽃을 피웠다. 역시 산나물인 뚝갈은 좁쌀 같은 하얀 꽃이었고 이고들빼기는 노란색이었다.
산등선을 돌아가 나온 이정표는 봉성저수지와 청암이었다. 봉성저수지로 내려서니 건너편은 여항산이 서북산으로 이어지는 산마루가 우뚝했다. 한국전쟁 때 임시수도 부산의 최근접 마산 진동까지 출몰한 적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른 현장이었다. 수국꽃을 심어 가꾸는 봉성저수지 둘레길을 걸어 여항면 소재지 청암으로 내려섰다. 산골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23.10.11